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0화 안동 소주
차를 타고 여의도에 진입한 이상민 장관은 창밖으로 보이는 거대한 국회의사당 건물에 시선을 빼앗겼다.
“언제 봐도 멋진 건물이군.”
운전석에 앉은 문한국 보좌관이 물었다.
“오늘 만나시는 모두행복당 김철 대표님은 여당 최고 실세잖아요. 오늘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요?”
이상민 장관은 대답 대신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평소에 근처도 가기 힘든 여당 대표가 이렇게 자신을 찾는다면 분명한 목적이 있는 것이리라.
그동안 여의도로 오기 위해 노력했던 일들이 생각났다.
비록 장관으로 재직 중이지만, 예술 행정으로 커리어를 쌓아왔기 때문에 어떠한 정치적 기반도 있지 않았다.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면서 그는 반드시 국회의원이 되어 언젠가 여의도에서 자신의 뜻을 펼치는 정치를 해보리라 마음 먹었다.
‘그래서 오한결 작가에게 다가갔었지.’
참 고맙게도 오한결 작가는 이상민 장관의 뜻을 헤아려줬고, 어떠한 선입견 없이 그와 어울렸다.
정황상 대부분 이상민 장관이 오한결에게 부탁하는 모양새였지만, 사실 기회만 된다면 오한결이 원하는 거 하나쯤은 돕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래서 서울시장을 설득해보려 했건만.’
거대한 어떤 외부 세력에 의해 골칫덩어리 서울시장이 사라져버렸다.
그 이후 자신에게 걸려온 모두행복당의 대표 김철의 전화는 어떤 의미인 걸까.
‘내가 생각한 그거였으면…….’
그는 이 말을 되새기며, 오한결 작가가 그토록 원했던 삼각지 화랑거리 리모델링 서류에 사인하는 자신을 상상했다.
물론 서울시청 시장실에 앉은 자신의 모습 또한 상상했다.
“도착했습니다. 장관님.”
여의도 거물급 정치인들이 자주 식사한다는 고급 한식집 앞에 차가 멈추자, 문한국 보좌관이 말했다.
“자네는 여기서 기다리게.”
이상민 장관이 차에서 내려 문을 닫자, 운전석에 홀로 남은 문한국 보좌관은 자그맣게 중얼거렸다.
‘장관님 파이팅!’
* * *
직원이 구석진 방의 미닫이문을 밀자, 흰머리가 가득한 노련한 중년 신사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이구, 장관님 어서오세요.”
장관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모두행복당 김철 대표는 아주 능숙하게 손님을 맞이했다.
“오늘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
이상민 장관도 매우 능숙하게 대표에게 미소짓고는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여기 음식이 맛있습니다. 오늘은 제가 추천해주는 음식으로 드셔보겠어요?”
“물론이죠. 대표님의 선택을 믿겠습니다.”
이상민 장관의 말에 흐뭇한 미소를 지은 김철 대표가 직원에게 말했다.
“내가 항상 먹던 거로 부탁해요.”
“예, 바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직원이 나가자, 두 사람이 있는 방에 몹시 묵직한 적막감이 흘렀다. 편한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고 있지만 은밀하게 탐색하는 시선이 아마도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먼저 말을 꺼낸 건 김철 대표였다.
“서울시는 전 세계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매우 유서 깊은 도시죠. 무엇보다 천만 인구가 한 도시에 모여 있다는 건 정말 굉장한 일입니다.”
“동감합니다. 정말 거대한 도시죠. 서울에 비하면 해외 유명한 대도시는 그저 잠들어 있다고 할까요? 24시간 동안 살아서 꿈틀대는 느낌을 주는 곳은 서울이 유일할 겁니다.”
그 사이 종업원이 들어와서 술병과 잔을 놓고 나갔다.
“저는 식사 전에 살짝 독한 술을 마십니다. 그래야 대화가 즐겁거든요.”
김철 대표가 손에 호리병을 들고는 이상민 장관 손에 들린 잔에 술을 따랐다.
“안동 소주군요.”
“장관님은 술을 좀 아는 것 같습니다. 하하.”
이상민 장관이 한 번에 들이키자, 술이 목을 넘어가면서 극도의 청량감이 느껴졌다.
“이야, 이건 45도 정도 되겠네요. 목에서 불이 납니다.”
이상민 장관의 반응이 흥미로웠는지, 김철 대표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장관님은 딱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저는 술을 아는 사람에게 무척 관대하거든요.”
김철 대표도 독한 안동 소주를 원샷하고 지그시 이상민 장관을 바라봤다.
“그래서 말인데요. 저는 이 멋지고 아름다운 서울의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어요.”
김철 대표의 말에 이상민 장관이 바짝 긴장했다.
‘드디어 본론에 들어가나 보군.’
이상민 장관은 몹시 흥분했으나, 표정을 관리하며 절대 속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김철 대표에게 그의 모습이 어설펐던 걸까,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보아하니, 장관님도 제가 무슨 말을 할지 예상했나 보군요.”
“그게…….”
“하하하. 우리 솔직해집시다.”
김철 대표가 술을 한잔 더 들이킨 뒤 말을 이었다.
“서울시장이 어느 대기업에 뇌물을 받고 지금 검찰 조사를 받고 있어요. 본인은 부정하고 있으나, 제가 알아본 바로는 대부분 사실로 드러나는 건 시간 문제라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우리로선 단 하나의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요.”
“단 하나의 방법이라면…….”
“새로운 서울시장을 준비하는 거죠. 곧 보궐 선거가 있을 겁니다. 아주 쟁쟁한 후보가 많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상민 장관님을 추천하고 싶어요.”
“!!”
너무나 기대했지만 막연하기만 했던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자, 이상민 장관은 그저 눈을 크게 뜨고 김철 대표를 쳐다보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김철 대표는 다른 생각을 했나 보다.
“설마, 장관님은 제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나요?”
“아닙니다!”
그제야 이상민 장관이 입이 트였는지 속마음을 대놓고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무척 바랐던 기회입니다. 장관으로 일하면서 숱한 한계에 봉착할 때마다 제대로된 정치인으로 기회를 얻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아까 말씀하셨듯이 꽤 쟁쟁한 후보들이 많을 듯한데, 제가 과연 서울시장 후보가 될 수 있을까요?”
그 말에 김철 대표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적어도 야당 후보로 선정되는 데는 문제 없을 겁니다. 그동안 장관님만큼 언론에 노출된 고위직 공무원은 없었어요. 인지도 면에선 현재 최고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김철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이상민 장관은 오한결을 떠올렸다.
처음 그를 찾아가 그와 인연을 맺으려고 노력했던 일부터, 그가 몰고 다니는 온갖 구설수에 애태우던 일까지.
‘이 모든 건 오한결 덕분이구나.’
곰곰이 생각에 자진 이상민 장관을 바라보던 김철 대표가 물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아직 확실히 생각을 정하지 못한 것 같군요. 필요하면 시간을 드리지요. 하지만 그렇게 오래는 안 됩니다.”
그 말에 정신을 퍼뜩 차린 이상민 장관이 현실로 돌아왔다.
“아닙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모두행복당 서울시장 후보가 되겠습니다.”
이상민 장관의 시원스러운 한 마디에, 김철 대표가 또다시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 역시 제가 사람을 잘 봅니다. 아주 시원시원해서 좋아요.”
때마침 종업원이 커다란 접시를 들고 들어왔다. 그 위에는 거대한 랍스터가 붉은빛을 뽐내며 올라가 있었다.
“자자, 주문한 음식이 나왔군요. 어서 드세요. 랍스터 한입에 안동 소주 한 잔입니다.”
“네? 그게 무슨?”
“기쁜 날 안동 소주 파티는 우리 당의 전통이에요. 최소한 두 병씩 먹읍시다.”
그날 밤, 처음으로 이상민 장관은 필름이 끊겼다. 하지만 꿈에선 이미 서울시장 선거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
* * *
삼각지 화랑거리의 사장들이 근처에서 공사 중인 유코아 부지를 찾았다.
수십 대의 대형 화물차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곳은 한눈에 봐도 대형 공사현장이 틀림없어 보였다.
홍철수 사장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정말 어마어마한 크기의 건물 같네요.”
화방을 운영하는 조성우 사장도 기가 죽었는지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기업이 만든 거잖나. 우리가 무슨 힘이 있다고 막을 수 있겠어? 그래도 우린 최선을 다했잖아. 그걸로 됐네.”
화신벽화 김일중 사장이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아마도 2년 후 유코아가 완성되면 우리도 살길을 찾아서 지방으로 흩어질 수도 있겠네요.”
“그렇겠지…….”
잔인한 현실 앞에서 화랑거리 사장들은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흙먼지 날리는 공사 현장을 쳐다보며 씁쓸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렇게 우울한 감정에 허우적대고 있을 때 홍철수 사장은 문득 오한결의 SNS가 생각났다.
‘그래,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잖아. 힘을 내야지!’
화랑거리를 향한 오한결의 진심이 다시금 느껴지자, 지금 자신들의 모습이 상당히 부끄럽게 느껴졌다.
“여러분! 우리 이렇게 기죽지 맙시다. 우리의 노력은 끝나지 않았어요.”
갑자기 힘 있는 목소리로 홍철수 사장이 소리치자, 화랑거리 사장들이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모두 오한결 작가의 SNS 글을 읽었을 거 아닙니까. 그의 진심에 보답하는 방법은 우리가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비록 노력에 한계가 있다 한들,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적어도 우리가 망해서 문을 닫는 그날까지 노력합시다.”
홍철수 사장의 응원에 힘을 얻은 조성우 사장이 소리쳤다.
“그래 까짓거, 유코아 상대로 경쟁해 보지 뭐!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고도 살아남은 우리가 절대 쉽지 않은 상대라는 걸 알려줘야지.”
전투 의지가 꽉꽉 채워진 화랑거리 사장은 먼지 날리는 유코아 공사 현장을 등지고 삼각지 화랑거리를 향해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다.
* * *
명일 무역센터 작품을 위해 오한결과 친구들이 아뜰리에에 모여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잠시 숨을 돌린 오한결이 휴대폰으로 인터넷 기사를 확인했다.
「모두행복당 서울시장 후보로 이상민 문체부 장관 내정」
기사에는 이상민 장관은 지지율 70퍼센트를 기록할 정도로 떠오르는 차세대 정치인으로 주목받고 있다고 전했다.
오한결은 항상 자신에게 우호적이었던 이상민 장관의 성공적인 정치인 데뷔를 지켜보며 환하게 미소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로써 서울시 문제도 해결되겠구나.’
그렇게 기분좋은 감정에 취했있을 때 바로 옆에서 최무열이 낑낑대는 소리를 냈다.
“으으. 너무 힘들어.”
오한결이 고개를 돌리자 작업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그림에 최무열이 힘없이 붓질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노을과 서정익 작가도 손에 잔뜩 물감을 묻힌 채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고생시켜서 미안하네.’
이번 작품은 명일 무역센터 로비에 설치된 거대한 스크린에 영상을 띄우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픽 작업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컴퓨터 그래픽이 아무리 대단한 발전을 이뤘다고 해도, 직접 페인팅으로 질감을 묘사한 작업물의 아우라는 아무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한결의 욕심대로 노을과 친구들은 며칠 동안 거대한 지구를 일일이 붓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오한결 자신도 그들과 함께 매일 밤을 새우며 작업을 이끌고 있다.
‘고생시켜서 미안하지만, 이 작업이 끝나면 너희들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품이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온전히 느끼게 될 거야.’
이런 과정이 세 사람의 예술적 기량을 한껏 높이는 계기가 되리라 확신했다.
오한결이 멍하니 세 사람을 쳐다보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최무열이 고개를 돌려 오한결과 눈이 마주쳤다.
“작가님! 밥 먹고 해요.”
“그래. 뭐 먹을래?”
가장 먼저 대답한 건 서정익 작가였다.
“치킨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