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에스가르드 폰 발렌티아
“호오? 맹랑한 꼬마로구나.”
한순간 공작의 푸른 눈동자가 소년을 매섭게 응시했다.
좀 전까지 실없는 모습을 보이던 게 마치 거짓말 같았다.
타이니는 거인의 영혼이 자신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지만, 전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저 웃고 말았다.
‘혼압(魂壓, Soul Pressure)이라……. 역시 검제도 이때는 상당히 미숙했구나.’
아마 주변의 다른 이들에게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
소울프레셔(Soul Pressure).
이름이야 거창하지만, 초인이 그 거대한 영혼을 드러내며 격하의 상대를 압박하는 수단에 불과하니까.
초인끼리는 에너지나 심력 소모도 없고 주변에 티도 안 나는, 잔챙이를 제압할 때나 쓰는 잔재주의 일종이다.
아마도 헛소리를 지껄이는 꼬마에게 슬쩍 겁을 줄 생각이었겠지만.
‘기세를 직접 뿜어내지만 않는다면야.’
오히려 지금의 검제보다는 확실히 수준이 높았던 타이니의 영혼이 이 정도로 무릎 꿇을 리는 없었고, 도리어 타이니에게 지금의 수준을 확실히 알려 주는 꼴이 되었을 뿐이다.
‘오러유저의 경지에서도 이제야 숙련 수준……. 아무리 20년 가까이 전이라지만, 검제도 갈 길이 멀어.’
함께 대륙 7대 기사라 불린다지만, 현시점에도 아마 오러익시더인 에스티나나 그 벽을 두드리고 있을 저릭 등 다른 종족의 대표와는 한참의 격차가 있었다.
아마도 오러를 쓴다는 것만으로도 인간족들이 같은 급으로 띄워 준 것 같았다.
‘검제가 이렇다면, 역시나 그리드 그 양반도 비슷한 상태겠군.’
속으로 한숨을 내쉰 타이니가 혼압을 무시한 채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냥 여기서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허……?”
“아버지, 타이니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어린애가 아직 뭘 모르고 한 말……”
“아니, 아니다. 뭘 모르는 놈이 저럴 수는 없지. 놀랍구나! 말도 안 되는 일이야.”
“……예?”
“잠깐 저 녀석과 얘기를 해 봐야겠구나. 들어가자.”
“아버지?”
클로이가 어리둥절해하긴 했지만, 타이니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다!’
드디어 이 모든 일의 원흉(?)과 제대로 대화할 기회가 생겼으니까.
* * *
공작이 타이니를 데려간 곳은 그의 집무실이었다.
아스란 제국 최고의 부호 중 한 명일 게 분명한 발렌티아 공작의 집무실은 생각보다 검소했다.
눈에 보이는 거라곤 아무런 장식도 없는 책상과 의자, 그리고 책 몇 권이 꽂혀 있는 책장과 책상에 쌓인 서류 더미 하나가 전부.
내성의 입구에서부터 이어진 눈 돌아가게 화려한 복도와 온갖 예술품들이 전시된 대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오히려 두리번거리게 되는 모습이었다.
옛날에도 느낀 거지만, 이 양반은 역시.
“꽤 검소하시군요.”
그 말에 공작의 푸른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귀족의 저택에 많이 가 봤나 보구나.”
“예? 아, 예……. 뭐, 하하.”
“여러모로 신기한 녀석이구나. 확실히 평민 같은데.”
분위기를 바꿔 보겠답시고 던진 말 때문에 괜히 의심만 더 사게 된 것 같아, 타이니는 머쓱한 웃음을 흘렸다.
다행히도 공작은 그 부분을 더 이상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격식을 갖추는 것은 귀빈을 맞을 때면 충분하다. 그 이상의 허식은 낭비나 다름없지. 자, 그럼 우리 제대로 이야기를 해 볼까?”
의자에 앉은 공작이 깍지 낀 손으로 턱을 괴는 순간 본론이 시작되었다.
“그래, 사라진 템퍼스에 대해 안다고?”
“예, 맞습니다.”
타이니는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단, 그것이 제가 짐작하는 힘을 가진 아티팩트라면 말입니다.”
“짐작이라? 그 짐작이 무엇인지 궁금하구나.”
발렌티아의 가보에 대해서는 소문이 꽤 무성했지만, 그 모든 소문에 알맹이는 없었다. 실제로 그 비밀에 관해서는 역대 공작가의 가주에게만 전승된다고 하니,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그렇기에 타이니의 말에는 아직 신빙성이 없었지만, 공작은 자신의 소울프레셔를 담담하게 받아넘긴 꼬마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그렇다. 궁금함, 단지 그 정도의 마음뿐이었는데.
“혹시 그것이 가진 힘이 시간을 되돌리는 것 아닙니까?”
이어진 반문에는 공작의 푸른 눈이 확실히 흔들리고 말았다.
“……더 자세히 얘기해 보겠느냐?”
“그냥 헛소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시는군요.”
“흐…….”
타이니의 반문에 공작은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이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그러니 말해 보거라. 어째서 그런 판단을 하였는지. 그리고…… 어째서 ‘네가’ 이 자리에 와 있는 건지.”
무겁게 가라앉은 푸른 눈.
타이니는 그 눈을 보는 순간 자신의 예상이 맞아떨어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랬기에 가슴속 깊은 곳에 간직해 왔던 이야기를 쉽게 풀어낼 수 있었다.
“모든 것은 이십 년 뒤에 벌어질 재앙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해가 저물 때까지 이어졌다.
호쾌한 일화로 시작해 장대한 서사를 만들어 가다가 결국에는 비극으로 끝난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 대륙 10대 기사 모두가 죽었습니다. 에스티나는 마수병단의 공중 병력과 함께 산화했고, 하이넨은 지저의 마수들을 모조리 불태우며 함께 재가 되었습니다. 종족 연합군이 마수병단의 본대를 막아설 때, 저릭은 군단장인 마수왕 글러터니에게 가는 길을 열기 위해 홀로 죽음의 길을 걸었습니다.”
동료의 죽음을 이야기하다 보니 목이 메어 와 타이니는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다 멍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공작을 보며 간신히 감정을 수습했다.
그렇게 마침내 긴 이야기의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되었다.
“그리고 남은 일곱이 말 그대로 목숨을 바쳐 글러터니와 무려 칠 일 밤낮을 싸웠습니다. 우리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동료가 하나하나 쓰러져 갔지요. 그러다…….”
후으읍.
“마지막에 당신이 놈의 마지막 발악과도 같던 공격을 막아 내고, 내가 놈의 숨통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우리 둘 모두 남은 생명력을 모조리 소진하고 말았다는 사실을요.”
몸이 어려졌기 때문일까.
전생의 마지막이 다시 생각나자 또 분노와 억울함이 치밀었다.
고작 그것밖에 못 했다는 사실이.
그게 괴력의 기사, 타이니의 한계였다는 사실이 새삼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정도로 원통했다.
“그게, 그 악몽이 고작 마왕군 7대군단 중 하나가 만들어 낸 결과일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죽음을 눈앞에 두고 절망하는 내게 당신이 말했습니다. 아직 방법이 남아 있다고.”
후읍.
“당신이 내 재능을 살려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반드시 찾아오라고. 너라면 군단장들과 마왕의 골통을 부술 수 있을 거라고.”
뒤의 말은 검제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지만, 그도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니 본인 대신 나를 보냈겠지.’
타이니는 자신을 바라보는 공작의 충혈된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듣고 눈을 떠 보니, 이십 년 전의 내가 되어 있었습니다. 필레스의 뒷골목을 전전하던 꼬마 시절의 내가……. 그게 정확히 한 달 반 전이었지요.”
자, 이제 당신이 설명할 차례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정말 내가 짐작하는 이유로 나를 보낸 것이 맞는지.
타이니가 그런 마음으로 공작을 빤히 응시하는데, 기대와는 달리 공작의 대답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를 보는 듯했던 푸른 눈이 한참을 허공만 응시하는가 싶더니, 이내 작은 한숨과 함께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린아이가 지어냈다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짜임새 있는 이야기로군. 더구나 천민 꼬마가 세계수의 수호자와 드워프족의 첫 번째 망치, 오크족 대전사의 이름까지 아는 것도 이상하지.”
그들은 현시점에도 대륙 7대 기사에 속해 있었지만, 주로 종족의 대표로서 불리는 그들의 실명은 제국의 정점에 선 귀족들도 잘 모르는 정보였다.
애초에 대륙 7대 기사니, 10대 기사니 하는 이명들도 모두 인간족의 기준으로 붙여진 것이었으니까.
“……일 년을 함께한 동료였으니까요.”
“동료라……. 흐, 여태 대립하고 있는 그 강적들이 동료가 된다니. 허허.”
그 대답에 무언가 충격을 받은 듯, 공작은 또다시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이내.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불쑥 꺼냈다.
“……템퍼스라는 단어의 뜻은 시간 혹은 기회. 초인의 생명을 바쳐 단 한 번, 단 한 사람만을 과거로 보낼 수 있으니. 후손이여, 그 사용에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라. 최소한 가문이 절멸할 위기거나 그에 준하는 상황에서만 사용을 허한다.”
담담한 어조로 토해 내는 발렌티아 가문의 비밀.
“가보와 함께 전해져 오는 말이지만, 솔직히 진실이라 생각지는 않았었다.”
공작은 비밀을 고백하듯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마 역대 선조님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야. 대가가 대가이니만큼 시험 삼아 써 볼 만한 물건도 아니고, 그냥 가보니까 잘 간직해서 후대에 전해 온 거지.”
그의 날카로운 눈빛이 다시 타이니를 향했다.
“하지만 네가 말한 그 상황에선 내가 해 볼 만한 일이긴 해. 다만…… 왜 내가 아니라 너였을까?”
그 말에선 조금 공격적인 기세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타이니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반문을 한다는 건 공작이 그의 말을 믿는다는 뜻일 테니까.
그러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그거야 미래의 당신이 알겠지. 재능을 살려 주겠다느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지껄이길래 난 솔직히 당신이 노망이라도 난 줄 알았소.”
동료였을 때처럼 편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속으로 아차 싶었지만, 다행히 공작은 그 말투에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타이니가 생각지도 못했던 점을 짚었다.
“네 재능이 대단하다면, 내가 너를 찾아가서 키워도 됐을 텐데?”
“……어!?”
그, 그러게……?
날카로운 질문에 순간 당황해서 말이 나오지 않는데.
“네가 사는 곳을 내가 물어보지는 않았나?”
“……안 물어봤소. 뭐, 애초에 떠돌며 살아온 인생이라 답하기도 애매했을 것 같기는 하지만. ……아!”
질문에 답하다 보니,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올랐다.
타이니가 몇 년 이상 한군데에서 살았던 경험은 필레스가 유일하다.
하지만 설령 검제가 물었다 한들 자신이 공작가의 속령 출신이라는 걸 솔직하게 말했을까?
‘그럴 리가.’
검제에게 경쟁심을 가지고 있던 자신이 그랬을 리 없다.
그리고 그 마음을 검제 역시 알고 있었을 터였다.
‘이거, 빚이 더 늘어난 기분인데.’
타이니가 떨떠름한 눈으로 공작을 바라보는데, 다행히도 현세의 공작은 그 의문을 그렇게까지 깊게 파고들진 않았다.
“……떠돌며 살아온 인생이라. 하, 그렇군. 하긴, 언제로 돌아갔을지도 몰랐을 테니…….”
다만 돌아온 대답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회귀 시점을 몰랐을 거라고? 당신도?”
“영혼이 가장 큰 충격을 받았을 때로 돌아간다는 말이 전해지긴 했다. 하지만 애초에 진실이라 생각지 않았으니, 깊게 조사해 보지도 않았지. 그럴 방법도 없었고.”
뭐라고……?
“지금 너를 보니, 딱 자아를 확립했을 때쯤으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싶구나. 미래의 나도 그렇게 추측했겠지.”
까득.
아니다, 그게 아니야.
그렇다면 내가 누나가 죽던 날로 돌아간 이유가…….
“그건……!”
일순간 분노가 솟구쳐 올랐지만, 공작의 담담한 눈길을 마주하는 순간 그저 허망한 느낌이 밀려왔다.
그래, 나를 과거로 돌려보낸 자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잠깐이라도 누나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으로 만족하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여 보는데, 공작의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 게 아니었나 보군. 내가 실수를 한 것인가?”
“……아니, 아니오. 후…… 아닙니다.”
타이니는 억지로 마음을 다잡고, 현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누나는 잘 수습했다. 이제는 미래를 바꿀 차례다.
하지만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히자마자 공작이 시비를 걸어 왔다.
“왜 다시 말투를 바꾸지? 어린아이한테 평대를 듣는 게 꽤 신선했는데 말이야.”
“……죄송합니다.”
“난 그 이유를 물었다만?”
“그때는 그때고, 지금의 난 아직 당신과 동등한 자리에 설 자격이 없으니까……요.”
“허…… 흐하하하하, 재밌는 녀석이구나! 확실히 재밌어, 푸하하하하!”
갑작스레 터져 나온 웃음에 타이니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공작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내 표정이 다시 진지해진 공작이 툭 던지듯 한 마디를 보탰다.
“그래, 그래도 마지막으로 확인할 것이 있다.”
“……?”
“만약 정말로 내가 그리했다면…… 내가 아닌 자네를 비보의 사용자로 정했다면, 무언가 남긴 말이 있을 텐데?”
모든 말을 믿어 주는 듯했던 공작이 불쑥 꺼낸 말.
예리하게 빛나는 푸른 눈은 타이니가 그의 믿음을 얻기 위한 관문을 아직 다 넘지 못했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남긴 말이요?”
“내가 그냥 나를 찾아가라 하던가? 이런 이야기만으로 내가 네 말을 믿기에는 증거가 너무 부족한데?”
“아…….”
그 말을 듣고서야 타이니는 지금 해야 할 말을 떠올려 냈다.
“……딸 아이의 태명은 라일라.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 이름에서 따왔다고 했습니다.”
“그거야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고.”
공작이 사랑한 단 한 명의 여인.
그들의 사랑 이야기에 대한 소문은 공작령을 넘어 제국 귀족가 전체에 자자할 정도였으니, 이제는 세상에 없는 부인을 떠올린 공작의 표정은 차갑게 굳을 수밖에 없었다.
다음 말이 이어지기 전까지는.
“……그런데 사실 당신은 그 꽃을 별로 안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핵심이라고…….”
그 말에 공작의 표정에 균열이 생겨났다.
“흐…… 흐흐.”
그 균열은 이내 폭소로 이어졌다.
“흐하하하!”
우우웅.
초인의 웃음소리에 주변의 마나가 흔들렸고, 타이니는 그것을 느낀 뒤에야 공작이 마음을 완전히 열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 그랬겠어. 분명 내가 할 만한 말이야.”
웃음 끝에 나온 허탈한 목소리.
“……그 사람이 그렇게 갈 때까지 내가 결코 꺼낼 수 없었던 말. 이제는 그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말이니까.”
언제 그리 웃었냐는 듯 우울한 표정을 짓는 공작. 그와 동시에 끓어오르던 주변의 마나가 착 가라앉았다.
기분에 따라 의도치 않아도 주변의 환경까지 변화시키는 힘.
초인다운 이적을 보인 공작이 이내 좀 전의 표정을 감추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빌어먹을!! 이게 다 사실이라 이거지!? 이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군! 가보를 날려 가며 인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내가 할 만한 일이긴 한데, 거참! 빌어먹을 일이야, 젠장! 어떻게 그런 일이……!”
제국의 공작답지 않은 비속어가 쏟아져 나왔다.
‘이십 년 전이라 그런가. 영감, 성질이 좀 남아 있네.’
타이니가 칠순이 넘었던 전생의 검제, 고고하고 냉정하기만 했던 공작을 떠올리며 실소할 때.
공작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믿어 주신다는 거 아니었습니까?”
움찔한 타이니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는데.
“그래, 그래야만 멀쩡한 내 손에서 가보가 사라진 게 말이 될 테지. 그것도 내 안방에서 말이야.”
맹수가 으르릉거리는 듯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마치 여태 타이니가 늘어놓은 말보다는 자신의 실력을 더 믿는다는 듯한 태도였지만, 초인이라면 응당 가질만한 자부심이었다.
게다가 그 말의 의미 자체는 결국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믿어 준다는 것이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허, 다행입니다.”
그렇게 타이니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공작의 말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테스트는 해 봐야지.”
“예? 방금 믿으신다고……?”
“말은 믿지만, 네 능력을 믿진 못하겠다. 내가 죽기 직전에 흐린 정신으로 잘못된 판단을 내렸을 수도 있겠지. 타이니라고 했느냐, 꼬마? 미래의 10대 기사? 그렇다면 내게 그 재능을 증명해 봐라!”
초인의 기세가 응축되어 쏟아지는 순간.
“……훗.”
타이니는 오히려 사나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