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수련?
타이니는 진짜 열세 살 아이가 된 것처럼 들뜰 수밖에 없었다.
‘무거울수록 강해진다니!’
그것은 마치 지금의 자신을 위해 맞춤으로 준비된 듯한 속성이 아닌가.
게다가 단순히 무게만큼 힘을 더하는 수준도 아닌 듯했다.
“마나의 경지가 오르면 오를수록 그에 비례해서 더욱 강해지고 더욱 빨라지니, 단순히 속성을 더해 변수를 창출하는 일반적인 익스퍼트와는 견줄 수도 없지. 그렇기에 우리 가문의 최고 보물 중에 하나인 것이고.”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 중력이란 놈이 마음에 들었다.
다만, 문제가 조금 있었다.
바로…….
공작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는 것.
“……뭐라고요?”
“그러니까 물체와 물체 사이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데, 이것이 질량…… 그러니까 무게가 클수록…….”
“그게 무슨 헛소리에요?”
“끄으응, 일단 들어! 그래서 거대한 대륙은 물체를 끌어당기는 힘이 크다고 할 수 있는데…….”
“땅이 물건을 왜 끌어당겨요? 비싼 밥 먹고 이상한 소리를 하시네. 그러면 사람들이 죄다 땅에 바싹 엎드려 있게요?”
“허…… 허허…….”
“하, 예리했죠? 네? 반박 못 하시겠죠?”
“으으으으! 이 무식한 자식을 그냥…….”
타당한 반론을 제기했는데 무식하다는 욕이 돌아온다.
“그럼 높은 곳에 있는 물건이 왜 떨어지는데?”
“……그거야 원래 그런 거죠.”
“그러니까!! 왜 그런 거냐고!!”
“원래 그런 거라니까, 뭘 그렇게 따져요? 이상한 분이시네. 그렇게 안 봤는데…….”
“으으으, 이 빡대가리 새끼가…….!”
“으아악! 폭력 반대!!”
이상한 걸 이상하다고 했을 뿐인데 주먹이 날아온다.
“네놈은 뭔가 이해가 안 되면 이해해 보려는 노력도 안 하냐!?”
“뭘 그리 복잡하게 사세요?”
“……뭐?”
“이해가 안 되면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면 되지, 왜 굳이…….”
“으으으, 이 덜떨어진 새끼가 이상한 신념까지 가지고 있어! 환장하겠네, 이 고집불통 새끼! 으아아악!”
“……거 말씀이 좀 심하시네.”
처음에는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설명을 이어 가려던 공작도, 결국 3일 만에 이론적인 부분은 포기해 버렸다.
그리고 스트레스로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채 타이니의 멱살을 잡았다.
“너 이 새끼, 이리 와!”
“우왁! 컥! 왜, 왜……!”
공작은 타이니의 말을 무시하고 단숨에 창문을 박차고 나가 벽을 밟으며 내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바로…….
휘이이이잉.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발렌티노 내성의 어느 첨탑 위였다.
“아, 아니 왜 여길……?”
“……역시 네놈은 몸으로 배워야겠다.”
으스스하고 살벌한 목소리에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오는데, 그 예감은 기어이 들어맞고야 말았다.
우웅.
“엑!?”
일순간 몸 안의 마나를 동결시키고 사지를 마비시키는 공작의 힘.
그 상황에서 자신의 멱살을 잡은 손이 지붕 바깥쪽으로 내밀어지는 순간, 타이니의 안색은 새하얗게 질릴 수밖에 없었다.
“대, 대체 왜, 왜 이러시는 건데요!?”
“왜긴? 네놈이 말로 해선 들어 처먹질 않으니, 내 친절하게 몸으로 배우게 해 주려는 거지!”
벌게진 공작의 눈이 반쯤 뒤집힌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일까.
“다시 한번 물으마. 높이 올라간 ‘사람’은 왜 떨어질 수밖에 없을까?”
……사람? 떠, 떨어져……?
“으아악! 마나라도 풀어 주던가, 이 미친 인간아!”
“역시 말로 해선 모르는…….”
공작의 손에 힘이 풀릴 기미가 보이자마자 타이니는 번개처럼 소리를 질렀다.
“중력!”
멈칫.
“……오호?”
“중력 때문에! 아, 아니. 중력 때문입니다!”
살고자 하는 본능이 그의 입을 움직였다.
“왜?”
“……예?”
“중력이 왜 네 몸을 떨어지게 하는데?”
진짜 날 떨어트릴 셈이냐!
마음 같아서는 고함을 지르고 싶었지만, 맛이 간 듯 희번덕거리는 눈을 보고 있자니 차마 대거리를 할 수 없었다.
“그, 그…… 아마 땅이 사람을 끌어당겨서?”
안 돌아가는 머리를 열심히 굴려 흘려들었던 소리를 내뱉어 보지만.
“그러니까. 왜?”
“왜라니! 당신이 그렇게 말했……!”
끝내 분을 못 참고 버럭 소리를 질러 버린 순간, 공작이 손을 놓았다.
“으아아악!”
“중력을 몸으로 느껴 보거라, 애송아.”
“야, 이 미친 새……!”
공작의 목소리가 한순간 아득하게 멀어지고, 잘 조형된 고풍스러운 성벽과 건물이 빠르게 눈앞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중력이란 게 뭔지는 몰라도, 이대로 떨어지면 죽는다는 건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자연히 중력에 대해 생각해 보기보다는 마나 봉쇄를 풀기 위해 심력을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으아아아아!”
땅에 부딪히기 직전, 가까스로 공작의 마나를 떨쳐 내고 온몸으로 철신갑을 시전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급히 월랑을 소환한 것은 덤이었다.
“컹!?!?”
느닷없이 허공에 소환되어 떨어지는 타이니와 눈을 마주친 월랑.
그 눈동자가 일순간 배신감에 물드는 것이 똑똑히 보였다.
“미안하드아아아!!”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소리와 함께.
콰아아앙!
“깨갱!!”
쿠션 역할을 한 월랑은 그 충격에 곧바로 역소환되어 버렸고.
우드득.
철신갑으로 무장했음에도 발목뼈가 박살 나는 고통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끄으응.”
[크르르르르! 컹! 컹!]
영혼의 저편에서 월랑이 거칠게 항의하는 게 느껴졌다.
‘지, 진짜…… 미안해. 크윽.’
타이니가 눈물을 삼키며 간신히 마나로 뼈를 맞추고 있는데.
탁.
“중력의 위대함을 느껴 보았느냐, 애송아?”
가벼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으스스한 목소리가 들렸다.
“미, 미친…….”
“뭐?”
당장 터져 나올 뻔한 욕설은 희번덕거리는 눈동자를 다시 마주한 순간 자연스레 삼켜졌다.
“……미칠 듯이 생생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중력이라는 게. 하하…….”
살기 위해선 일단 아무 말이나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래, 그래야지. 딱 네놈이 간신히 죽지 않을 만한 높이였으니까. 그러면 이제 중력을 다룰 수 있겠느냐?”
“……예?”
공작의 미친 소리는 끝나지 않았다.
“미칠 듯이 생생하게 체감했다면 다룰 수도 있겠지. 그렇지 않나?”
“아, 아니…… 하하, 그건 좀 연습을 해 봐야…….”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제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뒤이어 불길한 예감이 다시금 전신을 엄습해 왔다.
“저런……. 그럼 몇 번 더 해 봐야겠구나.”
“아, 아닙니다! 이제 말로 설명하셔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엔 진심을 가득 담아 소리쳐 보지만.
“아니! 그럴 거였으면 지난 3일간 조금이라도 알아 처먹었겠지.”
“아, 아닙니다. 그, 그냥 말로…….”
“아니! 네놈은 몸으로 배우는 것이 빨라.”
“말로 하라니까, 미친 영감아!!”
결국 공포심을 견디지 못한 주둥이가 다시 한번 사고를 쳤다.
“어쭈……?”
공작의 벌건 눈이 그 순간 좀 더 붉어지는 듯했다.
결국, 그날 타이니는 첨탑에서의 추락을 3번이나 더 겪어야 했다.
그리고 정말 억울한 것은…….
“하하, 역시 진작 이럴 걸 그랬구나.”
양 팔목뼈가 부러지고 갈비뼈까지 몇 대 나간 마지막 추락에서, 정말로 ‘중력’이라는 속성을 터득해 버린 제 몸뚱이였다.
‘……이게 진짜 되네?’
그러나 당장은 그 성취감보다 가슴속에 쌓인 울화가 더욱 컸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씨, 씨X…….”
가슴 가득 쌓인 한이 온전히 담긴 욕설 한마디만을 남기고 기절하는 것뿐이었다.
* * *
온몸이 박살 난 상태에서 눈을 뜨자 보이는 것은 낯선 천장과 클로이의 얼굴이었다.
“정신이 들어?”
그녀에 손에서 뿜어져 나온 새하얀 빛이 자신의 몸 안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려 하자마자 짜릿한 고통이 전신을 내달렸다.
“끄으응.”
“무슨 수련을 이렇게 험악하게 해? 아무리 아버지 제자가 되어서 열의가 넘쳐도 그렇지.”
……수련? 열의?
그게 무슨 월랑 풀 뜯어 먹는 소리야?
‘아니, 그 전에…….’
내가 그 정신 나간 영감의 제자라고?
“허, 허흐…….”
누구 맘대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상황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벌써 익스퍼트가 되었다면서? 아버지 만난 지 3일 만에! 지금 기사단도 난리야! 세기의 천재가 들어왔다고!”
클로이가 한껏 들뜬 얼굴로 그렇게 외치니, 차마 불평을 늘어놓을 수도 없었다.
“……가, 감사합니다.”
“응! 그 말 아버지께 그대로 전해 줄게.”
“아, 아니……. 치료해 주신 거요.”
“아…… 이거? 뭘, 내가 데려온 손님인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방긋 웃는 얼굴과 그 마음이 너무 예뻐 보여서, 공작의 만행을 일러바치는 짓은 참는 게 좋을 듯했다.
‘분하지만 성과가 있기도 했고.’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히 해 둬야 했다.
“끙…… 으음, 저 기사단 안 들어갑니다. 특히 블루윙은요.”
“응? 왜?”
클로이의 실망하는 얼굴을 보니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아닌 건 아닌 거였다.
타이니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후우우.”
우드득.
염체의 회복력에 성법의 치료 효과까지 더해진 덕일까.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부러졌던 뼈들이 제대로 붙었다는 게 느껴졌다. 저릿저릿한 통증은 아직 남아 있지만 말이다.
“……할 일이 있습니다. 다만 그게, 제가 공작가의 소속이 되면 곤란해지는 일들이라서요. 각하께서도 알고 계실 겁니다.”
자신은 세상을 돌아다녀야 한다. 제국 출신이라는 꼬리표 정도는 몰라도, 특정 단체에 ‘소속’되는 것은 적대 국가에서 활동할 때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공작가와 인연이 있는 것 정도는 상관없다. 그런 소문은 언제나 늦게 퍼지기 마련이고, 발렌티아를 경계하는 내외부의 적들도 그런 사소한 부분까지 일일이 정보를 수집하지는 않을 테니까.
‘설령 알려진다 해도, 소문은 소문일 뿐이니 부인하면 그만이지만…….’
공작가의 소속 명부에 정식으로 등록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니까.
“그래? 난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
금세 시무룩해지는 클로이의 얼굴. 아직 어린 탓인지, 전생과는 달리 감정의 변화가 그대로 드러났다.
그래서 타이니는 솔직히 물어보았다.
“그런데, 왜 굳이 공녀님께서 저를 치료하신 겁니까?”
“응?”
“공작가라면 부를 사제도 많을 텐데요.”
단순히 많은 정도가 아니었다. 아무리 돈을 밝히는 사제라도, 발렌티아 공작가라면 연줄 한번 맺어 보겠다고 무료 봉사를 자처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말했잖아. 내가 데려온 손님이니…….”
“바쁘실 텐데요, 성년식 때문이라도요.”
그 말에 클로이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아, 너도 그거 들었어?”
“예, 그 준비로 성이 떠들썩하니까요.”
“그냥저냥……. 난 뭐 예법 연습만 하면 되니까 바쁠 것도 없어.”
“그럼, 그냥 심심해서 절 치료해 주신 겁니까?”
괜스레 슬쩍 찔러 보는데.
“떽, 심심해서라니!”
클로이가 도끼눈을 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떽이라니, 완전 애 취급…….’
순간 어처구니가 없어진 타이니가 멍하니 눈만 끔뻑이는데, 다시 순한 눈빛으로 돌아온 클로이가 새하얀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했듯이, 넌 내가 데려온 거니까. 그리고 넌 지금 이 성에서 가장 어린 꼬마라고. 그러니까…….”
……포근하지만 어색한 느낌.
그 감정이 전해진 걸까. 피식 웃은 클로이가 장난스레 알밤을 먹였다.
콩.
“……잘 챙겨 주면 그냥 고맙다고나 할 것이지, 뭘 따지고 들어!”
당연히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클로이가 말끝을 흐린 이유도 알 것 같았다.
‘……답답하고 불안한 거겠지. 공작가 사람들 앞에서 우는소릴 할 수도 없을 테고.’
언제나 공녀로서 당당한 모습만 보여야 했을 테니까.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했던 게 아닐까.
‘그게 귀족의 물정 같은 건 모르는 어린아이라면 더 좋을 테고.’
전생에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성년식을 맞이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라면 자신의 세상이 큰 변화를 겪을 때 불안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그것도 말이 성년이지, 겨우 16살에 불과한 소녀라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당장 세세하게 이러니저러니 충고를 할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 어리다 해도 그녀는 클로이였고, 그가 아는 가장 현명한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
“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응원을 건네는 것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았다.
하지만 클로이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되물었다.
“뭘 잘해?”
……아.
“……성년식이요.”
그 말에 곧바로 다시 움찔하는 모습. 역시나 전생에 비하면 아직 연륜이 부족한 듯했다.
하지만 이내, 이전보다 좀 더 세진 알밤이 날아들었다.
“……까불고 있어. 그거야 당연히 잘하겠지. 내가 주인공인 날인데.”
에헴, 하며 어색하게 콧대를 올리는 꼴을 보면 아직 확실히 어린아이 같았지만, 그 풋풋한 느낌이 싫지는 않았다.
그러다 이내 그녀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티 많이 났어?”
“큰일을 앞두고 걱정하는 건 당연한 거니까요. 아마 가까운 사람은 다 알고 있을 겁니다. 비비안 기사님도.”
“그, 그래? 이런…….”
살짝 울상이 되며 입술을 깨무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하는데, 이내 정색을 한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너, 우리 가문 소속이 되는 건 아니더라도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은 건 맞지?”
한쪽 손은 허리에 얹고, 반대쪽 손은 검지를 쭉 편 채 당당히 내민 자세.
묘한 박력이 느껴지는 그 모습에 타이니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그, 그렇지요?”
“그럼 뭐, 식구나 다름없지.”
……그건 아니지 않을까.
공작가에선 제 식구를 탑에서 떨어트리기도 하나 보지?
끔찍했던 추락의 경험이 머릿속을 스치며, 다시금 공포와 분노의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데.
“그러니까, 이제부터 누나라고 불러.”
“……엥?”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말에 타이니는 순간 멍해지고 말았다.
클로이가 그의 인생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사람인 건 맞지만, 전생에서 그렇게까지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다.
그가 과거의 일을 밝히지 못하기도 했고, 그때는 이미 둘 사이에 수많은 신분이나 인간 관계의 벽이 있었으니까.
그저 인류연합의 핵심 전력으로서 안면만 있는 정도였는데.
거기다.
‘누나……라니.’
그의 인생에서는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호칭이 아니던가.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당장 욕이라도 뱉어 줬겠지만, 그 사람이 하필 클로이였다.
“어…… 저, 그, 그게…….”
당황스러워서 입도 잘 떼어지지 않는데.
“뭐야? 반응이 왜 이래? 영광인 줄 알아야지. 나, 무려 공작가 영애라고.”
다시금 어울리지 않게 콧대를 치켜드는 클로이를 본 순간, 타이니는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어어, 웃어?”
타이니의 반응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목소리를 높이는 클로이.
그러나 이내 그녀도 피식 웃어 버렸다.
“뭐, 솔직히 너 같은 천재는 일찌감치 포섭해 놓는 게 좋을 것 같다는 ‘현명한 귀족적 판단’에서 하는 말이야.”
짐짓 너스레를 떨며 강조하는 표현이 그를 또 웃음 짓게 했다.
“현명한 귀족적 판단이라고요?”
“그럼, 그러려고 이렇게 친절하게 치료도 해 준 건데.”
과연 그게 진심일까.
“……그리고 비밀도 지켜 주면 고맙겠고.”
그보다는 혼잣말처럼 작게 중얼거린 그 한마디가 더 진심에 가깝지 않을까.
그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 보여, 타이니는 또 한 번 피식 웃고 말았다.
“……생각난 김에, 다른 귀족 성년식 얘기라도 해 드릴까요?”
“그래? 본 적 있어?”
“네, 그게…….”
그렇게 아직은 어린 소년과 곧 성년이 될 소녀는 한동안 길고 쓸데없는, 하지만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것은.
‘누나……라…….’
소년의 마음속에 당혹스러운, 그러나 결코 싫지 않은 파문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