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4화 뜨거운 심장
모던아트 박수호 기자가 삼각지 화랑거리를 걷고 있다.
오래된 골목길 특유의 느낌이 싫지 않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미술 거리에 맞지 않는 분위기인 건 확실해 보였다.
그렇게 화랑거리를 둘러보던 그가 드디어 ‘아트화랑’ 간판을 발견했다.
“계십니까?”
아트화랑 문을 살며시 알며 안을 들여다보며 박수호 기자가 말했다.
“들어오세요. 손님.”
홍철수 사장이 그를 손님으로 호칭하자, 박수호 기자가 재빨리 명함을 하나 내밀었다.
“사실, 저는 기자입니다.”
“기자요?”
“네, 취재할 게 있어서요. 협조 부탁드립니다.”
놀란 표정으로 명함을 보던 홍철수가 재빨리 앉을 자리를 가리켰다.
“일단, 저쪽에 앉으세요. 차는 뭘로?”
“아, 커피 좋습니다.”
잠시 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한 잔씩 앞에 두고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았다.
박수호 기자가 보기엔, 홍철수 사장은 꽤나 지친 모습이었다. 아마도 최근에 유코아와 관련된 대내외 활동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아마 그것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은 그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다.
홍철수 사장의 노력에도 유코아 관련해선 한 줄도 뉴스에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홍철수 사장은 기대하는 표정 없이 박수호 기자에게 물었다.
“정확히 무슨 일 때문에?”
“유코아 관련해서 취재를 하고 있어요. 최근 화랑거리 사장님들의 행보에도 관심이 많고요.”
박수호 기자의 말에 놀란 홍철수 사장이 눈을 번쩍 떴다. 하지만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제가 시위 당일에 취재를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회사에서 저를 지방으로 취재를 보냈어요. 아마도…….”
박수호 기자는 차마 솔직한 말을 전하지 못했다.
‘아마도 외부의 힘이 작용한 게 아닌가 싶다’는 그 말을 말이다.
그럼에도 홍철수 사장은 그의 눈을 통해 그가 전하고자 하는 말의 뜻을 이해했다.
“괜찮습니다. 쉽지 않을 싸움이라 생각했지만 훨씬 어렵네요.”
“그래서 저도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네?”
“저는 화랑거리 취재를 끝까지 할 겁니다. 그래서 사장님들의 입장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박수호 기자의 진심어린 말에 감동한 홍철수 사장이 잠시동안 감동에 젖다가 이내 커피 한 잔을 들이켜고 말했다.
“말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박수호 기자가 보기엔, 홍철수 사장은 자신감을 많이 잃은 듯 보였다. 그것도 이해되는 게, 그렇게 굳은 의지로 추진한 일이 사람들에게 무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힘들기 때문이다.
공들인 기사가 대중의 외면 받는 일을 몇 번 겪어본 박수호 기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박수호 기자가 가방을 열고 두꺼운 종이 뭉치를 꺼내 홍철수 사장에게 내밀었다.
“제가 취재를 위해 모은 자료입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료를 받은 홍철수 사장은 그만 입이 떡하고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흔히 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 자료가 아니었다.
삼각지 화랑거리 역사와 관련된 수많은 자료와 심지어 해외 언론 자료도 섞여 있었다.
“이걸 어떻게…….”
“발품을 많이 팔았죠. 국회 도서관부터 시작해서, 각 지역별로 유명한 예술계 인사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했어요. 결국 대한민국 미술 시장은 삼각지 화랑거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더군요.”
조용히 그러나 아주 감동적인 표정으로 자료를 읽는 홍철수 사장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저는 진심입니다. 삼각지 화랑거리가 처한 어려움을 전국민이 알게끔 기사를 쓰고 싶어요. 유코아 문제는 절대로 화랑거리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 말을 들은 홍철수 사장은 조금 전까지 빛을 잃어가던 희망이 다시금 활활 타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 *
한강 공원 벤치에 앉은 이상민 장관이 손목 시계를 계속 확인하고 있다.
“아, 올 때가 됐는데.”
문한국 보좌관의 말로는, 오한결이 매일 해 질 녘에 자전거를 타고 한강 공원에서 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장관님도 한강 공원에서 운동하는 콘셉트로 가세요. 자연스럽게 만나는 겁니다.
그의 의견이 마음에 들었던 장관은 운동복을 입고 그렇게 벤치에서 삼십 분째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바람이 이뤄진 걸까, 저 멀리서 오한결이 자전거를 타고 근처로 다가왔다.
“오한결 작가님!!”
앞만 보고 가던 오한결이 갑자기 들려오는 낯익은 목소리에 브레이크를 꽉 잡았다.
“장관님?”
그때 뒤에서 빠른 속도로 따라오던 라이더가 쌍욕을 하면서 지나갔다.
“미친XX, 갑자기 멈추면 사고난단 말이야.”
오한결이 머쓱한 표정을 짓고는 자전거 트랙에서 살짝 비켜 공터로 자리를 옮겼다.
갑자기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서둘러 이상민 장관이 준비한 말을 했다.
“이런 운명이 있나요? 저도 저녁마다 여기서 운동을 하거든요.”
오한결은 장관이 오늘 처음 입은 듯한 운동복 차림에 피식 미소를 지었다.
“주로 어떤 운동을 하세요?”
“런닝이죠. 퇴근 후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뛰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도 없거든요.”
“아, 그렇구나. 운동화가 새 거라서 런닝은 아닐 줄 알았는데.”
당황한 이상민 장관이 매우 새것인 티가 나는 자신의 운동화를 부끄럽게 쳐다봤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오한결이 말을 걸었다.
“SNS에서 봤어요. 원로 작가님들이 장관님을 찾아갔었다고 하던데요.”
“아, 벌써 내용을 올리셨나요?”
이상민 장관이 당황하며 묻자, 오한결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장관님과 나눈 얘기들을 모두 올리셨어요. 화랑거리를 위해 뭔가를 하시겠다고 약속도 하셨다고요.”
“약속이요?”
장관이 한숨을 푹 쉬며 하소연 하듯 말을 이었다.
“아시잖아요. 장관인 제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걸요. 그래서 이렇게 오한결 작가님을 찾은 것도 있고요.”
오한결이 짓궂은 표정으로 물었다.
“아까는 런닝하다가 우연히 만났다면서요?”
“…….”
이제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하늘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서늘한 강바람에 기분이 좋아진 오한결이 여전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장관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제 작품은 잘 가지고 계시죠?”
“아, 그럼요.”
짧게 대답하고는 눈치를 살피며 장관이 말을 이었다.
“사실, 오한결 작가님이 뉴욕에 계실 동안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접근했습니다. 모두 그림을 탐내더군요.”
“그래요? 하지만 절규 그림은 분명 ‘조건부’로 장관님께 드린 거잖아요. 그들이 갖긴 힘들죠.”
오한결의 말에 이상민 장관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게 선물로 주신 거니까요. 하하.”
“하지만 저는 분명 ‘조건부’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그건 여전히 유효하고요.”
금세 이상민 장관은 인상을 꾸기며 오한결의 말을 되짚어 봤다.
‘조건부라…….’
오한결은 분명 서울시장을 설득해 화랑거리를 리모델링을 진행하길 원했다. 그 임무를 완수하면 자연스럽게 절규 그림은 장관의 소유물이 되는 것이다.
‘근데 그게 가능해?’
지난번 장관이 만난 서울시장은 매우 대쪽 같은 인물이었다. 온갖 협박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그런 고집스러운 인물 말이다.
이상민 장관의 얼굴에서 심각한 심리 상태가 드러나자, 오한결이 말을 걸었다.
“팁을 하나 드리자면, 투자를 받으세요. 대기업 투자면 더 좋고요.”
“투자요? 하지만 명일그룹이 정말 관심을 가질까요?”
오한결이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꺼내 문자 내용을 보여줬다.
“아니, 이건…….”
이상민 장관은 너무 놀라 말을 더듬었다. 그건 분명 신태진 회장이 화랑거리를 위해 뭐든 도와주겠다는 내용이었고 그 하단에는 엄청난 도시 발전 기금액이 표시돼 있었다.
“어떤가요? 희망이 보이나요?”
“그런 것 같군요. 명일그룹만 나서준다면, 서울시장도 어쩔 수 없을 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술계 대 선배님들과 스승님께서 그렇게 간절히 원하시는데, 저도 도와야죠.”
오한결이 보기엔 이상민 장관이 찾아온 목적이 이뤄진 것 같아, 슬슬 페달에 발을 올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
“한 바퀴 더 돌아야 하거든요. 저만의 운동 루틴이라서.”
“아! 그럼 저도 같이 가요. 작가님 자전거 뒤를 따라 뛰고 싶어요.”
“네? 꽤 멀 텐데요.”
“걱정하지 마세요. 왕년에 마라톤도 했던 사람입니다.”
오한결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페달을 밟고 힘차게 자전거를 출발시켰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10분을 달린 후, 오한결이 뒤돌아보자, 어느새 뒤처진 이상민 장관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왕년이면 도대체 몇 년 전 얘기를 하는 거지. 하하.”
* * *
모던아트 사무실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정말로 할 거야?”
팀장이 박수호 기자를 노려보면서 강하게 말했지만, 박수호 기자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대답했다.
“당연하죠. 그때 말씀하셨잖아요.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겠다고요.”
“하지만 이건…….”
뭔가 비밀스러운 뭔가를 말하려던 팀장은 그만 입을 다물어 버렸다.
하지만 박수호 기자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일단 유코아와 관련된 일이라면 회사에서 무슨 수를 써서든 박수호 기자의 일을 방해하고 있으니까.
“저는 삼각지 화랑거리 특집 기사를 꼭 내보낼 거예요.”
“데스크에서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야.”
“그럼 팀장님이 도와주셔야죠. 설득해 주세요.”
팀장이 그렇게 말하는 박수호 기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너 은근 똘기 있는 건 알았지만, 기어이 대박 사고를 치려고 하는구나.”
“그거 기자에게 칭찬인 거 아시죠?”
박수호 기자가 능청스럽게 대답하자, 팀장이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난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니가 하고 싶은대로 해.”
매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박수호 기자를 바라보던 팀장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기사로는 어림도 없어. 좀 더 자료 조사를 하고 취재원도 더 만나봐.”
그렇게 말하던 팀장이 빨간펜으로 밑줄을 잔뜩 그은 그의 기사를 내밀었다.
“기사는 잘 썼어. 하지만 다소 애매한 구석이 있어서 말이지. 그리고 내가 데스크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니가 잘 쓴 기사로 데스크를 설득해야지. 그들이 고민할 때 내가 살짝 힘을 실어주는 거고.”
하지만 박수호 기자에겐 그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분명 몇 날 며칠을 밤을 새우고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할 만큼 발품을 팔았는데, 이게 부족한 기사라니, 절망이 따로 없었다.
“팀장님. 아니 선배! 저는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이 기사가 어디가 부족한 거죠?”
팀장이 손가락으로 붉은색으로 밑줄 친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여기, 여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박수호 기자에게 팀장이 한숨을 쉬었다.
“특집 기사는 아무나 쓰나? 알았어. 이번에 보완 취재는 내가 동행해 줄게. 그러니까 잘 배워!”
“와! 감사합니다.”
팀장의 든든한 지원에 신이 난 박수호 기자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 그를 보며 팀장이 다시 무거운 표정으로 돌아왔다.
“나랑 약속해야 한다. 어떠한 외압이 있더라도 절대 흔들리지 않기로.”
팀장의 말의 무게를 잘 이해한 박수호 기자도 진지하게 대답했다.
“네, 물론입니다.”
그렇게 말을 마친 두 사람은 취재를 위해 가방을 싸기 시작했다. 어느덧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잠시 잊고 있었던 기자의 뜨거운 심장이 강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두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