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실종?
“실종이라니?”
그 말을 들은 타이니로선 황당할 따름이었다.
‘마도사’는 7서클의 마법사에게만 붙는 호칭이었다. 위계상 마나유저 7단계의 오러유저와 동급으로 인정 받는 초인인 것이다.
고위 마족과의 일대일 싸움에서 기를 못 쓰고 무너져서 그렇지, 일반적인 상황에선 다수의 적을 상대로 오러유저 이상의 강력한 파괴력을 보여 줄 수 있는 이들이었다.
훗날 마왕군과 싸울 것을 생각한다면, 오러유저 다음 순위로 보존해야 할 인류의 보배들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대체 어쩌다가?”
“카룬 왕실의 부탁으로 새 항로 탐색을 나갔는데, 귀환 예정 시기에서 2주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답니다.”
“그 정도는 늦어질 수도 있잖아?”
원래 뱃길이야 바람을 잘못 만나면 몇 달씩 늦어지기도 한다. 그건 타이니도 알고 있는 상식이었다.
“원체 시간을 칼같이 지켜서, 예상보다 한 시간만 늦어져도 통신으로 보고를 하는 양반이었답니다. 비싼 마법 통신 낭비하는 놈이라고 재무 대신이 투덜거렸다는 이야기가 유명할 정도로요.”
“음? 그럼, 역으로 통신해서 확인했는데도 받지 않았다는 건가?”
“……애초에 좌표가 고정되어 있지 않은 이동식 마법 통신구는 단방향 통신밖에 못 하는 데다가, 단어와 횟수 제한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 비싸지요.”
펍 마스터가 그것도 모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차분히 설명해 주자, 타이니는 머쓱하게 웃었다.
‘미래의 통신구는 그 정도는 기본이었다고.’
하지만 그 변명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으니, 타이니는 그저 혼잣말처럼 투덜거릴 뿐이었다.
“……해일의 마도사가 바다에서 실종이라니, 이건 뭐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졌다는 말에도 비할 바가 못 된다.
이명에 속성이나 자연 현상이 붙는다는 건 곧 그 속성을 다루는 데에는 달인이나 마찬가지라는 뜻. 해일의 마도사라고 불릴 정도라면, 망망대해에서도 단신으로 몇 날 며칠이고 버틸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바다에서 실종되었다니?’
순간 게일 엔더슨이라는 이름이나 해일의 마도사라는 이명을 전생에선 들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새삼 신경 쓰였다.
단순히 수도 오르투스가 크라켄에 의해 박살 날 때 죽은 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때였나……?’
그렇다면 검제와 이야기했던 최악의 가정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놈들이 벌써 손을 쓴 건가.”
절로 인상이 찡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한 나라를 멸망으로 몰고 간 재앙을 만만하게 생각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이렇게 꼬일 줄은 몰랐는데…….’
타이니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만약 악마추종자들이 초인을 상대할 수 있는 전력까지 동원한 거라면, 타이니 님 홀로 가시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계획의 재고가 필요할 듯합니다.”
펍 마스터가 뜻밖의 말을 꺼내 들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자신의 이름. 그리고 이 일의 전말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언급하는 악마추종자라는 단어까지.
타이니는 그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블랙윙의 수장이었나?”
그 질문에 펍 마스터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제가 어찌 감히……. 블랙윙의 수장은 공작 각하이십니다. 그리고 지금은 타이니 님이 대행 중이시고요.”
“즉, 실질적인 수장은 당신이라는 말이군.”
“……현장 지휘관이라 생각해 주십시오.”
“허……?”
자신의 말을 부인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처음 봤을 때부터 기세가 읽히지 않길래 일반인인가 싶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블레이더급 이상이었어?”
일반적으로 고수가 작정하고 기세를 숨기면 하수가 알아채지 못하는 게 당연하지만, 타이니의 초월적인 마나 감응력을 생각하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바로 상대가 타이니조차 알아채지 못할 특수한 수법으로 능력을 은폐하고 있다는 뜻.
이 정도 은밀함이라면, 최근에 알게 된 악마추종자들의 수법 못지않다고 느껴질 지경이었다.
‘기세를 이렇게까지 숨길 수 있다면, 역으로 상대가 숨기고 있는 걸 알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펍 마스터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 그건 착각이십니다. 저는 마나 각성자가 아닙니다.”
“……아니라고?”
그 말이 더 놀라웠다.
“마나를 감추는 수법이나 그럴 만한 마법을 쓰는 것이 오히려 잠입이나 변장을 어렵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대륙의 요처에는 어느 곳이나 마나나 마법을 적발하기 위한 장치, 혹은 사람이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본인의 무력이 전무한 상태로 이런 일을 한다면…….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그만큼 짜릿하기도 하지요.”
펍 마스터는 그리 말하며 씩 웃었다.
진심이 느껴지는 그 미소에 타이니는 또다시 헛웃음을 지었다.
“……취향 한번 독특하군.”
“하하, 그런 말 많이 들었습니다. 다만, 지금은 제 취향에 관해 얘기할 때가 아니라 작전을 다시 세워 봐야 할 때인 것 같군요.”
“……그렇지. 아, 혹시 생각해 놓은 것이 있나? 추천장이 없어도 왕실에 들어갈 방법 말이야.”
“……잠입 계획이라면 플랜 B로 이미 염두에 둔 것이 있습니다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한 건 타이니 님 혼자 잠입하시는 작전 자체가 너무 위험하다는 거였습니다.”
펍 마스터의 안색이 어두워졌지만, 타이니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건 상관없어. 일단 그 플랜 B를 들어 보지.”
“하지만 만약 놈들이 정말로 해일의 마도사를 죽인 것이라면……!”
“아니,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야.”
타이니는 단호한 태도로 펍 마스터의 우려를 일축했다.
“아무리 악마추종자들이라도 일국의 왕궁에서 초인을 상대할 만한 전력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해. 그리고 그 정도만 아니라면, 상대할 방법은 있어.”
안 되더라도 해낸다.
실패는 없다. 어떻게든 성공한다.
그 각오와 자신감이 말에도 묻어난 것인지, 순간 멍한 표정을 짓던 펍 마스터는 이내 고개를 저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각하께서 그리 칭찬하신 분답군요.”
음? 방금 뭐라고……?
얼핏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말이 들린 것 같았지만, 펍 마스터는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화제를 바꾸었다.
“그렇다면 타이니 님을 믿고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제가 좀 바쁜 몸이니까요.”
블랙윙의 실질적 수장이라면 바쁠 만도 했다. 제국 최고 귀족 가문 산하에서 음지의 정보를 다루는 비밀 조직이었으니까.
“그래, 그럼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일단, 다른 신분을 준비했습니다. 아, 기존의 신분에 부가적인 게 더해진 것뿐이니 헷갈리진 않으실 겁니다. 플랜 B는…….”
길게 이어진 펍 마스터의 설명을 타이니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했다.
그리고 그 모든 설명과 질의응답이 끝났을 때, 타이니는 복잡한 눈빛으로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두 사람이 있는 공간에 침묵이 내려앉았는데.
탕. 타당. 탕. 탕.
갑자기 들려온, 특이한 박자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그 정적을 깼다.
“……들어와.”
펍 마스터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끼이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다급한 표정의 청년이 뛰어 들어왔다.
“마스터, 빨리 와 보셔야겠습니다! 지금…….”
청년은 타이니의 눈치를 보더니, 뒷말은 펍 마스터에게만 들리는 귓속말로 이어 갔다.
- 그, 그들이 왔습니다.
물론 그 목소리가 타이니에게 안 들릴 리 없었다.
‘그들이라니?’
의아해하면서 펍 마스터를 쳐다보니, 그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져 있었다.
“……무슨 일이지?”
결국 타이니가 직접적으로 물었지만, 펍 마스터는 고개를 돌려 시선을 회피할 뿐이었다.
“제가 바쁜 일이 생겨서 먼저 가 봐야겠군요. 배 시간은 이틀 뒤입니다. 숙소는 근방에 마련해 두었으니,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이 아이에게 물어보십시오. 어려 보이지만, 이 아이 역시 우리 요원입니다. 그럼 이만…….”
다급하게 사라지는 펍 마스터의 뒷모습에 타이니의 얼굴도 굳어지는데, 귓속말을 했던 청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땀을 닦아 냈다.
“하아, 다행이다.”
“무슨 일인 거지?”
“아, 그…… 귀하신 분께서 굳이 아실 만한 일은 아닙니다.”
어색하게 손을 젓는 청년의 모습이 타이니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알아야 할 일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한다. 작전에 지장이 생길 만한 일이라면 곤란하니 당장 말해!”
슬며시 기세까지 실어 외치자, 안색이 창백해진 청년이 바로 눈을 내리깔았다.
“그, 그게…… 단체 손님이요.”
“……뭐?”
“아까 보셨잖아요.”
“……?”
“위장용 펍이 너무 잘되는 바람에 바빠 죽겠단 말입니다. 이게 다 마스터 때문에…….”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듯한 청년의 목소리에 타이니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 * *
필요한 것은 신원의 증명.
아무리 정령술사라고는 해도, 어중이떠중이가 왕궁에 발을 들이는 것을 용납할 왕족이나 귀족들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기에 추천장이 필요했던 것인데, 지금 해일의 마도사 게일 엔더슨을 수신인으로 하는 추천장을 들이밀었다가는 의심만 받을 판이었다.
그래서 펍 마스터가 마련한 플랜 B는 ‘귀족들이 믿을 만한’ 신분을 만들어 내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 결과…….
“어이쿠, 귀여운 꼬마 손님이시네. 승선권 확인했습니다. 신분패를 보여 주시면…….”
거대한 함선 위로 이어지는 가교 앞, 친절한 미소를 머금은 선원의 요구에 타이니는 한숨을 쉬며 은빛 신분패를 내밀었다.
그러자 패에 새겨진 작은 단검 문양에서 푸른빛이 새어 나오더니, 이내 투명한 단검의 형상이 허공에 떠올랐다.
피 혹은 마나에 반응하여 옅은 빛을 발하는 문양이 새겨진 신분패는 결코 흔하지 않았고,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헙! 귀족!? 이, 이거 실례했습니다.”
당황한 듯 표정이 일그러진 선원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타이니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다, 지금은 몰락한 귀족일 뿐이니.”
그 씁쓸한 한마디에는, 귀족 꼬마가 왜 호위도 안 데리고 다니냐며 속으로 욕하던 선원도 잠시 숙연한 표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몰락 귀족, 더구나 이런 곳까지 혼자 다니는 꼬마의 사정이 얼마나 처절할지는 대략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무례를 용서해 준 꼬마 귀족을 향해 진심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손님.”
그에 처연한 미소로 답한 꼬마, 타이니가 쓸쓸히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돌아서자마자 슬쩍 일그러진 표정으로 손안의 신분패를 내려다보았다.
- ‘모르스(Mors)’라는 귀족 가문이 있습니다. 이미 40년 전에 사라진 가문이지요.
- 정적에 의해 악마추종자라는 누명을 쓰고 몰락했는데, 후일 모든 게 누명이었다는 것이 밝혀졌으나 후손이 남아 있지 않아 복권 절차도 밟지 않았다고 합니다.
- 검은 머리에 검은 눈, 그리고 투명한 피부가 그 가문 직계 혈통들이 가졌던 외형적 특징이지요. 그래서 마족으로 몰린 것이기도 합니다만…… 타이니 님과 딱 맞지 않습니까? 아마 외모만 봐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을 할 겁니다.
- 동대륙과의 혼혈도 제법 있는 카룬에서는 별다른 거부감도 없을 겁니다.
- 몰락한 가문의 후예, 제국에 원한이 있는 정령술사가 고향을 떠나 카룬에 간다……. 시나리오 역시 완벽하죠!
- 이제부터 타이니 님은, 가까스로 살아남아 도망친 모르스 가문의 후손이 대륙을 떠돌던 수행자 엘프와 혼인하여 낳은 자식이 되는 겁니다. 정령은 물려받은 거로 하면 되겠군요. 히야! 제가 짰지만, 정말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모르스 가문이라…….’
처음 펍 마스터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머리 한구석에서 간질간질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분명히 들어 본 것 같은 이름인데 말이지.’
그런데 이미 멸문했다니…….
혹시나 유명했던 가문일까 싶어서 물어봤지만.
- 자료가 많이 유실된 탓에 지금 남아 있는 정보는 그들 직계의 외형적 특성뿐입니다. 죄송하지만, 다른 건 저도 잘 모르겠군요. 원래 그리 유명한 가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만족할 만한 답은 얻을 수 없었다.
‘그럼 난 어디서 그 가문에 대해 들어 본 거지?’
기억의 끝자락까지 모조리 더듬어 봤지만,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간신히 하나 떠올린 것이라고는 최근의 기억 하나.
- ……그분도 어제 자네에 대한 연락을 받으시고는 크게 기뻐하셨단 말이지.
- ……자네가 큰일을 하나 망치기는 했지만, 자네의 재능과 추정되는 신분의 가치가 그것을 덮고도 남을 정도라고 하시니까.
필레스의 영주가 죽기 전 남겼던 말뿐이었다.
‘검은 머리 검은 눈의 귀족이 흔할 리 없으니, 놈이 말한 가문이 바로 모르스겠지.’
하지만 분명히…….
‘그 전에, 전생에도 분명 들어 봤어. 어디서, 누구한테였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갑갑함은 가시지 않았다. 심지어 그게 꽤 중요한 일이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냥 무시해 버릴 수도 없었다.
“끄응.”
그렇게 자기도 모르게 앓는 소리까지 낼 정도로 생각에 몰두하고 있는데.
‘음?’
일순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기운이 그의 감각에 걸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