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82화 (182/202)

제182화 특집 기사

스웨덴, 스톡홀름에 위치한 유코아 빌딩 CEO실.

회색의 단색 톤으로 고급스럽게 꾸며진 사무실에 금발의 CEO 맥스가 부드러운 미소로 직원에게 물어보고 있다.

“오스카 팀장. 서울에 짓고 있는 건물은 언제 완공됩니까?”

장발의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오스카 팀장이 매우 사무적인 태도로 대답했다.

“2년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아주 잘 됐군요. 한국은 빨리빨리 문화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건물 안전에는 아무 문제 없겠죠?”

“저도 그게 걱정돼서 알아봤는데, 그만큼 기술력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실력이 좋아서 빠르게 짓는 것 같습니다.”

맥스가 귀족같이 우아한 동작으로 다리를 꼬며 말했다.

“한국은 흥미로운 나라입니다. 무엇보다 독특한 나라이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북유럽 기업들이 진출하려고 시도했지만 한국 토종 기업들의 독특한 생존력 때문에 항상 실패하고 말았어요. 저희도 그런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될 겁니다.”

부드럽지만 그 내용은 단호했다.

오스카 팀장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유코아는 전 세계 어디서든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다만 걱정되는 건 한국에 독특한 미술시장이 있다는 겁니다.”

“그래요? 제가 그때 보니까, 독자적으로 미술용품을 판매하는 기업은 없었던 것 같던데요.”

기다렸다는 듯이 오스카 팀장이 태블릿 피씨 화면으로 삼각지 화랑거리 모습을 보여줬다.

맥스 CEO는 사진을 넘겨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뭔가요? 여기가 미술 시장이라고요?”

“네, 한국의 전통…….”

갑자기 맥스가 배꼽을 잡고 웃기 시작했다.

“우하하하.”

항상 점잖은 태도를 유지하던 맥스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웃어대자, 오히려 오스카 팀장이 불편함을 느꼈다. 도저히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 오스카 팀장의 마음을 읽었는지, 맥스가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저는 팀장님이 왜 걱정하는지 모르겠어요. 이것 보세요. 옛날 골목에 허름한 가게들이 몇 개 있는 사진 아닙니까? 난 또 초대형 할인 마트라도 있는 줄 알았습니다.”

맥스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고 생각한 오스카는 차분히 상황을 설명했다.

보이는 모습은 허름할 수 있으나 화랑거리는 한국 미술시장의 전통성을 보유한 시장이기에 절대로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의견을 전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곳은 전통적으로…….”

“그만! 그만 하세요!”

하지만 맥스는 오스카의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차분하게 책상 위로 손을 올린 맥스가 말했다.

“과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이 중요하지요. 지금 보여준 사진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고 경쟁력 있는 미술 시장이라면 우리는 걱정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일단 건물부터 완성하세요. 그러면 한국 미술 시장은 저절로 우리 것이 될 테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진행하겠습니다.”

오스카 팀장이 찝찝한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는데, 맥스 CEO가 불러 세웠다.

“그러고 보니, 오한결 작가가 한국 출신이라고요? 난 중국이나 일본인 줄 알았는데요.”

“저도 많이 헷갈립니다. 하지만 한국이 맞습니다.”

“아주 잘 됐군요. 우리 기업의 한국 진출이 곧 오한결 작가와의 만남으로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말인데요. 나중에 유코아 모델로 오한결 작가로 하면 어떨까요?”

오스카 팀장의 말이 마음에 들었는지 맥스 CEO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오스카 팀장이 보고를 마치고 밖으로 나가자 혼자 남은 맥스 CEO는 결의를 다지는 듯 주먹을 꽉 쥐었다.

‘우선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해서 아시아 전역에 사업을 확장하는 거야!’

유코아를 설립했을 때부터 아시아 시장에 관심이 많았던 맥스 CEO는 드디어 자신의 계획이 곧 실현될 거라는 생각에 몹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한결 작가! 내 계획에 그가 꼭 필요해!’

* * *

모던아트 박수호 기자는 단독으로 데이비드 오 교수의 기사를 쓴 덕분에 엄청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제 세상이 나를 알아봐 주는구나. 하하.’

단숨에 모던아트는 세계 예술계가 주목하는 잡지로 떠올랐고 그 중심에서 박수호 기자가 모든 영광을 누리고 있었다.

평소 박수호 기자에게 까칠하게 대하던 김재진 팀장도 이제는 그에게 부드럽고 온화한 말투로 말을 걸었다.

“박 기자. 밥 먹었어? 일이 아무리 바빠도 끼니는 거르면 안 돼.”

지난번에 팀장이 자신에게 억지로 취재를 맡겼던 기사를 손 보던 박수호 기자가 일부러 투덜거렸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요. 워낙 일이 많아서요. 다른 건 다했는데, 이게 문제네요.”

슬쩍 모니터를 본 김재진 팀장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이런, 그거 내가 마무리할게. 스타 기자님께서 얼마나 바쁘신데 이런 자잘한 일을 할 수 있나.”

며칠 사이에 자신의 입지가 달라진 걸 확인한 박수호 기자가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아니꼬웠지만, 모던아트의 명성을 드높이고 사장님의 총애를 한몸에 받는 박수호 기자를 나무랄 수는 없었다.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놈을 잘못 건드렸다가, 엉뚱하게 자신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으니까. 아우, 더럽고 치사해서 정말!

김재진 팀장이 은근슬쩍 물었다.

“물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지. 지금 국내외 언론에서 박 기사 기사만 쳐다보고 있어. 어서 또 다른 특종을 터트려야 하지 않을까?”

박수호 기자, 라는 이름만 달려도 해당 기사에 트래픽이 엄청나게 올라가는 걸 목격한 그는 팀장 말대로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저도 알아보고 있어요. 지금 취잿거리를 찾고 있거든요.”

“오! 아주 좋은 애티튜드야. 나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겠네.”

팀장에게 은근슬쩍 일거리를 넘긴 박수호 기자는 드디어 여유를 찾고는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가만 있어보자……. 요즘 왜 이렇게 찜찜하지.’

뭔가 중요한 사실을 놓친 듯이 꺼림칙한 기분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그래서 그는 한가해진 지금 좀 더 집중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분명 뭔가가 있는데……. 10년차의 기자 경력이 그것을 지적하고 있잖아.’

‘아!!’

기자의 촉이 최근 몇 년간 예술계에서 일어난 굵직한 사건들에서 어떤 공통점이 있다고 말하는 듯했다.

‘맞아! 바로 그때부터야!’

잔잔하게 흘러가는 한국 예술계에 커다란 파장이 일어난 건 오한결이 명일문화재단 공모전 당선이 되면서부터였다.

항상 최고의 결과로 지금까지 모든 기록들을 갱신하던 오한결 작가 아닌가?

‘혹시 이번에도 오한결 작가가?’

그 순간 박수호 기자의 눈에 자신이 작성했던 데이비드 오 교수의 충격적인 고백이 담긴 기사가 들어왔다.

‘그래, 데이비드 오 교수는 지금 뉴욕에 있지? 그러고 보니, 오한결 작가도 같은 호텔에 머문다고 알고 있는데……. 설마?’

데이비드 오 교수의 갑작스러운 심경 변화의 뒤에 오한결 작가가 있는 것인가? 20년 동안 꽁꽁 감춰뒀던 비밀을 털어놓게 만든 게 오한결 작가일 수도 있지 않은가?

박수호 기자는 눈을 감고 그동안의 오한결의 행보를 헤아려봤다.

따로 생각했던 사건들을 종합해보자, 그 중심에 늘 오한결 작가가 있었다.

‘그래, 이거구나! 오한결 작가 주변으로 항상 흥미로운 일들이 일어났네.’

새롭게 취재 방향을 잡은 박수호 기자가 인터넷에서 오한결 작가와 관련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예전에 자신이 취재한 오한결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발견했다.

그 당시 그는 터무니없게 느껴질 정도로 자신감을 갖고 삼각지 화랑거리에 오한결 미술관을 짓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이대로 승승장구한다면, 오한결 작가가 정말로 미술관을 짓고도 남겠는걸. 허!’

순간 전율을 느낀 박수호 기자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삼각지 화랑거리’ 관련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때 무척 흥미로운 것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뭐야! 한때 왕성한 활동을 했던 원로 작가잖아? 그가 SNS에 호소문을 올렸다고?’

「한국 미술 산업을 책임지던 삼각지 화랑거리가 위기에 처해있다. 북유럽의 대기업의 등장은 한국 미술 산업의 붕괴를 의미하며 앞으로 미술 시장의 교란을 일으키는 주범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그들을 막아내자.」

박수호 기자는 SNS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분명 뭔가가 일어나고 있구나!’

박수호 기자는 폭풍 검색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아냈다.

북유럽 기업 유코아의 진출.

화랑거리 상인들의 불만.

최근 화랑거리에서 수십 년째 장사를 하던 아트화랑 사장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 화랑거리 출신 미술 업계 종사자들을 한곳에 모았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그러나 그들의 목소리는 어디에도 전달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엄청난 일을 모르고 있었다니. 근데 왜 다들 쉬쉬하는 걸까?’

이정도 일이면 이미 기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파다할 텐데 말이다. 설마 대기업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들의 로비로 언론계가 의식적으로 이번 일을 외면하고 있다면?

‘내가 써보자. 삼각지 화랑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특집 기사를 써보는 거야. 그리고 그곳이 한국에서 어떤 상징성을 가진 곳인지 세상에 알려보자.’

오랜만에 기사다운 기사를 쓸 생각에 박수호 기자는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 * *

이태종 사무관이 어두운 표정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다.

다큐멘터리가 방송에 나간 이후로 엄청난 악플이 해산군청 홈페이지에 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야옹이 마을 담당자는 당장 일 좀 해라.」

「마을 사람들에게 모든 관리를 맡긴 거냐? 공무원 시험에 동물보호도 집어넣어라.」

「담당자 모자이크했던데, 그래도 못생긴 거 다 보임.」

한숨을 푹푹 쉬며 악플을 보던 이태종 사무관은 그래도 슬쩍슬쩍 보이는 자신을 응원하는 댓글에 조금은 힘이 나긴 했다.

아마도 동물보호를 주제로 예술 작품을 기획하고 있다는 그의 인터뷰 덕분인 것 같다.

「오해에요. 담당자님은 동물 보호에 관심 있는 거 같은데요. 상사가 문제일 듯.」

「원래 지방 공무원들이 은근히 바쁨. 민원 상대가 뭐 쉽나. 저 정도도 잘한 거임.」

「담당자가 못생긴 얼굴은 아님. 모자이크가 잘 안 어울리는 거지.」

“이제 꼼짝없이 관광용 조각품은 물 건너갔구나.”

이태종 사무관은 책상 한구석에 놓인 야옹이 마을 관광객 유치 계획 보고서를 무심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때 신입 직원이 힘없이 축 처진 이태종 사무관의 어깨를 콕콕 찔렀다.

“저기……. 사무관님.”

“네?”

모깃소리만큼 자그마한 목소리로 이태종 사무관이 대답하자, 신입은 더 긴장한 채로 말했다.

“청장님이 찾으세요. 지금 오시라는데요.”

제일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은 이태종 사무관은 양손으로 머리카락을 쥐여잡고 짧게 탄식을 내뱉었다.

“아!”

그 모습에 놀란 신입 직원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자, 상황을 인지한 이태종 사무관이 애써 웃어 보였다.

“아……. 고마워요. 말을 전해줘서.”

매일 지나치는 복도 끝에 있는 청장실이지만 오늘만큼은 지옥으로 가는 길처럼 복도가 두렵게 느껴졌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 이태종 사무관은 조심스럽게 청장실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청장의 목소리가 들리자 조심히 문을 열고 이태종 사무관이 들어갔다.

신문을 펼쳐놓고 보고 있던 청장이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어서 오게나! 이 사무관!”

혼을 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자신을 반기는 청장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가늠할 수 없었다.

‘뭐야? 설마 사람을 착각했나?’

하지만 이태종 사무관의 걱정과 반대로 청장은 진심으로 그를 칭찬하고 있었다.

“왜 진작 말하지 않았나? 자네가 동물보호를 주제로 작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했다며?”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지만 이태종 사무관은 무조건 청장의 말이 옳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네, 그러긴 했습니까만…….”

“자네가 이렇게 훌륭한 사람인 줄 미처 몰랐네.”

“네……. 네?”

칭찬을 넘어 인간적인 우대를 해주니 너무 황송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태종 사무관이 말을 아끼자, 그 모습조차 겸손함이라고 생각한 청장이 이태종 사무관에게 최고급 녹차를 따라주며 말했다.

“이번에 꼭 성공적인 예술 작품을 만들어 보게. 야옹이 마을의 이미지를 바꿔야 하지 않겠나. 동물보호에 앞장서는 해산 군청! 우리 군청의 미래는 자네에게 달렸네.”

청장의 말에 침을 꿀꺽 삼킨 이태종 사무관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아……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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