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소울웨폰
- 꽈아아아아앙!
그그그그극.
“하, 이런 미친……!”
충격으로 인해 연무장의 바닥을 긁으면서 십여 미터나 밀려난 검제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손이나 검을 휘두르지 않고 의지만으로 오러를 뿜어낼 수 있게 된 것은 그도 최근에나 도달한 경지.
장담과 달리 오러를 쓰고 말았다는 수치심은 둘째 치고, 무의식적으로 그 수법을 사용한 탓에 타이니가 크게 다쳤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크, 오러…… 썼습니다, 각하.”
허공으로 튕겨 나가 몸을 세운 타이니의 파리해진 안색을 보니 녀석도 충격을 받은 것 같기는 했지만, 달리 말하면 그것이 고작이었다.
고작 슈페리어급이, 파괴의 권능이라 불리는 오러를 정면으로 받아 낸 것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광경.
“에너지의 흡수라……. 오러는 못 삼키는 것 같지만, 말도 안 되는 소울웨폰이로군. 중력 속성이 어찌 발현되면 그런 게 가능하지?”
검제는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보여 드린 적 있지 않습니까? 파멸 속성이라 이름 붙였던 거 말입니다. 그걸 비틀어서 적용하니 이런 게 되더군요. 뭐, 오러는 아직 버티는 게 고작인 것 같긴 합니다만.”
“도대체 무슨 원리로!?”
“그게, 음, 그냥 하면 되는데, 음……. 말로 설명은 못 하겠는데요?”
타이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리 말하자, 검제는 마치 괴생물체라도 마주한 것처럼 이상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하, 네놈한테 설명을 기대하는 게 무리지.”
“아니, 왜 또 말이 그렇게……!”
“뭐, 좋다. 확실히 기대 이상이구나. 정말 네 녀석의 재능이 가늠 안 된다는 것은 새삼 느꼈다.”
“오, 그럼 저 합격입니까?”
타이니가 씩 웃으며 능글맞게 묻자 검제도 만족한 표정으로 환하게 마주 웃었다.
“일단 그 수법을 어디까지 써먹을 수 있는지, 그 한계를 테스트해 보고 얘기하자꾸나.”
“엑!?”
“받아 봐라!”
쿵.
그 말과 함께 순식간에 쇄도한 검제의 철검에서 상서롭게 빛나는 오러가 뿜어져 나오더니, 타이니를 두 쪽 낼 듯한 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그가 존재하는 공간 전체를 압박하며 움직임을 제약하는 검제의 마나까지.
‘이런…….’
챌린저급 기사의 공간 장악이었다면 힘으로라도 끊어 버리고 움직이겠지만, 이건…….
“젠장!”
타이니는 욕설을 뱉으며 다시 전력을 다해 워해머를 휘둘러 그 공격을 받아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장장 6시간이 넘도록, 발렌티아 저택의 연무장에서는 폭음이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
“이거나 먹어라!”
타이니의 신경질적인 고함과 함께 그가 든 워해머의 끝에서 검은 구체가 새하얗게 백열되더니, 이내 엄청난 충격파를 토해 냈다.
하지만.
“허허, 이건 또 새롭구나.”
전신을 완전히 붉은 오러로 둘러싼 검제는 빠르게 뒤로 물러나며 그 공격을 흘려 냈다.
콰콰콰콰콰쾅!
흘려 낸 그 공격의 파편이 연무장을 초토화시키기는 했지만, 결국 타이니는 검제의 옷자락 하나 상하게 하지 못했다.
그것이 속상했을까.
“빌어, 먹을, 영감, 탱이…….”
털썩.
타이니는 원망 어린 눈으로 검제를 바라보다가 그대로 힘이 다해 기절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눈길을 받은 검제는 고개를 저으며 헛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재능이로구나. 정말 말도 안 돼…….”
여러모로 테스트해 본바, 타이니가 만들어 낸 소울웨폰은 그저 한 가지 효과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첫째로, 오러 미만의 에너지를 그대로 흡수해 버린다는 것 하나.’
자신이 마나블레이드를 사용하면, 마치 막막한 허공에 에너지를 쏟아붓는 것처럼 그 기세가 검은 구체에 빨려들어 갔다.
그리고 두 번째 효과는 방금 놈의 한계를 보기 위해 정신없이 몰아붙이다가 알게 되었는데.
‘그 흡수한 힘을 자신의 마나나 육체를 회복시키는 데 사용하는 것 하나.’
비록 그 에너지 전환 효율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으나, 전투 중에 마나나 육체를 회복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체로도 놀라운 능력이었다.
더구나 그걸 쓰는 순간의 표정을 보니, 저놈도 그런 방식으로 사용 가능한 줄 몰랐던 것 같았다.
즉, 그 효율은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뜻.
‘거참, 정말 말도 안 되는 몸뚱어리야.’
정말이지, 상식의 범주를 한참 벗어난 재능이라 봐야 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녀석이 쓰러지기 직전에 보여 준, 새하얗게 빛나며 뿜어져 나가던 힘.
마치 작은 별이 폭발하는 듯한 그 에너지는, 상대에게서 흡수한 에너지에 자신의 힘까지 더해 곱절로 돌려주는 듯한 파괴력을 보여 주었다.
‘그것도 홧김에 어쩌다 된 거 같은 느낌이란 말이지. 하, 그놈 참…….’
그런데도 상위의 권능인 오러로 몸을 둘러싼 자신조차 물러나면서 적당히 그 힘을 흘려야 했을 정도였다.
“허공(Empty Space)과 흡수(Absorption), 별의 폭발(Exploding Star)이라…….”
크게 보면 남의 힘을 자기 것으로 활용한다는 한 가지 속성이지만, 결국 세 가지의 권능으로 발현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녀석이 파멸(Destruction) 속성이라 이름 붙인 그 불완전한 파괴 에너지가 대체 어떻게 저런 소울웨폰으로 발현되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
뭐, 하여튼 간에.
“기대를 넘치게 충족시키는구나. 잘했다, 타이니.”
놈이 멀쩡히 듣고 있었다면 못 할 이야기. 아니, 하기 싫은 이야기.
‘과연 이 녀석이 오러를 일깨우게 되면 그 소울웨폰은 어찌 변할까.’
검제는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쓰러진 타이니의 몸을 집어 들었다.
끙차.
“억!?”
그 과정에서 생각지도 못한 무게 때문에 잠시 비틀거린 검제는, 누가 보진 않았을까 싶어 순간 벌게진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애새끼 몸뚱어리가 뭐 이렇게 무겁냐.”
타이니를 어깨에 얹은 채 투덜거리며 연무장 밖으로 걸어 나갔다.
지금보다 훨씬 작을 때도 정상적인 체중은 아니었지만, 키 좀 컸다고 정말 말도 안 되게 몸무게가 늘어난 것 같았다.
어떤 의미에서건, 언제나 예상을 초월하는 녀석이었다.
그리고 하루 뒤 깨어난 녀석은, 검제를 더 어이없게 만들었다.
“허공(虛空), 흡수(吸收), 폭성(爆星)이요?”
“포옥성? 별이 폭발한다는 뜻이냐? 그렇다면 맞다. 그런 특징이더구나.”
“뭐 그렇긴 합니다만, 이름은 벌써 따로 지어 놨는데요?”
“음?”
“폭식(暴食), 소화(消化), 구토(嘔吐)요.”
쿨럭.
“구토(Vomiting)?! 네놈 제정신이냐?!”
검제는 그 어이없는 이름을 듣자마자 버럭 소리를 지르고 말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전투 스킬 이름은 직관적인 게 좋죠. 막 처먹고 소화시켰다가 토해 내니까요. 흐름도 딱 맞고. 아, 배설로 할 걸 그랬나?”
“허으…… 그래, 네 멋대로 해라.”
검제의 멍한 얼굴을 보며 타이니는 속으로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검제를 약 올리는 방법을 좀 알 것 같았다.
‘실은 화이트홀이지롱.’
남의 일에 괜히 진지하게 구는 검제를 놀리기 위해 꺼낸 말일 뿐, 평소에도 머릿속에 그려 보며 반복 훈련을 해야 하는 기술의 이름을 정말 구토로 지을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기에, 이미지 훈련을 하기 가장 좋은 기술명은 그 형태를 그대로 따서 지은 직관적인 것이다.
따라서 흡수할 때는 ‘검은 구멍(Black hole)’, 뿜어낼 때는 ‘하얀 구멍(White hole)’이 딱 좋다.
그 중간에 있는 에너지 흡수야 부가 능력이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기술명 따위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이제 전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너는 생각 안 해 봤냐?”
“똑똑한 사람이 있으면 똑똑한 사람한테 맡기면 되는데, 제가 왜 쓸데없이 고민을 하겠습니까?”
사실 고민해 봐도 답이 안 나와서 문제였지만.
그 말을 하는 표정이 너무 당당해서, 검제는 또다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결국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라.
“……제나스가 돌아오면 함께 얘기하자꾸나.”
사실상 포기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틀 뒤.
“……황궁에는 타이니 군, 큼, 경의 도착 소식을 알렸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일정이 바쁘시기 때문인지, 따로 알현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저택으로 오는 길에 이미 초대장이 몇 장 쌓여 있더군요. 아무래도 황궁의 정보 관리가 미흡한 듯싶습니다. 그리고 여기 루나 님도…….”
태연한 얼굴로 보고하는 제나스와.
“나, 확실히 도장, 찍고 왔어. 나, 자유.”
무표정한 얼굴로 불끈 주먹을 쥐는 루나.
제나스의 보고를 듣던 검제는 새삼 신기하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가 그 ‘사신’이구나. 얘기는 다 들었다. 타이니와 핏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정말로 운명이 있구나 싶었다. 반갑구나.”
“나도, 반가워.”
대놓고 하는 반말에 제나스가 잠시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검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래, 곧 실력 한번 보자꾸나.”
아니, 사실 속으로는 이를 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응. 나도, 궁금해.”
타이니가 검제와 루나를 불안한 눈으로 바라보고, 전생의, 그리고 미래의 동료들이 태연히 인사를 주고받을 때.
저택 바깥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나고 있었다.
- 아, 우리 백작님이 이렇게 줄 서야 할 분이 아닌데.
- 우리 어르신은 어떻고!
- 야, 야! 너 어느 가문 시종이야!?
- 내가 먼저 왔어!
일반 시민들은 감히 문을 두드리지 못할 공작가의 저택 앞에서 소란을 떠는 이들.
방계 황족이나 고위 귀족의 초청장을 타이니에게 전하기 위해, 그들의 측근들이 몰려들어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타이니가 황도에 도착한 지 사흘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다만, 그 소란의 당사자는 그저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 상황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은 검제 역시 마찬가지.
“이미 저택 사용인들을 통해서 새어 나간 정보도 있겠지. 신경 쓰지 말거라.”
그는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젓다가 문득 타이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타이니, 귀족들의 사교장에 관심 있느냐?”
“없습니다.”
그 대답은 그야말로 칼같이 나왔다.
검제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대답에 충격을 받은 이는 따로 있었다.
“장가, 보내야, 하는데…….”
루나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타이니는 애써 무시했고.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은 검제는 바로 말을 이었다.
“그래, 그런 곳에 낭비할 시간이 없다. 이제 앞으로 발생할 변수에 관한 이야기가 먼저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제나스가 움찔하며 끼어들었다.
“각하, 그 라프탄이란 자가 말한 로히터의 문제부터…….”
“로히터 따위가 우선순위가 될 수는 없지. 그건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자. 그 변신술사 놈은 네가 일단 관리하고.”
‘변신술사가 아니라 정령술사입니다만.’
하긴 뭐, 능력이 원체 특이하니까.
제나스는 굳이 주군의 말실수를 지적하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바로 검제의 말이 이어졌다.
“일단 오크족의 내란과 성물 강탈 사건으로 인해 모든 나라, 모든 종족이 악마추종자들의 위험성에 대해 깨달았다. 다 네 덕분…….”
부드럽게 미소를 머금고 말을 잇던 검제.
하지만 그 순간 보란 듯이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어깨를 으쓱거리는 타이니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까드득 이를 갈았다.
“……은 아니니까 우쭐대지 마라, 애송아! 도움도 많이 받았잖느냐?”
조금만 더 인상을 쓰면 이마에 힘줄이 튀어나올 것 같은 표정.
검제의 속을 살살 긁는데 성공한 타이니는 속으로 히죽 웃으면서도 짐짓 표정을 관리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잠시 노려본 검제는 다시 천천히 말을 이었다.
“아무튼 나는 전 세계적 공감대가 일부 형성되었다고 본다. 즉, 각 세력이 악마추종자들의 근거지와 속셈을 알아내려고 노력 중이라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수다.”
여기까지는 이곳에 자리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거기다 내가 블랙윙을 통해 악마추종자들의 목적이 마계 대전의 재현이라고 은밀히 소문을 퍼트리고 있으니, 놈들에 대한 관심이 쉽게 사그라들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좋은 말로 운을 뗐던 검제의 안색이 그 순간 살짝 구겨졌다.
“그렇기에 놈들이 한동안 더 몸을 사릴 것이라는 게 문제다. 뭐 재앙이 아예 안 일어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만약 이런 상황에서 네가 알려 준 재앙 중 한 가지라도 발생한다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거지.”
“악마추종자에 의한 것이 아닌 재앙 말입니까?”
“그래. 여태까지는 네가 다 놈들의 수작이라는 것을 밝혀냈지. 하지만 네가 말해 준 일 중 예를 들자면, 웨어비스트 왕국의 남침 같은 경우가 문제다.”
“아…….”
“우리 아스란 제국과 웨어비스트의 사이는 누구나 알 정도로 좋지 않으니, 솔직히 내일 당장 전쟁이 일어나도 그게 악마추종자의 짓이라 보기에는 어려울 정도다.”
“그래도, 수작, 부릴 수, 있지 않나?”
갑자기 끼어든 루나의 말에 타이니 역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검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 루나와 타이니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버려 두면 언젠가 알아서 터질 일을 악마추종자들이 지금 괜히 들쑤실 일은 없겠지. 바보도 아니고.”
그 표정이 마치.
- 모르스는 다 바보냐.
라고 말하는 듯해서, 타이니는 순간적으로 울컥할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