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74화 (174/202)

제174화 다큐멘터리

옥탑 작업실에 모인 노을, 최무열, 서정익 작가가 저녁 식사로 치킨을 먹고 있다.

언제부터인지 치킨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된 서정익 작가는 한마디 말도 없이 쩝쩝 소리를 내며 닭다리를 뜯기 바빴다.

그 모습을 보던 최무열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작가님은 옛날 생각나네요. 치킨 별로 안 좋아했잖아요.”

입 주변으로 양념을 잔뜩 묻힌 서정익 작가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아……. 그땐 뭐 먹는 걸 귀찮아 했으니까요.”

“그래요? 지금은 되게 잘 드시네요. 호호.”

노을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대답하자, 서정익 작가가 더욱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항상 혼자 밥 먹었거든요. 그래서 식사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죠. 근데 지금은 노을 씨랑 무열 씨가 항상 같이 있으니까……. 이상하게 맛있네요…….”

갑자기 고백 같은 말에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최무열이 일부러 큰소리로 말했다.

“그럼 앞으로 쭉 이렇게 같이 먹어요. 대신, 살쪄도 저흰 책임 없습니다!”

띠링.

식사를 거의 마칠 때쯤, 노을의 휴대폰에서 문자 알람이 들렸다.

“어머! 글로벌애니멀 이재정 팀장님이 보냈어요. 오늘 저녁 8시에 SBC 특집 다큐를 보라네요.”

“엥? 갑자기?”

문자를 자세히 보던 노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야옹이 마을이 나오나 봐요.”

하나 남은 닭가슴살을 거칠게 뜯던 서정익 작가가 말했다.

“다큐4일 아닐까요? 마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구경다니는…….”

“아! 그렇겠네요. 거의 시간 다 됐으니까, 이제 정리하고 오랜만에 다 같이 텔레비전 봐요. 호호.”

뒷정리를 다 하고 소파에 앉은 세 사람은 텔레비전 광고를 보며 다큐 프로그램을 기다렸다.

어느덧 작업실 구석에서 잠들어 있던 뭉치가 깨어나 노을의 무릎 위에서 털을 고르고 있었다.

잠시 시계를 확인한 최무열이 말했다.

“내가 잠깐 나가서 팝콘 좀 사올까?”

“이게 무슨 영화도 아니고…….”

노을이 살짝 어이없어하자, 최무열이 벌떡 일어나서 대답했다.

“잠깐만 기다려, 근처 편의점에서 바로 사 올게!”

“그럼 전……. 카라멜 맛으로…….”

서정익 작가가 수줍게 말하자, 최무열이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갔다.

잠시 뒤, 세 사람은 팝콘을 하나씩 손에 쥐고 TV 앞에 앉았다. 자신이 원했던 카라멜 맛을 음미하던 서정익 작가도 무척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의 광고가 나온 후 세 사람이 기다리던 SBC 특집 다큐가 시작됐다.

화면 가득 야옹이 마을 전경이 나오더니 그 주변으로 푸른 바다가 일렁이는 풍경이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담당 피디가 야옹이 마을 입구에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굉장히 아름다운 마을이군요. 한국의 숨겨진 보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디가 어슬렁거리며 마을 안으로 들어오자 다양한 색상의 고양이들이 낯선 손님을 향해 몰려들었다.

“와우! 정말로 고양이들이 많네요.”

슬쩍 고양이 머리를 쓰다듬은 담당 피디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이곳은 고양이 천국인가 봅니다. 인간과 고양이가 서로 공존하는 이상적인 곳이에요.”

그렇게 한참을 야옹이 마을을 찬양한 담당 피디가 길을 나서자, 귀여운 벽화가 그려진 오래된 집을 발견했다.

“와우! 여기가 그곳이군요. 미술 잡지에도 나왔죠. 청년 예술가들이 이곳에 자신의 작품을 남겼다고요.”

벽면 아래로 줄지어 선 개성 넘치는 고양이 집부터 고양이 캐릭터가 그려진 담벼락을 담당 피디가 카메라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때마침 할머니 한 분이 집에서 나왔다.

피디가 얼른 할머니를 인터뷰했다.

“할머니 집이 많이 예뻐요.”

“아이고! 말도 마요. 마음씨가 예쁜 청년들이 이렇게 집을 잘 꾸며줬다고.”

할머니는 피디가 난처할 정도로 청년들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집 안에 있던 쓰레기도 모두 치워줬어. 사실 참 골치였거든.”

담당 피디가 환하게 웃으며 카메라에 대고 멘트를 날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에 나타난 아름다운 청년의 미담이 끊이지 않는군요.”

그러자 할머니가 또 다른 이야기가 생각났는지, 멘트를 하던 피디를 툭툭 치며 말을 건넸다.

갑자기 흐름이 끊긴 담당 피디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할머니는 상대방의 표정 따위 살필 여력이 없었다. 워낙 할 말이 많았기 때문에.

힘겹게 인터뷰와 방송 멘트를 끝내고 마을의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려고 하는데, 수수한 차림의 여성이 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모습이 발견됐다.

담당 피디는 마을 주민 인터뷰를 더 할까 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인터뷰 좀 할 수 있을까요?”

여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이죠!”

“마을 주민이신가 봐요. 고양이를 참 예뻐하시네요.”

“아니요. 주민은 아니에요.”

피디가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아……. 관광객이신가 봐요.”

“뭐, 사실 그것도 아니고요. 저는 글로벌애니멀 이재정 팀장입니다.”

피디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글로벌애니멀이면 동물단체잖아요. 여기에 무슨 일로?”

“피디님은 이곳에 있는 동물들의 아픔이 안 보이시나요?”

생각지도 못한 멘트가 나오자, 피디가 눈을 반짝이며 집요하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피디가 카메라 감독을 향해 손짓을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재정 팀장의 얼굴을 클로즈업했다.

“사실상 이곳은 고양이들을 방치하고 있어요.”

카메라 감독이 이재정 팀장 얼굴로 화면을 가득 채웠다.

“주민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고양이를 기르고 있지만, 고양이 숫자가 늘어나면서 수많은 문제점들이 드러나고 있어요.”

“정확히 어떤 점이죠?”

“고양이들은 영역 동물입니다. 일단 개체 수가 조절되지 않으니까, 무분별하게 번식이 이뤄지고 있고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고양이들이 늘어나고 있어요.”

“도태라면 어떤 형태인가요?”

“질병은 다반사고요, 심지어 영역 싸움에서 밀린 고양이들은 상처를 제때 치료하지 못해 감염으로 생명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재정 팀장이 갑자기 길을 나서며 말을 이었다.

“따라오세요. 제가 직접 보여드릴게요.”

피디와 카메라 감독은 졸졸졸 이재정 팀장을 따라가며 어떻게 하면 극적으로 장면을 연출할까 고민에 빠졌다.

마을의 으슥한 공간에 들어간 이재정 팀장이 손가락으로 구석진 곳을 가리키자, 그곳에 두려움으로 몸을 덜덜덜 떠는 새끼 고양이가 보였다.

피디가 놀란 눈으로 말했다.

“이런, 상태가 심각해 보이는군요. 빨리 치료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재정 팀장이 마치 방송 진행자처럼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며 대답했다.

“제가 오늘 본 것만 해도 저런 고양이들이 열 마리는 됐어요.”

“세상에! 마을 주민들이 좀 신경을 써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물론 그게 좋겠죠. 하지만 이곳 마을 사람들에게 책임을 지울 수는 없어요. 그들은 고양이들과 공존을 선택했고 지금 최선을 다해 그들의 영역을 인정해주고 있어요. 그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저 불쌍한 고양이들을 누군가는 돌봐야 하지 않을까요?”

안타까운 표정으로 피디가 묻자, 이재정 팀장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이죠. 저는 그 역할은 정부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야옹이 마을의 문제점은 이미 주민들이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 있어요. 정부가 예산을 투입해서 동물복지에 앞장서야 합니다.”

카메라에 얼굴을 비친 담당 피디도 비슷한 말을 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제가 직접 와 보니 마을 주민들을 고양이들의 삶의 터전을 인정하고 그들과 공존을 선택했습니다. 마을 곳곳에 고양이 배식 센터가 있고 곳곳에 쉼터까지 마련해 뒀어요. 하지만 비전문가인 주민들은 고양이 개체 수 관리를 생각하지 못했고 자연스럽게 숫자가 늘어나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카메라 감독은 영역 싸움에서 밀려 상처 입은 고양이를 화면에 담기 시작했다.

털이 뭉텅이로 빠져 몹시 위태로운 고양이와 겁이 많아 먹이통 근처에 가지 못한 새끼 고양이가 앙상한 모습으로 덜덜덜 떨고 있었다.

안타까운 화면이 지나고 다시 피디의 멘트가 이어졌다.

“지역 공무원들은 과연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갑자기 그게 궁금해지는군요. 그들은 어떻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으며 어떤 해결 방안을 갖고 있는지 취재해 보겠습니다.”

잠시 이동하는 화면이 잠깐 나온 뒤, 피디가 해산 군청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저는 지금 야옹이 마을을 관리하는 해산 군청 앞에 나와 있습니다. 미리 전화로 취재를 요청했는데,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다고 하네요. 하지만 저는 쉽게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일단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피디가 해산 군청으로 들어가자, 컴퓨터 앞에서 느긋하게 작업을 하던 공무원들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제일 나이가 어려 보이는 공무원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피디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로…….”

“안녕하세요 SBC에서 나왔습니다. 야옹이 마을의 관리 담당자님이 누구신지 알 수 있을까요?”

“아……. 이태종 사무관님이신데…….”

“이태종 사무관님! 알겠습니다. 지금 그분 어디에 있나요?”

신입 공무원은 멍한 얼굴로 이태종 사무관의 책상을 가리켰다.

피디가 고개를 돌리자, 책상에 무표정으로 앉아 있는 공무원의 모습이 보였다. 피디와 카메라 감독은 이태종 사무관 책상 앞에 다가갔다.

“이태종 사무관님?”

“아……. 제가 바빠서요.”

“잠깐이면 됩니다. 질문 몇 개만 할게요.”

“제가 좀 바쁜데…….”

회피하려는 모습에 짜증이 난 피디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사무관님은 야옹이 마을에 치료가 시급한 고양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

“개체 수 관리를 누군가는 해야하는데, 사무관님은 거기에 대해 계획이 있으신가요?”

“…….”

“평소 동물 복지나 보호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숱한 질문이 쏟아지자, 정신이 어벙벙해진 이태종 사무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피디님! 제가 한 마디 할게요. 저도 야옹이 마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마을을 위해 뭔가를 할지 고민만 하는 사람입니다.”

카메라 감독이 카메라를 이태종 사무관 얼굴이 들이대자, 화면에 사무관의 얼굴로 채워졌다.

이태종 사무관이 흥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피디님도 아마 아실 텐데, 야옹이 마을을 예쁘게 꾸며준 청년 작가들하고도 함께 예술 사업도 구상 중에 있고요.”

피디가 고개를 갸웃했다.

“예술 사업이요? 저는 동물 복지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야옹이 마을은 지금도 충분히 예뻐요. 물론 겉보기에는.”

“아니……. 예술이란 게 꼭 예쁘게 꾸미는 것만 있나요? 예술로 동물 복지를 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아! 진작 말씀해주시오. 그럼 청년 예술가와 동물 보호나 복지 쪽으로 컨셉을 잡고 뭔가를 준비하시고 있다는 말씀이군요.”

“그…… 그, 그렇죠. 이미 다 얘기를 나눴죠.”

누가 봐도 당혹스러운 표정의 이태종 사무관을 모습을 화면으로 보던 노을이 중얼 거렸다.

“대박……. 글로벌애니멀의 큰 그림인가?”

마지막 팝콘 한 알을 집어 먹은 최무열이 대답했다.

“어쨌든 우리는 동물보호 관련해서 작품을 준비하면 되겠네. 이게 이렇게 쉽게 해결될 문제였단 말인가…….”

“잘 된 거네요. 노을 씨가 원하는 대로 됐잖아요. 우리 최선을 다해봐요.”

애써 웃으며 말을 건네던 서정익 작가는 곁눈질로 은근슬쩍 뭉치를 바라봤다.

‘뭉치 저놈, 분명 글로벌애니멀에서 보낸 첩자일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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