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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해머-43화 (43/500)

43화. 결과

“뭐야, 저게!? 저 꼬마 녀석…… 대체 정체가 뭐지? 익실란, 너도 봤나?”

기사 연무장이 내려다보이는 영주 관저의 어느 방 안.

좀 전까지 분노를 터트리며 당장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듯했던 청년이 황당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정말 놀란 듯, 크게 흔들리는 황금빛 눈동자를 본 기사가 즉시 고개를 숙였다.

“……예. 제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익스퍼트급은 되어 보입니다만.”

“저 꼬마가?”

“아뇨, 기절한 기사 말입니다.”

“……익스퍼트가 꼬마한테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고? 그게 말이 되는 거야?”

“안 됩니다.”

“그럼 쟤는 뭐야?”

“전설 속에나 나올 법한 천재…… 아니, 괴물입니다.”

그 말에 백금발 청년의 눈이 좀 전보다 더욱 커졌다.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곁을 지키는 이 중년의 기사는 무려 챌린저급의 기사 사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의 강자였다.

그런 이의 입에서 나온 말이기에 더욱 충격이 컸던 것이다.

“괴물, 괴물이라. 하…… 하하하하, 발렌티아 공작이 괴물을 품고 있었구나!”

천하의 발렌티아 공작가 안에서 태연하게 공작을 하대하는 청년.

하지만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기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반문했다.

“어쩌시겠습니까? 지금이라도 내려가시겠습니까?”

“……내버려 둬. 감히 내 여자에게 손대려고 한 놈이 괘씸하기는 하지만, 저 정도 응징이면 나도 화가 풀리는군. 나머지는 발렌티아 공작가에서 처리하겠지. 나는 나중에 저 괴물 아이나 만나 봐야겠어. 몰래 말이야.”

혀를 차며 웃는 청년이 장난기 어린 눈을 빛냈지만, 기사가 슬쩍 고개를 저으며 끼어들었다.

“로히터와 발렌티아의 사이를 생각하면, 더는 책임 추궁을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현 발렌티아 공작이 오러유저가 된 지가 벌써 수년인데, 아직도 로히터가 발렌티아에 비벼 볼 정도가 되나?”

청년이 의아한 듯 되물었지만.

“……폐하께서 발렌티아의 독주를 원하지 않으시니까요.”

“……아.”

기사의 대답에 그는 그저 인상을 찡그릴 수밖에 없었다.

잊고 있었던 사실이 생각나면서 한숨이 나온 것이다.

“알론 폰 로히터 공작……. 그 늙은 뱀은 정말 나와 척을 질 생각일까?”

“그자도 전하께서 지금 발렌티아에 계실 거라고는 생각지 못할 겁니다.”

“애초에 이런 수작을 부린 것 자체가 황실을 무시한 것이지.”

“그저 황실과 발렌티아의 연이 이어지지 않길 바랐을 뿐일 겁니다.”

“그건…… 확실히 그렇겠군.”

차분히 할 말을 다 하는 기사의 말에 청년은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발렌티아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황제의 비호가 필요한 로히터라면, 그 이상을 노리는 것 자체가 자충수일 테니까.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감정에 휩쓸려 잘못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지배자로서 걸맞지 않은 처사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몰랐다면 모를까, 현장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본 이상 저 잡놈을 그냥 둘 수는 없지. 발렌티아가 로히터에게 손을 쓰지 못한다면, 내가 해야지. 뭐, 잠행을 택한 보람은 없어지겠지만.”

“굳이 전하께서 나서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음?”

“발렌티아의 삼공자들은 하나같이 막냇동생을 끔찍이 아낀다고 소문이 나 있으니까요. 마침 모두 가문에 복귀한 상태입니다. 그리고 셋 모두 호쾌한 성정으로 유명하지요.”

호쾌한 성정이라.

그 말은 나쁘게 말하면 참을성이 없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그런가.”

“감히 전하의 피앙세에게 오물을 묻히려 한 놈은, 곧 땅에 묻히게 될 겁니다.”

청년은 익실란의 대답이 오늘 처음으로 마음에 쏙 들었다.

* * *

성년식 준비로 한창 분주한 발렌티아 공작가에 작은 소란이 일었다.

성년식의 사절로 온 로히터 공작가의 삼남과 그 호위 기사가 ‘일개 평민 소년’에게 얻어맞고 기절을 한 것이다.

심지어 공작가의 자제는 턱뼈가 박살이 나서, 상급 사제의 치료를 받으면서도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왜 평민 소년이 블루윙 기사단의 연무장에 있었는지, 어떻게 클로이 공녀와 티브론의 일에 끼어들 수 있었는지.

따지고 들면 이상한 점이 많았지만, 그런 이슈들은 소년의 나이라는 더 큰 이슈에 완전히 묻혀 버렸다.

- 고작 열세 살짜리 꼬마한테 당했대!

그 현장을 직접 보지 못한, 타이니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의 생각은 결국 한가지 결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 그 티브론 공자라는 놈이랑 기사는 얼마나 등신인 거야?

그렇게 로히터 공작가를 비웃는 소리가 발렌티노 곳곳으로 퍼져 나갈 때.

막 악몽에서 깨어난 티브론은 고통을 호소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놈을 잡아 죽이라고! 끄으응, 감히 대 로히터 공작가에 시비를 건 놈이야! 끄윽.”

턱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연신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티브론의 발악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말없이 그를 치료하던 사제 역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공자, 목소리를 낮추시지요. 상처가 벌어집니다.”

“너, 넌 뭐 하는 놈이야! 내 말 안 들려!? 그리엄은 어디 갔어!?”

그 호통에 사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무리 제국의 공작가라 한들 상급 사제에게 이런 막말이라니?

그것도 공작 당사자라면 모를까, 감히 후계자도 아닌 삼남 따위가?

사제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는데, 그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쾅 소리와 함께 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덩치 큰 금발의 청년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네놈이구나.”

“뭐, 뭐야! 웬 놈이 가, 감히?”

그 사나운 기세에 티브론이 방어적으로 소리를 질렀지만, 그 고함은 다가서던 청년의 표정을 더욱 험악하게 만들 뿐이었다.

“웬 놈? 감히? 하, 이 미친 새끼가 진짜 간이 부은 게로구나! 여기가 어딘 줄 알고!”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목소리에 티브론이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드는데.

“……발렌티아 교구의 사제 룩센이 발렌티아의 후계자를 뵙습니다.”

“아, 수고 많으십니다. 이런 쓰레기를 치료하느라.”

그를 치료하고 있던 사제가 벌떡 일어나 청년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건네는 순간, 티브론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금발과 대조되는 새파란 눈. 그것이 상징하는 가문이 어디인지 그제야 떠올린 것이다.

“……바, 발렌티아?”

애처롭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어 보지만.

“발렌티아? 너 같은 잡놈이 함부로 입에 올릴 이름이 아니다!”

뻐어억.

“꺼, 꺼윽?!”

돌아온 것은 폭언과 갑작스러운 폭행이었다.

“이 쓰레기 같은 새끼가 감히 우리 클로이를 넘봐? 하, 이 새끼. 넌 오늘 내 손에 처맞다가 죽는 거다. 알겠냐, 이 잡놈아?”

멱살을 잡고 티브론을 강제로 끌어 올린 청년은 그의 면상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뻐억.

뻑.

빠아악.

“꺼, 꺼윽. 사, 살려 줘. 난 로, 로히터…….”

정신없이 두들겨 맞으며 간신히 꺼낸 말은 오히려 청년의 화를 더욱 북돋을 뿐이었다.

“로히터가 뭐!?”

뻐어억.

“감히 발렌티아의 영역에서 공녀에게 똥을 묻히려 해? 네가 로히터가 아니라 황족이라도 어림없다, 이 새끼야!”

뻐어억.

뻑. 빠악!

폭력의 강도는 점차 강해져만 갔지만 그 누구도 청년을 말리려 하지 않았다.

티브론은 아득해지는 의식 속에서 억울함을 느꼈다.

‘나,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정확히는 못 한 거였다.

계획했던 것은 있지만, 일이 어그러진 탓에 실제로 진행된 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 계획이라는 것도, 청춘 남녀가 눈이 맞으면 으레 할 수 있는 일종의 놀이 같은 것일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 거지?

압도적 폭력의 공포 속에서도 점점 형태를 갖춰 가던 억울한 감정은 결국 비명 같은 고함으로 터져 나왔다.

“내, 내가 대체 뭘 잘못했는데!!!”

그 말에 순간적으로 멈칫하던 청년이 이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르면 그냥 뒈져, 이 새끼야!”

수려한 외모와 다르게 입으로 나오는 말은 거칠기만 했다.

“그게 무슨……!”

뻐어어억.

“꺼, 끄르륵.”

남자의 급소, 그 가운데를 정통으로 맞은 티브론이 결국 눈을 까뒤집고 기절하고 마는데.

“……애런 님, 설마 진짜 죽이시려는 것은 아니실 거라 믿습니다.”

질린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룩센이 잔뜩 흥분한 청년을 조심스레 말렸다.

그에 붉게 달아오른 청년의 안색이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

“흠, 죽일지 말지는 아우들이 가져오는 정보를 보고 결정할 겁니다. 사제님은 이만 돌아가시지요.”

그러나 돌아오는 청년의 대답에는 흠칫 몸을 떨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차분한 빛을 되찾은 파란 눈이 어째 더욱 무섭게 느껴진 것이다.

그 눈빛에서는 진득한 살기가 묻어났다.

‘죽일 생각이야. 죽일 게 분명해……. 애런, 저놈이 미쳤나? 로히터와 전쟁이라도 하려고?’

결국 룩센이 굳은 얼굴로 방에서 뛰쳐나오는 찰나.

복도 끝에서 이쪽을 향해 뛰어오고 있는 또 다른 청년 둘의 모습이 보였다.

애런보다 덩치는 작지만 비슷한 느낌, 각진 인상의 얼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리는 청년들의 얼굴은 놀랍도록 닮아 보였다.

바로 발렌티아의 이공자와 삼공자, 쌍둥이 형제 트렌 폰 발렌티아와 글렌 폰 발렌티아였다.

“젠장, 비명이 벌써 끊겼어!”

“으아아! 안 되는데!? 벌써 죽여 버린 건 아니겠지!?”

“젠장, 형님……!”

그들의 다급한 대화를 듣고 나서야 룩센은 그나마 안도할 수 있었다.

‘그래, 저들이라면 말릴 수 있겠지.’

암, 공자 셋 중에 정신 나간 사람은 한 명이면 족하지. 다행히 더 이상 일이 커지지는…….

“……큰형이 죽이게 내버려 둘 순 없어!”

“당연하지! 내가 죽일 거야!”

“누구 맘대로! 나야, 인마……!”

……아니구나. 셋 다 제정신이 아니었어.

‘저, 전쟁이다……! 큰일이야.’

재앙을 예감한 룩센이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마는데, 발렌티아의 쌍둥이는 그런 그를 보지도 못한 것처럼 그 옆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 * *

“형님!!?”

“아, 아흐, 씨…… 다행이다, 아직 안 죽였네.”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애런의 고개가 자연히 돌아갔다.

“……클로이는?”

“다행히 별 탈 없습니다. 웬 강아지랑 잘 놀고 있던데요?”

“그래도 그 잡놈은 확실히 조질 생각입니다. 팰 만큼 패셨으면 이만 넘겨 주시죠, 형님.”

“강아지?”

동생들의 대답에 애런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의 어머니, 공작가의 안주인인 에이프릴 공작 부인이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어린 클로이는 그렇게나 좋아하던 작고 귀여운 동물들을 사용인들에게 전부 분양해 버리고는, 그 뒤로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았었으니까.

‘그래, 그때가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동생에게 화를 낸 날이던 것 같다. 그에겐 어머니의 유산이나 다름없는 동물들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가 어린 클로이를 추궁했을 때.

- 클로이! 대체 왜 그런 거야!? 왜!?

- 아, 아빠가…… 내가 그 애들이랑 있을 때마다, 슬퍼 보여서…… 미아내, 오빠. 흑.

- ……!!

생각지도 못한 동생의 대답에 큰 충격을 받았었다.

그만큼 어렸을 때부터 속이 깊었던 아이.

그랬던 아이가 성년을 앞둔 이제야…….

‘옛 상처를 지워 가는 건가.’

그것은 참 기쁜 일이었지만, 클로이가 무사한 것과는 별개로 이 일은 철저히 책임을 물을 생각이었다.

로히터가 대놓고 시비를 걸었다면.

‘……분명히 뒷공작을 했을 테니까.’

그것부터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가문에 민폐를 끼치지 않은 선에서 망나니 한 놈을 처벌하는 것으로 끝낼 것인지, 아니면.

‘전쟁을 시작할 것인지 정해야 하니까.’

발렌티아의 후계자가 차갑게 눈을 빛내며 동생 글렌을 바라보았다.

쌍둥이 중 조금 더 날카롭게 생긴 녀석.

다른 한 녀석, 트렌에 비해 머리를 굴릴 줄 아는 녀석은 사적으로 정보 조직까지 가지고 있었다.

“로히터 쪽 동향은 어때?”

“특별히 수작을 부린 것으로 보이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사절단의 규모도 생각보다 작고요. 거기다, 확실한지는 모르겠지만 로히터에서 놈을 파문했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파문?”

“예, 사실이라면 이놈이 멋대로 일을 벌인 걸 수도 있을 듯합니다만.”

……뭐 때문일까. 정말 망나니 한 놈의 일탈인가?

“죽여도 공식적인 후환은 없다는 건가? 뭐, 그건 좋은데…….”

“뒤로 암수를 쓸 수도 있습니다. 어쨌건 자식은 자식이니까요.”

“뭐, 언제는 없었나.”

글렌의 걱정을 코웃음으로 일축한 트렌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애런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 꼬마는 제가 만나 봤습니다. 놀랍게도, 정말로 익스퍼트급이었습니다.”

트렌의 말은 애런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뭐!?”

“게다가 아무래도 중력의 비전을 익힌 듯싶었습니다. 살짝 부딪쳐 봤는데 제가 밀렸습니다. 황당하더군요.”

“네가 밀렸다고?”

올해 나이 스물세 살, 자신보다 세 살 어린 동생 트렌은 이미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익스퍼트다.

다른 건 몰라도 녀석의 무력적 판단은 믿을 만했다.

그런데, 밀렸다고?

“나이는 정말 열세 살이고? 혹시 장생족과 혼혈인가? 드워프라든가.”

“아니라더군요. 그런 걸로 거짓말을 할 놈으로는 안 보였습니다. 아버지께서 속으실 분도 아니고요.”

“……열세 살에 익스퍼트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그게 헛소문이 아니라 진짜였다 이거지? 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애런의 입가에 이내 미소가 걸렸다.

“그 정도 재능이라면 비전을 전하는 것도 이해가 돼. 가문에 든든한 전력이 생기겠어. 어쩌면 초인이 될지도 모르고.”

그렇게 대단한 인재가 가문의 비전을 익혔다니, 발렌티아의 후계자로서는 충분히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트렌이 곧바로 달갑지 않은 얘기를 덧붙였다.

“다만, 블루윙에 입단하지 않겠다더군요. 아버지께 허락도 받았다고 하던데요?”

“……뭐?”

그 말에는 애런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가문의 비전까지 가르쳐 놓고, 열세 살에 익스퍼트가 된 인재를 묶어 놓지 않는다?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지?’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그는 가볍게 생각을 정리했다.

“현명하신 분이니 무슨 이유가 있겠지. 그럼 우리는 이놈만 신경 쓰면 되는 건가?”

애런은 다시금 기절한 얼간이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그 꼬마 덕분에 클로이에게 똥물이 튀는 것은 막았으니까.’

열세 살 꼬마한테 얻어맞고 기절한 로히터의 삼남과 그 기사.

그 소문이 아니었다면, 호사가들이 별 입방정을 다 떨어 댔을 것이다.

성년식에서 약혼자를 발표할 아이한테 추문이 따라붙었을 수도 있다.

아니, 정말 로히터에서 발렌티아에 똥을 묻히려 했다면, 어떻게든 그렇게 소문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이 모든 일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면 말이다.

‘망나니가 우리 가문에서 사고를 일으켰는데 마침 파문이라……. 웃기는군.’

만약 놈들의 뜻대로 일이 터졌으면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뗄 생각이었겠지.

하지만 정황이 정황인 만큼 누가 그런 헛소리를 믿을까.

설령 성공했더라도 두고두고 후환이 남을 무리수였다.

그렇다면…….

‘로히터는 왜 이런 무리수를 둔 걸까?’

성년식을 앞둔 클로이에게 추문이 붙는다면, 그걸 가장 먼저 문제 삼을 사람은?

‘……약혼자 가문이겠지. 로히터가 무리수를 두면서도 똥물을 뿌리려 한 게, 그 가문과 우리 발렌티아의 관계 때문이라면…… 설마?’

애런의 생각이 깊어지며 정답에 근접해 가던 그때.

똑똑.

“휴, 다행히 안 늦었군요. 애런 님.”

박살 난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은빛 머리에 단정한 제복.

“제나스 경?”

자신보다 고작 여섯 살 위인데, 무려 챌린저급의 기사이자 블루윙의 기사단장이 된 실력자.

그가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각하의 명이 있으셨습니다. 공자님들이 사고 치기 전에 불러오라는.”

“……사고는 이미 쳤습니다만.”

애런과 쌍둥이가 발밑의 티브론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말하는데, 제나스는 그것을 보면서도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뭐, 죽이진 않으셨잖습니까. 이 정도야 예상 범위 안입니다.”

“이 정도로 끝낼 생각은 없습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제나스 경이 말리신대도…….”

“……우리 클로이한테 똥물을 뿌리려고 한 놈을 살려 둘 생각은 없습니다.”

쌍둥이가 애런의 말에 맞장구를 쳐 주었다.

평소 트렌의 고삐를 잡아당기는 기수 역할이던 글렌마저도 클로이와 관련된 일에서는 오히려 채찍질을 해 버렸으니, 세 형제가 뿜어내는 분위기는 그야말로 살벌하기만 했다.

그러나 제나스의 미소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쯤 해 두시지요, 공자님들. 각하께서 이놈을 더 ‘좋게’ 써먹을 방법이 있다고 하셨으니까요.”

이어진 그의 말에는 발렌티아 삼 형제도 흥미를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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