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79화 (179/202)

제179화 확실한 명분

데이비드 오 교수가 휘트니 미술관에 왔다는 소식을 들은 알베르토는 분노로 얼굴이 시뻘게진 상태로 특별 전시실로 향했다.

“데이비드 오 교수님!”

굵직한 알베르토의 목소리로 전시실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너무 놀란 최하늘은 오한결 뒤로 몸을 숨기며 말했다.

“단단히 화가 났나 보네요. 처음 보는 모습이에요.”

알베르토는 오한결과 최하늘 곁을 지나 데이비드 오 교수를 향해 걸어갔다. 그를 마주한 알베르토는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말했다.

“한국 언론에 나온 내용이 모두 사실입니까?”

“네. 사실입니다.”

데이비드 오 교수가 주저없이 말하자, 알베르트는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어떻게…… 제게 이러십니까? 교수님의 작품은 휘트니 미술관 자랑이었는데…….”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데이비드 오 교수가 정중하게 사과의 말을 전하자, 분노로 들끓던 알베르트의 목소리가 차츰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는 현실 부정을 시작했다.

“무슨 오해가 있는 거 아닌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습니다. 자그마치 20년 동안 제가 이 작품을 오해하고 있었다고요? 아! 혹시 서프라이즈 인가요? 사실 제 생일이 며칠 안 남긴했는데…….”

알베르토가 말하는 모습을 데이비드 오 교수가 지그시 바라보자, 알베르토는 자신의 말이 모두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세 깨닫고 입을 닫았다.

“역시, 현실이군요.”

오한결이 눈치를 보다가 슬쩍 끼어들었다.

“관장님은 데이비드 오 교수님이 숨겨 놓은 메시지를 아직 발견 못 하신 거군요.”

‘메시지’라는 말에 다시금 알베르토가 흥분하기 시작했다.

“맞아요! 메시지. 도대체 그게 어딨다는 겁니까? 저는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아요. 그래서 지금도 데이비드 오 교수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나 싶습니다.”

오한결이 데이비드 오 교수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자신이 설명을 해도 되냐는 사인을 눈으로 보내자, 얼마든지 하라고 데이비드 오 교수가 눈빛으로 대답했다.

오한결이 손가락으로 작품 속 춤을 추고 있는 캐릭터를 가리켰다.

“잘 보세요. 저들의 몸짓을. 뚝뚝 끊어지는 음악을 배경으로 마치 글자를 그리듯 몸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알베르토는 오한결의 지시대로 캐릭터의 움직임을 눈을 쫓았다.

순차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춤의 형태를 자세히 보니 어떤 기호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유심히 살펴봤지만 그게 무슨 뜻인지 파악하지 못한 알베르토가 말했다.

“솔직히 말할게요. 분명 어떤 기호가 있어 보이긴 합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저는 모르겠어요.”

혼란스러워하는 알베르토의 모습을 관찰하던 최하늘이 오한결에게 슬쩍 말했다.

“작가님, 알베르토는 한글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메시지를 읽을 수 없는 게 아닐까요?”

“맞군요. 한국인인 우리에게 당연하게 인식되는 문자지만 알베르토에겐 무척 난해한 기호로 인식되었겠네요.”

최하늘이 휴대폰 화면에 ‘위대한 대한민국’ 글자를 써서 알베르토에게 보여줬다.

“관장님, 혹시 지금 보시는 글자가 이거와 같나요.”

글자를 확인한 알베르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겁니다.”

“그렇다면!”

휴대폰 화면에 적힌 글자를 영어로 번역 버튼을 누르자, ‘위대한 대한민국’이 ‘Great Korea’로 바뀌었다.

그 모습을 본 알베르토는 이제 모든 진실을 눈으로 마주하게 됐다. 혹시 착각일 수도 있다는 일말의 희망조차 사라져 버린 것이다.

“정말이군요. 이 작품은 교수님 말대로 한국을 칭송하는 작품이었어요.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긴장이 풀린 알베르토는 자신도 모르게 바닥에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놀란 최하늘과 오한결이 다가갔지만 알베르토는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잠시 이대로 있고 싶어요.”

그런 알베르토에게 조심히 다가간 데이비드 오 교수는 손을 내밀며 말했다.

“진심으로 죄송하게 됐습니다.”

데이비드 오 교수의 진솔한 눈빛을 확인한 알베르토는 지금까지 그를 감싸고 있던 분노의 감정이 사그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 데이비드 오 교수는 여전히 위대한 예술가임이 틀림없었다.

그런 그가 진심 어린 눈빛과 화해의 손을 내미는데 어찌 그것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데이비드 오 교수의 손을 잡은 알베르토가 힘껏 일어서서 말했다.

“교수님의 심정을 진지하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수도 있을 거예요.”

“물론입니다. 기다리겠습니다.”

두 사람이 어색한 눈빛과 말로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와중에, 그 뒤에서 있던 최하늘이 오한결에게 말했다.

“이제 이 작품을 한국에 가져가는 일만 남았군요.”

오한결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쉽지 않겠어요. 하지만 문화재단이라면 반드시 해내리라 생각합니다.”

“반드시 해낼 거예요. 신수진 이사장님이 계시잖아요.”

“오……. 그럼 무조건이네요.”

뒤에서 흥겨운 대화 소리가 들리자 알베르토가 짜증나는 표정으로 뒤돌아봤다. 그러자 분위기를 눈치챈 오한결과 최하늘이 입을 딱 다물었다. 잠시 뒤, 알베르토가 찜찜한 표정으로 등을 돌리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히죽 웃어 보였다.

* * *

아리미술관 회의실.

오전에 데이비드 오 교수의 인터뷰를 접한 이현미 관장이 급하게 긴급 회의를 소집했다.

“깜짝 인터뷰였네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이현미 관장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모던아트 기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실질적으로 우리가 데이비드 오 교수님 작품을 가져올 가능성이 높아졌어요.”

하지만 이현미 관장은 한소정 큐레이터의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그녀가 말했다.

“데이비드 오 교수님의 작품에 숨겨진 메시지가 발견됐다고 해서, 작품의 가치가 떨어지는 게 아닙니다. 아마도 이슈가 더 된 만큼 그 가치가 더 오를 가능성이 커요. 그것만으로 휘트니 미술관이 더 소유할 이유는 충분하죠.”

“하지만 휘트니 미술관은 미국적인 작품을 취급한다는 운영 방침을 고수하고 있어요. 만약 데이비드 오 교수님 작품을 계속 보유하고 있다면 정체성의 혼란이 가중될 것입니다.”

한소정 큐레이터의 대답에 진지하게 고민하던 이현미 관장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휘트니 미술관도 확실한 명분이 없다면 아리 미술관으로 작품을 넘기지 않을 겁니다.”

이현미 관장의 말에 한소정 큐레이터는 다시금 벽을 마주친 느낌이었다.

이번만큼은 관장의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했다.

데이비드 오 교수는 현역으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작가이고 그의 작품은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 만큼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그런 작품이 한국을 찬양하는 비밀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해서 한국으로 돌려보낸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순진한 생각 아닐까?

‘분명한 명분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도 그 명분을 찾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애초에 너무 욕심을 부린 게 아닐까?’

숨 막히는 정적을 깬 건 이현미 관장의 단호한 말이었다.

“우리가 뉴욕으로 갑시다. 직접 작품도 보고 휘트니 미술관 관장을 만나보는 거예요.”

“네! 좋습니다. 관장님.”

한껏 얼굴을 찡그리며 고민하던 한소정 큐레이터가 환하게 웃자, 이현미 관장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 전에 신수진 이사장과 긴밀히 협조해서 휘트니 미술관에서 작품을 가져올 수 있도록 계획을 짜보세요. 미리 준비해서 나쁠 것 없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현미 관장의 지시에 무척 열을 올리며 한소정 큐레이터가 대답했다.

* * *

자정이 넘은 시각.

재즈클럽의 흥겨운 분위기는 이제부터 시작됐다.

오한결과 최하늘, 데이비드 오 교수가 같은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오늘 휘트니 미술관에 다녀온 소감을 나누고 있었다.

“근데 알베르토 관장님은 이탈리아 사람 아니에요? 근데 왜 자꾸 미국적인 것에 집착하죠?”

최하늘이 문득 떠오르는 의문을 던졌으나 그 누구도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때 로건이 업무를 끝내고 재즈클럽을 찾았다.

“오한결 작가님! 하늘 씨! 안녕하세요. 와우! 데이비드 오 교수님도 계셨군요.”

무척 자연스럽게 오한결과 같은 테이블에 앉은 로건이 데이비드 오 교수르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굉장했습니다. 저도 예술가가 모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처음 봤어요. 물론 아주 좋은 일로는 아니었지만. 하하.”

데이비드 오 교수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 사람들의 관심은 나쁜 일에 몰리죠.”

최하늘이 끼어들었다.

“그렇게 나쁘게 볼 필요는 없어요. 오히려 교수님의 용기에 감탄한 사람들도 많고요. 작품을 더 높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꽤 된다고 들었어요.”

로건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기가 막힌 해석이군요. 좋습니다. 오늘은 제가 쏘겠습니다.”

로건의 말을 들은 옆 테이블 손님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와우, 너무 부럽다. 나도 저런 친구가 있었으면…….”

말귀가 밝은 로건이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말했다.

“오늘 제가 재즈클럽의 모든 손님께 술을 사겠습니다. 데이비드 오 교수님께서 비밀을 폭로한 날이니까요. 그렇죠, 교수님?”

데이비드 오 교수가 살짝 얼굴이 벌게졌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로건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 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로건!!”

“로건!!”

한바탕 소동 아닌 소동이 끝나자, 로건이 데이비드 오 교수를 데리고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버렸다.

두 사람만 덩그러니 남게 되자 오한결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가끔 보면 종잡을 수 없는 사람 같아요. 로건은.”

“그러게요. 어떤 캐릭터인지 파악했어요. 호호.”

맥주를 한 모금 마신 오한결이 뭔가가 생각났는지 입을 열었다.

“아, 타이론의 개인전 준비는 어떻게 돼가요?”

“지금 개인전 장소를 알아보고 있는데 쉽지 않네요.”

“문화재단 건물에서 하기로 했잖아요.”

“네. 원래 그랬는데, 신수진 이사장님이 더 화려하게 하고 싶다고 하셔서요. 신인이고 지금 한창 전시 시즌이라 웬만한 곳은 이미 예약이 됐어요. 결국 못 찾으면 문화재단 건물에서 해야죠.”

최하늘의 말을 곰곰이 듣던 오한결이 재미난 생각이 났는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게 아주 좋은 생각이 났어요.”

“뭔데요?”

최하늘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데이비드 오 교수님 작품 문제와 타이론의 개인전 전시 장소 섭외 문제 모두 해결 가능한 생각이요.”

“네? 두 개는 완전히 별개로 생각해야 하잖아요. 어떻게 그걸 한꺼번에 해결하죠?”

오한결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최하늘에게 물었다.

“만약 타이론이 개인전을 휘트니 미술관에서 한다면 어떨 것 같아요?”

“네? 그게 가능해요? 에이, 말도 안 되죠. 유명한 작가들도 개인전을 휘트니 미술관에서 못하고 있는데요. 하물며 신인 작품이라면 더욱 불가능하죠.”

손에 든 맥주를 끝까지 다 마신 오한결이 말했다.

“제가 해결해 보겠습니다. 내일 신수진 이사장님과 미팅 잡아주세요.”

“아…… 네. 혹시 제게 살짝 귀띔이라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에이 그럼 재미없죠. 내일 알려줄게요.”

최하늘은 애써 웃으며 알겠다고 말했지만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아, 궁금해 미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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