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조직
우지끈.
콰아아아앙!
“음?!”
타이니가 괴성에 담긴 살기와 피부가 저릿저릿해지는 마기를 느끼고 인상을 쓰는 순간.
쩌저적.
불쾌한 파열음과 함께 거대한 나무가 그가 있는 곳으로 쓰러졌다.
그것을 슬쩍 피해 내자.
“캬오오오!”
그 앞에서 3m는 훌쩍 넘을 듯한 거대한 괴물이 붉은 눈을 빛내며 튀어나왔다.
인간을 닮은 듯하지만 얼룩으로 가득한 녹색 피부가 흉측하기 그지없는 이족 보행 괴물.
심지어 머리도 두 개나 달린 그 괴물이 척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캬오오오!”
“흡!?”
꽈아아아아앙.
우르르르릉.
타이니가 황급히 몸을 날려 도끼를 피하자, 그가 있던 자리의 지면이 십여 미터가량 쩍 갈라졌다.
“크르르르.”
자신의 공격을 피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소름 끼치는 붉은 눈으로 타이니를 내려다보는 괴물.
‘트윈 헤드 트롤…….’
타이니의 시선은 놈이 아니라 자신을 노리던 거대한 도끼에 꽂혀 있었다.
지나치게 잘 정련된 것으로 보아, 괴수가 휘두르기 적당하게 일부러 제작한 듯한 물건.
‘……분명 주인이 있는 놈이로군.’
마수, 몬스터가 인간의 무기를 들고 있다. 그것도 몬스터 등급 4단계는 가뿐히 넘을 듯한 괴물이 말이다.
몬스터 등급 4단계라 함은 동급의 마나유저나 마법사가 여럿 모여야 피해 없이 잡을 수 있는 수준을 뜻하는 것.
거기다 머리 둘인 변종에 전용 무기까지 가지고 있으니, 사실상 5단계에 준하는 괴물로 봐도 무방할 듯했다.
그뿐만 아니라.
- 무조건 죽여!
멀리서 들려오는 기분 나쁘게 울리는 목소리까지.
그 정체는 아마 마수를 조종하는 놈일 게 분명했다.
이런 마수에게 힘을 더해 줄 흑마법사까지 붙어 있다면…….
‘……더 곤란하지. 월랑, 저놈 잡아!’
의지가 일어나는 순간 그의 발밑에서 사라진 월랑이 바람처럼 괴물을 스쳐 지나갔다.
“캬르륵.”
어리둥절한 괴물은 이내 사라진 월랑 대신 눈앞에 보이는 목표를 향해 다시금 도끼를 휘둘렀다.
파아아아앙!
쾅.
쩌어어어억.
이번에도 비스듬히 떨어져 내린 도끼가 대지를 양단했다.
놀랍게도, 도끼에 실린 힘이 타이니의 예상을 한참 웃도는 수준이었다.
‘그래 봤자 안 맞으면 그만이야!’
괴물의 큰 몸동작을 보고 공격을 가볍게 피해 낸 타이니는 스탬프를 휘둘러 놈의 왼쪽 무릎을 호쾌하게 내리찍었다.
꽝.
우드드드득.
“캬아아악!”
쿵.
처절한 비명과 함께 무릎을 꿇는 괴물.
“뒈져라!”
그 틈을 노려 크게 회전한 워해머가 위로 솟구치며 놈의 왼쪽 머리를 노렸다.
하지만 뜻밖에도.
“크아아아아아!”
괴성을 지르며 눈을 붉게 빛낸 괴물이 어느새 도끼를 스탬프의 궤적으로 끌어당겨 그 일격을 막아 냈다.
꽈아아아아앙!
“키에에에에!”
“……쳇.”
스탬프와 도끼가 맞부딪치는 굉음과 함께 주르륵 밀려난 타이니가 혀를 찼다.
‘한 방에 끝내기는 글렀군.’
장기전을 각오한 그가 스탬프의 자루를 분리했다.
“캬아악!”
그 순간 갑자기 트롤의 피부 위로 붉은 기운이 넘실거리더니, 놈이 지금까지보다 훨씬 빠른 움직임으로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왔다.
좀 전에 박살 낸 놈의 왼쪽 무릎이 거짓말처럼 아물어 있는 것도 똑똑히 보였다.
“쯧!”
쾅. 쾅. 쾅.
쩌저저저적.
우르르르릉.
눈이 휙휙 돌아갈 만큼 빠른 속도로 연달아 내려찍는 도끼는 이전보다 훨씬 강한 힘으로 주변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틈을 노리던 타이니가 회피에만 급급해져 공격은 시도조차 하지 못할 정도였다.
‘젠장, 짐작보다 더 빨라.’
재생력이 높고 힘이 세긴 하지만 움직임도 둔하고 특별한 기술조차 없는 트롤이 4단계의 몬스터로 분류되는 이유가 바로 저것 때문이었다.
광폭화.
위기를 느끼는 순간 재생력을 포함한 모든 신체 능력을 단숨에 몇 배로 끌어 올리며 폭주하는 특성 때문에, 트롤을 사냥할 땐 강력한 화력으로 일격에 끝내거나 기습으로 처리하는 게 보통이었다.
‘그건 이미 글렀고…….’
머리가 두 개인 걸 봤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이놈은 그 광폭화의 수준도 남다른 것 같았다.
‘……그렇다고 못 잡을 건 없지만.’
위험을 감수하자면, 철신갑의 방어력을 믿고 놈의 공격을 비스듬히 흘린 뒤 곧바로 머리를 깨 버릴 수도 있었다.
그건 타이니가 전생에서 강적을 상대로 사용했던 전술이기도 하고, 실제로 효과도 많이 봤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법도 있었다.
‘광폭화가 끝날 때까지 기다린다……!’
놈은 어마어마한 덩치만큼 동작도 커서 공격 경로가 빤히 읽히기에 가능한 수법이었다.
쾅!
우르르르릉.
스치기만 해도 목숨이 위험할 것 같은 그 살벌한 기세는, 아무리 속도에 자신이 있는 자라고 해도 몸이 움츠러들기에 충분했지만.
‘……내가 그런 애송이도 아니고.’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타이니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이야기였다.
신경을 바짝 곤두세운 그가 붉고 커다란 벼락이 연달아 내리치는 듯한 살벌한 공세를 모조리 피해 냈다.
한데 그것이 놈을 지나치게 자극했을까.
“캬아아악!”
열이 단단히 받은 듯한 놈의 두 입에서 갑자기 샛노란 연기가 뿜어져 나오며 근방을 자욱하게 물들였다.
“윽!?”
저도 모르게 살짝 들이마신 순간 머리가 핑 도는 느낌.
반사적으로 염체가 신체 해독 능력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몸 안에 들어온 연기를 분해했지만, 잠시간 비틀거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이건 뭐……?“
그리고 그 순간, 붉은 기운이 덧씌워진 무시무시한 도끼날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피하기엔 이미 늦었음을 직감한 타이니가 이를 악물었다.
“합!”
쿵.
순간적으로 한껏 무게를 늘린 타이니의 몸이 지면을 뒤흔들고, 체중을 실어 힘껏 휘두른 스탬프가 도끼의 옆면을 강타했다.
꽈아아아앙!
“키륵!?”
도끼와 함께 옆으로 주르륵 밀려나는 괴물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리는 것이 보였다.
순간적인 임기응변이었지만 무게 증폭과 충격 증폭 마법이 걸린 아티팩트의 능력에 속성의 힘이 더해져, 타이니 스스로도 놀랄 만한 파괴력이 나온 것이다.
‘스탬프 최고! 중력 속성 최고!’
속으로 쾌재를 부른 타이니가 다시 무게를 가볍게 하며 적을 향해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콰아앙.
우드득.
그의 일격에 괴물의 왼쪽 무릎은 다시 한번 박살이 났고, 이번에는 뼈까지 확실하게 으스러지는 것이 보였다.
“키에에에에!”
그러나 어느새 피부가 더욱 붉어진 변종 트롤은 순식간에 뼈와 피부를 재생하더니, 이내 멀쩡하게 도끼를 휘둘렀다.
‘젠장, 어떻게……!’
아무리 트윈 헤드 트롤이라 해도 이건 말도 안 된다.
‘아무래도…… 뭔가 마법적 조치가 되어 있나 보군.’
타이니가 불길한 예감을 뒤늦게 확신했을 때, 놈의 공격은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쾅. 쾅. 콰아앙!
우르르르릉.
“캬아아아악!”
그러나 도끼를 휘두르는 족족 잽싸게 피해 버리니, 놈은 발작하듯 괴성을 내질렀다.
도무지 공격이 먹혀들지 않는 타이니의 모습에 바짝 약이 올랐는지, 트롤의 눈은 이제 거의 타는 듯한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다.
놈이 점점 더 흉포한 기세로 날뛰는 통에 숲이 초토화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타이니가 등허리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며 간신히 공격을 피해 내는데, 창백하던 그의 얼굴에 어느 순간 사나운 미소가 걸렸다.
광폭화가 격해진 만큼 놈의 에너지가 거의 바닥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기름기로 번들거리던 놈의 피부가 점점 푸석해지는 것이 그 증거였다.
거기다 때마침 월랑이 사냥에 성공했다는 신호가 타이니의 영혼으로 전달되었다. 질기게도 도망 다니던 마수조련사를 드디어 제압한 것이다.
‘잘했어, 월랑!’
“크에에에!?”
조련사와 트롤의 연결이 끊어지는 순간, 광폭화한 채 날뛰던 놈의 움직임이 급속도로 느려지기 시작했다.
에너지를 극심하게 소모한 상태에서 조련사의 마기조차 끊어지니, 삽시간에 숲을 폐허로 만들던 도끼질도 더 이상 제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러자 내내 기회를 노리던 타이니가 눈을 빛내며 지면을 박찼다.
“이제 끝이다!”
쿵.
“켁!?”
엉망으로 뒤집힌 흙바닥을 단 한 번의 발 구름으로 단단히 다져 버리는 엄청난 무게.
그 반동을 고스란히 싣고 가볍게 뛰어오른 타이니가 스탬프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우르르르르릉.
벼락같이 떨어진 검은 망치가 트윈 헤드 트롤의 목과 목 사이를 내려찍더니, 그대로 몸통을 뭉개고 내려와 지면에 꽂혔다.
타이니가 온 힘을 다해 내려친 벼락 떨구기가, 발렌티아를 떠나기 전에 시험해 보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으로 격상의 괴물을 한순간에 으깨 버린 것이다.
털썩.
“키르르…….”
몸통이 완전히 박살 나 흩어진 채 두 머리와 사지만 남은 트롤의 단말마는 너무도 나약했다.
그리고 한순간에 전력을 쏟아 낸 탓에 잠깐 비틀거리던 타이니는, 이내 흡 하는 소리와 함께 약한 충격파를 사방으로 뿜어냈다.
파아아앙!
온몸에 뒤집어쓴 트롤의 푸른 피를 마나를 사용해 단번에 털어 버린 것이다.
“후우…….”
홀가분한 한숨은 자연스레 짜릿한 미소로 이어졌다.
“아주 좋아!”
전력을 쏟아 낸 전투의 경험이 몸에 고스란히 새겨지는 게 느껴졌다.
강적과의 전투는 목숨을 위협하지만, 살아남는다면 사람을 성장시키기 마련이다. 더구나 염체의 비전으로 그 경험을 실시간으로 육체에 새길 수 있는 타이니로선 그 효과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익스퍼트에 오른 지금부터는, 차라리 이런 실전 한 번이 몇 달간의 수련보다 나을 테지.’
그런 확신에서 나온 웃음이었지만, 그 모습을 누가 봤다면 겁에 질려 몸서리를 칠 것 같았다.
자신이 만들어 낸 처참한 잔해가 사방에 널린 피바다 한가운데에 서서 통쾌한 듯 웃는 모습은 그야말로 섬뜩했으니까.
“가만, 에낙센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걸 한번 가져가 봐?”
그러나 사실, 정말 무서운 것은…….
“이런 마수가 갑자기 생겨났을 리는 없으니, 분명 인근 길드에서 현상금을 걸어 놨을 텐데……. 이 정도 등급이면 얼추…….”
이 와중에도 실속을 챙기는 타이니의 냉철한 이성이었다.
* * *
월랑의 발밑에 깔렸을 때만 해도 차분한 기색을 유지하던 사내였다. 오히려 큰소리를 치기도 했다.
“푸하하하! 네 주인은 이미 죽었을 거야! 알아!? 그럼 넌 이제 주먹만 한 핵만 남을 테고, 바로 조직이 와서 회수하겠지. 멍청한 놈 같으니라고! 푸하하!”
하지만 검은 머리 소년이 자기 몸통만 한 트롤의 머리 두 개를 들고 오는 것을 보는 순간.
사내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사, 살려 주세요!! 저, 저는 정말 시키는 대로 한 것뿐입니다!”
안 그래도 낯빛이 파리하던 중년의 사내는 아예 사색이 된 채로 엎드려 빌었다.
그런 그를 보며 타이니는 음흉하게 씨익 웃었다.
“그럼요! 시키는 대로 한 사람이 무슨 죄겠어요? 아저씨도 참 욕본다. 마수가 죽어 버린 마당에, 조직에 돌아가지도 못할 거 아녜요?”
“그, 그렇습니다! 제, 제발 살려만 주세요. 가진 거 다 드리겠습니다! 여, 여기요!”
주머니에 든 모든 것을 꺼내 놓고 옷까지 벗은 채 두 손을 모아 애타게 비는 사내.
그를 보며 타이니는 안타깝다는 듯이 혀를 찼다.
“쯧쯧, 왜 옷을 벗고 그래요? 보기 흉하니까 어서 입어요, 아저씨. 난 뭐, 정보만 알면 되니까.”
“저, 정말입니까?”
“그럼요! 대신 거짓은 없어야 해요, 알겠죠? 혹시나 거짓말해도…… 우리 애가 그런 냄새 하난 참 잘 맡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죠?”
“……물론, 물론입니다!”
월랑이 고개를 갸웃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사내는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기 바빴다.
“자…… 그럼 일단, 왜 나를 죽이려 한 거죠?”
묘한 웃음과 함께 시작된 질문에 사내가 바쁘게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 후.
“음, 그러니까…… 조직의 본산은 도시 연합의 무법 도시고, 거기 시장이 조직의 장이다?”
“예, 그렇습니다!”
“아저씨는 마법으로 전갈을 받아 불려 온 거고, 원래는 제국 동부에서 활동하던 마적단이었다?”
“예, 예, 그렇지요! 과연 똑똑하십니다!”
사내가 줄줄이 뱉어 내는 정보를 타이니가 하나하나 짚어 가며 되묻자, 사내가 화색이 도는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타이니의 웃는 얼굴은 자신의 말을 모두 납득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타이니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했다.
“그럼, 이건 다 거짓이겠네.”
“……예?”
“무법 도시 시장은 너네와 관련이 없을 테고, 너는 제국에서 활동한 적이 없겠지. 했더라도 동부는 아닐 테고, 마적도 아닐 거야. 그 밖에 사소한 건 더 언급할 가치도 없고……. 그렇지?”
“가, 갑자기 무슨 말씀을……?”
사내는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너네는 비밀을 누설하면 머리가 터져서 죽는다던데? 무슨 마법이라던가…….”
타이니가 히죽 웃으며 그리 말하자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오, 표정 보니까 진짜인가 보네? 난 보이는 대로 다 때려죽이는 바람에 그것도 몰랐지 뭐야.”
“……하하. 무, 무슨 오해가 있으신가 봅니다.”
사내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변명을 해 보려 했지만.
“오해는 무슨…… 뒈지고 싶지 않으면 네가 아는 모든 ‘거짓’을 말해. 그럼 남는 게 진실이겠지.”
차가운 표정의 소년은 변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카룬에서 무슨 일 벌이고 있지?”
“아닙니다! 저는……!”
“맞네.”
“…….”
“조직은 본부 위치 알아?”
“예, 알고 있습니다. 제가…….”
“모르고.”
“…….”
일방적인 문답이 이어질수록 사내의 얼굴은 점차 하얗게 질려 갔다.
하지만 타이니의 얼굴엔 점점 짜증이 어리기 시작했다.
“아저씨, 진짜 별로 아는 게 없네!?”
“예, 예…… 저, 저는 말단이라 정말 아는 게 없습니다! 사, 살려 주세요! 제발!”
사내는 아예 울상이 된 채로 엎드려 빌기 시작했다.
하지만 타이니의 검은 눈동자는 미동도 하지 않고 사내의 가슴팍을 노려보고 있었다.
‘4서클 흑마법사가 아는 게 없는 말단이라. 이거 생각보다 규모가 더 큰가 본데.’
이 정도 실력이면 변종 트롤을 조종하는 것도 일종의 편법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아저씨, 하나만 제대로 대답하면 진짜 살려 줄게. 너네 조직이 카룬에서 무슨 일 벌이고 있는지 알아, 몰라? 잘 생각해서 대답해. 마지막 기회야.”
“……모, 모릅니다.”
그 차가운 눈빛에 남자는 체념한 얼굴로 나지막하게 중얼거렸고, 그 대답에 타이니의 눈이 빛났다.
“크라켄을 끌어들이려는 거야?”
“예?”
“……이건 진짜 모르는 것 같네, 어째.”
“크라켄이라니요……? 그런 전설 속 마수는 갑자기 왜…….”
“시끄러워, 아저씨. 그럼 성물을 훔치려는 거야?”
그 말에 남자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어, 어떻게…….”
“오, 다행히 그건 아네. 그럼 이제 제대로 대답해 줘야겠어. 그 일 담당자가 누구야? 아저씨가 아는 최고 담당자 위치랑 이름 불어. 아, 이건 주관식이라 반대로 말 못 하겠네. 그러니까 똑바로 말해야 한다?”
“……사, 살려 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음……. 말만 하면 살려 줄게.”
그 여유로운 대꾸에 사내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차피 죽는다는 걸 알면서!!”
그 분노 섞인 고함에 타이니가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사내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컥, 커억. 이, 이거 좀…….”
“네 가슴 속에 있는 그 더러운 서클 4개, 그거 만들려고 몇이나 죽였지? 아니면 영혼을 팔았나? 그럼 그 후에는 또 몇이나 죽였을까?”
한순간에 지독한 살기가 사내의 심령을 장악하자, 이내 그의 눈이 뒤집히고 입가에선 거품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제야 타이니는 혀를 차며 사내의 멱살을 던지듯 놓아주었다.
“허, 허윽. 쿨럭.”
상종 못 할 쓰레기긴 하지만, 일단은 정보를 토해 내도록 잘 달래야 했다.
“자 아저씨, 잘 들어 봐. 당신들이 비밀을 말하면 머리가 터져서 죽는다는 건, 사실 나도 소문으로만 들은 거야. 아저씨도 실제로 본 적은 없지 않아?”
그 질문에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을 본 타이니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진짜 본 적 없나 보네?’
그리고 그 기쁨을 내색하지 않은 채 담담히 말을 이었다.
“생각해 봐. 아무래도 뻥일 것 같지 않아? 그게 말이나 돼? 당신네 조직 간부들이 말단들을 사사건건 감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 마법으로 저주를 걸 수 있지 않냐고? 그래, 가능은 하겠지. 하지만 누가 당신 같은 말단에게 그런 고급 저주를 걸어? 그렇지 않아?”
지독한 살기로 사내를 벼랑 끝까지 떠미는 동시에, 말만 잘하면 살 수도 있다는 희망을 슬쩍 보여 주었다.
그 화술 덕에, 평상시라면 절대로 설득되지 않았을 어처구니없는 논리가 사내에게 제법 그럴듯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딱 이름과 위치만 말해. 아니, 이름만! 당신이 아는 책임자 말이야. 그럼 살려 줄게, 위치도 필요 없어.”
그 마지막 달콤한 제안에 남자의 입이 열렸다.
“제,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잠시 후.
폐허가 된 숲의 한편에는 목 아래만 남은 남자의 시체가 덩그러니 놓여 썩어 가고 있었다.
마치 머리가 터져서 죽기라도 한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