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해머-172화 (172/500)

172화. 결단

“뭐라고?”

“여신의 기사, 갓 핸드 경이 타이니 경을 찾아 황도에 왔다고 합니다.”

일행이 모인 자리에서 블루윙의 기사가 조심스럽게 보고를 이어 갔다.

“제국 차원에서 입국을 금지하려 했는데, 한 달 넘게 주야장천으로 요청한 모양입니다. 결국 폐하께서 승낙을…….”

그 뒤에 이어진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이런 X발…….’

듣는 이들의 얼굴이 일그러질 수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검제 역시 뒷목을 잡았다.

“폐하께서? 하, 가뜩이나 짜증이 치솟고 있는데 이건 또…….”

“성령 기사 혼자 왔나?”

그런 주군을 대신해 제나스가 묻자.

“예? 아, 예. 그분 혼자 오신 것 같습니다.”

“그럼 확실히 신전 차원의 공식 방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각하.”

돌아온 대답은 혼란에 빠져 있던 일행의 정신을 환기시켰지만, 그들의 표정은 여전히 어둡기만 했다.

“그래도…….”

검제가 보고하던 기사를 흘깃 바라보자, 제나스는 눈치 빠르게 손짓으로 부하를 내보냈다.

그리고 이내.

“……타이니를 만나러 온 것 자체가 이상해. 신전 차원의 공식 방문이 아니더라도.”

이어진 검제의 말에 제나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성령 기사는 신전의 적을 토벌할 때 앞뒤 가리지 않는 광전사 같은 모습을 보여 왔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금같이 예의를 차린 경우가 있었습니까?”

“음? 허, 그렇지. 그렇긴 하지…….”

검제가 그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길 때.

“나도, 전에, 그 말, 했는데.”

루나가 억울한 표정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에 움찔한 검제가 어색한 웃음을 보이더니, 이내 바로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래도 여전히 내 대답은 같다. 희박한 확률이라도 가능성이 있는 이상, 타이니가 신전과 얽히게 둘 수는 없어.”

“저 역시 동의합니다.”

타이니 역시 인상을 찡그리며 그리 말했다.

지금까지 회귀 사실을 공유한 건 믿을 수 있는 자들뿐이다.

하지만 그들이 무의식중에 흘린 말이 신전의 귀에 들어가지 말라는 법도 없다.

물론 그런 일까지 신경 써서야 계획에 진전이 없을 테니, 어쩔 수 없이 알아야 할 사람들에게 전하기는 했지만.

‘그래서 신전이 혹시라도 의심한다면.’

- 시간을 거슬러 여신의 전능성을 침해한 자.

신전이 타이니를 그렇게 정의하는 순간, 모든 일이 꼬인다.

단순히 신전이 그를 추살하려 하는 정도를 넘어, 여신교를 믿는 모든 이들의 적의를 사게 될 터.

‘여신의 적이라니. 씁, 절대 안 되지.’

마왕의 골통을 깨서 역사에 이름을 새기고 그 위명이 천계까지 울리도록 만들겠다는 자신의 목표가, 시작도 전에 좌초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피할 수는 없는데 말이죠. 신전의 힘도 이용하기는 해야 하니까요.”

계속 신전의 눈치만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광휘의 기사라는 이름이 신전을 누를 수 있게 되면 가능하지. 아니면 네가 그만큼 실력을 키우던가.”

검제가 말한 두 가지 방안은 모두 그럴듯했다.

보통 사람이야 한 가지도 어림없겠지만, 지금의 타이니에겐 둘 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이뤄질 일이라 자신할 수 있었다.

다만.

“아직은 안 된다는 게 문제죠.”

“당연하지. 아무리 신전이 타락했다고 한들 아직도 여신교는 대륙의 기저 신앙이다. 악마추종자들 몇 번 물 먹인 걸로 네가 그 이름을 앞서기는 일러.”

“그리고 정말 예상대로 놈들이 한동안 몸을 사린다면, 제가 더 명성을 쌓을 일도 거의 없겠죠.”

두 방법 중 전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 그나마 후자가 가능성이 컸다.

“네가 얼마나 빨리 강해지는가가 중요한 건데…….”

그리 말하며 슬쩍 째려보는 검제의 눈빛을, 타이니는 자신감 어린 미소로 받았다.

“몇 년 걸리지 않을 겁니다. 솔직히 지금 제가 오러유저의 경지에 발끝만 걸치더라도 갓 핸드 경은 저를 어쩔 수 없게 될 테고요.”

여신의 축복으로 수백 년을 살아온 성령 기사 갓 핸드.

자신의 본명조차 잊었다고 할 정도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괴물이지만, 그가 특출난 것은 오러유저의 경지에 더해진 최강급 신성력 때문.

어떤 제약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나, 그는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그 실력이 변함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더구나 오러유저의 극에 달한 경지와 그에 준하는 성법은 그 시너지 효과만으로도 오러익시더급 기사에 가까운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여신의 기사, 혹은 성령 기사라는 이명으로 불리는 갓 핸드가 수백 년간 증명해 온 진실.

더구나 경지가 높을수록 동급끼리의 실력 차이가 크게 나는 법이니,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타이니의 장담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그의 말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 너라면 가능하겠지. 슈페리어급인데 제나스를 압도할 정도라면.”

“각하…….”

제나스는 검제의 말에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러면서도 그것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최근에 있었던 몇 번의 대련에서 그의 ‘북풍’은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타이니가 훈련에 적응을 못 한 초반에 몇 번 우세를 점한 적이 있을 뿐, 그 뒤로는 연전연패를 거듭했던 것이다.

루나의 성장을 지켜본 일이 그가 이 수련에 참여한 동기라면, 타이니와의 대련은 이를 갈게 만드는 자극제였다.

“너라면, 그림자의 법, 배우면, 그 전에도, 가능.”

“그건 역량 낭비라고 말했잖아, 누나.”

자신의 의견이 단숨에 묵살되어 버렸는데도, 루나는 마냥 흐뭇한 듯 슬쩍 미소를 지었다.

혈통에 기인한 그림자 마나를 자각한 후 모르스의 후손임을 부인할 수 없게 된 타이니가 자신을 대놓고 누나라고 부르기 시작했으니,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은 듯했다.

‘그래서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 같기도…….’

그 모습을 보며 검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만 그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가 문제지.”

“말씀드렸듯 지금처럼 열심히 수련한다고 해도 몇 년은 더 걸릴 겁니다. 챌린저급은 몰라도, 오러의 벽은 노력이 꽤 필요할 테니까요.”

“그렇겠지.”

“노력이 꽤 필요……. 하…….”

제나스가 망연한 표정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15살짜리가 몇 년 안에 오러유저, 즉 초인이 되겠다고 말하는데도 아무도 거부감이 들지 않는 상황이 아직은 어색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제나스로 하여금 투지를 불태우게 했다.

아무리 타이니가 괴물 같은 재능을 가진 시간 회귀자라고 한들, 그 역시 자신의 재능과 쌓아 온 노력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지지 않겠습니다, 타이니 군. 절대로!”

그가 그렇게 각오를 다질 때.

“내가, 아저씨보다, 빠를걸.”

“아, 아저씨……?”

옆에서 불쑥 끼어든 루나가 다른 의미에서 그의 멘탈을 터트렸다.

옆에서 그 촌극을 지켜보던 검제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하지만 이미 갓 핸드 경이 황도에 와 있는 상황이다. 내가 있으니 함부로 저택까지 밀고 들어오지는 못하겠지만, 폐하가 허락한 일을 언제까지 막고 있을 수만은 없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해.”

누구도 쉽게 대답할 수 없는 난제.

그러다 잠시 후,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참을 고민하던 타이니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 데스 나이트……. 그 건은 어찌 됐습니까?”

갑작스레 바뀐 화제에 검제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대답은 바로 나왔다.

“아, 안 그래도 그 이야기도 하려 했다. 티네스 님께 넌지시 여쭤봤더니, 고대 문헌에서 불길한 문구를 찾았다고 하시더구나.”

“불길한……?”

“고대 마계 대전 직전에 그런 일들이 빈번하게 있었다고 하시던데, 전생에는 어땠지?”

“환장하겠네…….”

막막하기만 한 상황에 타이니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좋지 않은 일이라 생각은 했지만…….’

이게 전생에도 있었는데, 자신이 몰랐던 것뿐일까?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닐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랬다면 악마추종자들의 난리가 그 정도로 진압이 되었을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왜? 어째서? 내가 바꾼 미래가 무슨 나쁜 작용을 했나?’

머릿속이 더욱 복잡해져 갔지만, 당연히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차원과 신, 악마.

그것들은 현대의 마도사들에게도 생소하고 어려운 주제.

나름대로 추측해 보려 해도 그에겐 기반 지식이 없으니 될 리가 없었다.

“아, 진짜 공부 좀 해 둘걸…….”

타이니는 짜증스레 자책 어린 말을 내뱉다가, 이내 자신을 바라보는 좌중의 시선을 느꼈는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제가 대미궁에 있을 당시라, 강림 직전의 상황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악마추종자 사건도 그렇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아……. 맞다.”

검제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올 때, 타이니가 무언가 결심한 듯 이를 악물었다.

“아무래도 대미궁으로 가야겠습니다.”

그 갑작스러운 발언엔 주변의 모두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뭐?”

“갑자기, 무슨?”

“뭐라는 겁니까, 타이니 군? 뜬금없이.”

당연한 반응이었다. 성령 기사와 데스 나이트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대미궁이라는 엉뚱한 단어가 튀어나왔으니까.

하지만 타이니는 이미 결심을 굳힌 듯했다.

“변수가 너무 많아졌어요. 갓 핸드 경의 일만 해도 이미 당장 처치 곤란이지 않습니까. 대미궁으로 가서 빠르게 실력을 키우는 게 낫겠습니다.”

그 말이 끝나자 잠시간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청자들의 멍한 표정은 거의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 뭔 미친 소리야?

그리고 그 표정을 보고 나서야, 타이니는 자신이 너무 많은 전제를 생략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각하도 아시겠지만, 지금 저의 성장에는 단순한 수련보다는 강자와의 실전이 더 도움이 됩니다.”

사실 그 말만 해도 보통 사람에겐 헛소리로 들릴 법했지만, ‘그’ 타이니가 하는 말인 만큼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그간 대련 위주로 해 오지 않았느냐.”

“대련보다는 진심이 담긴 사투, 목숨이 위험할 정도의 아슬아슬한 전투가 성장에 더 큰 도움이 되지요.”

미친놈이 하는 헛소리 같은 주장.

아무리 ‘그’ 타이니가 하는 말이라지만, 이번에는 호응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타이니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제는 미래가 바뀌어 버렸고, 알 수 없는 변수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습니다. 몇 년을 기약하고 차근차근 성장하는 것보다는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전생의 무력을 하루빨리 되찾는 것이 낫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그렇다고 대미궁에 가겠다고?! 헛소리 말거라! 대미궁은 지금의 나도 생존을 장담 못 하는 험지야. 아니, 역사상 그 누구도!”

검제의 말은 이 시대에서는 당연한 상식이었다.

대륙의 서쪽 끝, 인식 불가능한 초월적 권능으로 유리된 또 다른 차원으로도 해석되는 마역.

오직 지하로 뚫린 검은 구멍을 통해서만 들어설 수 있으며, 그 내부에 펼쳐진 짐작조차 못 할 만큼 거대한 규모의 미로 속엔 위험천만한 몬스터들이 바글거리는 금지.

그것이 바로 대미궁이었다. 나아가, 대미궁이 그토록 악명 높은 건 단순히 몬스터들의 대지이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말도 안 됩니다! 먹고 마실 음식과 물조차 썩어 버리는 곳입니다. 오래 머물면 숨도 쉬기 힘들어진다는데, 입구 근처에서 며칠 버티다 나오는 것이면 모를까 거기서 수련이라니요!?”

제나스의 말 또한 상식으로 통했다.

“그래. 식량과 식수가 썩지 않도록 마기에 노출되지 않게 보관할 아티팩트나 마법사가 필요하고, 또 그 아티팩트나 마법사를 보호하는 조치가 필요할 거다. 게다가 탐사대와 별개로 그들과 식량을 지킬 호위 인력도 필요하고, 그러자면 식량이 더 많이 필요하겠지. 그나마도 그 식량이나 물이 떨어지기 전에 빠져나와야 하고……. 그야말로 악순환이지.”

대미궁이 왜 여전히 개척 불가능한 마경으로 남아 있는지, 그 이유가 검제의 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아직’이겠지요. 저는 성공했습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네놈 입으로 오러를 깨달은 후의 일이라 하지 않았더냐!”

“지금은 그것을 대체할 만한 무기가 있습니다. 아시잖아요.”

“죽을 수도 있다. 아니, 지금 네 수준이면 그럴 확률이 높아!”

“필요하다면 목숨을 걸어야지요. 안 그러면 뭘 얻겠습니까.”

비장하다기보다는 너무나도 담담하게 나온 대답에 좌중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 잠시 후, 검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려는 게냐.”

“그래야 할 때라고 생각하니까요.”

“왜!? 신전이 정말로 너를 구속하거나 처리하려 했으면, 갓 핸드 경이 혼자 오지는 않았어! 여차하면 신전에 가 보는 것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검제는 방금 자신이 했던 말을 뒤집으면서까지 타이니를 설득하려 했다.

하지만.

“……그냥 그런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예감이.”

“하……. 예감?”

“예.”

어처구니없다는 검제의 표정에도 타이니의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안 돼! 절대 안 돼! 모순이다. 가능성이 희박한 최악을 피하려고 훨씬 위험한 차악을 택하는 꼴이야. 허락할 수 없다!”

“무언가 잊고 계신 모양입니다?”

“뭐?”

“각하께 감사한 일은 많습니다만, 그렇다고 제가 각하의 허락을 받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

검제와 타이니의 시선이 허공에서 파지직 소리가 날 듯 거칠게 부딪쳤다.

그에 제나스와 루나가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냈지만, 타이니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곧은 눈으로 검제를 바라보았다.

‘이건 자존심 싸움이 아니야.’

이 모두가 하나의 목표를 위한 일이고, 그 과정에서 의견의 차이가 발생했을 뿐이다.

그리고 자신의 직감은, 이젠 더 이상 느긋하게 수련이나 할 때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예감을 설명하긴 어렵기에 통보하듯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검제라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검제가 한발 물러섰다.

“……갓 핸드 경을 피하기 위해서라면, 차라리 내가 그리드에게 연통을 넣어 놓겠다. 스타일이 다른 오러유저니, 그쪽이 너에게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결국 어떻게든 대미궁은 가지 말라는 뜻.

솔직히 수련만 생각하면 솔깃한 얘기였다.

지금 다시 연을 이은 초인은 검제를 제외하면 모두 셋.

그중 에스티나와의 대련은 자신이 살아 있는 과녁판이 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 저릭은 무기를 드는 순간 적당히라는 단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안 하는 놈이다.

자연히 남는 선택지는 하나.

웨폰 마스터의 다양한 전투법은 자신의 마나바디를 확실히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타이니는 물러서지 않았다.

“왕국 연합이, 아니 셀던 왕국이 신전의 입김을 무시할 수 있습니까? 제국보다 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검제를 보면서 타이니는 확언하듯 말을 이어 갔다.

“대미궁에서 찾아야 할 것도 있습니다.”

“네 초월무구 말이냐?”

“예.”

끄으응.

그 단호한 목소리에 검제는 나직한 신음을 토해 냈다.

“……그래도 내 생각에는 너무 위험해. 대미궁의 중심이 정말 마계로 이어져 있다는 말도 있어.”

“그건 아닙니다.”

“음?”

“정말 그랬다면 애초에 마족들이 대미궁을 통해 넘어왔을 겁니다. 하지만 강림의 형태는 그런 것이 아니었지요.”

“아…….”

“미래의 현자들도 대미궁에서 연결된 차원은 마계가 아닐 확률이 훨씬 높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니면 마족들도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마역이거나.”

“……그런가. 그렇기야 하겠군. 대체 어느 쪽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대의 마계 대전을 일으켰던 마왕이 이 세상에 남겨 놓은 최악의 흔적이자, 지속적으로 세상을 침식하려 드는 악의의 총아.

대미궁은 그토록 지독했다. 악마추종자들이 고대의 마계 대전은 마족의 승리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게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검제는 계속 타이니를 말리는 대신 무거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상식적으로는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왜 희박한 확률에 목숨을 걸겠다는 건지…….”

그 한탄 같은 말 뒤로 짧은 질문이 이어졌다.

“하지만, 넌 그렇게 살아왔겠지?”

“예.”

그 확신 어린 대답에 검제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모한…… 하. 아니, 그래. 이런 모습이 바로 내게 없는 것일 테니,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이 슬며시 더해지긴 했지만.

“한번 믿어 보겠다. 어쨌건 넌 그런 미궁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는 걸 테니까. 그렇지?”

그리 말하는 검제는 사실상 설득을 포기한 듯했다.

그에 타이니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기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생존했었죠. 물론 지금으로선 좀 이르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설득이 먹혔다는 생각에 안심하던 그 순간, 불쑥 루나가 끼어들었다.

“나도, 가.”

“뭐?”

“위험한, 곳. 혼자 가게, 안 해. 가문, 이어야 해.”

“그게 무슨……?”

황당한 마음에 눈을 부라리는데, 엉뚱한 사람이 그녀에게 호응해 주었다.

“그래, 루나 양도 데려가거라.”

“뭐요!?”

“지금 루나 양은 계기가 필요해. 명상도 좋지만, 특별한 경험이 더 좋은 자극이 될 수도 있다. 특히나 암살자 출신이라면, 아무래도 명상보다야 극한 환경에서의 전투가 나을 수 있어.”

“하지만…….”

“네 생환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꼭 데려가야 한다. 아니면, 혹시 대미궁에서 생존할 방법이 너만 가능한 거냐?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해서건 다른 방법을 찾아볼 테니 결정을 미루거라.”

검제의 그 말에 더는 반대할 명분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하긴 루나도 가능하……겠지.’

루나의 특성과 재능을 생각하면, 자신이 썼던 방법을 그녀라고 못 할 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의 미숙한 자신에게는 그녀가 확실한 원군이 될 터였다. 검제의 말대로 그곳에서의 경험으로 성장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는 것이고.

다만, 그럼에도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말 괜찮겠어. 루…… 어흑!?”

“루나. 아니고, 누나.”

“아으! 진짜! 이젠 마나까지 써서 꼬집냐!?”

손끝에 조그맣게 검은 마나 블레이드를 형성한 루나를 본 타이니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그녀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네 몸, 이미 반쯤, 괴물, 안 그럼, 안 통해.”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뭐?”

“아니야. 됐어. 끙.”

타이니는 결국 신음과 함께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옆구리의 억울한 통증보다, 이 순간 루나와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는 검제의 눈빛이 더 기분 나빴으니까.

그리고 그것으로 타이니와 루나의 대미궁행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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