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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해머-26화 (26/500)

26화. 결착

불꽃놀이는 한 시간이 넘게 계속되었다.

“우와아! 멋져요. 조금만 더! 좀만……!”

이리나가 질린 안색으로 식은땀을 흘릴 때가 되어서야 클로이가 놓아준 탓이었는데.

“아, 이런 실례를……. 제가 초면에 너무 무리하시게 했네요. 죄송합니다. 어떻게, 주무시기 전에 저와 대화라도 좀 나누시겠어요?”

이어진 말에는 내내 미소를 짓던 엘프마저도 표정이 살짝 굳을 수밖에 없었다.

무리하게 했으면 쉬게 해 줘야지…… 하는 속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얼굴.

‘나이스, 클로이.’

타이니는 그 모습을 보며 슬쩍 주먹을 쥐었다.

혈통에 내재된 힘을 쓰는 진짜 소서러라면 한번 만든 작은 불꽃을 유지하는 것 정도야 별일 아니겠지만, 소서러가 아닌 마법사라면 얘기가 다르다. 아무리 하급의 마법이라도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유지하려면 힘이 소모될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데 그때.

“하하, 예. 원하신다면 말벗 정도야 되어 드릴 수 있죠. 다만, 저도 호기심이 들어서 그러는데…… 저기 어린 정령술사도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요?”

이리나가 의외의 제안을 해 왔다.

“네? 타이니도요?”

“예, 제가 아직 정령술이 부족하다 보니, 타 종족의 정령술사에게도 무언가 배울 게 있을까 싶어서요.”

“아, 하하. 뭐 그러시다면야……. 타이니, 들었지?”

“예? ……예, 알겠습니다. 저야 좋지요.”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기회가 알아서 찾아오자, 타이니는 적과 동행한 이래 처음으로 진심이 담긴 미소를 지었다.

“호호, 무리한 청을 받아 주셔서 감사해요.”

그렇게 말하며 눈을 빛내는 이리나.

그것을 보니, 어쩌면 그녀의 목적은 일행 전체가 아니라 자신 하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국령, 그것도 발렌티아 직속 영지에서 그 정예들을 건드리는 것은 아무리 흑마법사라도 막대한 위험을 감수해야 할 테니까.

다만.

‘미안하지만…….’

타이니로선 아직 5서클 흑마법사를 홀로 상대할 자신이 없었다.

기껏 시간을 거슬러 와서 ‘고작’ 5서클 흑마법사 따위에게 죽는다면 억울해서 눈도 감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클로이의 성격상, 저 엘프가 정말 흑마법사로 밝혀진다면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자리에서 저 고위 흑마법사를 처리할 수 있다면, 대놓고 공작가와 제국을 농락한 조직에 대한 단서를 잡을 수 있을 테니까.

‘그것만으로도 공작가가 손을 빌려줄 이유는 충분하지.’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도 없다.

타이니는 엘프를 향해 다가가며 월랑에게 손짓했다.

“월랑, 이리 와!”

“컹!”

비비안의 손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향해 달려온 월랑을 안아 든 타이니는, 대뜸 이리나에게 월랑을 내밀었다.

“한번 안아 보시겠어요?”

“예? 제가 그래도 될까요?”

“예, 물론이죠.”

“감사합니다. 이리 온, 아가!”

이리나가 월랑을 향해 두 팔을 벌리는 순간.

“크와아아아앙!”

순식간에 몸집을 불린 월랑이 그녀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그 옆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푸른 빛 메이스가 손을 벌린 채 미소를 짓는 엘프의 측면을 후려쳤다.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라고 하던가.

그런 측면에서, 적진에 홀로 파고든 마법사에게는 방어 태세를 완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다. 아무리 고위 마법사라고 한들 신체 능력은 동급의 마나유저보다 확연하게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그러니 위기 상황에서 자동으로 펼쳐지는 마나실드를 세팅해 놓는 것은, 고위 마법사들에게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실드의 색이 검은색이라면 조금 특별한 경우겠지만 말이다.

콰아아아앙!

월랑과 타이니의 합동 공격은 반투명한 검은색의 보호막에 완벽하게 막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마나유저라면 모를 수가 없는 혐오스러운 기운이 그 존재감을 사방에 드러냈다.

“어!?”

“저건…….”

예상치 못한 광경을 맞닥뜨린 기사들의 놀란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엘프의 옆구리에는 이미 푸른빛 칼날이 박혀 있었다.

푸우욱.

“끄윽!?”

보호막이 타이니의 공격을 막아 내고 몫을 다한 듯 흐려지던 찰나, 그 절묘한 타이밍을 뚫고 들어온 비비안의 마나 블레이드(Mana Blade)였다.

“커흐흑.”

푸화학.

기습을 완전히 막아 내지 못한 이리나가 일그러진 얼굴로 폭포수 같은 피를 토해 냈다.

하지만, 그 광경을 보는 타이니의 표정은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피했어!’

단번에 심장을 꿰뚫어 전투를 끝내고자 가했던 기습이, 그저 중상을 입힌 선에서 그친 것이다.

게다가.

“합!”

쾅. 쾅. 쾅.

“젠장!”

그 와중에 더 짙게 일어난 검은 방어막은 더 이상 그와 비비안의 공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합세해!”

비비안의 고함 소리에 공작가의 기사들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흑마법사다!”

“전투 준비!”

“공녀님을 보호해라!”

순식간에 살벌해지는 분위기 속에서, 불꽃과 얼음, 바람과 땅 등의 속성을 전신에 두른 아홉 명의 기사가 적을 향해 쇄도하고, 나머지 세 명의 기사는 클로이를 보호하기 위해 바람처럼 달려갔다.

갑작스러운 비상 상황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기사들의 모습은 그들이 얼마나 훈련이 잘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며, 타이니 역시 이를 악물고 다시 마나를 끌어 올려 월랑과 함께 달려 나갔다.

“합!”

“캬오오!”

콰아아아앙!

파바바박.

하지만.

“네놈! 네놈 때문이냐!?”

반투명한 구체 속 이리나의 표정이 일그러지는가 싶다가도, 메이스와 정령의 공격을 막아 내는 보호막은 도리어 선명해지고 있었다.

“이익, 타이니! 이대로는 안 돼!”

결국 어떻게든 적에게 더 타격을 입혀 보려 일렁이던 비비안은 이내 검은 안개와 불꽃을 쳐 내는데 급급해지기 시작했다.

이리나의 마법이 근거리에서 더 상대하기 어려운 적에게 집중되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을 뚫어지게 노려보면서도.

명백한 무시.

‘빌어먹을, 아직 너무 약해.’

타이니는 새삼 현생의 무력함을 느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상대가 치명상을 입은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쿨럭.”

반투명한 보호막 안에서 그를 노려보다 다시금 피를 왈칵 토해 낸 이리나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고함을 질러 댔다.

“빌어먹을, 대체 어떻게 알았지!?”

“더러운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 어찌 모를까?”

급습당한 엘프의 심리를 한 번 더 흔들어 보기 위해 던져 본 말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리나의 표정은 도리어 무섭게 굳어 갔다.

“후우, 이 빌어먹을 놈이……!”

쩌저적.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검은 보호막에 수없이 많은 실금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건!?’

타이니가 흠칫하며 물러서려던 그 순간.

꽈아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검은 보호막이 깨지며 엄청난 충격파가 터져 나왔다.

“큭!”

그에 타이니가 반사적으로 끌어 올린 마나가 순식간에 온몸을 감싸더니, 영혼의 기억을 따라 푸른빛 마나의 갑옷으로 화했다.

철신갑(鐵身甲), 대륙에서 통용되는 언어로는 아이언 바디(Iron Body)라 불리던 그의 기술이 현생에서 완벽하게 재연된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어마어마한 충격을 견뎌 내지 못한 몸이 멀리 튕겨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바로 그때.

“악마추종자를 죽여라!”

“예!”

쩌렁쩌렁한 목소리와 그에 대답하는 기사들의 복창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보니 족히 2m는 될 듯한 크기의 푸른 빛 검기(Mana Blade)를 휘두르는 비비안과, 온갖 속성을 무기에 실어 공격을 퍼붓는 기사들의 모습이 보였다.

검붉은 연기처럼 변한 엘프가 창백한 안색으로 뿌려 대는 검은 불꽃이 그 합공 앞에 맥없이 스러지며 몰리고 있었다.

“허!?”

타이니가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강력한 무력을 보여 주는 공작가의 정예들.

‘그렇다면!’

이 틈에 끝장을 낸다.

“아오오오오!”

월랑이 타이니의 의지에 반응하는 듯 포효하더니, 그를 등에 태운 채 번개 같은 속도로 전장으로 돌진했다.

콰아아앙!

이내 요란한 폭음과 함께 검은색 구체가 허공으로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뒤이어 그 구체 안에서, 기괴한 목소리가 섬뜩한 살기와 함께 흘러나왔다.

“한 놈만 죽고 끝날 일이 쓸데없이 커졌구나. 이렇게 된 이상 전부…….”

“웃기지 마라!”

중갑을 입고도 10m 가까이 뛰어오른 비비안의 푸른 검기가 다시금 구체의 표면을 베어 냈다.

콰아아아앙!

보호막을 완전히 뚫지는 못했지만, 한순간 그 빛이 흐려지는 것이 보였다.

“합!”

그 틈을 타 은빛 늑대가 비비안을 따라 뛰어올랐고, 그 등에 올라탄 기수가 푸른빛이 번뜩이는 메이스로 그 보호막을 후려갈겼다.

콰아앙!

폭음과 함께 다시 바닥으로 처박히는 검은색 구체.

그러나 그 속에서 들려온 것은 단말마의 비명이 아니라, 생생한 분노로 가득한 고함이었다.

“네 이놈! 감히!”

까득.

오히려 공격을 가한 타이니가 일그러진 얼굴로 이를 갈았다.

‘이 정도도 약해.’

보호막이 약해진 틈을 노렸음에도 적이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목소리만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상황에서.

“손해를 감수하겠다!”

뜻 모를 고함과 함께 멀쩡히 모습을 드러낸 이리나의 전신에서 검붉은 불꽃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딜!”

“어림없다!”

공작가의 기사들이 반사적으로 무기를 휘두르며 그 검은 불꽃을 쳐 냈지만.

“어엇!”

화르륵.

이제까지와는 달리, 검은 불꽃은 기사들의 공격에 스러지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전신에 옮겨붙기 시작했다.

“으아악!”

“제, 젠장!”

“이거 뭐야!?”

온전히 불꽃을 막아 낸 기사는 단 한 사람, 푸른 마나블레이드를 휘두르는 비비안뿐이었다.

“모두 버텨라!”

몸을 틀어 클로이에게 향하는 불꽃까지 갈라 낸 비비안이 홀로 적에게 돌진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다른 기사들은 이전까지와는 달리 창백한 얼굴로 비틀거릴 뿐이었다.

“저, 적을…….”

“윽, 따라가야…… 하는데.”

“젠장!”

투지 가득한 목소리와는 달리 검은 불꽃에 저항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보이는 모습.

하지만 단 한 사람.

허공에서 떨어지는 상황인지라 검은 불꽃을 그대로 뒤집어쓴 타이니는 상황이 달랐다.

우우웅.

그의 전신에 둘러쳐진 푸른 마나의 갑옷, 철신갑이 검은 불꽃의 위력을 완벽하게 차단해 준 것이다.

‘좋아!’

철신갑은 전생에는 위기의 순간에만 쓰였던 방어술이지만, 염체의 비전이 개량된 지금은 사흘 동안도 거뜬히 유지할 수 있는 기본 기술이 되었다.

물론 그 때문에 순간적인 방어력은 한층 낮아졌지만.

‘이 편이 활용도는 더 좋아.’

특히나 이런 마법에 대한 저항 수단으로는 더할 나위가 없었다.

게다가 상시 마나가 활용되고 있는 상태인 만큼.

우우웅.

순간적으로 힘을 모아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준비를 하는 데에도 최적격이었다.

‘바로 지금!’

추락하는 중 비비안에게 눈빛으로 신호를 보내 타이밍을 맞추는 순간.

화르르륵.

그의 메이스에서 푸른 마나의 불꽃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철신갑을 유지할 최소한의 힘만 남겨 둔 채, 거의 모든 힘을 메이스에 불어넣은 것이다.

몇 번의 공방을 거치며 계산해 본 결과, 보호막 안쪽에 타격을 입히려면 최소한…….

‘칠 할의 힘을 일격에 가해야 해.’

그가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마나와 전신의 힘을 극단적으로 집중시킨 일격.

그것이 비비안의 마나블레이드와 위아래로 교차하며, 검은 보호막에 적중했다.

쩌어어어어억!

꽈아아아앙!

폭음과 함께 터져 나가는 검은 구체.

‘됐다!’

공격이 완벽하게 먹힌 듯해 속으로 탄성을 터트린 순간.

“읏!?”

터져 나간 구체의 파편들이 허공에서 재차 폭발하며 타이니와 비비안을 덮쳐 왔다.

퍼버버버벅.

콰과과광!

간신히 자세를 다잡고 월랑의 힘까지 빌려 가까스로 착지하긴 했지만, 몸은 여파만으로도 땅 위에서 주르륵 밀려났다.

충격이 상당했다.

쿨럭.

“흐…… 젠장.”

내장이 흔들리는 듯한 아찔한 통증에 핏물을 한 움큼 토해 냈다.

하지만 타격을 입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고개를 드니 연신 비틀거리는 이리나가 보였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선 비비안이 간신히 몸을 세운 채 전방을 노려보고 있었다.

“효과가 있어……! 다시!!”

가까스로 자세를 다잡은 소년의 고함과 함께 은빛 늑대가 질주하는 순간, 비비안 역시 반대편에서 이를 악물며 적을 향해 돌진했다.

소년의 말대로,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이리나는 확실히 타격을 입은 듯 보였다.

처음부터 치명상을 입힌 데다 후속타까지 가했으니, 더는 여력이 없길 바랐는데.

반격이 너무나도 빨랐다.

“감히!!”

피를 한 움큼 토해 낸 이리나의 손에서 솟구치는 검은 불꽃의 파도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한 기세로 두 사람을 덮쳐 왔다.

비비안은 곧장 마나블레이드를 전개해 전방의 공간 전체에 벽을 쳐 방어했지만, 타이니는 그럴 재주가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대처는 단 하나.

“하압!”

타이니는 철신갑을 믿고 검은 불꽃의 파도를 향해 메이스를 전력으로 내리쳤다.

꽈아아아아앙!

‘컥!’

아까보다 더 큰 충격이 머리까지 강타하며 온몸을 뒤흔들었다.

“크르르…….”

힘을 다한 월랑 역시 옅은 신음을 토하며 역소환되고 말았다.

카악, 퉤.

입에 고인 피를 뱉어 낸 타이니는 젖먹던 힘까지 끌어 올려 다시 한번 고함을 질렀다.

“녀석도 지쳤다! 지금 공격해!”

자신은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한계를 두 번은 넘은 것이니.

그가 아닌 다른 익스퍼트였다면 이미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무리를 한 것이다.

‘뒷일은…… 부탁한다.’

애초에 이 고함은 자신보다는 상태가 그나마 멀쩡한 비비안을 향한 것이었다.

그런데, 자극을 받은 것은 오히려 다른 이들이었다.

“으아압!”

“내가 어린애보다 못……! 쌍!”

“X발! 쪽팔려 죽느니, 싸우다 죽자!”

검은 불꽃에 휩싸였던 기사들이 너 나 할 거 없이 피를 토해 내며 마기를 밀어 내기 시작했다.

화상으로 뒤덮인 피부에 하나같이 창백한 안색.

한계에 달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기사들이 일제히 이리나를 향해 돌진했다.

한순간 전세가 불리해졌음을 느낀 것일까?

이리나의 몸이 다시 허공으로 둥실 떠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도망치려는 건가?’

기껏 여기까지 몰아붙였는데?

“적이 도망친다! 잡아!”

“죽여라!”

기사 모두가 이를 악물고 남은 힘을 짜냈다.

점점 다급해지는 움직임, 개중에는 동료의 어깨를 밟고 허공으로 몸을 날리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분의 뜻으로!!”

악귀처럼 일그러진 이리나의 얼굴 뒤로, 거대한 악마의 형상이 떠올랐다.

‘설마……!?’

타이니의 눈이 경악으로 커지는 순간.

이리나의 왼쪽 팔이 스스로 만들어 낸 검붉은 불꽃에 휩싸이더니, 이내 재처럼 부서졌다.

그 충격적인 광경에 타이니의 입에서 외마디 고함이 터져 나왔다.

“소신공양(燒身供養)!?”

신체 일부 혹은 전부를 제물로 바쳐 마법의 위력을 증폭시키는, 악마추종자들의 마지막 술수.

타이니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순간.

“불타올라라!”

이리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하늘 위에서 검은 불꽃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저 마법을 막아 내기란 불가능했다.

지금 할 수 대응은 시전자인 흑마법사를 죽이는 것 혹은…….

상극의 힘으로 맞서는 것.

‘이 정도 시간 벌어 줬으면 됐잖아!’

타이니의 간절한 시선이, 어느새 전장에서 빠져나간 비비안에게로 향했다.

정확히는 그녀가 태산처럼 버티고 서 보호하고 있는 소녀에게로.

그리고 다행히도, 그 간절한 시선은 배신당하지 않았다.

“빛이여!”

비비안의 등 뒤에 있던 아름다운 소녀가 낭랑한 음성과 함께 따스한 빛살을 뿜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지상에서 솟구친 상서로운 빛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검은 불꽃의 비를 남김없이 지워 버리는 모습.

그 아름다운 광경에 타이니의 입가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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