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다시 결심하다
“시체?”
“……그래, 직접 처리하겠다고. 그러니 내놔. 어디 있어?”
“하…….”
게릭은 어처구니없다는 눈으로 자신의 허리춤에도 닿지 않는 꼬마를 내려다보았다.
기분 나쁜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는 말을 섞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솟구칠 정도였다.
하지만 창백한 안색과 푸른 입술, 당장 쓰러져 죽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은 아무리 포악한 그라도 함부로 손을 대기 힘들 정도였다
“꼬마, 너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지는 알고…….”
“알아. 내 누나를 내가 묻겠다는 거야.”
“하, 이런 건방진 새끼가…….”
절로 손이 올라가려는데,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검은 눈동자가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괜히 건드리면 피를 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인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
‘이런 꼬마한테?’
좁디좁은 속에 그나마 남아 있던 자존심이 불길한 직감을 좋을 대로 해석했다.
‘그래, 피를 보긴 보겠지. 한 대 치기라도 하면 피 토하고 죽을 것 같으니까. 그럼 나만 귀찮아져.’
킁.
콧방귀를 뀌며 꼬마를 외면한 대머리는 퉁명스레 턱짓으로 북쪽을 가리켰다.
“힌스 영감에게 찾아가 봐. 어제 바로 보냈으니, 아직은 그 집에 있을 거다.”
창녀의 죽음에 누가 정식으로 장례를 치러 줄까.
‘어쩌면 벌써 어디 멀리 숲속에 갖다 버렸을 수도.’
바로 떠오르는 악담은 굳이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찜찜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역시 나는 너그러워.’
그래, 그래서다.
대머리 건달이 자신의 동물 같은 직감과 자존심 사이에서 자기합리화에 빠져 있는 동안.
꼬마, 타이니는 진작에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누나…….’
전생에서는 누나의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추스른 뒤에는 모든 것이 너무 늦은 뒤였다.
아픈 몸을 이끌고 물어물어 힘겹게 찾아간 숲속 외딴곳에는 이미 들짐승이 물어 갔는지 핏자국조차 남아 있지 않았으니.
그 숲에서 목놓아 울다 기절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거듭된 육체적, 정신적 충격. 정말로 죽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의 충격 속에서 마나(Mana)의 힘을 각성하지 못했다면, 그 숲속에서 죽고 말았을 것이다.
그때 얻은 힘을 죽은 누나의 축복이라 여긴 당시의 자신은, 각성한 사실을 철저히 숨긴 채 힘을 길렀다.
마나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 기사의 종자, 수련 기사가 될 수도 있었지만, 이곳 필레스 영지의 영주는 울프의 뒷배나 다름없는 자였다. 그의 밑으로 들어가는 순간, 복수는 불가능해지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역겨운 곳에 누나를 남겨 두고 싶진 않아. 하지만…….’
누나의 시체가 이름 모를 짐승의 먹이가 되는 것이 더 싫다. 그리되면 여신의 축복도 받지 못한다고 하니,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장례라도 치러 주고 싶었다.
타이니는 그 일념 하나로 걷고 또 걸어 영지의 북쪽,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장의사의 집 문을 두드렸다.
똑똑.
- 누구슈?
“손님.”
- 손님?
끼이익 소리와 함께 낡은 나무 문이 열리자, 그 안에서 뻐드렁니가 툭 튀어나온 고약한 인상의 노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뭐냐, 꼬마. 지금 손님이라고 말한 게 너냐?”
“그래, 어제 들어온 시…….”
……체.
끝맺지 못한 말이 목구멍에 턱 걸렸다.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억지로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누나 말대로.
그리고 괴력의 기사, 타이니의 신조대로.
“……우리 누나, 제대로 장례를 치러 주고 싶다.”
그 말에 뻐드렁니 영감, 힌스의 표정이 대번에 찌푸려졌다.
“돈이 있는지는 둘째 치고 말본새부터 고쳐야겠다, 버르장머리 없는 꼬마야.”
“돈이 더 중요한 거 아냐?”
인상을 쓰고 위협하는데도 오히려 당당하게 나오는 꼬마.
그 태도에 꺼림칙한 느낌을 받은 힌스가 한 걸음 물러섰다.
“……그렇긴 하지.”
“돈은 충분해. 우리 누나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겠다.”
“……하, 이 새끼.”
힌스가 백태가 낀 눈으로 타이니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초라한 의복은 거지새끼라 해도 믿을 만했고, 이제 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작은 덩치는 숟가락 하나 들 힘도 없어 보였다.
다만 무작정 내쫓기에는 태도가 너무 당당했고, 생소한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역시 찜찜했다.
“돈은?”
“누나 확인이 먼저.”
“……돈이 없으면 각오해야 할 거다, 꼬마야.”
“좋을 대로.”
타이니는 그 말과 함께 힌스를 밀치며 문 안으로 들어섰다.
퀘퀘한 썩은 내가 코를 찌르자 절로 인상이 일그러졌다.
하지만 집안을 샅샅이 둘러보는 타이니의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꼬마 새끼가…….’
이상하게 겁이 없다.
힌스가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서슴없이 방 안을 뒤지던 타이니는 이내 몇 구 되지 않은 시체 중에서 누나를 찾을 수 있었다.
스르륵.
익숙한 발 모양을 확인한 뒤 몸을 덮고 있던 지저분한 천을 걷어 내자,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는 검은 머리 여자가 보였다.
“……누나.”
- 다행이다.
자신이 깨어났을 때 보았던 그 흐릿한 웃음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참아 보려 했건만, 결국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쪽팔리게…….”
낡디낡은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 내고.
후.
작은 한숨과 함께 슬픔을 털어 냈다.
그때, 뒤쪽에서 불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확인했냐, 꼬마? 돈은?”
그 말에 타이니의 표정이 절로 일그러졌다.
그가 힌스에게 반말을 하는 것은 결코 예의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또한, 누나의 친구들이나 반쯤 동료였던 검제에게 건네던 친근한 반말과는 태도가 사뭇 달랐다.
- 사람이 아닌 자에게는 사람 대우를 하지 않는다.
전생에는 제법 유명했던 괴력의 기사의 신조.
그는 신조대로 철저히 사람을 가렸다.
건달이라서, 장의사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을 판단할 때 신분이나 직업을 보지 않았다.
그저 행동거지만을 볼 뿐.
‘이놈은 쓰레기니까.’
마을 유일의 장의사, 힌스의 평판은 마을 내에서도 그리 좋지 않았다.
부모를 잃고 우는 아이들에게서 전 재산을 장례비로 받아 낸다던가, 연고가 없는 시신은 관청의 돈을 받고도 들판에 갖다 버린다던가 하는 쓰레기 같은 짓을 태연하게 저지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과거의 누나 역시 그렇게 처분되고 말았으니, 당연히 그를 보는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끼이익.
“뭐냐, 그 눈은? 푸흐흐, 재수 없는 눈깔하고는. 돈이 없다면 각오해야 할 거다, 꼬마.”
힌스가 허름한 판잣집의 문을 닫으니 실내가 한순간 컴컴해졌다. 작은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햇빛만으로는 얼굴을 구별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하지만.
탁.
“은화 10개다. 장례비로는 충분할 거야. 사제를 부르고 사람을 동원해 정식으로 장례를 치러라.”
타이니가 품 안에서 꺼낸 작은 주머니, 그 안에 든 은화의 영롱한 빛깔은 어둠 속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누나의 거처에 숨겨져 있던 돈이었다.
- 우리 틴 독립시킬 돈이야. 그러니 꼭…….
몸이 어려진 탓인지, 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다시 하늘을, 아니 지붕을 올려다보았다.
내 앞길은 내가 알아서 할게, 누나. 이제는 편히 쉬어.
부디…….
억지로 눈물을 참는데, 그 감상을 깨는 감탄사가 들렸다.
“오……!”
음흉하게 웃는 힌스의 모습은, 안 그래도 흉한 그의 몰골을 더욱 끔찍하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흐흐흐, 그럼 충분하고말고.”
파리처럼 비벼 대는 손바닥이나 불쾌하게 웃어 보일 때 드러나는 뻐드렁니, 백태 낀 눈동자는 전혀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었다.
“장례는 지금 당장 시작한다. 바로 신전에 가서 사제를 데려와. 오는 길에 사람도 부르고.”
“흘흘. 장례라는 게 그렇게 벼락불에 콩 볶아 먹듯 하는 게 아니란다. 어련히 법도가 있기 마련이니 집에 가서 기다려라, 꼬마, 흐흐.”
나름대로 단호하게 말해 보았지만, 힌스는 어린아이의 말 따위는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돈은 놔두고?”
“그럼, 당연하지. 준비가 끝나면 부를…….”
콰지직.
음흉하게 웃던 힌스의 얼굴은 타이니의 손에서 부서지는 돌멩이를 보는 순간 딱딱하게 굳어졌다.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대륙 10대 기사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몸이다. 미약한 마나로도 육체의 한계를 넘는 힘을 순간적으로나마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물론, 힌스가 그러한 사정을 알 리는 없었다.
“……어, 허허. 이, 이게…….”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러가는 힌스의 눈을 보며, 타이니는 싸늘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에게 다가갔다.
“지금 바로 준비해. 개수작 부리지 말고.”
그 담담한 목소리를 들은 힌스는 이내 이성을 찾은 듯 다시 고자세로 나왔다.
“흘흘, 꼬마가 어디서 속임수를 배워 온 모양이구나. 어딜 어른을 놀리려…… 끄아아아악!”
타이니의 멱살을 잡으려던 그의 손이 우드득, 하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완전히 반대로 꺾여 버렸다.
쿵.
비명과 함께 꿇린 무릎, 낮아지는 자세.
자연히 마주하게 된 검은 눈동자. 그 안에서 일렁이는 지옥의 불길을 마주한 힌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끄, 끄악. 소, 손 좀……!”
“다음번에는 네 목이 으스러질 거야, 영감. 알아들어?”
“아, 알겠어. ……알겠습니다! 제, 제발……!”
“당장 실행해.”
“예, 예. 당연히 그래야 합죠.”
팔목이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에 힌스는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직접 닫은 문을 박차고 황급히 뛰어나갔다.
다시 수작을 부릴 엄두는 내지 못했다. 저 작은 몸으로 이런 힘을 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산전수전 다 겪어 본 힌스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마나유저(Mana-User)!’
최소 수련 기사의 자격을 갖춘 이능력자.
더구나 저렇게 어린 나이라면, 영주가 반드시 중용할 인재일 게 분명했다.
바람처럼 멀어지는 힌스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타이니는 이내 누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전생에는 보지 못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새겨 두기 위해.
* * *
장례 준비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당일에 급히 치르는 데다가, 그게 창녀의 장례라는 소식에 일꾼들조차 쉽게 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 불경한 장례는 여신의 저주를 받는다.
경전에도 쓰여 있지 않은 어처구니없는 미신이었다.
하지만 일꾼이 모이기만을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며칠이라도 시간을 끈다면 울프 패거리가 장례 비용의 출처를 의심하고 찾아올 염려가 있었다.
누나가 뼈 빠지게 일해서 모은 돈이지만, 놈들이라면 자신들의 것으로 여길 게 뻔했다.
당장은 놈들을 상대할 여력이 없으니, 서둘러 장례를 치르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서 타이니는 미약한 마나가 끊어지지 않게 조절해 가며 홀로 관을 끌어야 했다.
자연히 그 모습은 모든 이의 시선을 끌었다.
그그그그극.
힌스의 집에서 신전의 공동묘지로 향하는 길.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에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뭐야?”
“저렇게 어린애가?”
“쯧쯧.”
웅성웅성.
그 순간에는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보다 누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 힌스의 집에서부터 끌고 온 최고급 소나무 관이 바닥에 긁히고 있는 게 속상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최선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뒤를 돌아보자 자신의 뒤를 따라오던 장의사, 힌스 영감이 움찔했다.
이내 그가 변명하듯 붕대 감은 손을 들어 보였다.
“나, 난 손목이 지금…….”
‘……저 늙은이의 손목을 부러트리진 않았을 텐데.’
……아니 꺾더라도 좀 약하게 꺾었을 텐데.
이제 와 후회한다 한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후우.”
욱씬.
아직 치유되지 않은 육체가 비명을 질렀지만, 마음의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그랬기에 그는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관을 끌었고, 그 고행은 묘지에 자기 키보다 깊은 땅을 파는 내내 이어졌다.
다행히 사제는 쉽게 구해졌다.
정확히는 돈에 응답한 것이었다. 장례비로 지불한 은화 열 닢의 대부분이 저 사제의 손에 들어갔으니까.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여신의 이름으로 에리나 자매님의 안식을 기원합니다.”
사제의 인도를 따라, 타이니는 성호를 그으며 무덤을 내려다보았다.
‘누나, 그곳에서는 편히 쉬어.’
무덤 위에서 누나가 웃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 하늘 똑바로 보면서, 부끄럼 없이 당당하게.
‘그럴게, 누나.’
아마도 누나는 그저 스스로에게 떳떳하게 살아가길 바란 것뿐이겠지만, 그것만으로 어찌 그 한을 다 풀 수 있을까.
그러니.
전생에는 홀로 했던 맹세를, 소중한 이의 무덤 위에서 다시금 되새겼다.
“내 이름이 누나가 있는 곳까지 들리도록……. 나, 그렇게 멋지게 살게.”
지켜봐 줘.
반드시.
불끈 쥔 주먹 위에 떨어진 눈물도 더 이상은 흘리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