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85화 (185/202)

제185화 보안관

휘트니 미술관에서의 일이 마무리 된 다음날.

토마스 청장이 미리 준비한 원고를 손에 들고 긴장감을 느끼고 있을 때 청장실 문을 열고 직원이 들어와 말했다.

“청장님, 기자회견 시간 다 됐습니다.”

“기자들은 얼마나 왔나?”

“예상보다 훨씬 많이 왔습니다. 이미 미디어룸에 자리가 없을 정도예요. 몇몇은 바닥에 앉아 있습니다.”

기자들의 관심을 확인한 토마스 청장은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지 슬쩍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알겠네. 바로 가세나.”

다소 웅성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미디어룸 입구에 도착하자 토마스 청장이 옅은 미소를 띠며 심호흡을 깊게 했다.

‘오늘은 내가 주인공이다.’

그는 당당하게 미디어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찰칵. 찰칵. 찰칵.

끝없이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에 토마츠 청장은 눈을 뜨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게 앞으로 그의 입에서 나올 계획에 대한 기대니만큼 기꺼이 그들의 관심을 즐기기로 마음 먹었다.

“안녕하세요. 뉴욕경찰청 토마스 청장입니다.”

긴장과 기대가 한껏 버무려진 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기자들이 순간 잠잠해지면서 노트북에 그의 모든 말들을 적기 시작했다.

“오늘은 뉴욕 시민들에게 반가운 소식을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토마스 청장은 자신의 입만 쳐다보는 기자들을 슬쩍 훔쳐보면서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저는 뉴욕 치안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여러분들에게 치안 사각지대인 뉴원 애비뉴의 새로운 시대를 약속합니다.”

뉴욕의 대표적인 슬럼가 이름이 나오자 기자들이 놀란 눈으로 청장을 바라봤다.

그런 은근한 시선이 싫지 않은 토마스 청장은 자신 있게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우리는 뉴원 애비뉴의 가능성을 무시하며 살았습니다. 우리가 외면한 사이에 그곳에서는 예술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고 이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토마스 청장의 말을 이해하기 힘들었던 어떤 기자가 중간에 손을 번쩍 들고 물었다.

“다소 모호한 말이군요. 도대체 누굴 말하는 건가요?”

‘이런, 저렇게 답답해서야, 어떻게 기자 노릇을 하겠다고?’

토마스 청장은 기자의 눈을 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타이론 작가입니다.”

웅성웅성 소리가 미디어룸에 가득 퍼지자, 토마스 청장이 다시금 집중력을 발휘했다.

“최근 휘트니 미술관을 통해 그 존재감을 드러낸 타이론은 뉴원 애비뉴 출신입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수많은 시민들의 눈이 뉴원 애비뉴로 향하는 것은 아마도 당연한 결과겠죠?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약속드릴 수 있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본인이 만족스러운지 토마스 청장의 입꼬리가 계속 올라갔다.

“앞으로 뉴원 애비뉴는 누구나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완벽한 치안을 유지하게 될 것이며, 앞으로 뉴욕을 대표하는 예술 도시로 탈바꿈하게 될 것입니다.”

‘예술 도시’라는 말에 기자들이 놀라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열심히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렸다.

‘분위기가 아주 좋군. 이제 비장의 무기를 꺼내야지!’

토마스 청장이 승리의 미소를 장착한 채 말을 이었다.

“새로운 예술 도시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오한결 작가님께서 멋진 작품을 기증해 주시기로 약속했습니다.”

우와!

예스!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져 나오자, 토마스 청장의 어깨가 한층 더 올라갔다.

“그리고 뉴원 애비뉴 출신 작가인 타이론은 자신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제일 먼저 뉴원 애비뉴에서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삐이익~!

누군가가 너무 기쁜 나머지 손가락을 이용해 휘파람을 불었다.

“새로운 예술 도시 탄생을 이렇게 제가 직접 발표하게 돼 무척 영광입니다.”

토마스 청장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의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작은 눈물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내가 이렇게 예술 도시의 탄생의 중심에 있다니!’

토마스 청장은 벅찬 환희에 정신이 어찔했다. 이 순간이야말로, 그의 생애에서 가장 감격스럽고 영광스러운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 * *

다음날.

최하늘은 몹시 놀란 눈으로 뉴욕의 야경이 훤히 보이는 이 비밀스러운 레스토랑을 둘러봤다.

그녀의 반응이 싫지 않은지 로건이 미소지으며 말했다.

“어때요? 마음에 드나요?”

오한결 또한 고급스러운 내부에 눈을 떼지 못했다.

“빅스퀘어 빌딩 꼭대기에 이런 고급 레스토랑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로건이 검붉은 와인이 담긴 잔을 손에 쥐고 여유롭게 대답했다.

“당연하죠. 이곳은 제 개인 공간인걸요. 오직 저의 초대가 있어야 들어올 수 있습니다.”

로건의 말에 감동을 받은 최하늘은 이곳을 잊지 않기 위해 두 눈을 부릅뜨고 하나하나 머릿속에 담았다.

곧이어 스테이크가 세 사람이 앞에 놓이자, 자연스럽게 포크와 나이프로 잘라 입에 가져갔다.

눈처럼 스르르 녹는 스테이크에 감동한 최하늘이 탄성을 질렀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스테이크는 처음 먹어 봐요.”

“앞으로 자주 초대해야겠군요.”

로건의 말에 기분 좋아진 최하늘이 오한결을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오늘 저희를 초대한 이유가 따로 있나요?”

말없이 스테이크를 먹기만 하는 로건에게 오한결이 솔직하게 물었다.

“그럼요. 작가님. 제가 궁금한 게 아주 많답니다.”

“뉴원 애비뉴와 관련된 건가요?”

“역시 오한결 작가님 앞에선 어떤 것도 숨길 수 없나 보군요.”

“짐작한 거죠. 어제 토마스 청장의 멋진 기자 회견이 있었잖아요.”

오한결의 말에 최하늘이 슬쩍 웃으며 말했다.

“저는 그렇게 감정적인 기자회견은 처음 봤어요.”

“하하하.”

로건이 최하늘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통령 출마 선언이라도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진심이 느껴져서 보기 좋았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한결이 기분 좋게 대답하자, 로건이 바로 물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토마스 청장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오한결 작가님이 작품을 기증한다는 말이 있던데, 사실입니까?”

“물론이죠. 약속했으니까요.”

오한결의 멋진 작품을 다시금 뉴욕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로건이 한껏 들뜬 상태로 물었다.

“세상에, 너무 좋군요. 그렇다면 혹시 어떤 작품인지 미리 여쭤봐도 될까요? 아시다 시피 제가 작가님 팬 아닙니까? 소소한 정보도 제게 상당한 기쁨입니다.”

대부분 시간을 오한결과 함께하는 최하늘은 그가 최근에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최하늘도 꽤 의아한 표정으로 오한결을 바라봤다.

“아직 작업에 착수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한결의 당당한 말에 당황한 로건이 살짝 말을 버벅거렸다.

“네, 네? 하지만 다음 주에 작품을 공개하기로 돼 있지 않나요?”

오한결이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며칠 안 남았네요.”

애써 덤덤한 척 표정을 관리하던 로건이 이제는 대놓고 불안한 표정으로 오한결을 바라봤다.

“작가님……. 솔직하게 말할게요. 제가 뉴원 애비뉴 예술 도시 사업에 상당한 금액을 투자했습니다. 바로 오한결 작가님을 무척 신뢰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지금 얘기를 들어보면 가장 하이라이트인 오한결 작가님의 작품이 준비가 안 된 건데…….”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로건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그리고는 앞으로 뉴원 애비뉴가 성공하기 위해 겪어야 할 숱한 난관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로건.”

하지만 오한결은 여전히 당당한 말투로 말했다.

“착수만 안 한 거지. 그림 구상은 이미 꽤 진행됐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다시금 희망을 품은 로건이 말했다.

“오! 제가 너무 앞서갔군요. 그럼 오늘 당장이라도 착수하셔야…….”

“아뇨. 기간은 많이 남았어요. 그리고 제가 하나 약속드리죠. 뉴원 애비뉴는 뉴욕의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만들어 갈 겁니다. 거기에 로건도 함께할 거고요.”

오한결의 말에 큰 위로를 받은 로건이 기분 좋게 와인을 들이켰다.

그렇게 식사 자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최하늘이 물었다.

“작가님. 뉴원 애비뉴 작품 준비 시간이 너무 촉박한 거 아닌가요? 사실 주말에도 참가하는 행사도 있으시잖아요.”

“빠듯하죠. 하지만 큰 문제 없을 겁니다.”

최하늘은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지금까지 그가 약속을 어긴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뭐, 또 완벽하게 해내시겠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최하늘은 창밖에 보이는 뉴욕의 야경에 다시금 마음을 빼앗겼다.

* * *

약속이 있어 집 밖으로 나온 타이론은 한적한 뉴원 애비뉴 거리를 걷어가고 있다.

최근 토마스 청장이 대대적인 개선 방향을 발표한 뒤로 낯선 외지인들이 거리 곳곳을 누비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어두침침했던 거리에 조금은 신선한 공기가 도는 것 같아 타이론은 그런 변화가 몹시 좋게 느껴졌다.

그렇게 골목을 돌아 버스 정류장 방향으로 향하는데 덩치큰 흑인 갱들이 하나둘 나타나 타이론을 둘러쌌다.

그중 가장 힘이 세 보이는 두목 갱이 타이론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 때문에 우리가 쫓겨나게 생겼어. 알아?”

분노가 가득 찬 그의 목소리에 타이론이 움찔했다.

“그게 무슨 소리예요?”

하지만 타이론은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무슨 소리냐고?”

얼굴에 피어싱을 잔뜩한 갱이 타이론의 멱살을 움켜쥐고 강하게 흔들며 말했다.

공중에서 힘없이 흔들거리던 타이론이 겁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러세요. 놔요!”

“너 때문에 우리 모두 여기서 쫓겨나게 생겼어. 무슨 예술마을? 웃기시네. 여기는 우리 삶의 터전이야. 나는 여기가 변하는 게 싫다고!”

피어싱을 한 갱이 잔뜩 흥분해 더욱 심하게 흔들자, 타이론이 종이짝처럼 흔들렸다.

하지만 그의 난폭한 행동에도 타이론은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주변을 보라고. 외부인들이 무서워서 이 마을에 오려고 하지 않아. 너네들이 우리 마을을 망쳐 놓은 거야!”

“좀 떴다고 잘난 척하나 본데, 그래! 그럼 이제 다시는 그림 못 그리도록 손목 하나를 망가뜨려주지. 너 오른손잡이지?”

“안 돼!!”

두려움을 느낀 타이론이 미친 듯이 소리쳤지만, 피어싱 갱은 그의 통곡에 아랑곳하지 않고 몽둥이로 그의 손목을 내려치기 위해 힘껏 휘둘렀다.

“으악!!”

타이론이 오른 손목을 잡고 절규를 했다.

“……어?”

하지만 자신의 손목이 멀쩡하다는 것을 깨달은 타이론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위를 쳐다봤다.

그러자 두목 갱이 피어싱 갱의 손목을 힘껏 잡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제정신이야? 우리가 아무리 뒷골목 신세라지만, 이 아이는 예술가야.”

“형님! 왜 그러십니까. 그까지 예술이 뭐라고요.”

“이 아이 손은 뉴욕의 재산이라고. 우리가 그 정도 쓰레기는 아니잖아?”

두목 갱이 단호하게 말하자, 피어싱 갱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두목 갱이 시선을 바닥에 널브러진 타이론에게 향하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 일어나. 타이론.”

두목 갱의 도움으로 자리에서 일어선 타이론이 엉덩이에 묻은 흙을 탈탈 털며 말했다.

“고마워요.”

“됐다. 뭐가 고맙다고. 하지만 나도 너를 곱게 생각하지는 않아. 다만, 예술 마을의 의미를 내가 알고 있을 뿐이야. 그리고 우리의 분노에 관해 너도 이해를 해야 해. 여긴 우리의 삶의 터전이었어. 하지만 이제 우리는 모두 실업자 신세가 될 거라고.”

두목 갱의 진심 어린 말에 타이론은 방금 전 자신이 겪은 일 따위 잊고 그들에게 약간의 동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타이론이 주춤거리더니 말을 했다.

“제가 제안을 해도 될까요?”

두목 갱이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타이론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형님들 모두 제대로 된 일 해볼 생각 없어요?”

“일이야 하고 싶지. 하지만 우리 같은 사람들을 고용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진작 그게 가능했다면 이렇게 돈이나 뺏는 양아치 짓을 시작했겠어?”

“사실, 뉴원 애비뉴 보안관을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거든요. 혹시 생각 있어요?”

“보안관?”

“앞으로 뉴욕 애비뉴 치안을 담당할 보안관을 지금 모집하고 있어요. 제가 모집안을 슬쩍 봤는데, 지역 주민 우선 채용이래요. 일당도 상당히 세고요.”

조용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피어싱 갱이 끼어들었다.

“에이, 우리 같은 사람이 무슨 보안관이야. 완전 어이없네.”

“아니! 난 생각이 다른데.”

피어싱 갱의 말에 두목 갱이 반대 표시를 하자 모두의 시선이 두목 갱으로 향했다.

“사실 비공식적으로 우리는 뉴원 애비뉴를 지켜왔던 사람들이야. 물론 방법은 꽤 일반적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동네 사람들 돈은 뜯은 적은 없거든. 모두 외지인들이었지만.”

여기저기서 갱들이 소리쳤다.

“맞습니다!”

“옳소!”

두목 갱이 손을 내밀며 타이론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래, 너도 그렇고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 네가 우리 보안관으로 만들어줘.”

타이론은 배시시 웃으며 악수를 받아줬지만 속으로 생각했다.

‘제길! 내가 사고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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