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해머-77화 (77/500)

77화. 해냈다!

아찔한 충격에 일순간 의식이 날아갔다.

- 컹! 컹컹!

역소환된 월랑의 간절한 외침에 애써 눈을 뜬 순간.

타이니는 자신의 몸이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더불어 전신에서 느껴지는 뻐근하고 짜릿한 통증까지.

“끅.”

몸을 움직이며 균형을 잡아 보려 했지만, 그 사소한 동작조차 쉽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하지.’

이미 탈진해 버린 몸으로 주변의 마나를 억지로 흡수하며, 몇 번이나 한계를 두드렸다. 거기다 아직은 부족한 경지로 성물의 힘을 변용하기까지 했으니, 한마디로 죽지 않은 게 다행인 수준이었다.

지금도 미친 듯이 마나를 빨아들이며 몸을 회복시키고 있는 염체가 아니었다면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우우우웅.

우드드득.

마나가 스며들며 찢어지고 부러진 육체를 급속도로 치유해 가는 것이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정말 다행이군.’

잠깐 의식을 잃었는데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작동하는 염체라니.

월랑의 권능 개화를 이룬 이후로, 염체 역시 한 단계 진보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것은 오른손에 잡힌 ‘다리.’

마치 누군가의 몸에서 쑥 뽑아낸 것 같은, 마르고 앙상한 누군가의 다리 한 짝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그 끔찍한 물건이, 지금은 무엇보다 대단한 전리품처럼 느껴졌다.

“크, 크웨웨아압.”

커헙.

무의식적으로 새어 나온 웃음소리가 풍압에 일그러진 얼굴 탓에 기괴한 소리로 변모했다.

순간 놀라서 퍼뜩 입을 다물었지만, 어쨌거나 기분은 좋았다.

전생의 기억에도 없는 초인급 흑마법사.

골치 아팠던 그 변수가, 결국 크라켄의 다리에 맞아 날아가는 광경이 생생히 떠올랐다.

자신이 잡아챈 다리가 그대로 뽑히며 으깨져 날아가던 놈의 모습.

유감이라면, 그 일격에 스친 자신도 그 순간 의식을 잃어 놈의 최후를 확실하게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놈은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자신한테 크게 한 방 얻어맞고, 다리 하나를 대가로 소신공양까지 했다.

거기에 크라켄의 마무리까지.

‘전생의 나라도 죽을 만한 타격이야.’

그러니…….

‘잘 뒈졌다, 쓰레기!!!’

……이제는 나만 살면 되는데.

휘이이이이잉.

몸이 안 움직이는 탓에 강제로 감상하고 있는 반파된 오르투스의 황폐한 밤 풍경이, 왠지 자신의 미래처럼 느껴지…….

‘……아니, 아니야! 내가 이대로 죽을까 보냐!’

우우웅.

억지로 마나를 끌어 올려 보려 하는데, 염체가 반발했다.

마나의 힘을 회복이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면 바로 죽을 것이라는 경고였다.

‘빌어먹을, 그렇다면…….’

이번에는 품 안의 성물에 의지를 집중해 봤다.

그러자.

우웅, 번쩍.

점점 투명해지던 성물이 이내 새하얀 빛을 뿜어내며 그 의지에 응답했다.

‘……제발!’

그 빛에 잠깐 기대를 걸어 봤지만, 마기를 밀어 내고 마물을 쫓는 성물도 중력의 힘에는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했다.

심지어 그때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성물의 힘을 과하게 빌린 탓인지, 영혼과 육체 사이에 약간의 괴리가 생긴 것 같았다.

몸이 회복되더라도, 그 괴리감은 절대 짧은 시간 내에 회복되진 않을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

하필이면 지금……!?

“제기라아아알!!”

내가 이렇게 죽는다고?

기껏 시간까지 거슬러 돌아왔는데?

‘그럴 수야 없지!!’

뿌드득.

우우웅.

염체의 반항을 뿌리치고, 최소한의 마나를 뽑아낸다. 육체의 회복이 아니라 상태 유지 정도만 가능하도록 극미량의 마나만.

그리고 최소한의 마나가 확보되는 대로 월랑을 재소환해서, 공간 밟기를 활용해 착지한다.

‘그럼 살 수 있어. 한 번만 버텨라, 내 몸아! 부탁한다, 월랑.’

- 컹!

이를 악문 타이니가 점차 가까워지는 지면을 노려보는데.

구구구구구구.

갑자기 그 사이로 거대한 문어 다리가 끼어들었다.

‘어?’

그리고.

푸슈슈슉.

꺼림칙하지만 이상하게 포근한 느낌의 검은 기운이, 추락하던 타이니의 몸을 받쳐 들었다.

‘……이게 진짜 마기이기는 한 건가?’

검은 기운에 둘러싸인 그가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의문을 떠올리는 그때.

- 고맙다, 계약자여. 조금이나마 한을 풀 수 있었다.

타이니에게만 전해지는 파동이 다시금 그의 영혼을 두드렸다.

“……별말씀을.”

투우우우웅.

유연하게 바닥을 치는 거대한 마수의 다리.

크라켄은 그렇게 그를 오르투스의 왕성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내.

“……저 사람 뭐야?”

“누구길래 저 괴물이…….”

“허, 허윽. 다시 고, 공격하는 건 아니겠지?”

재앙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제각기 웅성거리며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멍하니 사방을 둘러보던 타이니는 그제야 자신이 살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해냈다. 첫 번째 재앙을 막아 냈어……!’

엉망이 된 왕궁, 하지만 살아남은 수많은 사람.

그 풍경과 군중의 시선이 눈에 담기자, 절로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내가 해냈다! 으하하하하하!!”

단순히 재앙 하나를 막아 냈다는 안도의 환호가 아니었다.

그로 인해 막막하기만 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긴 것이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다고!’

타이니는 연신 허공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렇게 그는.

“……미친 건가?”

“살짝 맛이 간 것 같긴 해.”

“하긴, 저 괴물한테 잡혔다가 살아난 거면……. 쯧쯧.”

여러 가지 의미로 전설이 되었다.

* * *

카룬의 오르투스에 크라켄이 등장했다.

믿기지 않는 소문이 대륙을 강타했다.

수백 년간, 동대륙을 왕복하는 뱃사람들 사이에서나 전설처럼 오르내리던 전설의 마수. 그 신화 속 마수가 느닷없이 현실에 등장해 카룬 왕국의 수도를 반파한 것이다.

워낙 충격적인 이야기인 만큼, 이내 카룬을 중심으로 각양각색의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카룬 왕실이 쌓은 막대한 부가 엄청난 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마수의 공격을 받음으로써 도시를 여신께 공헌한 것이다.

이런 신학적 소문이 퍼지는가 하면.

카룬 왕국이 크라켄의 보물을 빼앗아서 분노한 괴물의 공격을 받았다.

카룬 왕실에 크라켄이 탐낼 만한 보물이 있다.

이런 세속적인 소문이 돌기도 하고.

사실은 악마추종자들의 음모다.

말세의 징조다.

그나마 진실에 근접했지만, 오히려 사람들에게 헛소리로 치부되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카룬 왕실의 공표가 전해지며, 잡소문은 금세 일축되었다.

- 악마추종자들의 사악한 술수로 인해 오르투스와 카룬 왕국이 큰 피해를 볼 ‘뻔’했다.

카룬 왕국은 오르투스의 주민들 대다수와 왕성을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전설의 마수를 쫓아내고 악마추종자들을 박살 냈다고 공언했다.

놀랍게도, 전설의 마수가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명 피해가 미미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 사람의 영웅이 혜성처럼 떠올랐다.

악마추종자들을 쫓아 카룬에 온 어린 기사.

그가 악마추종자들을 박살 내고 성물을 지켜 냈으며, 크라켄을 심해로 돌려보냈다.

“……그게 말이 돼?”

“덩치도 작다던데.”

“장생족 혼혈이라는 말도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을 믿지 못해 고개를 저었지만, 크라켄이 그를 왕성에 내려놓고 사라진 광경을 목격한 자가 너무 많았다.

거기에 더해.

- ‘광휘의 기사’, 타이니 경을 카룬 왕실의 은인으로 대우한다.

카룬 왕실은 그 헛소문 같은 이야기를 진실로 못 박으며, ‘광휘(光輝)의 기사(The Brilliant Knight)’라는 거창한 칭호와 함께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 덕에 타이니에게는 또 다른 소문도 따라붙기 시작했다.

“대륙 7대 신성(新星)들보다도 강한 거 아냐?”

“에이, 아무리 그래도…….”

“아니, 생각을 해 봐. 성물도 다루고, 악마추종자들 골통도 깨고, 크라켄도 물러가게 했잖아. 공적만 봐도 이미 다른 신성들이 못 당해.”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실력은……. 나이도 어리다며?”

“어허, 이 사람. 나이로 실력이 정해지나? 그럼 7대 기사 중에는 갓 핸드 그 양반이 가장 세게?”

장래에 초인이 될 확률이 가장 높은 젊은 기사들, 7대 신성.

타이니의 이름이 그들에 비견되는 존재로 언급되기 시작한 것이다.

* * *

“……그대에게는 너무, 너무나도 감사, 쿨럭. 감사할 뿐이네, 타이니 경.”

옥좌에 반쯤 기댄 채 창백한 안색으로 기침을 토해 내는 국왕 에머드의 말에, 타이니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전하. 이미 충분한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지만,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아니, 아니야. 쿨럭, 허허. 나라를 구해 준 사람에게 더 많은 걸 해 주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야. 정말 그거면 되겠나? 자네가 필요할 때 성물을 대여해 주는 것으로?”

“예, 그걸로 충분합니다. 사실, 감히 개인이 얻을 만한 권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성물 후마니타스는 혹시나 모를 악마추종자들의 2차 도발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당분간 오르투스에 남겨 둘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언제고 마왕군이 강림하면 그들에게 맞설 비책으로 써야 했으니, 마왕의 골통을 깨고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자 하는 타이니에겐 그 이상의 보상이 없다고 봐야 했다.

더구나 이미 전생과는 다른, 멋들어진 이명까지 얻지 않았던가.

히죽.

‘이 정도면 차고도 넘치지.’

솔직히 전생에는, 죽어서 누나를 만났을 때 ‘괴력의’ 기사라고 소개하기가 조금 껄끄러울 것 같다고 생각하곤 했었다.

게다가 그는 그저 이름을 알리고 싶을 뿐 돈이나 재물에는 욕심이 없었으니, 그야말로 최상의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은, 다른 이들에게는 겸손으로 들린 듯했다.

“허허허. 이리도 욕심이 없으니 잡아 둘 핑계도 없겠군. 나로선 아쉬울 따름이야. 그렇지 않나, 리암?”

“그렇습니다, 전하.”

곁에서 걱정스러운 안색으로 왕을 보고 있던 리암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타이니는 내려 준다는 작위도 거절하고 자유 기사가 되기를 청했으니, 국왕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할 뿐이었다.

“애초에 우리 카룬에 온 것이 악마추종자들을 쫓기 위함이라면, 떠나는 것도 그것을 위함인가?”

“……그렇습니다, 전하.”

“허허허, 정말 대단하구먼. 이 대륙에 진짜 신성이 나타났어.”

왕은 진심으로 감탄했지만, 타이니는 그 말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대륙 7대 신성, 이름이야 거창하지만…….

미래를 아는 자에겐 마냥 좋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내가 아는 이름이 없어! 다 생소해. 그럼 전부 초인이 못 됐거나, 죽었다는 건데…….’

만약 후자라면, 자신이 필레스를 떠나 홀로 서게 되었던 불과 몇 년 사이에 전부 죽은 이들이라는 것이다.

‘아니, 잠깐……. 생각해 보니 초인은 아니더라도 신성인데, 그만한 강자들이 전부 죽은 것도 이상하긴 하네? 설마 그것도 놈들의 수작이었으려나? 그럼…….’

타이니가 갑작스레 떠오른 생각에 빠져들려던 찰나, 리암이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크흠, 정작 7대 신성 중 한 명은 자리에 누워 있습니다만.”

“……크흠.”

그에 왕실의 비처에 누워 있는 제나스를 떠올린 국왕 역시 헛기침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유명한 북풍의 기사가 국적 때문에 공적도 인정 못 받고, 부상 때문에 밖에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있으니……. 내색은 하지 않지만, 불만이 쌓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쩔 수 없지 않나. 은혜를 입었으니, 치료가 끝날 때까지는 우리가 지켜 주는 수밖에.”

국왕과 왕실 기사단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화를 주고받는데, 타이니가 피식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전하와 리암 경께서 자기를 방패로 쓰지만 않았어도 회복이 훨씬 빨랐을 거라고, 제나스 경이 그러더군요.”

“커흠, 흠.”

“어험험.”

농담처럼 보탠 말에 카룬의 실세들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리더니, 이내 화제도 돌렸다.

“그러는 자네도 한동안 회복을 해야 한다고 들었네만?”

“성물의 힘을 과하게 이용한 부작용이라던데? 더 나아지지는 않았는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지요.”

그렇게 대답한 타이니의 얼굴이 조금 굳어지는데, 창백한 안색의 국왕은 오히려 슬쩍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곳에 머물면서 회복하시게. 내 장례식이나 막내의 즉위식은 보고 가야 하지 않겠나?”

“전하!”

웃으면서 하는 국왕의 말에 리암이 정색하며 소리를 쳤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지난 사건으로 인해 심신에 큰 충격을 받은 국왕이 오래 버티지 못하리란 것을.

다만, 자신의 죽음을 저리 담담히 얘기하는 국왕의 태도는 지나치게 초탈한 것이었다.

타이니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하겠습니다.”

사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렇게 시간을 낭비할 때가 아니었지만, 지금 자신의 상태를 생각하면 한곳에서 정양할 필요가 있었다.

‘아직도 잘 안 맞아.’

의지가 움직일 때마다 육체가 미묘하게 어긋나는 반응.

후마니타스의 압축 결계를 시전한 대가로 영혼에 걸린 과부하 때문이었다.

그것은 육체의 데미지와는 별개로, 쉽게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신성력으로 치료되는 것도 아니니…….’

무리하지 말고, 그저 자연히 회복되길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

‘적어도 석 달은 걸릴 거야.’

그리고 그것은, 공교롭게도 심각한 마나 탈진에 중한 내상이 겹친 제나스의 예상 회복 기간과 같았다.

‘거기다 검제의 말도 신경 쓰이고.’

생각에 잠긴 머릿속으로 제나스와 나눈 대화가 스쳐 지나갔다.

- 이거, 정말 공녀님의 결혼식에 못 가게 될지도 모르겠군요.

- 예?

- 각하께서 타이니 군을 데리고 엘븐하임에 들렀다가 오라고 하셨지요. 아는 바 없습니까?

- 아……!

- 큼, 최대한 서둘러 볼 생각이었는데 이런 상처를 입었으니…….

엘프들의 수도, 엘븐하임.

해가 지난 지금, 올여름에 일어날 아스란 황실의 재앙 이후로 겨울에 세 번째 재앙이 일어날 곳.

그러나 타 종족에 배타적인 엘프들의 영역에 들어가려면 몇 달의 기간이 걸릴지 장담할 수 없었다.

게다가.

‘클로이의 결혼식 때 일어날 황실의 재앙은 검제가 알아서 한다고 했지……. 믿어야지, 믿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했다.

- 그럼 누나라고 불러.

문득 클로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은인, 그리고 현생에서는 운 좋게 빨리 인연을 맺게 된 사람.

그 사람에게 보답하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다.

‘그래, 그래서 자꾸 미련이 남는 거야. 우선 엘븐하임에 가는 게 맞는데…….’

마음이 기울다가도 제나스의 말이 또 걸렸다.

- 각하께서는 절 공녀님의 결혼식에 오지 못하게 하고 싶으신 듯했습니다. 솔직히, 섭섭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지요.

- ……그러나 각하께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제게 그런 명령을 내렸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타이니 군, 혹시 따로 아는 것이 있습니까?

……검제의 마음은 이해가 갔다.

올해로 서른둘이 되는 제나스. 2년 전, 불과 서른의 나이에 챌린저급에 올랐다는 천재이자 블루윙의 기사단장이 죽을 만한 사건이 뭐가 있겠는가.

하지만 달리 말하면.

‘제나스 경이 있었는데도 막지 못했다는 건데…….’

미리 재앙이 벌어질 것을 알고 있다 한들,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데 막을 수 있을까?

자꾸만 그런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어떡하지…….’

거기다 전생의 기억에는 없는 초인 흑마법사라는 변수가 그 불안감을 더욱 부채질했다.

‘혹시나 그런 놈이 또 있으면…….’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답답한 마음.

하지만 지금 해야 할 일은,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회복하는 동안 잠시 더 신세를 지겠습니다.”

“허허, 나야 좋지. 역사에 남을 영웅이 내 마지막을 지켜봐 주겠다는데. 다시 한번 고맙네, 타이니 경.”

국왕의 너스레에 리암의 안색이 또다시 굳어졌고, 타이니 역시 복잡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3개월의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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