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99화 (199/202)

제199화 오한결 미술관

새벽 3시가 넘도록 오한결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최근 삼각지 화랑거리의 위기를 보며 오한결은 그동안 기회를 엿봤던 자신의 미술관 사업을 시작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원래는 좀 더 많은 예술 활동을 한 후 실행할 계획이었지만 소중한 삼각지 화랑거리가 유코아라는 북유럽 기업의 진출로 사라진다면 오한결의 미술관 계획 또한 무산될 위험이 아주 컸기 때문이다.

‘무조건 미술관은 화랑거리에 지을 거거든!’

더욱이 신태진 회장을 비롯해 많은 사람이 화랑거리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더는 오한결 자신이 본인의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는 건 그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고민 끝! 이제 실행할 때이다.’

노트북 앞에 앉은 오한결은 최근 유행하는 SNS 플랫폼에 가입했다.

그리고 정성스럽게 자신의 진지한 속마음을 적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오한결 작가입니다. 오늘 처음으로 SNS를 통해서 여러분과 소통하게 됐는데요, 사실 저는 여러분께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오한결은 몇 년 전 지독한 가난 때문에 예술을 포기하려고 했던 자신에게 미술재료를 공짜로 빌려준 아트화랑 홍철수 사장 남매 얘기부터 시작했다.

오한결은 그들이 보여준 따스한 위로와 작지만 소중한 도움의 손길을 온전히 느끼며 진심을 다해 글을 적어 내려갔다.

「그리고 지금 제게 가장 소중한 예술가 동지들. 노을, 최무열, 서정익 작가를 만난 것도 모두 삼각지 화랑거리였습니다.」

예술가에게 있어서 예술 철학을 공유하고 서로 힘든 길에 위로가 되는 동료가 있다는 건 커다란 행운이라는 말과 함께, 그 모든 시작은 모두 삼각지 화랑거리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만큼 삼각지 화랑거리는 제게 무척 소중한 곳입니다.」

잠시 오한결은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놓고 심호흡을 했다.

‘이제 정말 본론에 들어가야 한다.’

창밖 어두운 밤하늘에 별 하나가 유독 반짝였다. 오한결은 그 모습에서 꽤 큰 위로를 받았다.

다시금 키보드에 손을 올린 오한결이 아주 부드럽게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저는 본격적인 작가 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나의 꿈을 가슴에 품고 살았습니다. 그건 미술관을 짓는 겁니다.」

오한결은 미술관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제껏 제가 한 모든 작품, 그리고 앞으로 할 모든 작품은 그 미술관에 전시될 것입니다. 현재 프랑스와 미국에 남겨 놓은 작품 모두 그 미술관으로 이관될 것입니다.」

오한결은 잠시 자신이 국내외 활동을 통해 만든 작품을 상기해봤다.

애초에 오한결의 작품은 순수한 예술성을 목적으로 제작된 만큼 무료로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게 옳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술관은 항상 전 세계 사람들에게 오픈돼 있을 것이며, 무료로 개방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미술관은 매년 뛰어난 작품을 선정해 전시할 것입니다. 그 대상은 기성 작가 뿐만 아니라 예술을 전공하지 않은 아마추어까지 모두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오한결은 자신이 적은 글을 천천히 읽어보며 혼자 되뇌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미술관은 세계 예술의 중심 될 것이며, 추후 삼각지 화랑거리는 전세계 예술인의 주목을 받게 되리라.’

「그 미술관의 이름은 ‘오한결 미술관’으로 지르려고 합니다. 제 자신의 이름을 쓰는 이유는 앞으로 예술을 지향하는 미술관의 순수성을 제 명예를 걸고 지키려 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업적, 정치적 영향력도 오한결 미술관은 허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말을 남겨놓고 오한결이 결의를 다졌다.

「오한결 미술관은 여러분의 기부금으로 지을 예정입니다. 작은 정성도 허투르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오한결 미술관의 주인은 모든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것입니다.」

마지막 전송 버튼을 누른 오한결은 이제 그만 노트북을 덮었다.

‘사람들이 많이 동참해줘야 할 텐데.’

이제야 눈이 슬슬 감기는 오한결은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다.

오랜만에 자는 아주 깊은 꿀잠이었다.

* * *

몇 시간 후.

“뭐? 오한결 미술관!!”

급하게 보고할 게 있다고 달려온 오스카 팀장을 보며 맥스가 소리를 질렀다.

오스카 팀장이 SNS 화면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지금 새벽에 올라온 글이 여섯 시간도 안 됐는데 1억뷰가 넘었습니다. 그리고 오한결 미술관에 기부하겠다는 메시지도 수만 개가 넘어가고 있어요.”

오스카 팀장의 설명에 맥스가 극도의 스트레스와 함께 심각한 두통을 느꼈다.

그는 힘겹게 일어나 두통약을 하나 꺼내 입안에 넣어 놓고 물을 마쳤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죠? 서울시장은 검찰 조사를 받고 있고 화랑거리에는 오한결 미술관이 들어선다고요?”

“아직 확정된 건 아닙니다…….”

오스카 팀장의 말에 맥스가 언성을 높였다.

“자네는 직접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전 세계 사람들이 오한결의 한 마디에 열광하고 있어요. 오한결 미술관이 지어지는 건 시간 문제라고요!”

맥스의 눈치를 살피던 오스카 팀장은 현 상황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했다.

“최근 저희에게 우호적이던 세력들이 사라지는 건 사실입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저희 유코아 사업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오한결 미술관이 생긴다면 오히려 저희 매출이 더 늘 수도 있습니다.”

“자네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군요. 오한결의 SNS를 보면 삼각지 화랑거리와 인연을 강조하고 있어요. 더욱이 그곳에 오한결 미술관이 들어선다면, 화랑거리는 순수한 예술 도시로서 그 이미지를 굳힐 겁니다.”

“그렇다면 저렴한 제품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형 미술시장은 퇴출될 가능성이 높군요.”

마치 자신과 무관한 얘기인 듯이 말하는 오스카 팀장을 보고 맥스가 한숨을 쉬었다.

“그 기업형 미술시장의 대표가 우리 유코아 아닌가요?”

“아…….”

“자네는…….”

욱하는 마음에 소리를 지르려던 맥스가 잠시 심호흡을 하고 말을 멈췄다.

지금 오스카 팀장과 말씨름 할 때가 아니었다.

‘대책을 세워야 한다. 아니면 2년 후 유코아의 미래는 없다.’

하지만 맥스의 머릿속에는 2년 후 세워질 오한결 미술관에 대한 호기심이 자라기 시작했다. 대체 얼마나 멋지게 지을려나…….

* * *

문화재단은 오한결의 SNS로 비상이 걸렸다.

사전 협의 없이 오한결이 온라인에 던진 한 마디에 전 세계 수많은 예술가와 단체들이 문화재단으로 연락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나영 팀장이 아침부터 수십 통의 전화를 받은 후 기진맥진한 얼굴로 말했다.

“오한결 작가도 참! 기부금을 받겠다고 해놓고 방법을 안 적어 놓으니까, 모두 문화재단으로 연락이 오잖아.”

방금 전화를 끊은 최하늘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방금 오한결 작가님께서 문자를 보냈어요. 그건 미안하게 됐대요. 워낙 급하게 올려서 자신이 미숙했다고 하더라고요.”

그 한 마디에 마음이 풀린 이나영 팀장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뭐 어쩔 수 없지. 작가니까, 그런 행정업무는 약할 수밖에. 사실 그걸 도와주라고 우리가 있는 거 아니겠어?”

“맞아요. 팀장님. 정말 멋진 말이네요.”

최하늘의 아부에 기분이 좋아진 이나영 팀장은 언제 그렇게 스트레스받았나 싶을 정도로 맑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밀려드는 전화가 잠잠해질 때쯤, 익숙한 구둣발 소리가 사무실에 울렸다.

“한 시간 뒤, 오한결 작가 SNS 관련 회의를 소집합니다.”

신수진 이사장이 이나영 팀장과 최하늘을 번갈아 보며 말을 이었다.

“이나영 팀장님은 뉴욕지부 강철 지부장에게 연락하시고, 최하늘 씨는 프랑스 지부 왕진범 팀장님께 연락해주세요. 화상 회의로 진행할 겁니다.”

이사장이 큰 결심을 했다는 느낌에 이나영 팀장과 최하늘이 서로를 힐끔 쳐다봤다.

신수진 이사장은 두 사람이 말이 없자, 다시 한번 물었다.

“왜 그렇죠? 무슨 문제 있나요?”

“아닙니다! 이사장님.”

“당장 연락해보겠습니다.”

한 시간 뒤, 문화재단 회의실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뉴욕지부 강철 지부장과 파리 지부 왕진범 팀장의 얼굴이 나왔다.

유독 최하늘과 친분이 있었던 왕 팀장은 최하늘을 보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하늘 씨! 반가워요.”

신수진 이사장과 이나영 팀장이 주변에 있어서 그런지, 최하늘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슬쩍 손을 들어보였다.

“왕 팀장님! 잘 지내셨죠?”

“그럼요. 솔직히 그때 오한결 작가님하고 오셨을 때가 재밌었는데. 엄청 신나게 놀았잖아요. 하하.”

이나영 팀장이 슬쩍 근처에 신수진 이사장이 있다고 눈치를 주자, 왕 팀장이 정색하며 입을 다물었다.

뒤이어, 자연스럽게 강철 지부장이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강철 지부장입니다. 회의실에 계신 이사장님과 하늘 씨를 보니 무척 기쁘군요. 얼마 전까지 뉴욕에서 뵙던 분들인데 말이죠. 저 또한 왕 팀장님처럼 그때가 그립습니다.”

신수진 이사장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오한결 작가와 함께라면 어디든 즐거운 일이 생기나 봅니다. 저도 무척 기억에 남는 뉴욕 출장이었어요.”

왠지 소외감을 느낀 이나영 팀장이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자, 신수진 이사장이 그녀를 위해 화제를 돌렸다.

“어쨌든, 오늘 회의를 소집한 건 오한결 작가의 SNS 때문입니다. 모두 그가 새벽에 올린 글을 읽어 봤겠죠?”

최하늘이 기다렸다는 듯이 보고를 했다.

“네, 현재 2억 뷰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한결 작가님이 거론한 삼각지 화랑거리에 대한 검색량도 상당히 증가했고요. 사람들은 오한결 미술관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강철 지부장이 말했다.

“오한결 작가의 한 마디에 엄청난 영향력이 있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뉴욕 지부에도 문의 전화가 끊이질 않고 있어요.”

“파리 지부도 마찬가집니다. 오한결 작가의 그림을 소유한 루브르 박물관도 그림을 뺏길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집중해서 다른 직원들의 의견을 듣던 신수진 이사장이 의견을 내놓았다.

“일단 오늘 회의는 오한결 미술관에 대해 의견을 나누도록 하죠. 특히 지금 가장 문의를 많이 받고 있는 게 기부금이니까요.”

“또 하나 있습니다. 파리와 뉴욕에 남겨져 있는 오한결 작가의 작품을 회수하는 일도 급합니다.”

이나영 팀장이 말하자, 신수진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그것도 급한 일이네요.”

신수진 이사장이 이나영 팀장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팀장님은 이런 쪽으로 경험이 많으시잖아요. 좋은 방법을 제시해주세요.”

이사장의 칭찬에 우쭐해진 이나영 팀장이 허리를 펴고 주변을 둘러봤다. 모두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녀가 내놓을 전문적 지식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일단 그림 같은 경우 오한결 작가가 계약서를 작성해 놨다고 들었습니다.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지만 그래도 일단 그 문제는 변호사들에게 맡기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알겠어요. 문화재단 고문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해보도록 할게요.”

신수진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자신감이 붙은 이나영 팀장이 더 당당하게 말했다.

“그리고 기부금 또한 명확한 법적 절차가 있습니다. 기부금 모집에 관한 법적 절차를 정확히 숙지해서 금액에 대한 세금 문제도 모두 해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결국 모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겠군요.”

잠시 고민하던 신수진 이사장이 갑자기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저 수진이에요.”

신수진 이사장은 이나영 팀장의 말을 그대로 전하며 신태진 회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잠시 뒤 전화를 끊은 이사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명일그룹 법무팀에서 도와주기로 했어요.”

“어머, 너무 잘 됐네요!”

무척 기쁜 나머지 최하늘이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명일그룹 법무팀이라면 우리나라 최고 로펌도 쩔쩔맨다는 최고의 변호사 집단 아닌가. 이제 오한결의 앞길을 막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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