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해머-1화 (1/500)

1화. 죽음, 그러나…….

“지금!!!”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년의 기사가 피를 토하며 소리를 지를 때.

키가 2m는 훌쩍 넘을 듯한 거구의 기사가 바람처럼 허공에 떠올랐다.

이내 그 몸만큼 거대한 전투 망치가 이글거리는 오러(Aura)를 싣고, 그보다 열 배는 큰 괴물의 머리통을 벼락처럼 후려쳤다.

꽈아아아아앙!

전장 전체에 울려 퍼지는 폭음.

그것이 장장 칠 주야에 걸친 전투의 끝을 알렸다.

“흐, 흐흐흐. 정말이지 힘 하나는 끝내주는구나.”

쿨럭.

주저앉은 노년의 기사, 에스가르드가 부들거리는 손을 가까스로 들어 엄지를 세워 보였다.

거구의 기사, 타이니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에게 걸어갔다.

“내가 말했잖소. 뭐든 나한테 제대로 걸리면 다 한 방이라고.”

호기로운 말과는 달리, 거의 뭉개진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마수왕의 머리를 터트리고 바닥에 박힌 애병을 다시 들어 올릴 엄두조차 내지 못할 만큼.

게다가 후들거리는 다리와 점점 탁해지는 눈은 마지막 생명력까지 쥐어짠 일격의 후유증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하지만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진 않았다.

“얼른 일어나시오, 영감…… 윽.”

호쾌하게 손을 내밀어 상대를 일으키려 했는데, 오히려 다리가 풀려 꼴사납게 주저앉고 말았다.

쿵 소리가 제 귓가에도 들릴 정도로.

‘쪽팔리게.’

안타깝게도 다시 일어날 힘은 남아 있지 않았다.

생명력의 소진이 생각보다 더 빠른 듯했다. 주저앉는 순간 캄캄해진 시야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빌어먹을.’

마지막까지 멋지게 싸우다 죽고 싶었는데.

남에게 절대 보이고 싶지 않은 꼴을, 가장 보이고 싶지 않은 상대에게 보이고 말았다.

타이니가 밀려오는 자괴감에 입술을 질끈 깨물던 그 순간.

노쇠한 목소리가 다시 그의 귓전을 울렸다.

“허허, 괴력의 기사가 힘이 빠져 쓰러지는 꼴이라니. 이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는 게 아쉽구만. 흘흘.”

“보지 못한다니……? 혹시 당신도?”

“당신‘도’……? 그럼 자네도?”

마수왕의 마지막 공격을 막아 낸 이도, 그놈의 숨통을 끊어 낸 이도.

눈앞이 흐려질 때까지 생명력을 쥐어짜 이룬 위업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뒤늦은 깨달음에 놀라는 것도 잠시,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탄식이 터져 나왔다.

“하, X발…….”

“흐…… 젠장, 이젠 정말 모든 게 끝이로군.”

대륙 최고의 기사라 불리는 검제의 입에서 절망 섞인 혼잣말이 흘러나오자, 두 사람 사이엔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타이니는 그 무거운 분위기가 싫어, 애써 화제를 돌리려 했다.

“그래도 마수왕은 때려잡았잖소. 나머지는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해 주겠지.”

그러나 그 희망 섞인 이야기는 쉽게도 반박당했다.

“대륙 10대 기사가 전부 목숨을 내놓은 끝에 겨우 1군단장을 잡았네. 다른 괴물들이야 머릿수로 밀어붙여 잡는다 해도, 나머지 군단장들은? 또 마왕은?”

파괴의 권능, 오러(Aura)나 그에 준하는 힘이 아니면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한다는 군단장.

그들은 단순히 머릿수가 많다고 어찌할 수 있는 놈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정작 그 오러를 쓸 수 있다고 알려진 이들은 저기 쓰러진 1군단장, 마수왕 글러터니를 잡는 데 전부 희생되고 말았다.

……아니, 아직 전부는 아니지.

“젠장! 우린 아직 안 죽었잖소, 영감!”

“자네는 이 꼴로 살아남을 자신이 있나? 그럼 정말 다행이고.”

그럴 리가.

“……망할, 신전에서 용사니 뭐니 지겹도록 광고하지 않았소? 뒷일은 그들이 알아서 하겠지.”

“그 말을 믿나? 이제 겨우 스무 살 언저리의 애송이를?”

“흐……. 믿어야지 어쩌겠소.”

그래, 어쩌겠는가.

이젠 정말 끝이 다가오고 있다.

그들은 최선을 다했고,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적어도 타이니는 그렇게 생각했는데, 상대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아니, 아직 할 수 있는 게 남아 있긴 하네. 확신은 못 하지만.”

“……뭐든 있으면 해 보쇼, 영감. 이 판에 뭐든 아낄 여유가 있나.”

“그 전에 하나 묻고 싶은 것이 있네.”

“하, 노인네 진짜…….”

상황이 이따위로 흘러가지만 않았다면, 두 사람은 이렇게 오래 대화를 나눌 만한 사이도 아니었다.

대륙 10대 기사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이기는 하지만, 그중 괴력의 기사라 불리는 타이니는 유별난 면이 있었다.

좋은 말로 자유 기사라고도 했으나, 솔직히 말해 용병이나 별다를 것 없는 처지였다. 굳이 포장하자면 빈민가의 고아로 자라나 스스로의 힘으로 대륙 기사의 정점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앞에서는 찬사를 던지던 귀족들이 뒤에서는 험담을 나누던 광경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그런 그에게, 귀족 세계의 정점에 서다 못해 아예 검의 황제(Sword Emperor, 劍帝)라 불리는 에스가르드 폰 발렌티아는 상극이나 다름없는 인물이었다. 굳이 그는 모르는 과거의 인연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사람 가릴 때가 아니지. 이 판국에.’

서서히 감각마저 흐려지고 있었다.

몸 전체가 허공에 붕 떠오른 듯한, 동시에 한없이 가라앉는 듯한 느낌.

그 이율배반적인 감각에 완전히 사로잡히는 순간, 의식 또한 사라지고 말 것이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예감한 타이니는 남은 힘을 청각과 발성에 집중했다.

적어도 저 검제보다는 늦게, 한 마디라도 더 하고 죽을 것이다.

“뭐든 물어보쇼.”

비록 부질없는 자존심 때문일지라도 온 힘을 다해 생생한 목소리를 짜냈는데.

“자네 이름이 왜 그따윈가? 그 덩치에 타이니(tiny)라니, 안 어울려도 너무 안 어울리지 않나.”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돌아오는 질문이 이따위라니?

습관적으로 욕설을 뱉고 봤지만, 이내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몸만 멀쩡했으면 상대가 검제건 누구건 대가리에 워해머를 휘둘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와 그게 뭐 대수일까.

“……어렸을 때는 아주 작았소. 그때 우리 패거리 두목이 붙여 준 이름이요.”

이름을 날린 이래,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타이니라는 이름처럼 좁았던 속이, 죽음을 앞두고 조금은 넓어진 모양이었다.

‘전우……라서?’

귀족한테 전우라니, 자신이 생각해 놓고도 쓴웃음이 지어졌다.

“역시 그랬군. 그래도 빈민가 시절 쓰던 이름을 바꾸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네.”

죽을 때가 되면 원래 호기심이 많아지는 걸까.

“……잊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푸핫.

그 물음에는 기어코 실소가 터져 나왔다.

말할 수 없지. 특히 당신한테는 말이야.

“거기까지는 알 거 없잖소, 영감.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고작 그딴 거요? 아까 뭘 해 본다지 않았소?”

“그걸 위해서라도 자네에 대해 알아야겠거든.”

“무슨…… 소리요?”

타이니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젠장, 힘이 다해 간다. 검제는 아직 여력이 있어 보이는데.

‘좀만 더 버티자. 버텨라, 몸아.’

누가 그의 속을 들여다봤다면 생의 끝에서도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운다며 비웃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여태 그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인생이다.

밑바닥 빈민에서 기사의 정점에 서기까지.

그러니.

‘끝까지 무너지지 않는다.’

스으으.

그가 정신을 집중해 마력을 끌어모으는데,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왜 도망치지 않았나? 자네에게는 지켜야 할 것도 없을 텐데?”

“하, 어차피 마왕군은 세상 전체를 노린다고 한 게 당신 아니었나?”

“그래도 자네 입장에서는 여기서 이렇게까지 싸울 필요는 없지 않았나? 그간 고생깨나 했을 텐데.”

피식.

이 노인네는 이 와중에 뭐가 그리 궁금한 걸까.

이제는 오히려 자신이 궁금해질 지경이었지만, 정신을 분산할 여력이 없었다.

그는 가능한 한 의식을 유지하려 애쓰며 짧게 답했다.

“쪽팔리니까.”

“뭐?”

“모양 빠지는 게 제일 싫거든. 사내새끼가 어디서나 당당해야지, 도망은 무슨.”

“……푸흐흐, 흐하하하하! 자네 정말……! 하하하하!”

웃을 힘이 있어?

웃음소리를 들으니 확실히 검제는 아직 힘이 남아 있나 보다.

젠장, 나도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마력 수련을 했더라면.

아니, 적어도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기라도 했더라면.

‘아직 더 버틸 수 있었을 텐데…….’

아니, 그랬으면 저 마수왕의 골통을 혼자 깰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얄팍한 자존심이 아닌, 사실에 근거한 자신감이었다. 대륙 10대 기사 중 빈민가 출신은 자신밖에 없었으니까.

무술이건 마나연공법이건, 스스로 만들어 성취를 이룬 것도 오직 자신뿐이었다.

새삼 출신의 한계가, 힘겨웠던 유년 시절이 아쉽게 느껴지는데.

“좋아, 그거면 됐어.”

뭐가 됐다는 거야, 이 양반아.

어느새 웃음을 그친 검제가 다시금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불과 서른도 되지 않아 대륙 10대 기사가 된 재능. 심지어 명가의 가르침도 받지 않은 자기류의 성장. 아무래도 이 보물은 자네한테 쓰는 게 맞겠어.”

뭔 소리야?

영문 모를 이야기를 하는 검제에게 따져 묻고 싶었는데, 더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젠장.’

이게 내 한계인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오기까지.

언제나 고개를 쳐들고 떳떳하게 살아가려 노력했다.

남들이 출신만 보고 손가락질할 때면 더욱.

그렇게 살아온 결과가 이거다.

빈민가의 고아가, 마왕군의 1군단장을 죽였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잘 살지 않았나?’

역사에 남을 위업이다.

아쉬움은 없…….

‘……을 리가 있냐!’

애초에 이건 다른 군단장들부터 마왕까지, 그 골통을 전부 망치로 깨부숴야 끝나는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고작 그 첫 단계에서 무너진 것이다.

역사에 남을 위업은커녕 그 역사를 기록할 인류가 사라질 판이다.

본래대로라면 최후의 보루가 돼야 했을 7대 성물도 모두 사라진 지금, 인류는 멸망을 눈앞에 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빌어먹을.’

사무치는 안타까움에 절로 이가 갈리는데, 그 와중에도 검제는 계속 헛소리를 지껄이고 있었다.

“돌아가면 나를 찾아오게. 내가 자네의 그 재능을 제대로 살려 주겠네.”

이 영감이 미쳤나, 곧 죽을 마당에 뭐라는 거야?

내가 좀 더 빨리 가겠지만, 당신도…….

“물론 무작정 찾아온다 한들 과거의 내가 믿지는 않을 걸세. 그러니 이리 말하게.”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지? 과거?

“딸아이의 태명은 라일라. 나와 아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 이름에서 따왔다네.”

어쩌라고?

“그런데 사실, 나는 그 꽃을 별로 안 좋아했다네. 이게 핵심이야. 절대 잊지 말게.”

……헛소리 치고는 뭔가 본격적인데.

검제가 드디어 노망이 난 게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마저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자네의 재능이 제대로 개화한다면 이 위난도 이겨 낼 수 있겠지. 그래, 그 수밖에 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검제의 말과 함께 무언가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잠깐, 느껴져?’

감각이 사라졌는데?

점점 의식이 사라져 가는 와중에도 황당할 뿐이었다.

“명심하게. 가능한 한 빨리 나를 찾아오게. 자네가 어디 있는지는 몰라도, 아스란 제국의 발렌티아 공작가로…….”

검제의 마지막 말이 흐릿하게 들려오던 그 순간.

번쩍!

갑자기 새하얀 빛이 세상 전체를 물들이는 광경이 이상하리만큼 생생하게 느껴지며 의식이 멀어졌다.

* * *

오래전의 꿈을 꾸었다.

“얘야, 이름이 뭐니?”

따스한 목소리.

꾀죄죄한 자신의 옷에 닿으면 바로 더러워질 것만 같은 새하얀 장갑을 낀 손이 다가오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그러자 손길을 내민 이의 고운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해치려는 게 아니야. 도와주려는 거지.”

처음 듣는 목소리임에도 왜인지 믿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듯한 느낌이랄까.

가슴속이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타, 타이니(Tiny).”

“타이니?”

끄덕.

벙어리에 귀머거리 행세를 해야 한다던 두목의 명령도 순간 잊고 말았다.

“……귀엽구나.”

그 목소리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듣고 싶었지만, 곧 방해꾼이 나타났다.

“아가씨! 뭐 하시는 거예요! 그런 거지 새…… 흠, 흠. 어서 이리 오세요!”

“왜, 불쌍하잖아. 이렇게 작고 어린데.”

“아가씨가 신경 쓰실 일은 아니에요. 아가씨가 이러시는 게 알려지면 제가 아주 곤란해집니다.”

“……그, 그래도.”

“아이참. 이리, 이리 오세요.”

호들갑을 떨며 달려온 방해꾼의 투박한 손이 하얀 장갑을 낀 손을 잡아당기려 했다.

그런데 그때, 방해꾼을 등진 채 타이니의 품속에 들어온 새하얀 장갑이 무언가를 건네고 떠났다.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이 전해지는데, 그게 무엇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걸 가지고 나를 찾아와. 그럼 내가 도와줄 수 있어. 나 알지?”

어찌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

끄덕.

타이니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장갑의 주인은 투박한 손에 이끌려 멀어져 갔다.

- 아이참, 도와주는 것도 안 돼? 저렇게 어린데?

- 아가씨가 신경 쓰실 일이 아니라니까요. 저런 애들 가까이에 가시면 병 옮아요.

- 무슨…….

타이니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연히 품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노랗게 빛나는 반지 하나.

‘이, 이건……!’

그게 값비싼 금이라는 것은 어리고 무지한 자신도 알아볼 수 있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본능적으로 의심부터 해 봤지만, 한낱 거지 아이를 놀리기 위해 이런 복잡하고 비싼 장난을 칠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왜……?’

- 내가 도와줄 수 있어.

따스한 목소리가 다시금 귓가를 울리는 듯한 착각과 함께, 가슴 한구석에서부터 두근거리는 느낌이 전해졌다.

그것은 그가 살면서 한 번도 가져 본 적 없던, ‘희망’이라는 감정이었다.

‘도와준다고? 정말?’

귀족이 나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그녀의 말이 진실이라면, 나도 이 생활을 벗어날 수 있다.

‘나뿐만 아니라 누나도.’

하지만 그는 그 반지의 주인을 찾아가지 못했다.

“하!? 이 새끼가 벌써부터 꼼수를 부려!?”

뻐억.

퍽, 뻑.

어떻게든 숨겨 보려 했지만 결국 들키고 말았다.

타이니는 반항한 대가로 두목에게 죽기 직전까지 얻어맞은 뒤 반지를 빼앗겼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어린 시절 가장 소중했던 인연과도 영영 헤어지게 되고 말았다.

과분한 호의는 힘없는 이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그는 그때 깨달았다.

차라리 숨기지 않았다면.

반지를 받지 않았더라면.

그날의 기억이 끝없는 후회와 한으로 남아,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히 떠오를 정도로.

* * *

“틴, 정신 차려. 제발…….”

조용하고 나긋한, 한없이 그리운 목소리.

그래, 이 목소리였다.

너무나도 그리웠던 음성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누, 누나?”

“틴?”

힘겹게 들어 올린 눈꺼풀 사이로 누나의 얼굴이 보였다.

일을 할 때와는 다르게 화장기 한 점 없는 파리한 얼굴이었지만, 그마저도 여전히 예쁘기만 했다.

그때, 그 마지막 기억 그대로.

“……다, 다행이다.”

흐릿하게 지어 보이는 미소까지.

“……누나!!”

반가운 마음에 힘껏 소리치며 몸을 일으켜 보지만.

“……으윽.”

전신에서 느껴지는 짜릿한 고통에 허리를 세우는 것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잔뜩 찡그린 눈에 보이는 건 또래에 비해서도 확연히 작은 손과 발, 몸뚱이. 몸 상태마저도 그때의 기억과 똑같았다.

결정적으로.

“저, 정말 다행…….”

털썩.

자신을 간호했던 자세 그대로 쓰러지는 누나의 모습까지도.

“누, 누나……? 누나!!!!!”

과거의 가장 아픈 기억이, 눈앞에서 다시 한번 지나치게 생생히 펼쳐지고 있었다.

너무나도 실감 나는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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