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78화 (178/202)

제178화 파격적인 제안

윌리가 뉴욕대 총장실에 노크하고 들어서자, 총장이 환하게 미소지으며 그를 맞이했다.

“윌리! 자네 어서 오게나. 내가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어.”

어정쩡한 자세로 인사를 한 윌리가 총장 앞자리에 앉은 후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분명 CNN 뉴스를 보고 자신을 불렀으리라. 하지만 윌리는 시치미를 뚝 떼고 말했다.

“무슨 일로…….”

“이런! 무슨 일이라니. 자네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지. 나는 언젠가 자네가 성공할 줄 알았네. CNN에서 기사가 나오자마자 바로 그 논문을 읽어 봤네. 아주 훌륭하더군.”

총장의 반응에 그제야 긴장이 풀린 윌리가 여유롭게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윌리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총장이 은근히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자네 다시 봤어. 그렇게 야심이 있는 줄 몰랐거든.”

“네?”

“그 논문의 목적이 뭔지 나는 보자마자 바로 알아봤다네.”

자신의 예리한 추리력에 놀라지 말라는 듯 총장이 손을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일전에 자네에게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정교수 자리는 어렵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자네는 온 힘을 다해 논문을 작성했어. 그게 무슨 뜻일까? 바로 정교수를 향한 자네의 마음을 내게 증명한 거라네.”

윌리는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추리력에 잠시 말을 잊어버렸다.

그는 오로지 타이론의 예술성을 증명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논문을 작성했을 뿐이었다. 뉴욕 타임즈의 평론가의 독설에 자신의 제자를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말이다.

생각에 잠긴 윌리의 얼굴을 보면서 총장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 자네 마음 잘 알겠네. 다음 교수 임용 때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거야. 내가 살펴보니까, 자네는 지금까지 학생들의 강의 평가 최우수를 몇 번 했고 논문도 꾸준히 발표한 거로 알고 있네. 다만, 작품 전시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어.”

마지막 말에 윌리가 우울한 얼굴을 짓자, 총장이 후다닥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자네 성향은 완전히 예술 이론가야! 앞으로 학자로서 더욱 미래가 기대되는 인물이란 얘기지. 그러니 뉴욕대는 자네를 놓치고 싶지 않아.”

윌리는 오랫동안 바라고 바랐던 이런 달콤한 얘기를 듣는데도 가슴이 차분히 가라앉는 걸 느꼈다.

‘왜 기쁘지 않은 걸까?’

예술을 시작하면서 평생 인정 받고 싶었지만 항상 자신보다 재능이 뛰어난 작가들을 보면서 좌절했다.

공부를 곧잘 했기에 박사 학위를 따고 대학에서 강사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처지를 비관한 적도 많았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매우 기뻐해야 하는 상태 아닌가?’

그러나 머리는 속일 수 있지만 마음은 절대 속일 수 없는 법.

윌리는 총장의 제안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총장님 죄송하지만, 이 논문은 정교수가 되기 위해 쓴 게 아닙니다.”

“뭐? 자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총장은 일생일대의 기회 앞에서 주춤하는 윌리를 안타깝게 쳐다보며 말했다.

“최근에 제게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생겼거든요. 제 첫 제자인 타이론을 정말 훌륭한 작가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의 말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던 총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교수를 하면 되지 않은가? 제자를 지도하기에 교수만큼 좋은 직업도 없다네.”

“아뇨. 그 아이는 대학 교육과 무관하게 성장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런 훌륭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저 역시 대학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그 아이를 지도할 필요가 있어요.”

총장이 너무 놀라서 입을 벌리고 있자, 윌리가 수습하듯 빨리 말을 이었다.

“그래도 강사 일은 계속하고 싶습니다. 저도 생계를 이어가야 하거든요.”

총장은 윌리에게 참 훌륭한 생각이라며 칭찬했지만 그는 한편으로 분명 다른 명문대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더 파격적인 제안을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은근 고도의 협상 전략을 구사하는구먼. 쉽지 않겠어!’

* * *

푸른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기분 좋은 서울 아침.

문화재단에 도착한 이나영 팀장이 책상에 앉아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킨 뒤 컴퓨터를 켰다.

습관처럼 포털사이트에 접속한 이나영 팀장의 눈이 휘둥그렇게 변해버렸다.

‘어머! 이게 뭐야!!’

연예인이나 정치인들로만 채워진다는 포털사이트 메인에 데이비드 오 교수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걸려 있지 않은가?

「충격! 데이비드 오 교수의 충격 선언’」

충격적인 제목의 기사를 본 이나영 팀장은 긴장되는 마음으로 기사를 클릭했다.

「국립예술교육원 교수이자 대한민국 대표 작가로 알려진 데이비드 오 교수의 충격적인 과거 고백에 대한민국이 들썩거리고 있다. 그는 저명한 미술잡지인 모던아트와 단독 인터뷰를 가졌고 거기서 그가 20년 전 뉴욕에서 만들었던 작품이 대한민국을 찬양하는 작품이라는 깜짝 놀랄만한 사실을 밝혔다. 무엇보다 작품 안에 ‘위대한 대한민국’이라는 상징을 숨겼다고 말했다.」

‘위대한 대한민국…….’

“완전 대박이네. 세상에…….”

기사를 몰입해서 읽던 이나영 팀장이 입으로 중얼거리며 기사 하단을 마저 읽었다.

“그 작품은 현재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 전시 중에 있으며, 오랫동안 미국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인정받았던 작품이었다. 현재 휘트니 미술관은 어떠한 대응을 하지 않고 있지 않다. 하지만 알베르토 미술관장이 SNS에 천둥 번개가 몰아치는 사진을 걸었다는 점에서 그가 곧 입장표명을 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천둥 번개가 가진 의미를 예술, 철학적으로 분석해 SNS에 올리고 있다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현상이다.”

모니터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이나영 팀장이 중얼거렸다.

“사실상 데이비드 오 교수의 양심선언이군. 그렇다면 신수진 이사장님이 원하던 대로 정말로 휘트니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가져올 기회가 생긴 거야.”

시계를 확인한 이나영 팀장이 고민에 빠졌다.

“이사장님은 지금 주무시고 계실 텐데. 보고를 해야 할까?”

하지만 불현듯 신수진 이사장의 불호령이 귓가에 울리는 착각을 한 이나영 팀장이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신수진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뒤, 그녀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네, 여보세요…….]

“이사장님, 이나영 팀장입니다. 급히 보고드릴 사항이 있어서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눈치챈 신수진 이사장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특유의 냉정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로 물었다.

[네! 말씀하세요!]

그렇게 이나영 팀장은 자신이 본 기사 내용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신수진 이사장은 한 마디 하지 않고 이나영 팀장의 보고를 몰입해서 들었다.

[결국 이렇게 됐군요. 좋습니다. 이제부터 문화재단과 아리미술관이 나설 차례군요. 이나영 팀장님은 여론의 상황을 좀 더 면밀하게 모니터링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나영 팀장은 전화를 끊고 차갑게 식은 커피를 마저 들이켰다. 그녀는 데이비드 오 교수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동안 많이 힘드셨겠네. 이렇게 용기를 내셨으니, 내가 힘닿는 데까지 도와야겠어.’

손가락 관절을 두두둑 푼 이나영 팀장이 포털 사이트 기사와 댓글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 * *

뉴욕의 이른 아침.

오한결과 최하늘은 함께 아침 식사를 한 후 데이비드 오 교수를 만나기 위해 호텔 VIP 라운지를 찾았다.

저 멀리 창밖을 바라보며 홀로 앉아 있는 데이비드 오 교수가 보이자 최하늘이 멈칫했다.

“교수님이 너무 힘들어 보여요.”

“그러겠죠. 20년간 마음에 담았던 비밀을 말했으니까요.”

최하늘이 고개를 돌려 오한결을 쳐다봤다.

“근데 저는 사실 좀 놀란 게, 미국 언론이 아니라 한국 미술잡지에 그 사실을 터트렸잖아요. 그래서 한국에서 먼저 난리가 나고 미국은 오늘 아침에야 주요 뉴스에서 기사를 내보내고 있어요. 모두 계산된 거겠죠?”

“아마도 한국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특종의 기회를 한국 언론에 먼저 준 것 같고요.”

그 순간, 최하늘의 휴대폰에 문자 알람이 여러 번 울렸다. 그녀는 휴대폰을 바라보며 새벽부터 끊임없이 쏟아지는 지인들의 문자에 한숨을 쉬었다.

“사람들이 많이 궁금한가 봐요. 사실 저도 이제 알았는데요. 섣부른 대응은 하지 말아야겠어요. 어차피 공식적으로는 문화재단이 나선다고 하니까요.”

최하늘이 10년은 더 늙어 보이는 데이비드 오 교수의 뒷모습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이제 교수님은 어떻게 될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데이비드 오 교수님은 그렇게 쉽게 무너질 분이 아니에요. 그분이 쌓아온 명성은 그 작품 하나로 만든 게 아니니까요.”

오한결이 이제 그만 데이비드 오 교수에게 가보자는 신호를 보내자 최하늘이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인기척을 느낀 데이비드 오 교수가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쳐다봤다. 오한결은 그의 얼굴이 생각보다 편안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마치 그간의 걱정을 털어버린 가뿐한 기분이 그가 맞이할 곤란한 상황보다 더 크다는 듯이 그는 활짝 웃어 보이기까지 했다.

“자네들 왔는가.”

오한결이 둘러대지 않고 말했다.

“교수님의 인터뷰가 꽤 이슈가 됐던데요. 아마도 생각지도 못했던 거라 그런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 오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그랬을 거야. 20년 동안 나는 내 작품에 대해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으니 말이야. 오해하게끔 내가 만들었어.”

최하늘이 기회를 보다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교수님을 응원하는 댓글도 상당히 많아요. 무엇보다 작품 속에 숨겨 놓은 ‘위대한 대한민국’ 메시지에 감동한 사람들도 있고요. 그런 면에서 교수님은 메시지를 통해서 그게 한국적인 작품이라는 사실을 꾸준히 말했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최하늘은 자신이 꽤 그럴싸한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지 은근히 뿌듯함을 느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반응을 은근히 기대하기 시작했다.

“아주 힘이 나는 해석이구먼. 그렇게 봐준다면 아주 고맙지.”

최하늘의 기대에 부응하듯 데이비드 오 교수가 말을 하자, 그녀가 활짝 웃었다.

오한결이 물었다.

“이제 어떤 계획이 있으신가요?”

오한결의 질문에 꽤 신중한 모습을 보이던 데이비드 오 교수가 대답했다.

“글쎄, 사실 생각 안 해봤네. 사실을 말하고 나면 나머지 평가는 대중의 몫이라고 생각했거든. 비난을 하든 설령 칭찬을 하든 그들의 자유이자 권리지 않는가.”

최하늘은 데이비드 오 교수의 행동에 의문을 품었지만 오한결은 그렇지 않았다.

오한결에겐 데이비드 오 교수의 행동은 일종의 예술적 퍼포먼스로 보였던 것이다.

작품에 메시지를 숨겨 놓고 그것을 20년 만에 공개하는 행위.

그 작품을 대하는 대중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예술적 아름다움에 심취해서 그 작품을 좋아했던 건가, 아니면 오직 애국적 마음으로 그 작품에 가치를 부여했던 걸까?

“교수님. 신수진 이사장님께서 이 말을 전하라고 하셨어요. 이후 모든 일은 문화재단과 아리 미술관에서 처리하겠다고요.”

“아리 미술관?”

“네. 교수님의 작품을 한국으로 가져가려고 합니다.”

데이비드 오 교수가 그 말에 꽤 흥미를 보였다. 아마도 모든 사실이 밝혀진 지금으로서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작품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내 작품을 보고 싶네. 뉴욕에서 말이지.”

“지금 가시죠. 저희도 따라가겠습니다.”

“오호, 그래 주겠나? 그래, 휘트니 미술관으로 가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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