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86화 (186/202)

제186화 과거 현재 미래 꿈

온갖 언론에서 뉴원 애비뉴에 대한 기사를 쏟아내자, 평소 한산했던 그곳에 호기심 가득한 관광객들의 모습이 곳곳에 보이기 시작했다.

오한결과 최하늘은 마을 입구에서 서성이며 전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진 마을을 살폈다.

“딱히 변한 게 없는 것 같으면서도 완전히 달라진 느낌이네요.”

낡고 오래된 건물에서 느껴지는 우중충함은 여전했지만 관광객들로 활기를 찾은 거리를 보며 최하늘이 말했다.

그러자 오한결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결국 분위기를 결정하는 건 사람들인 거죠. 저기를 보세요. 이제는 사람들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돌아다니고 있잖아요.”

최하늘은 처음 이곳에 방문했을 때 무시무시한 갱들에게 둘러싸인 기억을 회상하면서 몸서리쳤다.

“어우, 맞아요. 그러고 보니 여긴 천국이 됐네요.”

그 말에 오한결이 히죽 웃으며 다시금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그토록 찾던 1.5 미터 정도 되는 커다란 큐빅 모양의 조각품을 발견했다.

“여기 있네요.”

오한결이 그 앞에 멈춰서자, 최하늘이 탄성을 질렀다.

“이게 그거네요. 작가님이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요청한 거죠?”

사각형의 각 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오한결이 설명을 했다.

“한 면에 하나씩 그림을 그릴 거에요. 제가 미리 생각을 해봤는데요, 타이론의 개인전 영감을 받아서 시간의 순서대로 상징적인 그림을 그리면 어떨까 해서요.”

“시간 순서대로요?”

“네, 뉴원 애비뉴의 과거,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채우려고요.”

오한결의 아이디어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던 최하늘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근데, 그렇게 하면 세 작품이잖아요. 하나가 부족한데.”

“아! 하나는 꿈입니다. 그 그림은 저의 개인적인 소망을 담아서 그려볼까 해요.”

오한결이 말을 마치자, 때마침 벽화에 필요한 미술 재료를 실은 차량이 근처에 정차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상당한 물감과 붓 등 각종 용품을 큐빅 모형 앞에 놓고 사라져버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최하늘이 히죽 웃었다.

“상당히 프로페셔널하네요. 저분들.”

그 말을 들은 오한결이 크게 웃어 보이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진지한 표정으로 큐빅을 바라보고 섰다.

최하늘은 갑자기 집중하기 시작한 오한결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항상 그는 그런 식으로 작업을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깊은 침묵이 주변을 감싸고 있는 와중에,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최하늘은 관광인가 싶어, 인기척이 나는 뒤를 돌아보니, 지난번 자신들을 위협했던 흑인 갱들이 대략 10명 정도 몰려와 있었다.

최하늘은 그 모습에 한기를 느끼고는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휙 고개를 돌려 오한결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다행히 흑인 갱들은 오한결의 작업을 방해하고 싶은 생각은 없는 듯했다.

그렇게 오한결은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계획한 작업을 시작했다.

* * *

오한결의 현란한 그림 솜씨에 매혹된 지도 벌써 사흘째가 지나가고 있다.

최하늘 만이 끝까지 남아서 오한결의 작업을 지켜봤을 뿐, 갱들은 금방 실증이 난 건지 이틀 정도는 근처에서 배회하더니 이제는 모습을 감춰버렸다.

“작가님, 조금 쉬었다가 하세요.”

거의 쉬는 시간도 없이 아침 9시에 와서 저녁 10시까지 그림만 그리는 오한결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최하늘이 쳐다보며 말했다.

“마저 끝낼게요.”

오한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여전히 그림에 집중하며 대답했다.

그렇게 그날도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새벽이 돼서야 작품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새벽 1시경.

잠이 오지 않아, 집 밖으로 나와 서성이던 두목 갱은 불현듯 오한결의 그림이 생각났다.

‘작가란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며칠 동안 꼼짝 않고 그림만 그리는 오한결을 본 두목 갱은 그가 보여준 엄청난 몰입감에 감명을 받았다. 살면서 그렇게 하나의 일에 몰입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한결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두목 갱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발걸음이 그의 그림으로 향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 오늘 완성했다고 하니까, 구경이나 가보자.’

백 미터 정도 남았을까? 저 멀리 오한결이 사흘 내내 작업하고 있던 커다란 사각형의 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밤이라 어두워 정확하게 보이지 않지만 그 그림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상당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과연 어떻게 그렸을까?’

두목 갱은 최근에야 오한결에 대한 여러 가지 얘기를 듣게 됐다. 그가 세계적인 작가이며 뉴욕의 거물들을 쥐락펴락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었다.

‘그래 봤자, 그림쟁이 아닌가? 타이론도 천재라며? 근데 나는 무슨 그림인지 모르겠던데.’

낙서쟁이에 불과한 타이론에게 사람들이 왜 찬사를 보내는지 두목 갱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낙서를 꽤 오랫동안 봐왔지만, 솔직히 자신이 마음먹으면 그것보다 더 잘 그리겠다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술 마을? 웃기지도 않지.’

하지만 그의 속마음과 다르게 왜 오한결의 그림에 가까이 갈수록 설렘과 동시에 두려움까지 느껴지는 걸까?

두목 갱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오한결, 그놈은 좀 다른가?’

순식간에 요 며칠간 엄청난 집중력을 보인 오한결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친 두목 갱은 히죽 웃었다.

‘하긴 오한결, 그놈의 노력은 인정해 줘야지.’

그리고 잠시 뒤, 큐빅 모형의 조각품 앞에 선 두목 갱은 단전 깊숙이 올라오는 탄성을 참을 수 없었다.

“이런! 헉!”

조용히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사각 모형 주위를 둘러봤다.

“이건……. 타이론과 차원이 다르잖아!!”

사각 모형을 한 바퀴 둘러본 두목 갱은 이 그림이 어떤 순서로 이뤄져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가장 어둡고 음울한 그림 앞에 멈춰섰다.

그것은 오한결이 그린 ‘과거’의 뉴원 애비뉴였다.

그림은 무척 침울했다.

회색 건물로 가득찬 회색 도시의 풍경에 웃음기 하나 없는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다.

그들은 모두 희망도 없이 살기 위해 살아가는 것일 뿐.

한 블록만 건너가면 세상 사람들이 칭송하는 뉴욕의 화려한 모습과 대조적인 그들의 삶에 두목 갱은 눈시울이 붉혔다.

‘맞아. 우리는 외면 받았어. 나도 멋지게 살고 싶었다고.’

슬럼가에서 태어나 슬럼가의 청년으로 살아가는 두목 갱에게는 삶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저 최악의 순간을 피하며 생존하는 것이 삶의 유일의 목적이었다.

어릴 적 모습을 상상하며 우울한 기분에 젖은 두목 갱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부정적인 과거를 떨쳐 버리려고 애썼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바로 옆 그림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건 타이론이잖아.’

그림 속에 깡마른 청년이 쓰러져 가는 벽면에 낙서를 하고 있다.

도시 풍경은 바로 전 그림과 다르게 색감이 다양하게 보이고 있었다. 회색 건물은 붉은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곳곳에 깨끗한 흰색 외벽의 건물도 자리 잡았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리고 많은 관광객들이 타이론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며 감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맞아. 지금이 딱 이렇지. 타이론의 그림을 보려고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그러고 보니 요즘 마을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아.’

이 그림은 타이론의 등장으로 예술가 마을로 태동한 ‘현재’의 뉴원 애비뉴였다.

흐뭇한 마음으로 다시 눈길을 돌리자, 이번엔 생동감이 살아 있는 그림이 나타났다.

형형색색의 색감으로 칠해진 건물들이 마을을 가득 채웠고 곳곳에 다양한 축제가 열렸고 더불어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설마, 여기가 뉴원 애비뉴?’

축제와 뉴원 애비뉴를 연결하기가 쉽지 않은 두목 갱은 한동안 어리둥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마을이 이렇게 된다고?’

시끌벅적한 축제와 함께 사람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마을을 상상한 오한결은 이 장면을 ‘미래’의 뉴원 애비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 그림 앞에서 두목 갱은 더 혼란스러웠다.

‘이게 뭐야? 세상에 말도 안 돼.’

항상 축제로 즐거운 일만 가득한 뉴원 애비뉴를 지키는 보안관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더 놀라운 점은 그 중심에 우뚝 선 다부진 몸의 한 청년이 자신과 무척 닮았다는 점을 두목 갱이 알아차렸다.

‘나 아니야?’

그림 속 청년의 눈빛은 너무나 진지했다.

이 소중한 뉴원 애비뉴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동시에 처음으로 뜻깊은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자랑스러워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두목 갱은 그림을 따라 자신의 미래를 그려봤다.

즐거운 웃음 소리로 가득한 마을을 순찰하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 마을에 더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갈 수 있을지 고민하는 자신을 모습을 말이다.

‘제기랄, 낯간지럽네.’

하지만 그 기분이 싫지 않았다.

항상 누군가에게 겁을 주고 그들의 물건을 뺏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는데,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그 보안관 정말로 해보고 싶다.’

타이론이 새로운 일자리를 추천한다며 거론했던 그 보안관이라는 직업에 갑자기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미치도록 보안관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찼다.

그렇게 한참 동안 자신과 닮은 그 보안관 그림을 보면서 꿈과 희망에 젖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자연스레 그의 머릿속에는 누군가를 위해 뭔가를 하고 그들에게 칭찬받는 어린아이 같은 상상으로 가득 찼다.

두목 갱에게 필요한 건 그런 관심과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그림을 실컷 구경하고 난 두목 갱은 해기 뜨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정말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감정이었다.

사실 그림 안에 있는 보안관의 얼굴과 두목 갱은 닮지 않았다.

두목 갱이 바라본 마지막 그림은 오한결이 ‘꿈’을 주제로 그린 그림이었다. 그 그림에는 보안관 말고도 뉴원 애비뉴와 관련된 많은 직업군이 나온다. 화가, 사진 작가, 행위 예술가, 경찰, 쉐프 등등.

새로운 희망의 도시 뉴원 애비뉴에서 꿈을 꾸고 사는 다양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 많은 직업 중 보안관의 모습만 발견한 두목 갱은 아마도 그 직업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을 것이다.

두목 갱은 타이론의 제안에 콧방귀를 끼며 어디 해봐라, 라는 식으로 대응했지만 내심, 자신이 보안관이 된다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랬던 걸까, 두목 갱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자신과 연결지은 것이다.

만약 오한결이 그 모습을 봤다면 어떤 말을 했을까.

그는 자신 있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린 원래 목적이 이뤄졌구나.’

오한결은 그림을 본 사람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그림이 완성되자마자 처음으로 본 두목 갱은 오한결의 바람대로 그림을 통해 자신의 꿈을 정확히 바라볼 수 있었고 그것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됐다.

그날 새벽에 잠이 든 두목 갱은 자신이 보안관이 되어 나쁜 갱들을 물리치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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