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2화 갈비찜
문화재단 아뜰리에를 찾은 오한결은 낯설게 느껴지는 복도를 두리번거리며 걸어가고 있다.
‘너무 오랜만에 왔구나.’
오한결은 자신의 작업실을 지나쳐 서정익 작가의 작업실 앞에 멈춰 섰다.
꽉 닫힌 문 사이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역시 작업실을 벗어나지 않는구나.’
혹시나 부재중일 수도 있어서 긴장했던 오한결은 안도하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나야, 오한결.”
오한결의 목소리를 들은 서정익 작가는 재빨리 문을 열고 그를 맞이했다.
“들어오세요. 작가님.”
작업실로 들어간 오한결은 벽을 따라 처음 보는 그림들이 기대어져 있는 것을 보고 상당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마, 이 그림들을 다 그린 거야?”
“네, 당연하죠.”
왜 그런 질문을 하지, 라는 표정으로 서정익 작가가 대답하자, 오한결이 보충설명을 했다.
“노을, 최무열하고 어울려 다니면서 많이 바빴을 텐데. 어떻게 시간을 냈어?”
오한결의 질문의 뜻을 이해한 서정익 작가가 살짝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건 그거고, 제 작업은 따로 또 해야죠. 제가 좀 성실하거든요. 하하. 오한결 작가님도 그러시잖아요.”
“내가?”
‘물론 과거에는 그랬지.’
오한결은 회귀 전 성실했던 무명시절을 생각했다. 밥만 먹고 그림만 그린다는 게 어떤 건지 뼈저리게 느꼈던 시기였는데.
우연히 천재적인 능력을 얻게 되고 그런 성실함을 보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딱 필요한 순간에 걸작을 그리는 작업만 반복하지 않았는가?
오한결이 빠르게 옛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고 말했다.
“그래, 서정익 작가 나이 때 나도 성실했어.”
서정익 작가에겐 그런 오한결의 말이 꼭 응원처럼 들렸다. 마치 ‘너도 나랑 같은 부류구나.’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역시 성공한 작가는 다른 것 같아요.”
평소 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던 서정익 작가가 그렇게 나오자 오한결은 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래서 그런지 빨리 화제를 전환했다.
“그때 말한 그 블랙 딜러는 어떻게 됐어?”
“그 이후로 연락은 없어요.”
오한결의 눈에는 서정익의 표정이 몹시 애매하게 보였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생각을 하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관심이 없어서 그런 걸까?
도대체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자리에 앉은 오한결은 서정익에게 산다라에게 들은 정보를 전했다.
신인 작가들의 그림을 지하경제 돈의 유통 매체로 활용한다는 얘기와 그 수수료가 어마어마해서 실제로 엄청난 행운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오한결의 얘기를 집중해서 듣던 서정익 작가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그것도 맞네요. 사실 저도 제가 돈 문제에 관심이 없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엄청난 금액을 제시하는 순간 정신이 어찔하더라고요.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었죠.”
“마음이 움직였다는 소리네.”
오한결의 질문에 서정익 작가가 잠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것보단, 호기심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서정익 작가가 남긴 말의 여운을 오한결이 곰곰이 되새겨봤다.
싫다는 말을 하지 않는 그는 분명 어떤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그게 뭘까. 부자도 그냥 부자가 아니라 재벌 수준의 부자가 되는 꿈일까?
아니면 자신의 작품이 그렇게 비싼 금액으로 거래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은 욕심일까.
그것도 아니면 거래에 관심은 없지만 지하 경제라는 것에 대한 호기심일까.
그게 뭐든, 서정익 작가는 블랙 딜러에게 휘둘리지 않는 것이 확실했다.
‘그럼 내가 끼어들 건 없는 것 같네.’
그렇게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한 오한결을 정신들 게 한 건 서정익 작가의 단호한 말이었다.
“오한결 작가님의 방문으로 이제 확실해졌어요.”
“그게 무슨 말이야?”
멍한 오한결의 얼굴을 보며 서정익 작가가 히죽 웃고는 말을 이었다.
“블랙 딜러를 만나고 갑자기 그리고 싶은 그림이 생각났어요. 그걸 완성해야겠어요.”
“거래를 위해서?”
“음, 그건 아무도 모르죠. 일단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제 마음이 정해질 겁니다.”
서정익 작가가 말하는 신작은 도대체 뭘 말하는 걸까.
그것을 그리면 마음이 정리가 된다고?
수수께끼 같은 서정익 작가의 말에 어지러움을 느낀 오한결은 깔끔하게 머릿속을 정리했다.
‘됐다. 서정익 작가의 신작이 나온 후 얘기하자.’
간단하게 머릿속 복잡한 생각을 밀어낸 오한결은 서정익 작가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매우 대견한 생각이 들었다.
‘서정익 작가에게 이렇게 단호한 면이 있었구나. 새로운 면인데?’
그때 서정익 작가가 입을 열었다.
“지금 제가 달라진 것 같다고 생각하셨죠?”
“어? 어…….”
“이게 모두 오한결 작가님과 노을, 최무열 씨 덕분이에요.”
그러면서 서정익 작가가 싱긋 웃어보였다.
오한결은 그의 그런 모습에서 진실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서였을까. 그제야 오한결도 완전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 * *
아트화랑을 정신없게 만든 건 노을의 목소리였다.
“큰일 났어요. 서정익 작가가 또 잠수 탔어요!”
홍철수 사장 남매와 얘기를 나누던 오한결이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난 번에도 그랬잖아. 왜 호들갑이야?”
노을 뒤에 서 있던 최무열이 노을을 살짝 노려보며 말했다.
“봤지? 누가 봐도 누나가 호들갑 떠는 걸로 보여. 서정익 작가님은 지금 작업 중이잖아.”
홍철수가 푸근한 인상으로 노을을 바라봤다.
“노을이 서정익 작가 걱정을 많이 하는구나.”
노을이 민망한지 살짝 삐딱하게 대답했다.
“그림 말고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그렇죠…….”
“그렇게 걱정되면 직접 작업실을 찾아가 보지 그래?”
홍철수 사장의 말에 예전에 아뜰리에 복도에서 봤던 서정익 작가의 귀신 같은 모습이 떠올랐다.
“으악! 그건 안 돼요. 보지 말아야 할 걸 보게 될 걸요.”
노을의 말이 무슨 뜻인지 파악한 최무열이 배를 잡고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
“우하하하.”
오한결은 노을과 최무열에게 손짓했다.
“일로 앉아서 다과 좀 먹어. 그리고 서정익 작가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어제 만나봤거든. 그리고 잘 씻는 것 같더라. 귀신은 아직 안 됐어. 하하”
오한결의 말에 노을이 씨익 웃었다.
“다행이네요.”
최무열이 그 모습을 보고 놀리기 시작했다.
“뭐야? 뭔가 있는데?”
“뭐가? 얘는 무슨 소리야.”
“아닌데. 방금 그 미소는 뭐야? 상당히 묘한 느낌인데.”
“야! 헛소리 하지마. 너 맞는 수가 있어.”
두 사람은 그렇게 몇 번 투덕거리더니 결국 노을이 폭발했다. 그 모습을 본 최무열이 도망가면서 드디어 아트 화랑이 조용해졌다.
* * *
사람들로 북적이는 갈비찜 가게 구석에 오한결 가족이 식사를 하고 있다.
입맛이 없다는 어머니의 말을 듣자마자, 동생이 그럼 갈비찜을 먹어야 한다고 우겼고 덕분에 가족들은 반강제적으로 끌려오다시피 했다.
음식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지 않는 어머니와 반대로 아직 음식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동생은 벌써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야, 네가 먹고 싶어서 여기 오자고 한 거지?”
오한결이 동생을 째려보며 그렇게 말하자 동생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대답했다.
“아닌데, 어머니가 입맛이 없어서 여기 온 건데.”
할 말이 없어진 오한결이 고개를 갸웃하자, 어머니가 중재에 나섰다.
“한결아, 그만해라. 나도 갈비찜 좋아해.”
아버지가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맞아. 네 엄마 매콤 갈비찜이면 밥 한 공기 뚝딱이야.”
“봤지?”
아버지의 말에 힘입어 동생이 오한결을 놀리며 말하자, 오한결이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다.”
보글보글 뚝배기에 담긴 갈비찜에 상에 오르자, 동생이 커다란 갈비 한 조각을 어머니 접시에 올려 놓았다.
“엄마! 많이 드세요.”
그러더니 아버지께도 하나 더 드린 뒤 재빨리 자기 고기도 챙겼다.
오한결은 본인의 빈 접시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 난 또 날 챙겨준다고……. 아니 근데 내가 뭘 생각을 한 거지? 한수가 날 챙겨줘? 으악, 그건 또 닭살 돋는데.’
오한결이 뭘 생각하든 말든, 동생의 입에는 갈비와 고소한 쌀밥이 잔뜩 들어갔다.
슬슬 배가 차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먼저 얘기를 꺼냈다.
“어디서 들었는데, 삼각지 화랑거리 부근에 대형 미술품 거래점이 생긴다는구나. 그럼 화랑거리에 타격이 있는 게 아니니?”
이미 오한결이 화랑거리 사람들과 깊은 친분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부모님은 오한결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주제가 무거운 만큼 아버지는 평소보다 진중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이름이 뭐라더라, 유코아? 대기업이라고 하더라고.”
혹시 오한결이 잘 모를까 봐, 아버지는 자신이 아는 정보와 주변에서 들리는 안 좋은 소문들을 죄다 오한결에게 말했다.
중간에 말을 끊지 않은 오한결은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답했다.
“아, 그런 소문이 있군요. 얼핏 소식은 듣긴 들었어요.”
어머니도 수저를 내려놓고 진심으로 걱정했다.
“한결이를 많이 도와줬던 사람들이고 들었는데, 어쩌니. 그분들도 걱정이 많겠다.”
오한결은 며칠 후에 있을 화랑거리 사람들의 시위를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의 뜻을 대중에게 전달할 방법을 찾았고 그게 시위였던 것 같다.
물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게 좋겠지만, 오한결이 생각하기론 그 시위로 스웨덴에 본사를 둔 대기업인 유코아에 어떠한 영향력을 미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시위는 사람들이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겠지만 딱 거기까지일 것이다.
매우 아쉽지만 그게 현실이니까.
북유럽 대기업 유코아는 한국에 진출하는 동시에 언론과 친분을 맺었을 것이다. 언론이 과연 화랑거리 사장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줄까?
‘그런 헛된 기대를 하느냐고 시간을 낭비하느니 차라리 적극적인 대처 방법을 생각하는 게 훨씬 이득일 것이다.’
이렇듯 오한결의 생각은 확고했다.
‘계획을 앞당기자. 2년 안으로 화랑거리 전면 리모델링과 오한결 미술관을 짓도록 하자.’
리모델링은 화랑거리 사장들의 꿈을 이루는 거라면, 오한결 미술관은 오한결 자신의 회귀 후 가장 큰 미션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오한결 앞을 가로막았다.
어떻게 도시 정비와 미술관을 지을 자금을 마련할 것인가?
특히 도시 정비는 오한결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회귀 후 오한결이 작품 활동으로 만났던 수많은 능력자들이 있지 않은가.
다국적 공룡기업의 신태진 회장, 문체부의 수장인 이상민 장관 등 사회 시스템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들에게 도움을 받자.
이제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때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한결 미술관 만큼은 오한결 자신의 능력으로 짓고 싶었다.
어떠한 외부 도움 없어야, 추후 미술관이 대내외 정쟁에 휘둘리는 없도록 말이다.
예술가가 지은 미술관은 오로지 예술을 위해 존재하면 그뿐이다.
‘그래, 그렇다면 예술가들의 후원으로 미술관을 짓자.’
전 세계 예술가들의 후원으로 미술관을 짓는 것이다.
기업과 정부가 세운 미술관과 그 급이 다른 예술가들이 세운 미술관이라니.
너무 멋지지 않은가?
오한결은 생각만으로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생각을 정리한 오한결이 정신을 차리자, 이미 식탁에 놓여 있는 뚝배기에 갈비찜이 모두 사라졌다.
“야, 오한수. 내 건 남겨놔야지.”
이미 이쑤시개로 이빨 사이사이를 쑤시던 동생에게는 오한결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야, 오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