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3화 꼬인 실타래
마치 진실을 얘기하라는 듯한 오한결의 눈빛에 부담감을 느낀 데이비드 오 교수가 한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솔직히 모르겠네.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 해서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데이비드 오 교수가 얼굴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너무 힘들었거든. 그리고 독하게 작품을 준비했지. 나는 성공하고 싶었어.”
그 말에 오한결은 성공을 갈망했던 데이비드 오 교수의 젊은 시절을 떠올려 봤다.
한국의 명문대에서 예술을 전공하고 자신의 뜻을 펼치고자 뉴욕으로 떠났던 데이비드 오 교수. 지금도 얼굴을 붉히며 그때를 힘들게 회상하는 걸로 봐선 그의 가난한 삶이 그에게 엄청난 상처로 남았을 거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더욱이 그때 당시 함께 예술을 하자고 했던 동료이자 선배인 이상민 장관의 배신도 있지 않았던가.
‘데이비드 오 교수가 이상민 장관을 그토록 싫어하는 이유를 알 것 같군.’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절대로 해소되지 않는 앙금이란 게 있으니까.
비록 서로가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하더라도 그 마음의 상처는 치료되지 않았던 것이다.
데이비드 오 교수가 덤덤하게 말했다.
“나는 뉴욕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고 싶었네.”
오한결은 그의 말에 말문이 막혀 버렸다.
“……전혀 생각지 못한 말을 하시는군요.”
“그런가? 이 모든 게 오해라고 말할 줄 알았나?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자네야말로 오해를 하고 있는 거야. 휘트니 미술관에 있는 내 작품은 미국을 대표하는 작품이야.”
“어째서…….”
잠시 숨을 고른 데이비드 오 교수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제 막다른 골목이군. 모두 말해줄까 하네. 솔직히 나는 너무나 성공하고 싶었어. 그리고 한국에 다시는 돌아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 나는 미국에서 미국인을 위해 작품을 만들고 그들에게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었어.”
오한결이 조용히 읊조렸다.
“휘트니 미술관의 설명이 틀리지 않았군요. 교수님이 미국인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사실이.”
“그렇지. 하지만 오해하지 말게. 그 당시에 그렇다는 거야.”
“지금은 아닌가요?”
“물론이지. 뉴욕에서 작가로 데뷔하긴 했지만 내 뿌리는 대한민국이야. 그걸 항상 생각하며 살고 있네.”
오한결은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20년 전 무명시절을 벗어나기 위해 데이비드 오 교수가 한 선택은 미국적인 작품을 만들고 자신의 정체성을 바꾼 거라는 말이지?
‘근데 왜 이렇게 찝찝할까.’
오한결은 데이비드 오 교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렇다면 왜 이제껏 휘트니 미술관에 가지 않은 거죠? 단지 부끄러운 과거라 그런 건가요?”
“……바빴다네.”
별다른 해명을 하지 않는 데이비드 오 교수를 이상하게 생각한 오한결이 물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은 낼 수 있었겠죠. 하지만 그러지 않으셨어요. 저에게는 작품을 대면할 자신이 없다는 얘기로 들리는군요.”
“……아까 말했듯이, 부끄러운 나의 과거 작품이니까…….”
“아뇨. 분명 다른 이유가 있어요.”
오한결의 단언하는 말투에 데이비드 오 교수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설마 그걸 눈치챈 건가?’
다시 포커페이스로 돌아간 데이비드 오 교수가 대답했다.
“그 작품으로 나를 비난한다고 해도 나는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네.”
오한결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조용히 뉴욕의 야경을 바라봤다. 잠시 뒤 나직하게 그가 말했다.
“용기가 없으신 거죠.”
“!!”
“교수님은 미국을 속였다고 솔직하게 말할 자신이 없었던 거예요. 안 그런가요?”
“아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나는…….”
오한결이 몸을 돌려 데이비드 오 교수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교수님이 숨겨 놓은 작품 속 비밀 문자를 읽었습니다.”
“!!”
“그건 ‘위대한 대한민국’이었어요.”
“아니, 그걸 어떻게!!”
당황해서 파랗게 질린 데이비드 오 교수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오한결이 입을 열었다.
“교수님은 절대로 미국인을 대표하는 작품을 만든 적이 없어요. 다만, 가난했던 시절 성공을 위해서 마치 그런 것처럼 행동했을 뿐이죠. 그렇게 만든 작품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부와 명예를 누리게 된 교수님은 뒤늦게 자신의 작품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죠. 그건 분명 사기니까.”
오한결의 말을 듣던 데이비드 오 교수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피식 웃음을 지었다.
“재밌군. 재밌어. 하하하. 그리고 놀라워.”
데이비드 오 교수는 자신의 말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던 오한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몹시 정확해. 맞아. 지금 그 사실을 밝히면 나는 사기꾼이라는 비난을 피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위대한 대한민국’이라는 표식이 붙은 작품이 휘트니 미술관에서 미국적인 작품으로 전시되고 있는 것도 무척 흥미로운 일이지.”
오한결은 데이비드 오 교수의 말에 다른 뜻이 있다는 걸 눈치 챘다.
“그렇다면 그 자체도 예술적 행위라는 말인가요?”
“하하. 맞아. 어떻게 보면 사기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론 그런 세상의 모순을 지적하는 그 자체도 나의 예술적 퍼포먼스일 수 있지.”
퍼포먼스라는 관점에서 보면 데이비드 오 교수의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오한결은 그건 사후에 그가 만들어낸 일종의 장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제는 진실을 밝힐 때가 왔어요.”
“굳이 그래야 하나?”
“네, 신수진 이사장이 이미 모든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데이비드 오 교수가 피식 웃었다.
“이런, 그럼 정말 큰일이구나. 그분이라면 분명 조치를 취하겠지.”
“휘트니 미술관에 있는 교수님의 작품을 아리 미술관으로 옮기고 싶어 하던데요.”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데이비드 오 교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그럼 외교적인 문제가 벌어질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그 작품의 일체 소유권을 휘트니 미술관에 넘겼다네.”
오한결이 차가운 맥주병에 물방울이 맺힌 것을 손으로 쓸어 버리고 말했다.
“이번에는 교수님이 용기를 내주세요.”
“어떻게 말인가?”
“그 숨겨진 메시지를 공개하세요.”
“!!”
데이비드 오 교수가 놀란 표정만 지을 뿐 오한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짙은 그림자가 깔린 얼굴을 돌려 뉴욕의 야경을 바라봤다.
오한결은 굳이 그의 대답을 지금 듣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오래전에 꼬인 실타래를 이제라도 풀 수 있게 되길 바랍니다.”
오한결의 말에 데이비드 오 교수가 더 깊은 심연으로 들어갔다.
* * *
문화재단 뉴욕지부에 도착한 윌리가 타이론의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네, 들어오세요.”
타이론의 목소리가 들리자 윌리가 주저 없이 작업실 문을 열었다.
벽을 따라 타이론의 작품이 세워져 있었고 그 주변으로 지저분하게 미술 재료들이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게 보였다.
윌리가 슬쩍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많이 지저분하네. 문화재단에서 오래된 작업실을 제공했나 보네.”
민망해진 타이론이 발로 대충 지저분한 것들을 밀며 말했다.
“아뇨. 제가 청소를 잘 안 해서요. 헤헤.”
그러고 보니 타이론의 머리는 무척 떡져 있었고 작업복은 한 번도 빨지 않은 듯 온갖 재료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윌리의 시선을 의식한 타이론이 나름 변명을 해댔다.
“그게, 요즘 작업량을 좀 늘렸더니 계속 밤샘을 하게 되더라고요. 보다시피 이렇게 좀 지저분합니다. 하하……. 작품 좀 보시겠어요?”
어젯밤에 개인전 작품을 모두 완성한 타이론이 너무 기쁜 나머지 새벽에 윌리에게 작품을 완성했다는 문자를 보냈었다.
새벽에 배가 고파서 잠을 깨 야식을 먹던 윌리는 그 문자를 보고 내일 찾아가 보겠다고 바로 답장을 했었다.
하지만 그 속사정을 모른 채 타이론은 윌리가 피곤한데도 자신의 문자에 즉각 답을 하자 그의 진심이 느껴진다며 무척 기뻐했었다.
“왼쪽부터 차례로 보시면 돼요.”
타이론이 긴장한 목소리로 말하자, 윌리는 유난히 집중한 얼굴로 작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모든 작품은 낙서로 이뤄져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예전 작품은 자유로운 영혼의 외침 같이 특정한 주제 없이 표현했지만 지금은 분명한 메시지가 담긴 느낌이 들었다.
“설명 좀 해줄래? 뭔가 중요한 걸 말하는 듯 싶네.”
“맞아요.”
타이론이 손가락으로 왼쪽 가장자리 작품을 가리켰다.
“이건 저의 어릴 적 삶을 함축해서 그린 거예요. 가난한 흑인 예술가에게 냉혹한 현실을 그렸죠. 표현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느낌만 드는데, 그 누구에게 그림을 배울 수 없는 현실인 거죠.”
그의 말대로 그 그림은 강력한 예술 욕구를 억눌렀던 그의 어린 시절을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강력한 잠재력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 이후 제 나름대로 방법을 찾았어요. 낙서라는 방식으로요.”
윌리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몹시 흔한 표현 방법이지만 경우에 따라 고도의 예술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단지 낙서만으로 성공적인 작가로서 데뷔하는 건 꿈같은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아이는 그걸 해냈군.’
타이론은 자신의 작품을 윌리에게 정성껏 설명해 주었다.
응축된 에너지를 표현한 왼쪽 작품은 그렇게 서서히 타이론이 표현법을 터득해 가면서 에너지가 유연하게 풀리는 형태로 진행됐다.
작품의 마지막에 와서는 제법 예술가로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을 만큼 수준 높은 작품이 되어 있었다.
“뉴욕 지하철에 있던 인종차별을 비판한 작품과 결이 비슷하네.”
오른쪽 끝에 있는 작품을 가리키며 윌리가 말했다.
“맞아요. 이제 제 자신의 세계라는 알을 까고 나와서 다른 사람들을 위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걸 상징하는 그림입니다.”
고개를 연신 끄덕이던 윌리가 말했다.
“훌륭해! 아주 훌륭해!”
윌리의 칭찬에 자신감을 얻은 타이론이 그제야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 정말 다행이네요. 저는 확신이 없었거든요. 이러다가 개인전을 망치면 어쩌나…….”
“무슨 소리! 이렇게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놓고. 이 작품을 공개하면 분명 너는 유명한 작가가 될 거야.”
“아! 정말요?”
몹시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는 타이론에게 윌리가 가방을 뒤져 뭔가를 수줍게 건넸다.
“자, 읽어봐.”
종이 뭉치를 받은 타이론은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그것을 살펴봤다.
“이게 뭐에요? 어려운 말이 많이 쓰여 있는 거 같은데요.”
“그거 내가 쓴 논문이야. 타이론의 작품이 현 시대에 갖는 예술적 의미를 이론적으로 풀어낸 거야. 그리고 자유로운 타이론의 표현법이 갖는 예술사적 의미도 담겨있어.”
“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타이론이 논물을 펼치고 최대한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잠시 뒤 타이론이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도 돼요?”
“그럼. 왜 뭐 추가할 사항이라도? 아님 수정?”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그래?”
타이론이 논문을 덮고 손으로 자신의 작품을 가리켰다.
“저는 그림이 좋아서 그렸을 뿐이에요. 그리지 않으면 불안했고 우울했어요. 제가 행복하기 위해서 그림을 그린 게 저 작품들이에요. 그런데 무슨 이론이 필요하겠어요?”
윌리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맞아. 하지만 세상에 평론이란 게 있단다. 뉴욕 타임즈가 평론으로 너를 괴롭혔잖아. 그걸 무시할 수 없어.”
잊고 있던 뉴욕 타임즈 얘기가 들리자 타이론이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윌리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그들의 주장이 왜 헛소리인지 내가 증명해냈으니까.”
“오! 그럼 이 논문이 뉴욕 타임즈에 실리는 건가요?”
당황한 윌리가 버벅거렸다.
“아니……. 아마도 그건 안 될 거 같은데.”
“그럼 어디에 실려요?”
윌리가 눈만 멀뚱멀뚱 뜬 채 타이론을 바라봤다.
“거기까진 생각 안 해 봤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