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발렌티노
“가보가 사라졌다고요!?”
“……예.”
“아니 그게, 보통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시잖아요?”
“……그러니까 더 문제지요. 아침에 일어나 보니 가보가 보이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쭉 가문은 비상사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게 말이 돼요!? 오러유저가, 그것도 공작가 내부에서 가보를 도둑맞았다는 게?!”
“공녀님, 목소리 좀…… 작게.”
클로이와 가렌의 대화는 더 이상 타이니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나아갔지만,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진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발렌티아 공작가의 가보라면 아마 굉장한 아티팩트일 텐데.
그게 사라졌다……? 그것도 공작이 가지고 다니던 물건이?
‘이건 또 무슨……?’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생에 그런 소문은 못 들어 봤다.
물론 뒷골목 거지한테까지 그런 소문이 들리는 게 더 이상한 일이겠지만, 흑마법사의 조직부터 시작해서 전생과 현재가 자꾸만 어긋나는 것 같아 기분이 영 찜찜했다.
뭐, 어찌 됐건.
“빨리 돌아가 봐야겠어요. 대체 어쩌자고 자꾸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
그 때문에 클로이가 귀환을 서두르기로 결정한 일은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게다가 그 여정을 호위하는 기사가 열두 명에서 그 열 배로 늘어났으니, 검제를 만나는 일에 더 이상 변수가 생길 일은 없을 듯했다.
* * *
티벤을 떠난 일행은 불과 하루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클로이가 조금이라도 빨리 가겠다면서 마차를 버리고 말을 타기까지 한 결과였다.
그 과정에 생긴 잡음이라고는 질주를 위해 모습을 드러낸 월랑 때문에 기사들의 말이 살짝 놀랐다는 것 정도.
그도 그럴 것이, 간만에 본체의 모습으로 소환된 월랑의 속도와 기동력은 모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한 수준이었다.
“컹! 컹!”
질주하는 기사단 주위로 원을 그리며 도는 월랑의 모습은 마치 양 떼를 모는 목양견 같았다.
다만, 월랑이 가까이 다가설 때마다 말들이 흠칫 놀라는 바람에 몇몇 기사들은 타이니에게 사나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물론 대부분은 처음 본 정령의 모습이 신기한 마음이 더 큰 탓에 굳이 문제 삼지 않았지만 말이다.
“하하, 죄송합니다!”
간만의 질주에 신이 난 것은 월랑뿐만이 아니었다.
두 여자의 부담스러운 손길에서 벗어난 늑대와 그 기수는 하루 종일 자유를 만끽했다.
“발렌티노다!”
발렌티노.
발렌티아 공작가의 본성이자 아스란 제국 내에서 황도를 제외하고 가장 거대한 도시 중 하나.
그런 만큼 그 규모가 어찌나 웅장한지, 아득한 거리에서 관도를 따라 나아가는 일행의 시야에 벌써부터 성벽이 보일 정도였다
“드디어……!”
“집이다!”
클로이의 봉헌 행렬에 동행하느라 몇 달 동안 본성을 떠났던 기사들이 감격한 듯 소리를 질렀지만, 불과 어제 그곳에서 출발한 다른 기사들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오히려.
“……발렌티노.”
이곳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야 할 검은 머리 소년이, 온갖 회한이 깃든 표정으로 제국의 대도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귓가에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발렌티노에 와 본 적 있어?”
옆을 돌아보니, 빠르게 돌아가겠다는 이유만으로 마차를 버리고 말을 탄 클로이가 하루 만에 웃는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은 처음입니다.”
“지금은……?”
“예.”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이었지만, 클로이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들어가 보면 더 놀라울 거야. 루센티아보다 크면서도 훨씬 깨끗한 도시거든. 무엇보다 냄새도 별로 안 난다고!”
마지막에는 무언가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귓가에 속삭이며 웃는 모습.
그녀 역시 집에 오자 안심이 되긴 한 모양인지, 전생에는 보지 못했던 장난기가 가득했다.
‘역시 아직은 애구나.’
클로이는 놀랄 거라 장담했지만, 타이니는 그럴 일이 뭐가 있겠냐는 듯 그저 웃음으로 답했다. 그는 지금보다 더 발전된 20년 뒤의 발렌티노까지 본 적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웅장한 성벽 안쪽, 사람들이 우글거리는 성문에서부터 그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길을 비켜라!”
선두의 기사들이 성문의 인파를 헤치고 길을 내는 순간.
양옆으로 바짝 붙어 선 사람들은 저마다 눈을 빛내며 기사단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서 평민이 신분을 바꿀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기사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대다수의 젊은 평민들에게 기사는 그야말로 우상이나 다름없었다.
거기다 신기한 옵션까지 붙어 있었으니, 더욱 진귀한 구경이 될 수밖에 없었다.
“……어? 개?”
“개야? 늑대야?”
“웬 애가 올라타 있어.”
“신기하네…….”
이때까지만 해도 타이니는 별생각이 없었다.
“……어!? 아가씨다!?”
하지만 어디선가 그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어?! 진짜!?”
“우와아! 클로이 아가씨다!”
“공녀님이시다!”
“공녀님께서 돌아오셨어!”
모여든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고, 클로이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군중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러자.
“꺄아악!”
곳곳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 공녀님이 날 보고 손을 흔들어 주셨어!”
“아니, 날 보신 거야!”
“뭐래!”
과하다 싶을 정도로 기뻐하는 모습이었지만, 결코 누군가가 강요한 것 같지는 않았다.
“헐…….”
클로이가 고향에서는 더 인기가 많다는 얘기를 전생에도 들어 보긴 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인지라 타이니로선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멍하니 보고 있자니, 옆에서 비비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놀랐지? 우리 아가씨가 본성에선 특히나 인기가 많거든.”
“그래도 귀족가의 아가씨인데, 평민들이 이렇게까지 좋아하나요?”
“그야…… 예쁘시니까!”
“…….”
아니 얼굴 좀 예쁘다고 이렇게까지 좋아할…….
‘……수도 있나? 하긴 클로이 정도면…… 그럴 수 있지.’
농담으로 건넨 말에 타이니가 입을 다물어 버리자, 비비안은 멋쩍은 듯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흠, 흠. 아가씨께서 빈민가에 식량이나 의약품 지원을 자주 해 주시거든. 거기다 시찰 때마다 양민들의 억울한 일을 잘 풀어 주기도 하시고.”
“아…….”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
비비안이 발렌티아의 천사라는 별명이 생긴 이유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동안.
타이니는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환호하는 영지민들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확실히 표정이 좋아.’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두웠던 필레스는 물론, 냄새 때문인지 영지민들 대부분이 인상이 좋지 않았던 루센티아와도 또 달랐다.
잘 정비된 하수도 시스템이 도시의 냄새를 거의 없애 준 덕인지 사람들의 안색부터가 루센티아에 비해 훨씬 밝았다.
‘귀족이 아닌, 평민이 살기 좋은 영지…….’
귀족치고는 상당히 독특한 사상을 가지고 있던 검제의 말이 다시 떠오르는데.
“어때, 마음에 들어?”
이제는 익숙해진 목소리가 다시 귓전을 때렸다.
“……사람들 표정이 마음에 듭니다.”
“그래? 아하하, 아버지께서 좋아하시겠네.”
“그런데 제가 공작 각하를 언제쯤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음?”
“약속을 해 주셨잖습니까.”
“아, 그랬지. 아버지께서도 너 정도 되는 인재라면 기꺼이 만나 보실 거야. ……평상시였으면.”
“평상시요?”
“……너도 들었겠지만, 지금은 가보가 사라진 상황이야. 아버지께서 내성에 비상사태를 선포하신 만큼, 한동안 만나 뵙기 어려울 수 있어.”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지만, 그 말은 사태가 해결되기 전까진 공작을 못 만날 수도 있다는 뜻과 같았다.
‘그래서야 곤란하지.’
그리고 타이니에게는,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 사라진 가보 말인데요, 역시 아티팩트겠지요?”
“음, 그렇겠지? ……아마도.”
“아마도?”
“그게…… 가주에게만 전해져 오는 비밀이 있다는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 심지어는 자식인 나조차도. 그냥 우리 가문의 가보니까, 엄청난 아티팩트일 것이라 짐작만 하고 있는 거지.”
“……역시.”
“응?”
막연한 의심이 점차 확신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발렌티아의 가보가 사라졌다는 얘기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한 것은, 템퍼스(Tempus)라는 단어의 뜻을 어렴풋하게나마 떠올렸을 때부터였으니까.
아는 고대어가 몇 개 없는 타이니가 그 뜻을 떠올린 건 그야말로 우연이었다.
그가 알기로 템퍼스(Tempus)의 뜻은…….
‘시간, 혹은 기회.’
그리고 그 보물이 사라졌다는 시점은 한 달 하고도 반쯤 전이라 했다.
정확한 날짜는 다시 확인해 봐야겠지만, 아마도 그날은…….
‘내가 회귀한 날일 거야.’
그 예상이 맞다면, 템퍼스가 사라진 이유는 아마…….
‘……나를 과거로 보내는 데 사용됐기 때문에. 그럼 이제 절대로 못 찾아.’
사실 템퍼스가 발렌티아의 가보가 아니라 황실의 보물이라고 한들 사람을 과거로 보내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긴 힘들지만, 그 믿지 못할 일을 직접 겪은 당사자로서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타이니는 결심한 듯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제가 알 것 같습니다.”
“뭐?”
“가보가 사라진 이유를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오러유저인 공작 각하께서 가지고 계시던 가보가 사라진 것은 말이 되고요?”
그 말에 클로이의 말문이 막혔다.
자고 있는 공작에게서 가보만 빼 갔다면, 범인은 초인인 공작을 가볍게 죽일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대륙 7대 기사의 일인을, 그의 안방에서 말이다.
‘오러익시더나 8서클 대마도사가 공작가에 몰래 숨어들어서 물건 하나만 빼 갔다는 소리지.’
그 가정이 말도 안 된다는 걸 알기에, 타이니가 제 짐작을 조금 더 확신할 수 있는 것이었다.
“각하를 뵙게 해 주세요. 그럼 모든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클로이가 보기 드물게 혼란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타이니는 그저 담담한 눈으로 그 시선을 마주할 뿐이었다.
“일단 말씀은 드려 볼게. 나도 만나 뵐 수 있을 거라 확신은…….”
고개를 저은 클로이가 말끝을 흐렸지만, 그 문답은 그녀가 내성에 도착하는 순간 무색해지고 말았다.
“클로이!! 내 딸!! 무사한 거냐!!”
우당탕탕,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내성 문을 거의 박살 낼 듯 열고 나온 덩치 큰 중년인이 공녀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왔다.
휙.
그러나 그 순간, 매몰차게 물러선 클로이의 움직임에 그녀를 와락 끌어안으려던 공작이 얼음처럼 굳어 버렸다.
끼기긱.
“……딸, 왜……?”
얼음 동상의 목이 돌아가는 것처럼 어색하게 움직인 공작이 서글픈 눈으로 자신의 딸을 바라보는데.
“남들이 본다고요! 제발 체면 좀 생각하세요, 아버지!”
“아니, 아비가 딸 걱정하는 게 뭐 어떻다고…….”
고개를 푹 숙인 공작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클로이는 냉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불쌍한 척하셔도 안 속아요. 남들이 흉보기 전에 괜히 고생한 기사들한테 사과나 하시라고요.”
“크흠.”
그제야 자신의 모습을 어이없게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을 인식한 듯, 공작이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다들 수고 많았다! 클로이가 무사하게 귀환한 것은 다 그대들 덕분이다.”
언제 추태를 보였냐는 듯 공작은 근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발렌티아의 주인이기 이전에 한 딸의 아버지로서 그대들에게 넘치는 감사를 표한다. 주연을 준비해 두었으니, 오늘 하루는 신나게 마시고 즐겨라!”
클로이와는 결이 다른 노란 금발, 그리고 그녀와 똑같은 새파란 눈동자를 가진 중년인의 카리스마가 일순간 현장을 장악했다.
“충!”
그에 봉헌 행렬의 처음부터 클로이를 호위했던 비비안 외 열두 명의 기사는 황송한 마음으로 한쪽 무릎을 꿇었고, 한 일이라곤 사실상 일박 외유밖에 없는 100여 명의 기사들은 조금 뻘쭘한 표정으로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한옆에서 홀로 멀뚱히 서 있던 검은 머리 소년은, 긴 세월을 격하고 보는 옛 동료와 시선을 마주하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역시 알아보지 못하는군.
“……이 아이는 누구지?”
“보고드렸었어요. 흑마법사 관련해서 증언하겠다고…….”
“그, 그래? 내가 요새 다른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 일은 저도 들었어요. 자세한 건 들어가서 말씀드릴게요, 아버지.”
클로이가 재빨리 앞을 막아서 보지만.
“그 템퍼스라는 보물의 행방에 관해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보다 먼저 소년의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가 금발 초인의 귀를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