174화. 서부의 변화
새해가 시작된 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난 시기, 제국 서부에 몰아치는 매서운 한파는 더욱 심해져만 갔다.
서리가 내리거나 눈이 쌓인 들판과 관도에는 자연히 인적이 드물었고, 덕분에 황도 아세리안을 나서서 서쪽으로 질주하는 거대한 은빛 늑대는 상대적으로 눈에 덜 띌 수 있었다.
물론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길 무시, 일직선 질주, 편하다.”
사방이 어둠에 잠긴 시각, 별빛도 흐린 밤하늘 아래 숲속의 공터.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모닥불 앞에서 루나가 흐뭇한 표정으로 엎드린 월랑의 턱을 쓰다듬었다.
“킁.”
녀석도 그것이 싫지 않은지, 피하지 않고 눈을 지그시 감을 뿐이었다. 하지만 쉴 새 없이 팔랑거리는 꼬리는 근엄한 척하는 녀석의 표정 연기를 의미 없게 만들고 있었다.
다행히 루나는 굳이 그것을 지적하지 않고 그저 픽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콧잔등을 다독여 주는 건 덤.
“옳지. 참, 잘했어요.”
“킁.”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꼬리를 바람개비처럼 돌려 대는 꼴이 참 어이가 없었다.
‘네 꼬리는 무슨 다른 인격체냐?’
그러면서도 타이니는 자신의 생각이 영혼의 반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스레 영파를 조절했다.
영혼의 힘이 발전하면서 생긴 하찮은 재주 중 하나였지만, 이럴 때는 제법 쓸만했다.
다만.
“……분명히 원래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영파 조절에 신경 쓰느라, 정작 무의식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막지 못했다.
“컹!”
아니라고? 허…….
훈련에 열중했던 자신 대신, 황도에서 온갖 사람의 주목을 다 받았던 녀석이다.
- 늑대 정령이다! 그 광휘의 기사…….
- 우와! 귀엽다!
- 저렇게 작다가도 커지기도 한다던데.
광휘의 기사가 제도에 있다는 증거가 곧 녀석이었으니, 수많은 사람이 저택과 황궁을 오가는 녀석을 따라다녔었다.
문제라면 사람들이 주목하고 칭송해 준 탓에 저 녀석에게 괴상한 취미가 생긴 듯하다는 것.
지금도 예전 같았으면 달빛 받겠다고 주변을 뛰어다니고 있어야 정상인데…….
“착하다. 너 많이, 쓸모 있다.”
어딘가 조금 이상한 루나의 칭찬과 손길에도 꼬리만 풍차처럼 돌리며 얌전히 엎드려 있는 꼴이라니.
흐뭇해하는 녀석의 기분이 타이니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칭찬에 맛 들인 건가? 아님 귀여움 받는 거에?”
그의 중얼거림에 월랑의 눈썹이 꿈틀했다.
“컹!”
아니라고? 그저 작고 약한 인간을 지켜 주려는 것뿐이라고?
‘꼬리나 얌전히 두고 연기를 하시지.’
타이니가 눈을 가늘게 뜨고 자신의 정령을 노려보는데, 루나가 오히려 그를 향해 눈을 흘기며 한마디 보탰다.
“월, 귀여운 아이. 왜 그렇게, 봐?”
생각해 보면 이 아가씨도 이상한 구석이 있었다.
분명에 전생에는 이렇게 심하지는 않았는데.
“그 전에 루나, 그 끊어서 말하는 버릇 좀 고치면 안 될까?”
나름대로 조심스레 말을 꺼내 보는데,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길게, 말하면, 훈련 때, 혀 잘렸었다.”
타이니는 바로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아니, 고치도록, 노력한다.”
“아니, 특별히 거슬리는 건 아니야. 미안하다니까.”
“말투 때문, 동생이, 누나, 어리게 본다. 내가, 누난데.”
아니, 그건 내 정신이 30대라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야무지게 각오를 다지는 루나의 표정에 얌전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누나라…….’
생각지도 못했던 혈연.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결코 나쁘지는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녀를 보면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
- 타이니에게 잘하고 있다고 전해 줘, 월. 내가 대견해한다고 말이야.
‘대견…… 하…….’
황궁에서 월랑을 통해 보았던 클로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녀석이 직접 전해 준 심상은 그녀를 직접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 주었다.
전생에도, 현생에도 자신이 잘해 나가고 있음을 확인받고 싶은 존재.
삶의 이정표 같은 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의…….
‘누나.’
- 응? 손은 왜? 어……? 고…… 마…… 워……. 누…… 나? 누나!? 아하하하. 타이니구나!
- 나야말로 고맙지. 결혼식에 와 줄 거지?
월랑의 발로 메시지를 전하자 그에게 돌아온 부탁.
그에 직접 황궁에 들어가지는 못해도 밖에서나마 지켜보고 축하해 주겠다 약속했는데, 결국 식을 못 보고 나오게 되었다.
그것이 미안해서라도.
‘이번 생에는 부디 행복하길.’
타이니는 진심으로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
가식적인 미소만 짓던 전생의 모습을 보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삶의 이정표가 되어 준 은인이 전생의 불행을 완전히 떨쳐 내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내가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그 웃음을 간직하고 있길.’
타이니가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그때, 어느새 월랑이 그의 얼굴 앞에 콧잔등을 들이밀고 있었다.
“크릉.”
“응?”
“컹!”
“아…… 나도 칭찬하라고? 오면서도 많이 했…….”
“크르르.”
영파로 말고, 소리 내서 칭찬하라는 뜻이다.
“허…….”
월랑에게 이상한 취미가 생긴 게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타이니는 그저 피식 웃으며 녀석의 콧잔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덕분에 사흘 만에 국경까지 왔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월랑.”
그제야 만족한 듯 갸르릉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 엎드리는 월랑과 어느새 녀석의 푹신한 등에 기대 잠을 청하는 루나를 보며, 타이니는 묘한 감상에 빠져들었다.
다시 한번 확신이 생겼다.
“모든 것은 변할 수 있다…….”
앞만 보며 살았던 전생에는 굳이 생각해 보지 않았던 주제.
과거의 그에게는 모든 것이 확실했었다.
악인이나 괴물은 때려죽이면 되고, 그놈들을 털어서 나온 재물은 선량한 피해자들에게 베풀면 된다.
‘그런 생각밖에 안 했었지.’
하지만 회귀한 후 벌인 일들 때문에 모든 것이 바뀌어 가는 걸 목격한 지금, 월랑과 루나, 그리고 클로이의 변화 하나하나가 그의 가슴을 울리고 있었다.
애초에 보는 즉시 때려죽이려고 했던 라프탄을 살려 둔 것도 아직은 뭔지 모를 그 울림 때문.
선과 악의 구분에 엄격했던 전생에 비해 성격이 꽤 물렁해지고 있는 듯했지만, 그것 역시 나쁜 변화 같지는 않았다.
‘시야가 넓어지는 느낌이랄까……?’
전생보다 덩치는 작아졌는데, 오히려 더 멀리 보게 된 듯한 묘한 기분.
이것을 굳이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래.’
덩치가 아닌, 사람이 커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무력의 경지와는 별개로,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스스로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 잘하고 있었네.”
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가슴이 쭉 펴지는데, 갑자기 그를 움찔하게 만드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갑자기, 우쭐해?”
“윽!?”
월랑의 털에 묻혀 잠든 줄 알았던 루나가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타이니를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 건수를 잡았다는 듯한 의미심장한 눈빛.
쿨럭.
“아니, 뭐,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잘못한 것도 아닌데, 뭐? 왜?
애써 당당히 가슴을 펴 보려 했지만, 살짝 얼굴이 붉어졌다는 것은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자 피식 웃은 루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식겁할 말을 꺼냈다.
“동생, 자뻑, 취미 있다. 기억해, 둘게.”
“아냐!!”
버럭 고함을 지른 타이니의 목소리가 숲의 공터 너머까지 울려 퍼지고, 그가 황급히 루나의 입을 막을 방도를 생각하던 그때.
조금 떨어진 수풀 속에서 낯선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여어, 목소리 한번 우렁차시네. 길도 아닌 숲속에서, 위험하게.”
“우리야 횡재했죠, 뭐. 두목, 저 늑대는 털 값 꽤 나올 것 같지 않아요?”
“여자도 이쁘고. 히히.”
얼씨구?
사방에서 풀숲을 젖히고 모습을 드러낸, 싯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는 일단의 무리.
심지어 그들 중 전면에 선 몇은 거대한 체구를 자랑하는 오크였다.
“잠깐 두목, 늑대랑 저 검은 머리…… 분명 어디서 들어 본 거 같은데…….”
“시끄러워! 우리가 바로 로컬 산적단이다. 현상금만 500골드에 달하는!”
“어이, 형씨! 피 보기 싫으면 늑대랑 여자만 두고 떠나! 아 물론 무기랑 갑옷도.”
“우리 두목은 오크 전사라고! 기사도 이긴 적 있어!”
“우리 패거리만 칠십이다, 칠십! 숫자 셀 줄 알지!?”
타이니를 보고 순간적으로 움찔한 놈들이 이내 헛소리로 겁을 주었지만, 그로선 오히려 이 절묘한 타이밍에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잘못하면 루나한테 건수를 잡혀 두고두고 놀림을 당할 뻔했는데.
“잘됐네.”
좀 전까지 시야가 넓어졌다고 스스로를 칭찬하던 생각도 이 순간에는 잠시 치워 두기로 했다.
“뭐?”
“뭐라는 거야, 저 미친놈이!?”
뜻밖의 반응에 욕설을 토해 내는 이도 있었지만, 순간적으로 쎄 한 기분을 느낀 산적들은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왜 쫄아? 고작 한 놈이야, 다 덤벼! 저놈 아가리 찢어 버리고, 여자는 나부터……!”
“두목, 저번에는 저한테 양보하신다고 했잖아요!”
욕망이 넘치는 오크 두목의 말에 루나의 얼굴에 서늘한 냉기가 서렸다.
“저놈들, 다 찢어…….”
“내가 할게, 누나.”
타이니는 그런 루나를 진정시키며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이미 살벌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갱생의 여지가 없어 보여서 더 좋네. 간만에 살풀이 좀 거하게 해 보자.”
이런 산적 놈들 따위에게 베풀 자비는 없었다.
“뭐라는 거야, 저놈이?”
“죽여!”
산적들이 저마다 무기를 들고 그에게 뛰어들기 시작하는데.
“크아아아아앙!”
한순간에 몸을 몇 배로 부풀린 월랑이 포효를 터트리는 순간, 놈들 대다수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패닉에 빠져들었다.
“괴, 괴물!”
“몬스터다!”
“괴물 늑대……!”
정령과 몬스터도 구별 못 하는 시골 산적 무리의 한심한 행태를 보며, 타이니는 다시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우우웅.
어두워진 주변을 은은하게 밝히는 노을빛 마나가 그를 중심으로 퍼지며 컴컴한 밤하늘을 밝히는 순간.
서늘하고 폭력적인 살기가 그들이 있는 공터를 지배했다.
“마나가, 흐아아…….”
“고위 기사다!!”
“젠장.”
“늑대, 정령, 검은 머리 기사! 나 들어 본 적 있는데…….”
그리고 그제야 무언가 확실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산적들이 그 자리에 얼어붙었지만, 타이니는 선을 넘은 놈들을 용서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전부 딱 한 대씩만 맞자.”
워해머를 쓰다듬으며 살벌한 미소를 짓는, 영락없는 사신의 모습.
“이거 맞고도 살아 있으면 살려 줄게.”
그 순간부터 산적들의 비명이 한밤의 산속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불과 30여 분 후.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던 숲속의 공터가 진한 피비린내로 뒤덮였다.
하지만 이 참상을 만들어 놓은 장본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피 칠갑을 한 채로 웃으며 돌아섰다.
“아, 개운하다.”
웬만한 연쇄살인마도 학을 뗄 것 같은 섬뜩한 한마디.
그러나 타이니는 정말로 그냥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생각했다.
‘스트레스를 푸는 김에 쓰레기 청소도 하는 거고.’
- 악인은 인간이 아니다. 세상의 해충이고, 쓰레기지.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품고 있기에 가능한 일.
라프탄에게 보였던 자비도, 지금의 그놈이 최소한의 선을 넘지 않았기에 베풀었던 것일 뿐.
이런 노상 강도에게 쓸 마음 같은 건, 타이니에겐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다.
암살자 출신의 루나 역시 산적의 인권 따위에 관심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
“이상해…….”
다만 그녀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기, 산적 있을 만한, 곳 아니야.”
“그래. 왜 관도도 아니고 상행 통로도 아닌, 이런 숲속에 산적들이 있지?”
“한 놈은, 살려 두지, 그랬어. 물어보게.”
……좀 전에 다 찢어 죽이라고 한 사람이 누구더라.
그 진실을 토해 내는 대신, 타이니는 아차 하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
그 사과에 루나는 그의 어깨를 툭 치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잠자리, 다시, 찾아보자.”
“그러지 뭐.”
아닌 밤중의 해프닝은 그것으로 끝인 줄 알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 * *
“하, 이것들 대체 뭐지?”
타이니는 또다시 시체와 피로 범벅이 된 야영지를 보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그 후 삼 일간, 그들은 노숙을 하거나 잠깐 쉬려고 불을 피울 때마다 불빛을 보고 찾아온 산적이나 강도떼의 습격을 받았다.
당연히 주제를 모르고 호랑이를 습격한 검은 양들은 모조리 시체가 되어 드러누웠다.
그중 소수, 타이니를 알아보고 도망치려 한 무리도 있었지만, 그들도 예외는 되지 못했다. 루나를 보며 대놓고 음심을 내보이거나 무기를 휘두르며 겁박한 놈들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은 없었으니까.
하지만 또한 찜찜하기도 했다.
“이거 진짜 이상한데…….”
오크가 껴 있는 산적들이나 오크만으로 이루어진 강도들이라니.
모든 오크가 다 명예와 율법을 좇는 건 아니니까 오크가 강도질을 하는 게 이상한 건 아니다.
흔히 엘프와 비교되는, 감정에 충실한 오크 종족에는 그만큼 타락하는 놈들도 많았으니까.
- 육체의 힘이 센 만큼 충동적인 욕구도 강한 우리 오크이기에, 율법을 강제하고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는 교육을 해야 한다.
- 오크가 명예를 버린다면 인간보다 타락할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 율법과 명예. 그것이 초대 오크로드께서 남긴 진짜 유산이며, 우리 오크를 지성체로 살아가게 하는 근원이다.
마치 저릭의 말을 증명해 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건 경우가 달랐다.
“너무 많아.”
단순히 제국을 벗어났기 때문에 생긴 치안의 부재라고 하기에는 너무 이상했다. 오크들 역시 율법을 어긴 범죄자들을 극형에 처하는 문화인지라, 강도들도 이곳에서는 대낮에 돌아다니지 못할 테니까.
더구나 타이니 일행은 여전히 관도가 아닌 숲이나 들판을 가로지르며 일직선으로 달리고 있었다.
즉, 습격을 당한 곳 중 태반은 정상적인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얘들, 다 바보, 아니면, 이상.”
설령 산적이나 강도가 있더라도, 털어먹을 행상이 지나다니는 길 근처에 주둔해야 정상이다.
다행이라면, 그다음에 머문 구릉 지대에서 일행을 습격한 산적들이 힌트를 줬다는 것이었다.
“서, 서로 대립하던 오, 오크와 엘프가 연합, 연합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륙 서부의 모든 범죄자의 은신처를 들쑤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도망치는 중이었습니다!”
그렇게 도망치는 와중에도 여자를 보고 습격했다는, 그야말로 직업 정신에 충실한 산적이 이 이상 상황에 대한 해답을 줬다.
“무, 무슨 근거지를 찾는다고 하던데, 더, 더 이상 모릅니다. 살려 주십쇼!”
그게 녀석의 마지막 대사였다.
쾅!
털썩.
산적을 정리한 타이니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루나를 향해 돌아섰다.
“……그렇다네. 그럼 이 상황이 이해가 되긴 하는데.”
“악마추종자들, 관련?”
“아마도.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이참에 엘븐하임에 들러서 진척 상황을 들어 볼까? 얘기 듣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고, 대미궁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장비 점검도 할 겸.”
“엘프…….”
그 말을 들은 루나가 살짝 인상을 찡그리더니 자신의 작고 뾰족한 귀 끝을 더듬었다.
하프 엘프.
그러고 보니 루나의 부모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생각이 미쳤다.
“아, 곤란하면…….”
“……동의. 가자.”
마치 좀 전의 짧은 동요가 없던 일인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루나.
무슨 말을 꺼내기조차 어색해진 타이니는, 얌전히 입을 닫은 채 그대로 그녀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