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2화 가자! 이탈리아
명일 글로벌 무역센터 개관식은 인터넷으로 생중계가 됐다.
무엇보다 사전에 무역센터 로비 영상 디자인을 오한결이 했다는 소문이 전 세계로 일파만파 퍼지자, 이미 생중계 사이트가 오전부터 여러 번 다운되는 사태를 겪었다.
급히 명일그룹 전산팀에서 서버 용량을 두 배로 늘리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마음껏 들어올 수 있었다.
생중계 영상에 오한결과 친구들 그리고 신태진 회장의 모습이 잡혔다.
신태진 회장이 대표 연설을 마치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죽이 터졌고 행사장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아직 화면이 나오지 않은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노을이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아, 너무 떨려. 큰 스크린으로 보는 건 처음이잖아.”
이미 사전에 영상을 확인한 오한결이 말했다.
“아주 멋지던데. 기대해도 좋아.”
잠시 뒤, 사회자가 작품 공개 사인을 보내자, 건물 로비 설치된 백 미터가 넘는 스크린에서 불이 들어오더니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끝없이 펼쳐진 짙은 어둠의 우주가 화면을 가득 채웠다.
고요한 우주를 반짝반짝 별들이 조금씩 채워가더니 경이로운 은하수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숨 막히는 그 모습에 모두 홀려 있을 때, 저 멀리 푸른 구슬이 아주 영롱한 빛을 내며 회전하고 있었다.
푸른 구슬은 회전하며 크기가 점점 커지더니 화면 중앙이 가득 찰 정도로 크기가 커졌다.
사람들은 지구의 압도적인 영상에 모두 ‘오!’하고 탄성을 질렀다.
지구은 단순한 컴퓨터 그래픽의 매끈하고 화려한 이미지가 아닌, 화가가 붓으로 일일이 질감을 그대로 살린 엄연한 페인팅 작품이었다.
지구 표현의 바다와 육지의 디테일한 묘사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해 보였다.
그렇게 모두 찬사를 보내자, 노을과 최무열, 서정익 작가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아, 정말 개고생이었어.”
“맞아. 그리고 너무 행복했지.”
오한결은 세 사람을 등 뒤에서 토닥이며 말했다.
“모두 수고했어.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는데.”
오한결은 고개를 들고 다시 한번 우주 영상을 관찰했다.
개인전에 이어 두 번째 우주 시리즈인 이번 작품은 끝없이 펼쳐진 우주의 무한함과 그 안에서 유한한 생명체가 있는 지구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무한성과 유한성의 대비를 통해 우주의 조화를 꿈꾼 작품이었다.
* * *
2년 뒤.
많은 이슈를 몰고 다녔던 유코아 건물이 완성됐다.
화려한 행사를 통해 손님을 끌어모은 유코아는 전국에서 미술 재료를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유코아 일대 교통이 마비될 만큼 사람들이 분비자, 주변 상인들과 시민들의 불만은 커져갔다.
하지만 그건 유코아에겐 사소한 문제에 불과했다.
뉴스에서는 연일 유코아의 성공적인 한국 정착과 관련된 기사를 쏟아냈다.
반면, 아직 리모델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화랑거리에는 공사 먼지만 날릴 뿐,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마치 유령도시처럼 변해버린 화랑거리는 유코아 때문에 더욱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그렇게 다섯 달이 흐르고, 삼각지 화랑거리도 새단장을 마쳤다.
하지만 이미 한국 미술시장에 정착한 유코아의 인기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여전히 텅빈 삼각지 화랑거리를 바라보던 홍철수 사장이 애써 웃음을 지어보였다.
“어쩔 수 없지. 대중의 선택인데. 하지만 끝까지 장사를 포기하지 않을 거야.”
속상한 마음에 낮술을 한 화방가게 조성우 사장이 말했다.
“그래! 포기하지 말자고. 우리는 저렴하고 품질 낮은 물건은 취급 안 하잖아. 언젠가 사람들도 알아줄 거라 믿네.”
“그래, 우리 끝까지 버텨보세나.”
그렇게 말한 홍철수 사장이 건너편 골목에 우뚝 솟은 거대한 달팽이 모양의 건물을 바라봤다.
그건 오한결 미술관 건물로 몇 달 전 후원금 모금이 완료되자, 명일건설이 입찰받아 최신 기술로 빠르게 짓고 있었다.
이미 오한결 미술관은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치고 있어서 한국에 온 외국인 관광객은 필수코스로 오한결 미술관 공사 사진을 찍어갈 정도가 됐다.
“곧, 저 미술관도 완성되겠구나.”
* * *
오한결이 유코아에 방문했다.
그야말로 매장은 거대한 운동장 같이 넓었고 처음 보는 미술 재료도 상당한 높이로 쌓여 있었다.
오한결이 학생용 붓을 들고 관찰했다.
“와, 이게 오백 원이라고? 가격이 이럴 수가 있나?”
“여기 코너는 무조건 천 원 이하래요.”
근처에서 물건을 구경하던 서정익 자가가 어느새 오한결 옆에 서서 말했다.
“깜짝이야. 언제 왔어?”
“이 근처에 있었죠. 워낙 넓어서 어딜 갈 엄두가 안 나네요.”
그렇게 말하면서 오한결과 같은 붓을 손에 든 서정익 작가가 말했다.
“너무 저렴해서 놀랐지만, 사실 품질이 너무 안 좋아요. 이렇게 손으로 붓끝을 스치기만 했는데, 털이 숭숭 빠지잖아요. 이건 물감을 묻히기만 해도 아마 못 쓸 정도로 붓이 망가질 거예요.”
오한결이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렇게 품질이 안 좋은 건 본 적이 없어. 많이 심각하네.”
오한결이 물건을 사러 온 손님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오한결처럼 물건을 집어 보지만 선뜻 사려는 마음을 먹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품질 때문에 고민이 되나보군.”
급기야 서정익 작가가 불만을 폭발시켰다.
“이것 보세요. 물감이 딱딱하게 굳어 있어요. 쓰지도 않은 제품인데. 이거 너무 한 거 아닌가요?”
서정익 작가가 화가 나서 유코아를 빠져나가자, 급히 오한결도 그를 따라 건물을 나섰다.
오한결은 사람들의 호기심이 끝나는 시점에 유코아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졌다.
그런 오한결의 예상은 적중했다.
몇 달 후, 거짓말처럼 사람들은 유코아를 외면한 것이다.
유코아 건물 일대에 손님들 때문에 마비되던 교통 문제도 완전히 사라졌다. 심지어 주말에도 유코아를 찾는 손님들의 50%가 재방문을 꺼린다는 뉴스도 나왔다.
반면 리모델링을 끝내고 매우 깔끔한 외관을 자랑하는 화랑거리에는 손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이미 유코아에서 저품질에 실망했던 사람들은 화랑거리의 고품질 물건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 봐. 재료들이 다 고급이야.”
“이건 수제로 만든 것 같은데. 대박.”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좌판에 놓인 미술 재료를 구경하며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이제는 외국인들도 자주 보였는데, 대부분 오한결 미술관을 구경하고자 한국에 온 관광객들이었다.
아직은 오한결 미술관이 공사 중이라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지만, 얼핏 보이는 달팽이 모양의 예술적 건물에 모두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모두 미술관이 개관하면 다시 오리라 굳은 결심을 하고 돌아갔다.
오한결 미술관의 등장으로 화랑거리에 새로운 변화가 찾아왔다.
전 세계 수많은 거리 화가들이 삼각지 화랑거리에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다.
거리 곳곳에 좌판을 깔고 그림을 그려주는 프랑스 화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고 잠시 생계 때문에 붓을 내려놓았던 재능 있는 한국 화가들도 꿈을 좇아 화랑거리로 몰려왔다.
이상민 서울시장은 명일그룹과 MOU를 토대로, 그런 거리 예술가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예술 평론가들은 삼각지 화랑거리가 곧 프랑스 몽마르트 언덕을 능가할 정도로 세계적인 거리 화가의 명소가 될 거라고 확신했다.
관련 기사를 접한 오한결은 흐뭇하게 웃었다.
‘결국 원하는 대로 척척 되어가고 있네.’
석 달 후.
삼각지 화랑거리에 달팽이 모양의 오한결 미술관이 개관했다.
개관식은 서울시에서 주관할 정도로 규모가 큰 행사가 됐다.
미술관 앞에는 개관식에 참석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중 절반이 외국인인 만큼 오한결 미술관 개관식은 해외에서도 연일 화재였다.
특히 예술계의 유명인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연예계 스타, 스포츠 선수 등 셀럽들도 앞다퉈 개관식에 참석 의사를 밝혔을 만큼 개관식 인기는 하늘 높을 줄 모르고 치솟았다.
해가 지고 어둑해질 무렵, 드디어 개관식이 시작했다.
정장을 입은 오한결이 미술관 앞에 마련된 무대에 오르자, 사람들이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오한결 작가입니다.”
오한결이 인사를 하자, 이번에는 열정적인 박수 소리가 한참 동안 이어졌다.
“정말 꿈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오한결이 입을 열자, 옆 사람과 수다를 떨던 사람 모두 입을 다물고 오한결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솔직히, 이렇게 빨리 오한결 미술관을 짓게 될지 몰랐습니다. 저는 노년에 지을 생각이었거든요.”
“하하하.”
사람들이 오한결의 말에 크게 웃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는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제가 좀 재수 없죠?”
“하하하.”
“하지만 제가 말한 성공은 멋진 작품을 전 세계인들에게 선보이는 것만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예술보다 가족이 우선이었으니까요.”
오한결이 바로 앞자리 VIP석에 앉은 부모님과 동생을 보며 말했다.
“신께서 제게 특별한 능력을 부여했다면 분명 그건 가족의 행복을 위해 쓰라고 만드신 것일 겁니다. 그래서 저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예술을 했고 그 결과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부모님과 동생은 오한결의 진심 어린 고백에 눈시울을 붉혔다.
오한결은 그런 가족을 보며 말했다.
“여기서 약속하지만 저는 해외로 이민갈 생각이 없어요. 우리 한국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요.”
사람들이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오한결이 농담한 거라 생각하고 하하하 웃었다.
“솔직히 공모전에 당선될 때만 해도 저는 제가 잘 나서 예술적 성취를 이뤘다고 판단했습니다.”
오한결이 노을, 최무열, 서정익 작가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게 아니더군요. 저 또한 끊임없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세 사람을 차례로 가리켰다.
“거리예술이라는 장르를 외롭게 개척하고 있는 노을 작가와 끊임없이 재능을 의심하면서도 예술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았던 최무열 작가, 이미 예술가로 성공적인 데뷔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또래 작가들과 어울리는 서정익 작가와 함께하면서 저 또한 무척이나 많이 배웠고 성장했습니다.”
오한결이 살짝 눈시울을 붉혔다.
“이렇듯 예술은 언제나 상호작용을 전제로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저 친구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오한결 미술관에 멋진 작품으로 꽉꽉 채우겠습니다.”
사람들이 박수를 보내자, 오한결이 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삼각지 화랑거리는 한국 미술의 전통을 잇는 아주 소중한 곳입니다. 이곳의 부활은 한국 미술의 부활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곳에 저의 이름을 딴 미술관이 지어진다는 것 또한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는 일이기도 합니다.”
잠시 뜸을 들인 오한결이 계속 말을 이었다.
“성공적인 작가의 삶, 그리고 화랑거리의 부활, 무엇보다 가족의 행복 등 저는 모든 소원을 이뤘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소망하는 모든 일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만약 예술가라면 여기 삼각지 화랑거리가 그 기회를 주리라 확신합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아주 길게 이어졌다.
바로 그때, 외신 기자가 마이크에 대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잘 들었습니다. 작가님! 하지만 이번 작가님의 말을 들으면 꼭 은퇴할 것처럼 들리는데요.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습니까?”
갑자기 숨 막힐 듯한 침묵이 찾아왔다.
모두 기자의 말에 동의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오한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대답했다.
“은퇴요? 절대 그런 건 없죠.”
오한결이 최하늘을 찾기 시작했다.
잠시 뒤, VIP석 근처에서 초조한 얼굴로 서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윙크를 보냈다.
“최하늘 씨! 다음 여행은 어디죠?”
그런 오한결의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최하늘이 환하게 웃으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번엔 이탈리아로 갑니다!!”
오한결과 최하늘이 서로를 바라보며 따스하게 미소를 지었다.
‘어서 가시죠. 이탈리아!’
‘좋아요. 작가님! 함께 가요!’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천재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