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정리 (2)
“아니, 이게 대체……!”
“람 님!”
“이런……!”
기사, 람이 돌아서는 순간 이미 모든 것은 끝났다.
남은 울프 패거리들은 타이니의 눈치를 보며 도망치지도 못한 채 울상을 지을 뿐이었다.
정확히는, 그들의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거대한 반투명한 늑대 때문에.
그런 건달들을 계단 위에서 차갑게 내려다보던 타이니가 가벼운 박수 소리로 놈들의 시선을 끌었다.
짝.
“모두 집합.”
마나가 실린 박수인지라 그 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 없건만.
건달들은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가만히 타이니를 응시할 뿐, 좀처럼 움직이지 못하고 멀뚱히 서 있기만 했다.
“가장 늦게 오는 두 놈은 평생 다리를 못 쓰게 만들어 주겠다.”
- 크아아앙!
“으아악!”
타이니의 협박 때문일까, 아니면 월랑의 포효 때문일까.
그제야 비명과 함께 돌진한 양아치들이 순식간에 계단 아래로 모여들었다.
물론 개중에는 당연히 늦은 놈이 있었고, 타이니는 직전의 협박을 그대로 실행했다.
우드드득.
“끄아아악!”
“아아악! 사, 살려…….”
반투명하던 몸을 작게 실체화한 월랑이 주인의 의지에 따라 두 놈의 다리를 가볍게 박살 냈다.
“으으으.”
소름 끼치는 비명 뒤로 이어진 신음에 건달들이 차마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벌벌 떠는데, 그들의 앞에 선 검은 머리의 꼬마는 나이에 도통 어울리지 않는 비릿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너희 양아치들은 왜 한 번 말해선 들어 처먹질 않을까?”
……네가 너무 무섭잖아.
건달들의 뇌리에 동시에 같은 대답이 스쳤지만, 그 말을 자신 있게 내뱉을 수 있는 용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지시를 한 번에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두 사람이 다리 병신이 됐다.
일말의 동정심도 없다는 듯 차갑게 내려다보는 눈빛을 마주한 건달들은 알 수 있었다. 눈앞에 꼬마는 자신들을 사람이 아닌 물건, 아니 그 이하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자연히 엄습해 오는 공포감에 다들 입을 꾹 다물었지만, 그 와중에도 타이니의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귀는 쫑긋 세우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자세를 확인한 것인지, 타이니가 이내 바로 다른 명령을 내렸다.
“도망친 놈들을 전부 모아 와라. 한 시간 주겠다. 그리고 인베더에 일하는 여자들과 구걸하는 애들도 싹 불러 모아.”
“전부…… 말입니까?”
자신도 모르게 반문한 누군가가 화들짝 놀라 스스로 입을 틀어막는데, 다행히도 무자비한 폭력이 아닌 평범한 대답이 들려왔다.
비록 그 내용은 무시무시했지만.
“그래, 전부. 시간을 초과하면 분당 한 놈씩 병신으로 만들어 주겠다. 물론 이대로 도망치다 내 손에 잡히면 그대로 죽는다.”
담담한 어조라 더욱 소름 끼쳤다. 무엇보다, 분 단위로 시간을 잴 수 있는 시계 같은 보물은 울프의 저택에도 없었다.
즉 타이니의 말은 조금이라도 늦으면 죄다 족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차라리 도망을 쳐 볼까도 싶었지만.
“여기 늑대의 정령이 너희들을 감시할 거다. 도망칠 자신이 있다면 어디 한번 도망쳐 봐. 산 채로 찢기는 것도 특별한 경험일 테니.”
- 크르릉.
이어진 말을 듣는 순간, 그 선택지는 모두의 뇌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자연스레 아부를 하려는 놈까지 나왔다.
“헤헤. 보, 보스. 그럼 내성에 파견 나간 창녀랑 거지새끼들도 전부 불러 모읍니까?”
남은 패거리 중에서도 간부라고 할 수 있는 자, 스카가 얼굴의 흉터를 씰룩이며 손을 비볐다.
‘이런!’
‘내가 먼저 할걸.’
그 모습을 보며 다른 기회주의자들이 아쉬움에 눈을 빛냈지만.
뻐어어억.
“끅!?”
느닷없이 다가온 늑대의 발이 스카의 턱을 후려치자, 그는 비명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이빨과 핏물을 토해 내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 왜?
공포에 질린 패거리의 시선이 다시 타이니에게 모이는데, 그들의 꼬마 보스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여자’들과 ‘아이’들을 전부 데려오라는 거다. 알겠어?”
남은 건달 중 태반은 타이니가 정정한 단어의 차이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에게 있어 여자는 곧 창녀, 아이는 곧 구걸조의 거지새끼를 뜻하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지금 의문을 표해서는 안 된다는 것만큼은 모를 수가 없었다.
“지금부터 한 시간이다. 다 꺼져.”
결국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깡패들은 미친 듯이 저택 밖으로 달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일단 시작은 문제없고…….’
앞다투어 달려 나가는 울프 패거리의 뒷모습을 보며, 타이니는 차갑게 눈을 빛냈다.
정말로 월랑을 놈들에게 딸려 보낼 필요는 없었다. 월랑은 하나고 놈들은 수십이니, 애초에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전생의 경험상, 이런 식의 폭력이 동원된 협박을 받으면 뇌가 공포로 굳어 딴생각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나 약물에 절여져 제 기능을 상실한 양아치들의 뇌라면 더더욱.
‘최대한 빠르게 정리한다.’
이 필레스 영지에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일주일 안에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를 찾아갈 것이다.
- ……나를 찾아오게. 내가 자네의 그 재능을…….
“과연 뭘 해 주실지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공작.”
이십 년 전, 이 시점에도 이미 초인의 경지에 올라 있을 옛 동료를 떠올린 타이니가 오랜만에 진심에서 우러난 미소를 지었다.
협박의 효과는 상당했다.
한 시간이 지나기 전에 저택으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중 가장 앞장선 것은 붉은 머리의 소녀.
“타이니!”
피투성이가 된 타이니의 몰골을 보고 안색이 파랗게 질린 엠마가 부리나케 그를 향해 뛰어왔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짓던 타이니는 그녀가 가까이 온 순간 슬쩍 물러섰다.
“왜?! 어디 다친 거야!?”
“안 다쳤어. 옷 버리니까 가까이 오지 마, 엠마.”
“야! 너, 대체…….”
“설명은 천천히 해 줄게. 일단 믿을 수 있는 사람들 몇몇만 모아서 날 따라와.”
그 말에 엠마는 놀란 마음을 조금씩 추슬렀다.
온몸에 피가 묻어 있긴 했지만, 타이니는 정말 다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저 피는…….
그제야 엠마의 눈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저택의 핏자국들이 들어왔다. 더하여 소년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몸을 움찔 떨며 눈길을 피하는 건달패들의 모습도.
‘설마 타이니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실, 한 달 전 에리나의 장례식 때부터 타이니가 변했다는 것은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울프 패거리가 작은 소년에게 굽실거리는 광경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장례식 이후로 한 달간, 대체 무엇이 이 아이를 변하게 했을까.
무엇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어지게 한 것일까.
“뭐 해? 믿을 만한 사람을 추리라니까?”
“어, 으응.”
소년의 거듭되는 재촉에 엠마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당장은 모든 의문을 접고 소년의 말에 따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엠마의 시선이 그녀의 뒤를 따라온 이들을 훑었다.
누군가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고, 누군가는 겁에 질린 듯 떨고 있었다.
그 와중에 무언가 이득이 될 만한 게 있는지 탐욕스러운 눈으로 주변을 살피는 이들도 있었다.
‘믿을 만한 이들이라…….’
대다수가 유민이나 빈민가의 아이로 태어나 울프 패거리의 수작에 휘말려 인생의 밑바닥까지 온 이들.
모두가 불쌍한 이들이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오랜 세월 그들이 겪어 온 험난한 인생은 사람을 타락시키기도 했다. 처참한 환경, 그리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절망감은 제아무리 선한 인간이라도 이기적으로 바꿔 놓기에 충분했으니까.
그랬기에 인베더의 몸 파는 여자들과 거지패들 중 절반 이상은 절대 신용할 수 없는 잠정적 악인이나 다름없었다.
약자가 전부 착하다고 믿는 것은 세상을 모르는 이의 순진한 생각일 뿐.
‘에리나가 너무 특이한 경우였지.’
그야말로 진흙탕에 핀 연꽃 같은 사람이 바로 에리나였다.
그리고 그 연꽃이 맺어 낸 열매가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었다.
어떻게 이리 한순간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쩌면 그 열매가 진흙탕을 다시 맑은 물로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 알았어. 일단…….”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말은 밑바닥 인생 사이에서도 통하는 진리인 걸까.
결국 엠마가 선택한 동료들은 평소 에리나와 조금이라도 가까이 지냈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잠시 후, 그녀를 포함해 여섯 명의 여인이 무수한 시선을 받으며 타이니를 따라 저택의 2층으로 올라갔다.
“윽……!?”
“이런…….”
주춤거리며 울프의 집무실로 들어선 여자들은 곧 처참한 모습으로 쓰러져 있는 울프와 랜더스 형제를 발견하곤 질겁했다.
“헉……!”
“세상에…….”
그러다 이내 침착을 되찾고 시체를 살폈다.
험하게 살아오며 볼 꼴 못 볼 꼴 다 겪은 그녀들이다. 인베더에서 시체를 보는 일도 잦지만 않을 뿐, 달에 한 번은 겪는 일이었다. 하지만…….
“……울프?”
시체의 정체를 깨달은 그녀들의 표정이 경악에서 분노로 바뀌었다.
“이, 이, 이…….”
“씨X 새끼가!!!”
격앙된 어조로 터져 나오는 욕설. 평생에 걸친 분노가 폭발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녀들의 인생을 나락에 빠트린 주범의 시체가 형태조차 알아볼 수 없게 망가지기까진 불과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흐윽.”
“흑.”
“으으으.”
상기된 안색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이들. 개중에 둘은 감격 어린 표정으로 눈물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엠마였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눈물을 닦아 낸 엠마가 울먹이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나, 난 잘나가는 상인 가문의 딸이었어. 근데 이놈이 우리 집을 망하게 하고, 날 강제로…….”
불쌍하긴 했지만 인베더에 사연 없는 이가 어디 있을까.
신파에 가까운 그 하소연을 일일이 들어 줄 시간은 없었다.
무엇보다 안아 주고, 보듬어 주고, 따뜻하게 감싸는 것은 괴력의 기사가 은혜를 갚는 방식이 아니었다.
‘정확히는 못 하는 거지만.’
에리나 누나에게서 말고는 그런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으니, 줄 줄도 모르는 것이다.
대신 다른 방법으로 갚아 줄 자신은 있었다.
바로.
“그 원한만큼 가져가.”
화끈한 금전 치료.
그러나 엠마는 그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뭐?”
“저기 금고 보이지? 저게 울프의 전 재산일 거야. 너의 원한만큼 가져가라고. 물론,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서 좀 남겨 주면 더 좋고.”
누나가 남기고 간 유산, 당당하게 살며 이름을 떨치겠다는 인생관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야 필요한 만큼 벌면 그만이다.’
타이니는 여태껏 이런 자신감으로, 필요 이상의 돈은 거의 주변에 뿌리면서 살았다. 좀 더 정확히는, ‘보답’의 목적에 가까웠다.
물론 돈이 본질적인 아픔을 치유할 수 없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아픔의 일부나마 덜어 내 주는 것에 돈만 한 게 없다는 것 또한, 그는 경험상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그 호의를 접한 이의 대부분이 처음에는 당황스러워한다는 것도.
“……뭐?”
엠마는 금화가 가득한 금고의 안쪽과 타이니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지만 타이니의 대답은 처음과 같았다.
“나머지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전부 필요한 만큼 가져가고, 남은 돈은 동료들이나 애들한테 나눠 줘. 필레스의 환락가, 인베더는 오늘부터 영업 중지야.”
“뭐!?”
화들짝 놀란 여자들은 잔뜩 커진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저, 정말?”
끄덕.
“정말이니, 타이니?”
“그렇다니까.”
“저, 정말로…….”
“어차피 그냥 두면 다 영주 손에 들어갈 것들이야. 전부 가져가.”
영주가 울프의 뒷배라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
인베더의 피착취자들이 가장 증오하는 대상이 울프와 그 패거리라면, 그다음으로 증오하는 자가 바로 영주였다.
그러니 남는 보물이 영주에게 넘어갈 거란 말은 엠마를 비롯해 주저하던 여자들의 마음에 불을 붙였다.
“그럼 안 되지.”
“다, 다 가져가자!”
“애들한테 나눠 주고, 남는 돈으로는 장사할 거야! 물장사 말고!”
순식간에 행동에 나서는 여자들.
하지만 가장 먼저 금고로 뛰어갈 것 같던 엠마는 순간 주춤하며 타이니를 바라보았다.
“……근데, 그래도 돼? 영주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데?”
“되고말고. 영주는 이제 여기에 신경 쓰지 못할 테니까.”
살벌하게 웃는 타이니의 손에는 두툼한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