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전조
1왕자에 의한 성물 도난 미수 사건.
그것은 국왕의 엄명하에 극비로 부쳐졌다.
애초에 진압을 위해 투입된 병력도 왕실 기사단 2개 조에 불과했으니, 소문이 퍼져 나가는 것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2개 조라니, 왕이 내 말을 안 믿었거나 사실이 아니길 바랐다는 거겠지. 리암 경을 배로 파견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후자겠지만.’
어쨌거나, 그 덕분에 왕실은 평온하기만 했다.
눈앞의 국왕을 빼놓고는 말이다.
“……결국 그 아이가 선을 넘었구나. 허허,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웠어. 이 내가……”
벌써 몇 번째 하는 말일까.
대전의 천장을 바라보며 한탄하듯 뱉어 낸 독백에는 씁쓸한 회한만이 가득했다.
1왕자와 협력했던 트루먼에 관한 얘기는 하지도 않는 걸로 보아 자식의 배신이 준 충격이 너무도 큰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의 부차적인 결과를, 타이니는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서클이 심각하게 흔들린다, 이런…….’
왕의 심장, 정확히는 그곳에 존재하는 마나서클의 상태를 확인한 타이니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전하, 성물은 지켜 냈습니다. 악마추종자들의 또 다른 수작 또한 리암 경과 왕국의 정예들이 막아 낼 것입니다.”
다분히 낙관적인 관측만을 담은 말이었지만, 리암을 대신해 자리한 외성 경비대장 틸란과 시종장이자 왕실 총관인 로이만, 그리고 호위 기사들까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니 경의 말이 맞습니다, 전하.”
“저희는 이미 왕국의 적을 분쇄할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그 말이 초점 없이 허공을 바라보던 국왕의 눈에 조금이나마 빛을 더해 주었다.
“……그래, 그래야지.”
“1왕자 저하도 놈들에게 현혹된 것뿐입니다. 당장은 카룬을 어지럽힌 악마추종자들을 처단하는 것만 생각해 주십시오, 전하.”
그 말에 다시금 형형한 빛을 되찾은 국왕의 눈동자를 보며, 타이니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식의 배신이 부모에게 얼마나 큰 심적인 충격을 주었을지, 고아에 자식도 없는 그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어설픈 위로의 말을 건네기도 조심스러웠으니, 그저 속으로 바랄 뿐이었다.
‘당신이 지금 죽으면 안 됩니다.’
아직 아무 것도 정리되지 않았다.
바다 쪽의 일이 어찌 되었는지도 모르는 마당에, 국왕이 죽어서 혼란이 일어나면 안 된다.
그 간절함을 담아 국왕을 바라보는데,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당장이라도 붕괴할 듯 흔들리던 마나서클이 다시 자리를 잡는 것이 보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국왕은 머리를 가볍게 흔들며 작은 한숨을 토해 내었다.
“그대들에게 추태를 보였군. 여러 가지로 면목이 없네. 특히나 타이니 경, 자네에게는 말이야.”
타이니가 미리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적게 파견한 일을 사과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그가 없었다면, 겨우 2개 조의 왕실 기사단은 배신자들과 악마에 의해 박살이 나고 성물은 도난당했을 테니까.
“부실한 대처였음에도 자네 덕분에 왕실의 우환을 잡았어. 정말 고맙네.”
“아닙니다, 전하.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놈들의 노림수를 모르니 긴장을 놓아선 안 됩니다.”
“그래, 그렇겠지. 게일, 그 친구만 빨리 돌아와 주면 마음이 한결 놓일 텐데…….”
그 말에, 듣고 있던 이들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번졌다. 모두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해일의 마도사를, 국왕은 여전히 살아 있으리라 믿고 있는 듯했으니까.
그런 그들의 표정을 보았는지, 국왕이 쓴웃음을 지었다.
“……자네들에게는 내가 헛된 기대를 하는 걸로 보이겠지만, 나는 나대로 나름의 확신이 있어서 그런 것이야.”
그 말에 모두의 얼굴에 의문이 깃들었다.
“내부에 적이 있을 우려 때문에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적을 가려냈으니 말해도 되겠지. 그대들도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말이야.”
그 말과 함께 국왕은 품 안에 손을 넣어 푸른 구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일 년 중 반, 혹은 그 이상을 해상에서 보내는 나의 친우이자 충실한 신하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못난 왕을 위해 만들어 준 걸세. 이 빛이 남아 있는 한, 자신은 무사한 것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장담하면서.”
“……오!?”
“그럼 정말로?!”
“정말로 게일 님이 살아 계신다는 말입니까!?”
주변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면서 한순간 분위기가 확 밝아졌다.
타이니 역시 국왕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푸른 구슬을 보는 순간 눈을 크게 뜨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형태로 복잡하게 꼬인 마나의 패턴.
하지만, 그것이 외부의 특정한 신호를 받아들여 꾸준히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해일의 마도사가 정말 살아 있다는 것인가!’
전생에서도 그랬는지, 아니면 변수가 생긴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쁜 변수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 컹!
“음?!”
- 컹! 컹!
영혼의 저편에서 월랑이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의지를 전해 왔다.
……찾을 수 있다고? 저 마나의 주인을?
- 컹!
“허……!”
무심결에 나온 탄성이 유난히 컸는지, 그에게로 장내의 이목이 쏠렸다.
“타이니 경?”
“자네 왜 그러는가?”
“응??”
하지만 타이니는 그들의 시선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월랑이 이어서 전해 온 말이 너무 터무니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르투스? ……동부 외곽, 아니, 그 아래?”
실종되었다는 해일의 마도사가 오르투스 지하에 있다고?
“이게 무슨……?”
이해가 되지 않아 순간 머리가 멍해졌지만, 어차피 그가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전하! 제가…… 아니, 제 정령이 게일 경을 찾을 수 있을 것 같…….”
달아오른 분위기를 한층 더 뜨겁게 달굴 만한 말을 꺼내려던 순간.
쩌저저적.
국왕이 움켜쥐고 있던 푸른 구슬에서 불길한 파열음이 들렸다.
“……이, 이런!?”
당황한 국왕의 목소리와 함께 벌어지는 손.
푸른빛을 잃은 투명한 구슬이 산산이 조각나면서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한순간 모두가 할 말을 잃고 국왕을 바라보는데, 국왕이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 이럴 리가 없어. 이럴 리가…… 내, 내가, 짐이 너무 힘을 준 탓일 걸세……. 암, 그렇고말고. 게일 그 친구가 이렇게 쉽게 갈 리가 없어!”
이성을 잃은 듯 횡설수설하더니 끝내 터져 나온 고함.
특유의 현명함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국왕의 목소리에 모두가 망연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타이니의 표정은 다른 이유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푸른빛을 머금은 마나가 허공에 글자를 새기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크라]
안타깝게도 보통 사람은 느낄 수는 없을 만큼 미약한 마나의 움직임.
그나마도 형태를 유지할 힘이 모자라는 듯, 단어 하나를 채 완성하지 못한 채 스러져 버렸다.
하지만 타이니는 그 빛이 적으려던 게 무엇인지 그 누구보다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크라켄!!”
그 다급한 목소리가 망연자실하던 국왕의 정신을 일깨웠다.
“크라켄?”
느닷없는 고함에 모두가 의아해했지만, 지금 타이니에게는 자세히 해명할 정신이 없었다.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경우가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리암 경과 제이는 대체 뭘 하고 있던 거야!!’
빌어먹을……!
그가 입술을 질끈 깨물 때.
우우우우우웅.
국왕이 앉은 옥좌가 떨리며 붉은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국왕의 표정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렸다.
국왕에게 직통으로 전달되는 마법 경보, 그 의미는…….
“5등급 해일이 다가온다!”
국왕의 고함에 다시 장내의 시선이 그에게로 몰렸다.
“오르투스의 백성들을 대피시켜라! 마법사들을 모조리 동원하고 해안가에 방벽을 올려! 최고 등급 경계령을 선포하라!”
왕의 명령이 대전에 울려 퍼지는 가운데.
타이니는 마치 그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처럼, 두 눈 부릅뜬 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창밖으로 보이는 동쪽 해안, 그 너머에서 느껴지는 소름 끼치는 마기를.
“젠장, 벌써……!”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지만, 놈이 카룬에 닿으려면 아직 사흘은 걸릴 것 같았다.
하지만 놈은 그 먼 거리에서도 무시무시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었다.
‘아직은 나밖에 못 느끼겠지만.’
그는 전생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사흘 거리를 두고서도 정신을 압박해 오는 강렬한 마기의 주인.
그와 대륙 10대 기사를 동시에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괴물.
‘정말로 글러터니와 동급……?’
생각만으로도 의식이 아득해지고 식은땀이 흐르는데, 다시 집중해 보니 그 마기의 농도나 느낌은 확연히 달랐다.
‘아니, 아니야……. 그 정도는 아니야, 절대! 하지만…….’
그 깨달음이 위안이 되지는 않았다.
“8단계에서도 최고급……. 젠장! 이건 안 돼……!!”
그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마기인 것은 마찬가지였으니까.
전생에는 자신 역시 8단계에 발을 걸친 초인이었고, 그 누구보다 든든한 동료들도 있었다.
그때라면 어떻게 해서든 상대할 수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이건 절대 못 이겨.’
이 상태로는 절대로.
엄습하는 절망감에 질끈 깨문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기껏 미래를 바꾸기 위해 왔는데, 못 막는다고?’
분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불끈 쥔 주먹이 부르르 떨려 오지만, 어떤 대안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하지? 어쩌지……?’
망연한 눈으로 창밖을 바라보고만 있는데.
“타이니 경!”
노쇠하지만 아직은 힘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그의 정신을 깨웠다.
“예, 예. 전하!”
“좀 전에 했던 말이 무슨 뜻인가? 설마, 지금 이 사태와 상관이 있는 건가?”
창백한 안색, 부릅뜬 눈.
지금 그 누구보다 혼란스러울 게 분명한 늙은 왕은, 어느새 조금이나마 마음을 추스른 듯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왕의 그 모습이 타이니의 혼란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혀 주었다.
“게일 경이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그분은 크라켄을 막다가 돌아가신 겁니다!”
“뭐라!?”
“당장 증명할 수는 없지만 사실입니다! 전하, 몸을 피하십시오. 이건 감당할 수 없습니다!”
타이니의 진심 어린 눈동자를 마주한 국왕의 눈빛이 흔들리길 잠시.
이내 국왕이 괴로운 표정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런가, 정말 그 친구가 그리 갔다는 말인가. 흐, 흐흐.”
“믿어 주시는 겁니까?!”
“이제 자네 말이라면 무조건 믿어야지. 또다시 실수할 수는 없으니.”
“전하! 어찌 그런 황당한 말에 귀를 기울……!”
그 말에 곁에 있던 로이만이 소리를 질렀지만, 왕은 고개를 저으며 충실한 시종장의 반론을 일축했다.
“만약 거짓이라 한들, 나 하나 창피당하면 그만이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구나.”
어디선가 들어 본 듯한 말을 뱉으며, 왕은 다시 타이니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진실이겠지?”
“제 모든 것을 걸고 맹세하건대, 진실입니다.”
“으음.”
그 말에 지켜보던 모든 이들의 입에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왕실에 등용된 이 어린…… 아니, 어려 보이는 기사는 짧은 기간 내에 믿을 수 없는 공을 세웠다.
그런 그가 저렇게까지 말하니, 다른 이들 역시 마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전설 속 괴물이 갑자기 튀어나왔다면, 지금 해일이 문제가 아니다.
“전하, 크라켄이 나타난 게 사실이라면 전하께서 먼저 피하셔야 합니다!”
틸란이 그리 소리를 질렀지만, 이번에도 국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래선 안 되지.”
“예? 타이니 경의 말을 믿는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틸란이 황망한 눈길로 왕을 바라보는데, 왕이 다시 타이니에게 고개를 돌렸다.
“타이니 경, 자네 덕분에 우리는 성물을 지켰지. 그 덕분에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네. 정말 다행이야.”
“그게 무슨…….”
타이니가 영문을 몰라 멍하니 서 있자, 어느새 다가온 국왕이 그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당황하는 신하들을 향해 돌아서서 외쳤다.
“백성들을 왕성 안으로 들여라! 성령 결계의 효과가 미치는 범위까지 최대한! 왕실의 비처라도 상관없다. 모두 안으로 들여라!!”
“전하!”
“하지만……!”
“백성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내성으로 대피시켜!”
“예! 전하!”
“백성들을 모두 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들어오지 못한 백성들은 최대한 내성 가까이에 있는 저택에 들여라.”
“예, 전하! 하지만 해당 귀족들이 거부할 수도…….”
“국가 비상사태다! 거부하는 귀족들은 즉참한다고 전해!”
“예, 전하!”
당황하던 신하들은 국왕의 냉정한 명령에 일제히 복창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 모습을 타이니는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지금처럼 절망적인 상황보다, 1왕자의 배반 소식에 더 큰 충격을 느꼈던 걸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이성적인 조치였다.
하지만 국왕은 한 가지를 모르는 듯했다.
“전하, 크라켄의 힘은 성령 결계로 막을 수 없습니다. 재고하여 주십시오.”
“……타이니 경?”
국왕은 당혹스러운 눈빛을 보였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다.
그는 글러터니의 힘을 겪어 보았고, 성령 결계의 힘도 느껴 보았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내성 전체를 커버할 수 있는 결계의 힘은 분명 훌륭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군단장급은커녕 그 아래 수준의 마수도 완벽하게 막아 낼 수 없다고.
그러니.
“차라리 사흘, 아니 이틀 안에 대륙으로 피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입니다. 믿으실지 모르지만, 믿으셔야 합니다.”
“이 왕국을, 수도를 버리고 말인가?”
“……부족한 제 소견으로는 그것이 최선일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국왕의 표정은 짧은 순간 수도 없이 바뀌는 듯했다.
복잡한 심경이 여실히 드러나는 모습.
하지만 그 끝에 나온 말은 타이니의 예상과는 달랐다.
“아니, 그럴 수는 없네. 백성들은 몰라도 왕은 그럴 수는 없어.”
“전하!”
다급히 소리를 쳐 보지만, 고개를 젓는 왕의 모습은 여전히 단호하기만 했다.
“그대가 모르는 것이 있네. 설령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크라켄은 다른 마수나 마족들과는 다르다는 것이지.”
“예?”
“크라켄은 신께서 만든 마수지. 설령 결계를 부술 힘이 있다고 해도, 부수지는 않을 것이야. 그것이 신화시대의 약속이니까.”
무슨 말인가 싶어 눈살이 찌푸려지는데, 그 순간 타이니의 머릿속에 검제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 무려 심해의 지배자로 운명 지어진 마수다. 마수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바닷속에서 발생하는 마물들을 먹이로 삼으니, 인류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바닷속의 마물 청소부나 다름없는 존재지.
그렇다면, 정말 성령 결계로 크라켄을 막아 낼 수 있다는 걸까?
‘가만…… 정말로 그렇다면, 그게 되려나? 어라, 이거 잘하면……?’
타이니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성물과 접촉했을 때 얻은 정보가, 머리 한구석을 간지럽히며 무언가 영감을 주려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국왕이 다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크라켄이 언제쯤 도착할 것 같은가?”
그 심각한 목소리가 그의 상념을 깨트렸다.
하지만 지금은 아쉬움을 표할 때가 아니었다.
“……늦어도 사흘, 빠르면 이틀이 될 것입니다.”
“좋아, 생각보다 시간 여유가 있군.”
“예?”
“그대의 의견을 참고하긴 하겠네.”
“……예?”
“내성에 들이지 못한 백성들은 배를 통해 대륙으로 향하게 하라. 자금은 왕실에서 대겠다. 모두 대피시켜!”
“전하, 전하께서 지금 해일이 밀려온다고 하셨……!”
“왕국에 남아 있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알려! 전설의 마수 크라켄이 온다고!”
국왕의 선포에 남아 있던 기사들이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러운 최고 등급 해일도 모자라 전설의 마수라니?
쉽게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국왕은 재차 선포했다.
“괴물이 온다고 알리라는 말이다! 해일은 동부에서 오고 있으니, 서부 대륙 방향으로 보낼 수 있는 배는 모조리 준비시켜! 위험해도 배를 띄우라 일러라!”
“예, 전하!”
외성 경비대장 틸란이 복창하며 대전을 뛰어나가려는데.
- 전하!! 큰일 났습니다!
쾅.
대전의 문이 요란하게 열리며 일단의 기사들이 뛰어 들어왔다.
그리고.
“항구의 배들이 모조리 파손되었습니다!”
더욱 절망적인 소식을 전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