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모르스 가문
그래.
‘화가 났겠지.’
그럴 만도 하다. 그녀가 그때 보여 준 눈물은 타이니에게도 미안하고 당혹스러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루나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사정이 부득이하여 거짓을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중히 사죄하고 싶습니다. 혹시나 제게 원하시는 게 있다면…….”
최대한 진심을 담아 미안한 마음을 전하려 하는데.
“동생, 모르스, 맞는데? 왜 그런 말을 해? 누나가, 싫어?”
굳은 표정의 루나를 본 타이니는 다급히 손사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아, 아니! 그,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 왜?”
“……내가 누님을 속였다는 겁니다. 사실은 핏줄이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지금 사죄드리려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게, 무슨 말?”
도무지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것 같아 타이니도 순간 당황했다.
설마 이 시기의 사신은 지능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만큼 충격이 컸던 걸지도.’
타이니는 그 생각에 입술을 깨물며 다시 고개를 숙였다.
“말씀드렸듯, 저는 모르스의 핏줄이 아닙니다. 그래서…….”
“맞는데?”
“……예?”
자꾸 엇나가는 듯한 대화에 이제는 타이니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당황한 시선이 교차하고.
“대체, 지금, 무슨 말?”
“그러는 누님은 지금 대체 뭐라고 하시는 겁니까?”
“너, 모르스. 맞는데, 왜 아니라고……?”
“그걸 제가 처음부터 속였다는 뜻입니다. 악의를 가진 것은 아니었지만…….”
“맞다니까?”
“예?”
“너, 왜?”
“…….”
“…….”
다시 멍하니 오가는 시선.
대체 이 대화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고집을 부리는 건가?’
타이니도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잘 잇지 못하는데, 그 대화를 묘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던 제나스가 불쑥 끼어들었다.
“잠깐만, 타이니 군. 저 그림자 수장, 아니 저 아가씨가 타이니 군의 가짜 신분이었던 모르스 가문의 진짜 후예라는 겁니까?”
“……예.”
타이니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나스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신분을, 만들어? 대체 지금, 뭐라고……?”
자신의 말에 더욱 혼란스러워하는 루나를 보며, 제나스는 재밌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그런데 아가씨는 타이니 군이 모르스 가문의 진짜 후예라고 생각하는 거고요?”
“생각 아니라, 맞아.”
바로 나오는 그녀의 대답에 타이니의 눈도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헛소리야?!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요?”
황당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나는 질문.
하지만 이어진 대답은 그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처음, 만났을 때, 내 단검에, 동생 피, 묻었다. 우리 가문, 핏줄 감별하는 법, 있어. 해 봤다.”
“뭐!?”
루나의 말에 그 ‘동생’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부릅뜨며 소리를 질렀다.
“허어……? 이거 정말 재밌는 상황인데요. 타이니 군.”
“재미는 무슨……. 사신, 아니 루나 님. 지금 그 말이 무슨 뜻입니까!?”
황망한 눈빛이 제나스를 스치고 지나가 다시 루나에게 향했다.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고맙다, 사신.
- 됐다. 빚……, 갚은 것.
목숨을 구해 준 상황에서도 고작 그 정도 대화가 전부였던 관계.
가끔은 저치가 나를 왜 이렇게 싫어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의 사이였는데.
‘혈연이라고?’
납득이 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 시선을 받은 루나 역시 혼란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 인데?”
“아니, 그러니까. 그게…….”
“동생이, 나보다, 훨씬 직계에 가깝다. 그런데 뭘, 왜 만들어……?”
당혹스러운 눈빛이 교차하고, 당사자들이 서로를 보며 침묵에 잠길 때.
헛웃음을 짓고 있던 제삼자가 다시 끼어들었다.
“허, 허허. 그렇지. 검은 눈에 검은 머리……. 그런 핏줄이 흔하지는 않겠지만, 이건 너무 공교롭군요. 타이니 군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가요? 전혀? 친부모한테도 들은 이야기가 없고요?”
“……예.”
들은 이야기는커녕 애초에 부모에 대한 기억이 없다.
‘무슨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친자를 감별하는 혈통 감지 마법은 황실뿐만 아니라 고위 귀족들도 쓰긴 한다.
그러니 모르스 가문에도 그런 게 있다는 것 자체는 그리 이상하지 않았지만.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귀족의 핏줄이라고? 거기다 위장했던 신분이 진짜?
아무리 신체적 특징을 고려한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너무 공교롭지 않은가.
‘내가 진짜 모르스 가문의 후예라고? 사신과 같은?’
쉽게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타이니를 보며, 제나스가 대신 상황을 정리했다.
“뭐, 그래도 루나 양이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사실이겠지요. 그런데 아무리 몰락 귀족의 후예라도 어떻게 빈민가까지…… 아니, 모른다고 했죠? 허. 허허. 참…….”
그도 제법 당혹스러운 듯했지만 어찌 당사자들만 할까.
“허……. 아니, 이게 진짜 무슨……?”
“이게 다, 무슨 말? 다시 설명, 좀?”
타이니는 멍한 눈으로 루나를 계속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핏줄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빡빡한 인생에서 봐야 할 것은 미래였지 과거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결국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정상에 올랐다.
그러니 이제 와 자신이 귀족의 핏줄이니 뭐니 해도 크게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황당하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싶은 멍한 마음일 뿐인데.
그때 루나가 인상을 쓰며 재차 물었다.
“그런데, 뭘, 만들어? 나만, 몰라?”
“아……, 하. 하. 그, 그게……. 타이니 군. 정리할 건 확실히 정리하죠, 우리?”
어색한 표정의 제나스가 눈짓을 보내고, 타이니는 그제야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차분히 설명을 이어 갔다.
당황스러운 것은 당황스러운 것이고, 사죄해야 할 것은 사죄해야 할 것.
“그게, 알고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루나 님.”
“……뭐?”
“일이 어떻게 된 건가 하면…….”
그는 자신이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그녀에게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거짓말을 했음을 밝히고, 다시금 정중히 사과했다.
“……그랬던 겁니다. 그런데, 이게…….”
어색하게 말끝을 흐리는 타이니를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루나는 이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거짓말, 그런데 진짜가, 됐다?”
허망한 눈빛과 혼잣말.
그에 타이니가 입술을 깨물며 다시금 고개를 숙이려는데, 루나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 이해했어. 그래서, 가족 찾았으니, 용서해 줄게.”
타이니에겐 그 말이 진짜 핏줄이 아니었으면 용서 안 했을 거라는 소리처럼 들렸지만, 이내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 흐…….’
얽히고설킨 인연이 다시 이렇게 이어질 줄은 생각도 못 했지만, 나쁜 쪽은 아니니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여전히 자신이 귀족 가문 출신이라는 것은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난 어쨌건 나야.’
다만, 그렇게 마음의 짐을 덜어 내고 나니 새삼 드는 의문도 있었다.
‘피로 감별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전생에는 왜……?’
전생에 자신을 멀리하고 껄끄러워했던 사신의 모습이 떠올라 조금 의아하긴 했다.
다만 이 상황이 제삼자의 눈에는 꽤 재미있는 사건인 모양이었다.
“어쨌건, 그럼 아가씨도 타이니 군을 의심했다는 건가요?”
제나스의 그 말에 루나의 얼굴이 대번에 싸늘해졌다.
“무슨 뜻?”
“아, 그, 검사를 했다고 하니…… 하하. 미안합니다. 하, 하하…….”
살벌하게 쏘아보는 눈빛에 천하의 제나스마저 겸연쩍은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어쨌건 그런 건, 아니다. 보여 준 증거, 외모 너무 확실했다.”
그렇게 말하는 루나 역시 조금은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랬는데 거짓을 말했던 거라고? 라는 생각이 얼굴에 그대로 보이는 표정.
그러나.
“얼마나 직계에 가까운지, 확인하고 싶었다. 애매해서.”
“애매하다?”
“우리 가문 직계, 피 짙을수록, 키 작다.”
“뭐!?”
말이 이어질수록.
“‘그림자의 피’, 고대의 마법으로 이어진, 속박이자 권능. 방계라 해도, 검은 머리, 검은 눈이면, 피가 진하게, 발현된 것.”
흔들리던 눈빛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갔고,
“그런데 열네 살에 저 키, 피가 옅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과는, 반대였지만.”
이내 거의 흔들림이 없는 곧은 눈빛이 타이니를 직시했다.
물론 당사자는 반대였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게 까드득 이를 갈았다.
‘이런 씨. 무슨 그런 저주받은 핏줄이……!’
너무 작은 덩치 탓에 구걸조에 배치된 것도 모자라 항상 윗선에 다 빼앗기는 처지였던 어린 시절이 다시금 떠올랐으니까.
거기에 얼마나 한이 맺혔으면 전생에 강함이 곧 덩치고 힘이라 생각해 몸을 그렇게 불렸겠는가.
아니, 애초에 자신이 타이니(Tiny)라 불린 이유도, 또래에 비해 너무나도 작은 덩치 때문 아니었던가.
생각만 해도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동생. 지금, 눈빛이……?”
순간적으로 울컥하던 타이니는, 날카롭게 변한 루나의 눈빛을 보며 황급히 표정을 관리했다.
“아, 하. 하. 그게…… 누님은 여자치고는 좀 큰 편 아닌가 해서…….”
“나, 엘프 피, 섞였다. 그래서 여자치고는, 크다.”
그래. 젠장,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쨌건 한 가지 의문은 풀렸다. 사실이 그렇다면, 그녀가 전생에 자신을 보았을 때는.
‘……핏줄이라는 의심조차 안 했겠군.’
엄청난 덩치의 거인이 검은 머리 검은 눈이라면, 사신에게는 오히려 기분 나쁜 존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말이 없고 사교성 없던 사신이 동료 중에서도 자신을 유독 껄끄러워하던 이유도 설명이 된다.
다만 그럼에도.
“어떻게 일이 이렇게…….”
그것은 여전히 현실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당혹스러운 진실이었다.
‘마법이 담긴 혈통은 귀족 중에서도 흔치 않을 텐데.’
그야말로 일반인들과는 전혀 다른, 스스로 ‘마나가 담긴 푸른 피’라고 칭하는 진짜 귀족들.
현대에 와서는 아스란 황실이나 셀던 왕국의 왕족들에게서나 그 확실한 흔적이 보이는, 그야말로 희귀한 경우였다.
그런데 대체 그런 가문의 후손인 자신의 부모는, 뭘 어쩌다가 필레스의 빈민가에까지 흘러들었을까.
‘아무리 가문이 멸문했다 해도, 능력은 있었을 텐데?’
아주 어렸을 때, 너무 힘이 들어 부모를 원망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품어 본 적 없던 의문이 다시금 싹트기 시작했다.
그때, 그 표정을 본 루나가 다시 느릿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 할아버지, 멸문 당시, 막내아들. 가문의 비전과 신물, 가지고 탈출했다. 아마도 동생은, 후계자의 직계, ‘그림자의 피’, 진하게 물려받았다.”
“에?”
“키는, 이해 안 되지만. 결과가 그렇다.”
“…….”
“그림자의 피, 비전, ‘그림자의 법’, 익히기 쉽게 만든다. 신물로 후계자, 지정받으면, 피 더 전해진다.”
“아니, 저…….”
“그림자의 법 더 쉽고, 강해진다. 원한다면, 가르쳐 줄 수도 있다. 내 후계위, 넘겨줄 수, 있다.”
완전히 막무가내로 자기 할 말만 쭉 이어 가는 루나.
품 안에서 마나가 은은하게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검은 단검까지 꺼내는 그녀를 보며 타이니는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 절대, 절대!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누님.”
뭐가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어차피 전생에도 현생에도 사신의 수법은 자신의 전투 스타일과 완전히 상극이었으니, 억지로 배워 봤자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더구나 그게 사신의 역량 저하로까지 이어진다면, 더더욱 의미 없는 일.
그러니 지금은.
“……차라리 잘됐습니다. 그럼 말하기가 더 편하겠군요. 사실 이전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회귀에 관한 진실을 말하기 더 편해졌다는 것에만 집중하자.
그렇게 생각했는데.
“조건 있어.”
뭐?
“이게 조건 따질 일이 아니…….”
“누님, 멀어. 누나, 라고 불러. 말도, 편하게. 반말.”
“어…….”
“안 그럼, 안 들을 거야.”
부러 인상을 쓰며 귀를 막는 제스처와 함께 고개를 홱 돌려 버리는 루나.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외모 탓인지, 그 모습도 충분히 귀엽고 예뻐 보였지만, 전생의 사신을 기억하는 타이니에게는 소름 돋는 행동일 뿐이었다.
‘아으으, 그 미친X 같던 사신이…….’
이건 사신이 어려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그만큼 사신에 대해 몰랐던 걸까.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변한 탓일까.
어느 쪽이건 당혹스러운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 그럼 누나라고 불러.
이미 현생에서 핏줄과 상관없이 반강제로(?) 누나가 된 은인도 있었다.
심지어 진짜 혈연이라면, 하늘에 있는 에리나 누나 역시 서운해하지 않을 것이다.
“……알았어, 누나.”
생각보다 말은 쉽게 나왔지만, 그 말과 함께 가슴속 무언가가 살짝 풀려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게 꽉 막혀 가라앉아 있던 무언가.
그 답답한 무언가가 조금씩 옅어지는 느낌에 어색한 미소가 떠오르는데.
그런 타이니와는 반대로.
“……그래.”
정말 기분이 좋은 듯 히죽 웃으며 볼을 붉히는 루나.
그 너무나도 적응 안 되는 사신의 모습에는 슬그머니 시선을 내리깔 수밖에 없었지만, 어쨌거나 지금은 진실을 알려 줘야 할 때였다.
“나도 반갑긴 한데, 일단 내 말 좀 들어 줘. 이건 우리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야. 그리고 내가 걸어온 과거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무슨 말인가 하면…….”
마음에 찜찜함이 남아 있을 때는 차마 전하지 못했던 말이, 다시금 길게 이어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껌뻑, 껌뻑.
루나는 큰 눈동자로 멍하니 타이니를 응시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마……왕……?”
손가락을 머리에 대고 돌리지 않았을 뿐, 너 돌았냐는 뜻이 역력히 느껴지는 말투.
“그 고대에, 마역, 대미궁, 만들었다는?”
“……응.”
아, 젠장.
타이니의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
서로 목숨을 구해 준 적이 있는 전우였지만, 안타깝게도 친분이 그리 두텁지는 않았기에 믿음을 줄 만한 사연 같은 것도 알지 못했다.
‘어찌해야 좋을까…….’
마땅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는데.
“믿기 어렵다. 하지만, 믿겠다.”
“음?”
“동생이, 날, 속여야 할 이유, 없다. 그러니, 믿을게.”
불과 조금 전에 속여서 미안하다고 자백했는데, 이게 무슨 근거 없는 믿음일까.
‘이게 정말 그 사신이라고? 대체 전생에는 이십 년 사이에 무슨 일을 겪은 거야?’
하지만 동료들의 성격이 전생과 다른 상황이야 이미 검제를 만났을 때부터 익숙해지고 있었다.
지금은 그저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자수정 눈동자를 보고 있자니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 뿐.
그리고 그러다 보니, 검제가 말했던 도움이 될 만한 사실 하나가 번뜩 떠올랐다.
“아, 누나가 미래에 사용했던 전투 기술에 대해 말해 줄게. 앞으로 성장에 도움이 될 거야. 그거면…….”
더 믿음이 가겠지.
타이니는 그렇게 말을 이으려다, 이미 신뢰 가득한 루나의 눈빛을 마주하고는 그저 피식 웃어 버렸다.
“……아니, 아니다. 어쨌든 들어 볼래?”
“좋아!”
루나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그녀는 검제와 달리 아직 오러를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니 미래의 초인이 된 자신이 싸우는 모습을 설명해 준다고 한들 그 안에서 무언가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말이지.’
하지만 이전에 만났을 때보다 벌써 한 단계 경지가 상승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사신의 재능을 생각하면,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흠, 흠. 나는 좀 나가 있어야겠군.”
얌전히 듣고 있던 제나스가 헛기침을 하며 천막을 나섰다.
암살자의 기술, 그것도 겉으로 드러난 형태만 묘사하는 걸 기사가 듣는다고 뭐에 써먹겠냐마는.
‘그 예의라는 거겠지.’
참 고지식한 양반이었다.
어쨌건 그의 배려 덕에 타이니는 조금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전생 당시 그녀의 전투 기술을, 정확히는 그 효과와 형태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렇게 긴 이야기가 끝난 후.
“아…….”
벌써 무언가 깨달은 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루나를 보며, 타이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저릭에게도 말을 해 줘야겠지.’
저릭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오러익시더의 경지에 오른 탓에 잊고 있었던 일.
그것을 위해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데, 갑자기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막 밖이 부산스러워진 기색이 느껴졌다.
‘뭐지?’
상념을 끊고 주변으로 감각을 넓혀 보기 시작하는 그때.
“타이니! 큰일 났다!!”
천막을 나섰던 제나스가 창백해진 얼굴로 고함을 지르며 뛰어 들어왔다.
대놓고 반말을 하는 보기 드문 제나스의 모습에 놀라는 것도 잠시.
“바토르에 습격이 있었다는 전갈이 왔어! 성물 코르(Cor)가 사라졌다고!”
예상치도 못한 소식에 타이니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