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해머-15화 (15/500)

15화. 결행

그로부터 며칠간의 일상은 단조로웠다.

영주는 타이니를 불러 항상 부담스러운 아침을 같이했고, 타이니는 연무장 혹은 방 안에서 몸을 혹사해 가며 끝없는 수련을 이어 나갔다.

후우욱. 훅.

‘마나가 빨리 회복된다는 게 수련에도 좋긴 좋아.’

본디 과도한 훈련은 몸을 망치기 마련.

하지만 개량된 염체의 비전에 의해 빠르게 회복되는 마나가 곧바로 신체도 회복시키니, 보통 아이라면, 아니 인간이라면 며칠 만에 몸이 망가질 만한 수련도 꾸준히 이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타이니는 당초 예상했던 일주일이 다 가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어떤 선을 넘어서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우우웅.

의식이 확장됨과 동시에 새롭게 정립되는 감각.

체내에서 신체 능력을 증폭해 주는데 그쳤던 마나가 주변으로까지 뻗어 나가며, 오감을 제외한 여섯 번째 감각을 일깨워 준 듯했다.

물론 그에게는 익숙한 감각. 오히려 전생에 비하면 한참은 부족한 느낌일 뿐이지만, 그때보다 나아진 점도 있었다.

꾸우우욱.

우드득.

가볍게 쥔 손에 실리는 강력한 힘.

‘몸이 훨씬 튼튼해졌어.’

실제로 지난 사흘간 먹은 음식량이 비상식적으로 많기는 했다.

하루에 제 몸뚱이보다 몇 배나 많은, 거대 마수나 먹어 치울 만한 양을 먹어 댔으니까.

그렇게 섭취한 엄청난 양의 음식은 고스란히 분해되어 육체와 염체의 성장을 도왔다.

그 덕분에 짧은 기간 내에 키도 5cm가량은 더 자랐고, 한껏 압축된 몸에는 호리호리한 체형에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힘이 꽉꽉 들어찼다.

그렇다고 움직임이 둔해지는 느낌도 아니었다. 오히려 작은 몸에 꽉꽉 응축된 힘만큼 탄력이 더해진 듯, 느껴지는 힘 이상으로 훨씬 빠르고 부드러운 움직임도 가능해진 것이다.

‘기대 이상이야.’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의 육체는 분명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것은 전생의 경우에 비추어 봐도 확실했다.

크고 강해지기만을 열망했던 의지에 영향을 받은 염체는 그의 육체를 2m 50cm의 괴물로 성장시켰었는데, 그때 당시보다 육체적 탄성과 밀도가 더 높은 것 같다는 느낌이 확연하게 들었다.

물론 체격의 차이가 있는 만큼 발휘할 수 있는 힘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겠지만 말이다.

‘그때처럼 쓸데없이 커질 필요는 없어. 몸이 크다고 꼭 강한 것은 아니니까.’

거기다 전생처럼 규격 외로 커지면 일상생활이 상당히 불편해진다. 결국 그가 살아가는 곳은 인간의 사회지, 오우거 같은 덩치 큰 괴물의 무리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무작정 커지는 것보다는 지금이 더 좋다.’

생각이 바뀐 만큼, 아마도 현생에서는 타고난 체격 이상으로 커지지는 않을 것이다.

우웅.

육체와 완전히 일치화된 염체 역시 타이니의 결정을 지지하듯 진동했다. 그의 열망이 반영되었던 전생의 괴물 같은 덩치가, 염체와 육체 사이의 불협화음을 만들어 낸 원인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 이게 맞는 거야.’

자연스러운 몸의 형태를 유지한 상태에서 마나의 힘으로 한없이 힘을 응축하는 것.

쿵.

작은 몸으로 발을 구르자 묵직한 소리가 땅을 울렸다.

2단계에서 이 정도 밀도를 가진 몸이라면, 나중에는 정말 겉으로는 평범해 보여도 그 속은 괴물 같은 수준이 될 것이다. 전생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로 말이다.

다만 그렇게 되면, 생각 이상으로 늘어날 몸무게가 조금 문제가 되긴 할 것이다.

“이거 늪 같은 데서 전투할 때는 곤란하겠는데…….”

무르고 질퍽한 땅 위에서 싸우게 될 상황을 떠올린 타이니는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극히 예외의 경우를 상정한 것. 7단계, 오러유저의 경지에만 이르러도 해결될 문제에 불과하다.

그러니 당장은…….

씨익.

“좋은 거지.”

이른 성취가 만들어 낸 기쁨을 온전히 즐기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이런 몸이라면.

‘……생각보다 쉽겠어.’

두 번째 계획 역시 애초의 생각보다 원활하게 이뤄질 것 같았다.

며칠간 똑같이 반복된 타이니의 일과는 수련의 성과를 본 다음 날도 똑같았다.

영주와 아침 식사를 함께하고, 바로 기사 연무장에서 훈련. 기사 식당에서 폭식 후 다시 훈련.

벌써 나흘째 주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꼬마 기사의 모습에, 주변의 시선도 점차 흥미를 잃어 가고 있었다.

‘좋아, 이제는 몸에 익숙해졌어.’

후.

벌써 어둑해진 하늘 아래에서 깊은숨을 뱉어 낸 타이니는, 흐르는 땀을 여유롭게 닦아 내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그때, 멀찍이서 연무장을 향해 다가오던 기사 한 명이 타이니와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발걸음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하…….’

그랜트의 꼴사나운 패배 후, 영지 기사들은 하나같이 타이니를 피했다. 알고 보니, 그 거한 그랜트가 이 작은 영지에서는 단장 다음의 실력자로 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덕에 굳이 타이니가 있는 기사 연무장에 들어오는 병사도 없었으니, 더 이상 경지가 올랐다는 것을 숨기느라 대충 훈련할 필요도 없었다.

‘뭐, 들켰다 해도 별 상관은 없지만.’

타이니는 피식 웃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식당으로 향했다.

그가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숙수가 날 듯이 뛰어나와 고개를 숙였다.

“타이니 님, 오셨습니까. 식사는 이미 준비해 놨습니다.”

숙수가 가리킨 곳에 쌓인 엄청난 양의 음식 더미는 어제보다도 풍성해 보였다.

주변에서 그의 행동에 흥미를 잃어 가는 것과는 별개로, 영주의 총애를 받는다는 것이 확실해진 이상 시종들의 태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식당에서 마주치는 시종들 역시 깍듯하게 인사를 하며 최대한 정중하게 대하는 것을 보니, 평소에 영주가 아랫사람들을 얼마나 엄하게 대하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물론, 부담스럽다고 호의를 거절할 필요는 없었다.

“고맙네.”

이미 시종들이 그를 차기 필레스 기사단장쯤으로 생각하고 수군거리는 것을 들은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그런 모습이, 현 기사단장의 눈에는 좀 거슬린 것 같았다.

“이젠 거의 자기가 귀족인 줄 아는구나, 꼬마.”

불쾌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크란의 모습이 보였다.

각진 얼굴 탓에 딱딱해 보이는 인상이 더욱 굳어진 모습.

타이니는 그에 굴하지 않고 웃으며 대답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단장님.”

처음에 적대적으로 반말을 하던 때는 언제고 새삼 깍듯한 태도.

그에 살짝 멈칫하던 크란은 이내 더욱 싸늘해진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

“……영주님께서 네게 무장을 맞춰 주라는 지시를 내리셨다. 따라와라.”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는 듯 할 말만 하고 돌아서는 크란.

어쩌면 일부러 식사 시간 직전을 고른 것이 아닐까 싶은 정도로 공교로운 타이밍이었다.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속이 좁을까.’

사실 아무리 기사의 무구가 중요하다지만, 그런 업무를 다른 기사도 아니고 기사단장에게 직접 시켰다면 그의 배알이 꼴릴 것 같기도 했다.

‘뭐, 어차피 잘됐다.’

안 그래도 이자에게 필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직접 찾아갔을 것이다. 물론 그랬다면 그 방문은 지금처럼 호의적으로 이어지지 않았겠지만 말이다.

돌아선 크란의 허리춤을 보는 타이니의 시선이 살벌하게 빛났다.

잠시 후.

“영주님이 네놈을 얼마나 높게 평가하시는지 알 거다. 감사히 여겨라.”

끼이익.

기사들만 열쇠를 받을 수 있다는 무구 창고로 들어설 때 크란이 한 말이었다.

앞을 지키던 병사들까지 전부 쫓아내길래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는가 싶었지만, 창고 안을 대충 훑어본 타이니는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잘 제련된 강철 무구들은 분명 값비싼 것이기는 했지만, 그의 눈에 차는 것은 없었다.

‘뭐, 이런 곳에 아티팩트가 있을 리도 없고.’

갑옷이야 당연히 몸에 맞는 것이 없었고, 가장 익숙한 워해머 형태의 둔기는커녕 메이스 비슷한 것조차 없었다.

‘번외 소득은 포기다.’

타이니는 아쉬운 마음을 감추며 크란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의 허리춤을 가리키며 물었다.

“단장님의 검 같은 걸 받을 수 있는 겁니까?”

그에 크란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흥, 이게 그냥 일반 양산품 철검으로 보이나? 검의 명가 로저스에서 만든 명품 ‘그리우스’다.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을 탐하지 마라, 꼬마.”

크란이 자랑스럽게 툭 쳐 보인 허리춤에는 그의 애검이 달려 있었다.

저번에도 보았던 검이지만, 새삼스레 손잡이와 검집에 새겨진 꽃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명인이 벼린 날카로운 검에 은은한 마나까지 느껴지는 것을 보니, 분명 마법이 인챈트된 아티팩트다.

이런 지방 기사의 연봉을 몇 년을 모아도 살 수 없는 명품이란 말이 마냥 허풍은 아닌 듯했다. 저 검을 사는 데에 필레스의 주민이나 인베더의 여자, 거지패의 고혈이 상당수 흘러 들어갔을 것이라는데에 손모가지를 걸 자신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살기가 치밀어 올랐다.

“분수에 안 맞는 건 피차일반 아닌가요? 제가 보기엔, 그 검에는 오히려 제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만.”

조용히 흘러나온 목소리. 하지만 그것을 바로 앞에 있던 크란이 못 들을 리는 없었다.

“……네놈, 지금 제정신이냐?”

크란이 황당해하는 것이 느껴졌지만.

“좋은 무구는 정말 실력이 있는 사람이 쓰는 게 옳지 않겠습니까.”

“하, 네놈. 진짜 정신이 나갔구나!?”

크란으로서는 화가 치밀어 오를 수밖에 없었다.

“영주님을 위해서도 말입니다.”

타이니가 지나치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만한 여유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한 것이냐!”

버럭 소리를 지르는 크란의 목소리에 주위를 지나가던 시종들과 병사들이 목을 움츠러트리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정 못마땅하시다면, 당장 실력을 겨뤄 보시겠습니까? 제가 진다면 목을 내놓겠습니다.”

계속된 도발에 결국 크란의 눈이 뒤집혔다.

“이놈!!”

그리고.

우드드득.

쿵.

쾅.

요란한 소리가 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가에 시퍼렇게 멍이 든 타이니가 천을 둘둘 감은 ‘막대기’를 짚은 채 창고 안에서 쩔뚝이며 걸어 나왔다.

“죄송합니다, 단장님!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창고 안쪽을 향해 큰 소리로 사과하며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타이니.

그 모습을 많은 병사와 시종들이 목격하였고, 타이니가 다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모두가 그 시선에서 더 멀어지기 위해 황급히 발을 옮겼다.

그랬기에, 그 창고에 함께 들어갔던 누군가가 다시 나오지 않은 사실에 의문을 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타이니 님, 훈련 잘 끝내셨습니까? 그런데 몸 상태가……?”

“몰라, 크란 경이 무슨 억하심정이 있으신 건지.”

“아……. 쉬십시오, 타이니 님.”

무언가 짐작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시종을 두고 돌아서는 타이니.

그 후로도 마주치는 시종마다 비슷한 의문을 보였고, 타이니는 그때마다 비슷한 대답을 건네며 넌더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그러니, 말을 거는 시종들 중 누구도 쩔뚝이는 발을 지탱하는 천으로 감싼 막대기의 존재에 의문을 품지 않았다.

그렇게 타이니는 평소보다 배의 시간이 걸려서야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달칵.

문을 걸어 잠그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새에 어두컴컴해진 밖, 타이니는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창밖으로 가볍게 몸을 날려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콰직.

덩치에 비해 무게가 많이 나가는 탓에 창문이 흔들리며 약간의 소음을 일으키긴 했지만, 압도적인 근력과 마나의 힘이 몸을 지탱해 주니 바람처럼 가볍게 움직일 수 있었다.

‘영주의 침실은 3층.’

필레스에서 쌓은 악질적인 평판은 둘째 치더라도, 흑마법사라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인간 말종 확정이다.

악마는 결코 제물 없이 힘을 빌려주지 않으니까.

2서클이라면, 그 힘을 얻기 위해 이미 수백의 주검이나 수십의 산 제물을 바쳤을 것이다.

그러니.

‘죽어 마땅하지.’

어쩌면 인베더에서 사라진 수많은 여자나 거지패 중 일부는 그와 관련이 있을지도 몰랐다.

콰직.

그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무심코 손에 힘이 들어가 벽면에 작은 흔적이 남았다.

하지만 그 반동으로 벽을 타고 오르는 타이니의 움직임은 무섭도록 빨랐다.

* * *

“저, 오, 오늘 밤 시중은…….”

“필요 없다.”

티몬 폰 필레스는 안도하는 시종의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짧게 혀를 찼다.

‘귀족이자 미남인 이 몸을 거절할 여자는 없을 텐데.’

괜히 자존심이 상해 분노가 치밀었지만 한동안은 체벌도, 여자도 자제해야 했다.

“……나가 봐.”

그분이 오신다는데 흠 잡힐 거리를 남겨 둘 수는 없으니까.

“예, 영주님.”

시종을 내보내고 나자 넓은 방에 침묵이 찾아왔다.

그 침묵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며칠 뒤, 그분이 녀석의 핏줄을 확인하시기만 하면 출셋길이 열린다.’

그 생각만 하면 며칠 쾌락을 참는 것 정도야 어려울 게 없었다.

유일한 걱정거리라면, 혹시 녀석이 ‘그 가문’ 출신이 아닐 경우.

그럼 그놈은 물론이고, 자신 역시 끔찍한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몰랐다.

울프, 그 뒷골목 깡패 놈은 조직의 실험체이기도 했으니까.

그 실험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감독자인 자신도 몰랐지만, 그렇게까지 비밀에 부친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그렇게 추론하고 있었다.

물론 정말 그렇다면, 실험체는 울프뿐만이 아니겠지만.

‘실패에 대한 처벌은 똑같겠지.’

부르르.

조직의 처벌을 떠올리자 절로 몸이 떨려 왔지만, 그는 금세 평정을 되찾았다.

녀석은 아마 그 가문 출신이 맞을 테니까.

그 가문 정도의 비전이 아니라면, 아무리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그 나이에 기사를 이기는 말도 안 되는 실력을 갖출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검은 머리, 검은 눈이라는 것이 결정적이다.

“그날이 기다려지는군.”

꿀꺽. 꿀꺽.

필레스는 독한 위스키 한 병을 통째로 들이켜 욕망과 불안감을 달래고는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술과 약 덕에 금세 잠에 빠져들었지만, 그 포근한 잠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이이잉!

‘음!?’

영혼을 울리는 진동에 순간 잠에서 깨어난 티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자신의 방 안에 은밀히 걸어 놓은 경보 마법이 이상을 알리고 있었다. 흑마법사임을 감춰야 하니 저주나 살상 마법을 대놓고 걸어 둘 수는 없지만, 보안이 철저해야 하는 만큼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해 둔 것이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마법을 걸어 놓았을 뿐, 이 구석진 영지에서 누가 감히 그 주인을 해하려 할까 싶은 생각에 긴장이 풀려 있었다.

‘시종이 쓸데없는 일로 들어온 거겠지.’

귀찮게…… 나중에 혼쭐을 내 주마.

‘아니, 아예 제물로…….’

술기운이 가시지 않아 둔해진 머리를 굴리려다 보니 금세 졸음이 밀려왔다.

필레스가 다시금 깊은 잠에 빠져들려는 순간.

“천벌이야. 영주.”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그가 눈을 부릅떴을 때는 이미 차가운 무언가가 그의 심장 깊숙이 파고들고 있었다.

“컥!”

‘그분’의 마법으로 은밀히 감춰진 마기의 서클마저 산산조각 내 버리는 싸늘한 냉기.

그 정체는 꽃문양을 새긴 손잡이에 마나가 흐르는, 값비싸 보이는 검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