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0화 블랙 딜러
서울로 올라가는 KTX 안에서 이태종 사무관이 무척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다.
‘벌써 작품이 완성됐다고?’
창밖의 시골 풍경을 바라보며 어제 그가 받았던 이메일의 내용을 곱씹어 봤다.
「안녕하세요, 사무관님. 야옹이 마을 작품을 맡게 된 노을 작가입니다. 기쁜 소식을 알려드리려고 이렇게 새벽에 급하게 메일을 보냅니다. 숱한 난관을 이겨내고 저희 팀이 드디어 사무관님이 원하시는 그런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거기까지는 이태종 사무관이 원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그 다음 내용이 그를 불안하게 했다.
「다만, 좀 특별한 작품이라 직접 서울에 방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마 직접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대단한 작품인가?’
기대와 함께 거대한 불안감이 이태종 사무관을 짓누를 때 서울역 도착 안내 멘트가 나왔다.
잠시 뒤, 열차에서 내린 이태종 사무관이 힘껏 미세먼지를 들이켰다.
‘서울은 공기부터 다르군.’
* * *
어두운 골목길에 접어든 이태종 사무관은 노을의 작업실 근처에 다다르자, 불현듯 공포감에 휩싸였다.
‘만약 작품이 정말 이상하면, 어떡하지?’
그 생각만으로 사무관의 머릿속에는 청장의 고함소리와 각종 시민단체들의 비웃음이 들리는 듯 했다.
미간을 팍 찌푸리며 혼자 중얼거렸다.
‘아,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건가…….’
그 순간 길가에 쌓인 쓰레기 봉지 틈새로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불쑥 튀어나왔다.
“어악!”
깜짝 놀란 이태종 사무관을 아무렇지 않게 검은 고양이가 쳐다봤다. 어두운 밤이라 고양이의 몸은 보이지 않고 공중에 날카로운 노란 눈동자만 떠다니는 것 같았다.
전에 한번 와 봐서 그런지 이태종 사무관은 어렵지 않게 노을의 작업실 건물을 찾을 수 있었다.
한 발자국 깊은 호흡과 함께 계단을 오르니, 어느새 옥탑에 이르렀다.
“저건 뭐야!”
불 꺼진 옥탑은 말 그대로 암흑천지였으나, 몇 미터 앞에 그 어둠조차 가릴 수 없는 더 짙은 그림자가 우뚝 솟아 있었다.
“사무관님 오셨어요?”
어디선가 노을의 목소리가 들리자, 깜짝 놀란 사무관이 주변을 빠르게 둘러봤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 사람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작가님! 어디 계세요? 그리고 불 좀 켜주세요.”
“저희가 준비한 깜짝 이벤트에요. 호호. 사무관님 앞에 있는 작품을 자세히 봐주세요.”
이태종 사무관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이벤트는 개뿔. 공포영화 찍는 것도 아니고.’
노을의 말에 따라 바로 앞에 우뚝 서 있는 검은 그림자를 사무관이 유심히 바라봤다.
그저 덩치 큰 어떤 모형인 줄로 알았는데, 가만히 바라보니 거대한 고양이의 모습이었다.
그것도 사람 키보다 훨씬 큰 고양이였다.
이제 어둠이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그저 평범한 모양 같았던 고양이에게서 음울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뭐지? 이 느낌은?’
용기 내 몇 발자국 앞으로 간 사무관은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살펴보자, 그 이유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너무 슬픈 얼굴을 하고 있구나.’
자신의 아픔과 슬픔을 표정으로 말하는 고양이라니…….
불현듯 야옹이 마을의 실태를 고발한 다큐멘터리가 생각났다. 행복해 보이는 모습 뒤에 가려진 가슴 아픈 고양이의 사연이 저 고양이 모형에 그대로 나타난 듯했다.
‘근데 이게 다란 말인가?’
특별한 것 없는 고양이 조각상에 살짝 실망한 사무관이 소리 질렀다.
“작가님! 작품 잘 봤어요. 그러니까 불 좀 켜주세요.”
“아직 아니에요.”
어디선가 젊은 남자 목소리가 들리자, 사무관이 다시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바로 그 순간, 고양이 조각상 밑에서 조명이 번쩍하고 들어왔다.
깜짝 놀란 사무관이 고개를 돌리자, 거대한 고양이 조각상이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뭐야! 이거 생각한 것과 완전 다른데.’
고양이의 모습을 잘 구현한 거대한 조각상인 줄 알았는데, 그저 재활용품을 커다랗게 쌓은 더미에 불과해 보였다.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플라스틱 재활용품이나 조각난 타이어 등 온갖 재료를 쌓아 올려 거대한 덩어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불을 껐구나!’
어둠 속에서 외형만 모면 꼭 고양이와 닮았으니까.
작가들의 재미난 표현법에 사무관도 슬쩍 미소지을 수밖에 없었다.
‘흥미롭긴 하네.’
하지만 역시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가?’
재활용품을 이용해 고양이의 아픔을 표현한 작품 정도인가?
미적지근한 표정으로 사무관이 소리쳤다.
“잘 봤습니다. 작가님! 이제 옥탑에 불 좀 켜주세요.”
그러자 아까와 다른 남성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아직 하나 더 남았어요!”
고양이 조각상 밑에서 프로젝터에 불이 들어오더니 고양이 몸통에 영상 이미지를 비추기 시작했다.
그 영상은 사무관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마치 피부병으로 고통 받는 고양이 같은 모습 같더니 잠시 뒤, 상처에 찢긴 피부처럼 잔인한 이미지들이 연속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직접적인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고 그저 암시하는 그런 느낌만 주는 것이었다.
‘교묘하게 선정성을 피해갔군.’
고양이 몸통에 시각적 이미지가 더 해지자, 고양이 표정이 더욱 슬퍼 보이기 시작했다.
사무관은 작품을 앞에 두고 그저 멍하니 감상에 빠져들었다.
“재활용품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고 프로젝터로 시각적 이미지를 부여했군요. 이 모든 작업은 자연 친화적이면서도 결과적으로 다큐에서 다뤘던 야옹이 마을의 실태도 정확하게 표현해냈어요. 대단합니다.”
그제야 옥탑에 불이 켜지고 노을과 최무열, 서정익 작가의 모습이 드러났다.
세 사람은 사무관의 작품 분석이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인지 싱글거리고 있었다.
“어때요? 작품 괜찮나요?”
노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미 작품에 매료된 사무관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입니다. 어서 빨리 야옹이 마을에 설치하고 싶군요.”
그리고 노을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작품 예산을 꽤 많이 책정했는데, 실제 제작에는 비용이 많이 들지 않은 것 같네요. 그렇다면 작가료를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드릴 수 있을 겁니다.”
“정말요? 와!!”
노을이 좋아서 날뛰자, 최무열도 덩달아 기뻐했다. 돈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서정익 작가만이 애써 미소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건 그렇고 작품을 야옹이 마을로 옮겨야겠군요.”
순간 멈칫한 노을이 대답했다.
“그게 제일 문제에요. 먼 길인데 손상되지 않을까요?”
사무관이 작품을 둘러보며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문제없습니다. 전문 업체가 있으니까요. 대신 비용이 만만치 않아요.”
“그렇다면…….”
“작가료가 깎이겠죠.”
노을과 최무열은 다시금 얼굴을 마주 보며 애써 미소지었다. 그때 서정익 작가가 영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쉽게 됐네요.”
* * *
며칠 후, 노을이 리더를 맡은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면서 서정익 작가는 드디어 개인전 준비에 몰입할 수 있게 됐다.
하루 정도 휴식을 취한 뒤, 아뜰레에서 자립적 고립을 선택한 서정익 작가가 손에 붓을 들고 작품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고도의 집중을 하던 어느 날, 잠시 휴식을 취하던 서정익 작가는 테이블에 놓여진 검은색 카드를 발견했다. 그건 우편물 더미 사이에 끼어있었다.
“이게 뭐지?”
검은색 카드에는 황금색으로 작은 텍스트가 적혀 있었다.
「INVITATION」
“인비테이션? 이건 ‘초대’라는 뜻이잖아?”
호기심이 발동한 서정익 작가는 카드의 앞뒤를 살펴봤지만 딱히 힌트가 될만한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글자 외에 어떠한 그림도 문자도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장난으로 보냈나?”
서정익 작가가 쓴웃음을 짓고는 검은색 카드를 테이블에 내려놓고 작업을 하러 자리를 이동했다.
그리고는 이내 카드에 관한 건 모두 잊고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띠리링. 띠리링.
몰입을 방해하는 전화 소리가 갑자기 들렸다.
휴대폰을 확인했더니 모르는 번호가 찍혀 있었다.
평소에는 모르는 번호는 일절 받지 않았던 서정익 작가지만 이상하게 그날따라 작업을 방해한 것에 대한 화풀이를 하고 싶었던지 무작정 전화를 받고 소리를 질렀다.
“작업 중입니다! 이 번호에 전화하지 마세요!”
하지만 상대방은 전혀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랬군요. 서정익 작가님.]
잠시 뜸을 들인 상대방은 더 충격적인 이야기로 서정익 작가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제가 서정민 사장님을 안다고 한다면, 관심이 생기겠습니까?]
순간 서정익 작가는 멍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서정민 사장.
그는 서정익 작가의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이었다.
“……누구시죠?”
[초대장은 잘 받으셨나요?]
상대방의 묵직한 음성에 주눅이 든 서정익 작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누구시죠?”
[통성명은 나중에요.]
“네?”
[한 시간 뒤 차 한 대를 보내죠. 그걸 타고 오세요. 그때 설명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서정익 작가는 무척 혼란스러운 얼굴이 됐다.
수상한 자의 수상한 초대.
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이 거론된 이상 호기심을 짓누르기 힘들었다.
아마도 상대방은 서정익 작가의 약점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그는 그런 노골적인 미끼를 물 수밖에 없었다.
* * *
한 시간 뒤.
서정익 작가는 초조한 얼굴로 아뜰리에 앞에서 서성거렸다.
‘감히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을 거론하다니! 대체 누구인 거야?’
게다가 이런 비밀스러운 접선 때문인지 더욱이 그 사람의 의도가 불순해 보였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심란해지고 있는데, 그때 저 멀리서 커다란 검은색 리무진이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잠시 뒤 서정익 작가 앞에 정확히 멈춰 섰지만, 그는 차에 타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때마침 띠링 하고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어서 차에 타시죠, 작가님. 서정민 사장님도 그러길 원하실 겁니다.」
다시금 거론되는 아버지 이름에 서정익 작가는 두려움보다 더욱 큰 호기심이 발동했다. 사실 이제는 그 실체를 직접 보고 싶었다.
‘아, 모르겠다! 대체 뭐가 뭔지 이야기나 들어보자.’
결국 서정익 작가는 용기를 내어 차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내부는 딱 예상한 대로 상당히 고급스럽게 꾸민 리무진의 모습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문이 저절로 닫히며 차가 출발했다.
“저, 어디로 가나요?”
불안한 마음에 서정익 작가가 운전기사에게 말을 걸어봤지만, 흰 머리의 노년의 운전기사는 대답 대신 온화한 미소만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서정익 작가에겐 그런 미소는 긴장감 완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설마, 이렇게 납치라도 되는 건가?’
두려움에 핸드폰을 꺼내 본 서정익 작가는 자신도 모르게 비상 전화 버튼을 살피고 있었다.
‘아,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온갖 상상이 서정익 작가를 괴롭히자, 충동적으로 단체 대화방에 문자를 하나 적기 시작했다.
「혹시, 제가 한 시간 후에 연락이 없거든 경찰에 신고해주세요…….」
하지만 그는 문자를 치던 손가락을 멈춰 세웠다.
이 문자를 보고 놀라 자빠질 노을과 최무열의 모습이 상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썼던 문자를 지우고 오한결에게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혹시 제게 무슨 일이 생기면요…….」
그 사이 이런저런 생각에 빠졌던 서정익 작가는 바로 문자를 하나 더 보냈다.
「아니에요. 그냥 앞에 보낸 문자 무시해주세요. 제가 엉뚱한 말을 했네요.」
그 사이 리무진이 외딴곳에 멈춰 섰다. 아마도 목적지에 도착한 모양이다.
잠시 통화를 마친 운전기사는 근처에 있는 수상한 빌딩의 지하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차에서 내린 서정익 작가는 수상한 직원의 안내를 받아 사방이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응접실로 들어갔다.
잠시 뒤, 낯선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오셨군요. 서정익 작가님.”
서정익 작가는 그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수상한 남자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서정익 작가는 평소보다 훨씬 날카로운 음성으로 물었다.
“대체 누구시죠? 왜 제 아버지를 거론하며 저를 이쪽으로 오게 한 거죠?”
서정익 작가의 흥분한 말투에도 남자는 아랑곳없이 차분하게 자신의 말을 이었다.
“갑작스러운 초대에도 이렇게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저를 ‘블랙 딜러’라고 부르죠. 그리고…….”
자신을 블랙 딜러라고 소개한 남자는 희미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를 냈다. 그러자 응접실 불이 꺼지더니 벽면에 수많은 작품 사진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제가 후원하고 있는 전 세계 신인 작가들의 그림입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작품의 홍수 속에서 서정익 작가의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러던 와중에 블랙 딜러는 응접실 중앙에 꽤 유명한 작품 사진을 띄웠다.
“작가님도 잘 아시는 작품이죠? 무명에 가까운 작가의 작품이지만 지금은 제 손을 거쳐 수백억 원에 거래가 되고 있어요. 어떤가요? 제가 서정익 작가님에게도 같은 기회를 드리려고 하는데요. 저와 손을 잡는다면 향후 10년 이내로 천문학적인 돈과 그에 따른 명성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블랙 딜러의 파격적인 제안에 서정익 작가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입을 꾹 다물었다.
이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
그건 둘째 치고 왜 자신에게 그런 제안을 하는가?
설마 돌아가신 아버지와 무슨 연관이 있는 걸까?
“도대체 이런 제안을 왜 하시는 거죠? 솔직히 말해보세요. 그 꿍꿍이가 뭔지?”
서정익 작가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블랙 딜러는 매우 차분하게 설명했다.
“좋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죠. 20년 전, 저는 작가님의 아버지이신 서정민 사장님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경제적 문제로 삶의 끝자락에 섰을 때 유일하게 사장님만이 조건 없이 경제적 후원을 해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그 은혜를 아드님이신 작가님께 돌려드릴까 합니다.”
서정익 작가는 과거 아버지와 관련된 일화를 생각했다. 아버지는 별다른 말씀을 하시지 않으셨지만, 남몰래 어려운 처지에 놓인 재능 있는 학생들을 위해 개인적으로 기부를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 저 남자도 그때 아버지의 후원을 받았던 학생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블랙딜러는 진심으로 서정익 작가에게 그 은혜를 갚고 싶어 하는 걸까?
서정익 작가의 흔들리는 모습을 본 블랙딜러는 자신 있게 다가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이제 제 진심이 느껴지십니까? 어떤가요? 제 손을 잡으실 건가요?”
서정익 작가는 그의 거칠고 단단한 손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