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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해머-59화 (59/500)

59화. 전투

사람이 너무 황당한 일을 겪으면 순간적으로 정신이 멍해지기 마련이다.

페어윈드(Fair wind, 순풍)라 이름 붙인 조직의 배를 관리하는 선원들의 현재 심정이 그랬다.

웬 꼬맹이가 제 몸의 두 배는 될 듯한 2m짜리 망치를 끌고 달려올 때도.

갑자기 뛰어오른 소년의 망치가 푸른 불꽃을 머금고 배의 후미를 아예 날려 버릴 때도.

“지금 이게……?”

“……어!?”

“헐!?”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지는데, 이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러다 결국.

크르르르.

배에 실어 둔 중요한 ‘화물’이 바다로 쏟아지고, 선미에서부터 절반이 파괴된 배가 서서히 뒤쪽으로 기울 때.

“후!”

가라앉는 배의 돛대 위에서 그 참사의 원흉인 꼬마가 식은땀을 닦아 내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들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그러자 뒤늦게 눈에 들어오는 꼬마의 모습.

“다행히 안 늦었네.”

피식 웃으며 자신들을 내려다보더니, 제 키만 하던 무기를 작은 망치 하나와 봉으로 분리하는 여유로운 태도.

그 모습에 그들의 눈이 뒤집혔다.

“자, 잡아!”

“미친!”

“저놈 잡아!”

소리를 지르는 이들은 하나같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놈을 잡지 못하면 조직의 문책을 받게 될 거란 생각을.

그리고 임무에 실패한 조직원에게 조직은 보통 목숨 혹은 그 이상의 대가를 요구하니, 당연히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새파래진 선원들이 오직 생존 본능에 따라 적을 향해 달려드는데, 그 상황에서도 웃고 있는 꼬마를 본 순간 그들의 이성이 살짝 돌아왔다.

- 배를 한 방에 박살 낸 괴물을 우리가 제압한다고……?

“자, 잠깐!!”

그들의 움직임에 제동이 걸리는 순간, 가라앉는 배를 박차고 도약한 꼬마가 무서운 속도로 그들을 향해 돌진해 왔다.

“잠깐은 무슨…….”

냉소 어린 목소리와 함께, 봉을 분리했어도 소년의 몸만 한 망치가 가로로 휘둘러지는 순간,

쾅!

배에 연결되었던 가교 앞에서 피 보라가 일었다.

“악마추종자는 지옥으로.”

성기사나 할 법한 말을 내뱉으며, 타이니는 태연한 표정으로 남몰래 숨을 골랐다.

‘배를 파괴하느라 힘을 너무 썼어.’

더구나 화물에는 타격이 안 가게, 오직 선체에만 파괴력이 전달되도록 조절하느라 정신력도 상당량 소모되었다.

하지만 괜찮다.

방금의 일격에 터져 나간 놈은 고작 셋이었지만, 그놈들의 조각난 몸뚱이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그 파편과 피를 뒤집어쓴 주변 놈들은 공포로 얼어붙어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초전에서의 압도적인 위력 과시는 대개 단순한 타격 이상의 효과를 가져오기 마련인지라.

“혹시 항복하실 분?”

적을 앞에 두고 이런 대사나 내뱉으며 마나를 회복하고 있어도 하수들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히, 히엑!”

“흐아악!”

“괴, 괴물…….”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허세에 속지 않는 놈도 있었다.

“이놈!!!!”

고개를 돌리자, 월랑과 대치하고 있던 후셀 놈이 천둥 같은 고함을 내지르며 돌진해 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월랑과 동조된 시야에 놈의 등에 새겨진 발톱 자국이 보였다.

그 상처에서 옅게 솟구치는 핏줄기까지.

“크와아아앙!”

월랑이 반 박자 늦게 놈의 뒤를 쫓았지만, 그 짧은 새에 새파란 물줄기를 닮은 소울웨폰이 길게 늘어나 그의 목을 노려 왔다.

‘칫!’

일반 속성 중에서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것이 바로 바람과 물 속성이었다.

둘 다 속성을 반영하여 변화무쌍하게 휘어지는 마나블레이드로, 보통은 바람 속성이 더욱 까다롭기 마련이지만, 비가 오거나, 강이나 바다가 근처에 있는 경우는 물 속성이 더욱 까다롭기 마련이었다.

바로 지금처럼.

“타앗!”

콰아아앙!

남은 힘을 쥐어짜 휘두른 워해머가 푸른 물줄기 같은 소울웨폰을 후려쳤다.

예측 불허의 변화를 일으키기 전에 근원을 끊어 버리려는 시도였지만, 부서진 물줄기는 그대로 비수처럼 변해 타이니의 전신을 향해 쏟아졌다.

“흡!”

파바바바바박.

타다다다다당!

푸른 갑옷 형태의 마나가 그 물줄기들을 모조리 막아 냈지만, 찌릿찌릿한 통증과 함께 몸이 바다 쪽으로 주르륵 밀려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자 등 뒤에서 섬뜩한 기운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젠장!”

밀려나는 김에 아예 힘을 더해 회전하며, 스탬프를 있는 힘껏 휘두르자.

콰아아앙!

거대한 창처럼 변해 날아들던 커다란 물줄기가 다시금 물방울로 부서져 사방으로 비산하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죽어!”

섬뜩한 빛을 번뜩이는 쌍검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타이니의 몸에 서늘한 십자를 그었다.

‘후읍’

한순간 부풀어 오른 푸른 갑옷, 철신갑.

거기에 쌍검이 교차하는 중심부로 스탬프를 끌어온 것은 반쯤은 운에 가까웠다

콰아아아아앙!

퍼어어엉!

일순간에 튕겨 나간 타이니의 몸이 그대로 바다에 빠져 버렸고, 한발 늦게 도착한 월랑의 앞발이 후셀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뻐어어어억.

“컥! 이 개새끼가!”

족히 십여 미터는 튕겨 나간 후셀이 욕설을 뱉어 내며 몸을 바로 세우는 순간, 그대로 달려들려던 월랑이 움찔하며 멈춰 섰다.

그리고 그 순간.

파아아앙!

바닷속에서 흠뻑 젖은 모습으로 솟구친 타이니가 그대로 월랑의 등 위로 착지했다.

철컥.

캬악, 퉤.

“2차전이다, 정신 나간 수인족 놈아!”

다시금 2m 길이로 늘어난 스탬프가 푸르스름한 빛을 내자, 일순간 월랑의 몸이 반쯤 흐려졌다.

- 크륵?

- 마나가 부족해. 미안, 이동에만 신경 써 줘.

바닥까지 떨어진 마나를 회복하기 위해, 월랑을 실체화시킨 힘을 대부분 회수한 것이었다.

그러나 본래대로라면 바로 영체화되거나 역소환되었어야 할 월랑은, 놀랍게도 흐릿하게나마 형체를 유지하며 타이니를 굳건히 받치고 있었다.

네 발과 척추처럼 기동에 필수적인 부분은 실체로 남아 있고, 나머지 부분은 영체화된 상태.

타이니의 폭언에 살기를 내뿜던 후셀조차 일순간 멈칫하게 되는 요상한 모습이었다.

“……정령이 그런 것도 가능하던가.”

“당연한 소릴!”

당연한…… 헛소리였다.

정령의 일부만 실체화하는 것이 아무나 가능하다면, 정령이 역소환될 정도의 타격을 받아 내상을 입는 술사들은 죄다 바보라는 뜻이었으니까.

당연히 경지로서는 그보다 몇 수 위인 후셀이 그것을 몰라볼 리 없었다.

“……터무니없는 녀석이로구나. 반드시 죽여야겠어. 뭐 하고 있나, 이 쓸모없는 것들! 어서 움직여!”

그의 서늘한 눈빛은 타이니가 아닌, 멍하게 대결을 지켜보던 부하들에게 향해 있었다.

“우, 우리가?”

“젠장…….”

“가, 가자.”

놈의 부하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무기를 든 채 타이니의 뒤쪽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타이니가 코웃음을 쳤다.

“왜? 혼자는 자신이 없으시고?”

후셀이 충격을 추스르고 회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타이니는 도발밖에 할 수 없었다. 사실 상태는 그가 더 심각했으니까.

우우웅.

‘빨리, 좀 더 빨리…….’

개량된 염체의 비전이 주변의 마나를 급박하게 흡수하며 내상을 치료하고 있었지만, 그런 만큼 정작 전투에 써야 할 마나는 여전히 부족하기만 했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해 본 건데.’

타이니의 시선이 슬쩍 아래의 월랑에게 향했다.

- 크릉.

월랑 역시 자신의 반실체화 상태가 신기한 듯, 후셀을 주시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사실 타이니 역시 급박한 마음에 처음으로 시도해 본 것이라, 자신의 경이적인 마나 감응력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음을 직감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이렇게 월랑과 몸을 대고 있는 상태에서만 가능한 수법.

‘좀 더 연구해 보면 무언가 쓸 만해질 것 같기도 한데.’

현재로서는 지금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쓸 이유도, 쓸 필요도 없는 재주라고 봐야 했다.

게다가 당장은 상념을 이어 가기 어려운 상황이니, 연구는 미뤄 둘 수밖에 없었다.

“어린놈이 입만 살았구나.”

“늙은 놈은 겁만 많고 말이야.”

그 말에 후셀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지만, 그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알 것 같았다. 적과의 경지 차이가 확연한 데다가…….

‘바다가 옆에 있으니, 자기가 더 빨리 회복할 거라 확신하는 거지.’

상대가 타격을 회복하고 있음을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지만, 각자 자신의 회복 속도가 더 빠를 거라 믿기에 벌어진 대치 상태.

그 상태를 깨트린 것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느리게 다가오던 후셀의 부하들이었다.

“주, 죽어!”

“뒈져라!”

“으아압!”

악에 받친 기합과 함께 공격을 감행하면서도, 죽음을 직감한 듯 어설프게 검은 기운을 두른 무기들이 타이니의 뒤를 노렸다.

쓰레기들이 왜 이렇게까지 목숨을 걸고 명령을 따르는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봐줄 이유는 없었다.

“꺼져라!”

꽈아아앙.

타이니의 의지가 움직이는 순간 월랑이 그대로 돌아서고, 그와 동시에 길게 휘둘러진 스탬프가 뒤로 접근하던 놈들을 그대로 으깨어 버렸다.

그리고 그 순간, 돌아선 타이니의 뒤쪽으로 또다시 십자의 푸른 물줄기가 덮쳐들었다.

하지만 그를 태운 월랑은 반격하거나 대응하는 대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앞으로 질주했고.

“흐아압!”

콰아아앙!

다시 한번 휘둘러진 타이니의 스탬프는 쏟아져 들어오는 푸른빛의 소울웨폰보다 한발 빨리 놈의 부하들을 으깨어 버렸다.

정령과 일체화된 기수, 타이니를 태운 월랑은 홀로 달릴 때보다 오히려 빠른 속도를 보여 주며 단숨에 후셀의 공격 범위를 벗어났다.

그리고.

“아아아악!”

“사, 살려.”

자신의 공격에 박살이 났지만 당장은 숨이 끊어지지 않은 쓰레기들의 비명을 뒤로하고 몸을 돌린 타이니는, 서늘한 미소와 함께 스탬프의 망치 머리에 푸른 마나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에 이를 갈며 달려들던 후셀이 순간 멈칫했다.

물 속성을 가진 슈페리어급의 기사인 자신이 바다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간신히 타격을 추스른 데 반해, 놈은 벌써 마나까지 전부 회복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저게 말이…… 돼?!’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애초에 시간을 끈 것 자체가 놈을 확실하게 끝장내기 위함이었지, 자신이 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으니까.

그만큼 몸으로 부딪치며 체감한 경지의 차이는 확실했다.

저 꼬마 녀석이 아무리 경지를 뛰어넘은 괴물이라 해도.

‘마나블레이드도 쓰지 못하는 놈!’

그것이 놈의 한계였다.

“뒈져라!”

콰콰콰콰콰.

남은 마나를 쏟아부어 휘두른 쌍검.

그의 비기, 그랜드크로스의 흐름을 따라 십자로 쏘아진 푸르른 소울웨폰이 놈의 전면을 뒤덮고, 동시에 바다에서 솟구친 물줄기가 놈이 피할 수 있는 모든 방위를 차단하며 급소를 노렸다.

‘끝이다.’

후셀은 그렇게 확신하며 미소를 지었다.

죽음을 앞에 둔 상황에서 미친놈처럼 이를 드러내고 웃는 꼬마가 자신을 향해 온몸을 내던지듯이 돌진해 오기 전까지는.

놀란 후셀의 눈이 커지던 그때.

“너나 뒈져라!”

늑대와 함께 몸을 던진 꼬마가 휘두른 거대한 워해머의 끝에서 이글거리는 푸른 불꽃이, 상상 이상의 힘을 담고 그를 덮쳤다.

꽈아아아아아앙!

‘꺽……!’

본능적으로 들어 올린 쌍검이 그대로 깨어져 나감과 동시에 후셀의 양팔이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일순간에 정신이 아득해지는 충격이 그의 전신을 엄습하는데.

‘아직, 아직이다! 이대로는……!’

까드득.

‘죽을 수 없다!!’

자신을 버린 종족에 대한 원망, 부모에 대한 원망, 이 세상에 대한 원망을 반의반도 풀어내지 못했다.

가슴속에 절절히 맺힌 그 한이, 그대로 스러지려던 그의 영혼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내.

퍼어어어어엉!

한순간 멀찍이 튀어 나간 그의 몸이 그대로 바다에 잠겨 버리는가 싶더니.

“끼이이이.”

간신히 이성을 유지해 바닷속에서 본신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크르르르.”

운 좋게도 만월이 뜬 날인지라, 으스러졌던 양쪽 ‘지느러미’는 본모습을 찾은 즉시 즉각적으로 치유되고 있었다.

물론 그 지독한 통증은 다시금 원한을 상기시켰지만, 당장은 그 원한을 해소할 수 없었다.

마나로 느껴지는 수면 너머 부두의 광경.

꼬마 녀석은 아쉬운 눈으로 바다를 바라볼 뿐 뛰어들 생각은 없는 듯했으니까.

‘들어오지는 않겠지.’

인간의 몸을 한, 육지에서의 패배일 뿐이다.

후셀, 범고래과의 수인족은 바다 안에서 그렇게 억지로 원한을 삭였다.

‘작업이 모두 끝난 후에 다시 보자, 꼬마. 그때는…….’

달빛 아래 반짝이는 바닷물에 미련을 흘려 보낸 그가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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