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71화 (171/202)

제171화 수상한 고양이

며칠 전부터 삼각지 화랑거리에 어둡고 음습한 기운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화랑거리에서 장사를 하는 사장들은 하나같이 입을 꾹 다물고 마치 분노를 삭이는 듯한 표정을 짓고 돌아다녔다.

밤이 되면 어두운 상점 거리는 더욱 음침했고 손님들도 그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점점 발걸음이 뜸해지는 듯했다.

어느 날 저녁, 창밖을 바라보던 홍미숙이 말했다.

“오빠, 이대로 안 되겠어요. 무슨 조치라도 취해야겠어요.”

홍철수 사장도 텅 빈 거리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다 같이 머리를 맞대면 좋은 아이디어라도 떠오르겠지.”

휴대폰을 꺼내든 홍철수 사장이 화랑거리 사장들이 모인 단체방에 문자를 보냈다.

「홍철수: 내일 낮 12시에 아트화랑에서 긴급회의 있습니다.」

문자를 보낸 홍철수 사장의 안색이 더욱 짙어졌다.

다음 날, 낮 12시가 되자, 삼각지 화랑거리 사장들이 모여들었다.

때마침 지방 카페 벽화 일을 마무리해서 시간이 남았던 김일중 사장도 참석했다.

“아니, 형님. 도대체 무슨 일인데 긴급회의에요?”

근처에서 미술재료를 판매하는 김영숙 사장이 김일중 사장을 나무랐다.

“이봐, 김 사장. 요새 화랑거리 분위기가 파악이 안 돼? 내가 30년을 이곳에서 장사를 했지만 세상에 이렇게 침체된 건 처음이야. 가끔 숨이 막힐 지경이라니까.”

김영숙 사장의 말에도 궁금증이 해소되지 않은 김일중 사장이 되물었다.

“그러니까, 왜 그러냐고요. 제가 최근에 지방에 있다가 올라와서 잘 모르니까 설명 좀 해주세요. 답답합니다.”

이제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어깨가 축 늘어진 조성우 사장이 말했다.

“나도 30년 화방 장사를 이제 끝내야 하나 봐. 화랑거리 바로 옆에 대형 미술품 도매업체가 들어선대잖아. 그 이름이 뭐였더라. 유코아?”

“네?!”

화신벽화 김일중 사장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코아가 우리나라에 진출한 거예요? 이런! 거기 되게 유명한 곳이잖아요.”

잠자코 대화를 듣던 홍철수 사장이 말을 보탰다.

“북유럽 대기업이지. 전 세계 미술시장을 모두 흡수하고 있어. 오래전 북유럽의 모든 미술 재료와 미술 거래는 유코아가 장악했지. 우리 같이 영세 업체들은 그 어떤 곳도 살아남지 못했다네.”

끔찍한 얘기를 들은 김영숙 사장이 소리를 질렀다.

“안 돼! 그걸 절대 있을 수 없어요. 우리의 생계가 달린 문제라고요. 이건 정부에서 막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러다가 우리 다 길거리에 나 앉게 생겼다고요!”

“이미 늦었지. 정부가 허락했으니까 그들이 이곳에 진출한 거 아니겠어요?”

그림을 판매하는 서정욱 사장이 체념한 듯 대답했다.

무척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 화신벽화 김일중 사장이 말했다.

“이제야 좀 풀리는가 싶더니, 결국 또 시련이 닥치는군요. 삶이 참 고달파요.”

화랑거리 사장들의 우울한 마음이 아트화랑에 꽉 차자, 홍미숙이 팔을 걷어붙이고 큰 소리로 말했다.

“모두 기운 내세요. 왜 싸워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거죠?”

조성우 사장이 홍미숙을 힐끔 쳐다봤다.

“다윗과 골리앗 싸움이라면 어찌 승산이 있을까. 미숙 씨도 냉정하게 생각해 봐요.”

“그래요! 다윗과 골리앗! 두 사람 중 누가 이겼나요? 다윗이었죠. 우리는 분명 이길 수 있어요.”

하지만 모두 시큰둥한 표정으로 홍미숙의 말에 대응하자, 그녀가 답답한지 홍철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빠가 뭐라고 말 좀 해봐요. 어제저녁에 그거라도.”

모두 고개를 들고 쳐다보자, 홍미숙이 말을 이었다.

“어제 오빠가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렸거든요. 우리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모두의 시선이 홍철수에게로 향하자 그가 덤덤하게 말했다.

“우리 선배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봅시다.”

“선배? 누구를 말하는 거지?”

조성우 사장이 고개를 갸웃하자, 홍철수가 설명을 이어갔다.

“삼각지 화랑거리는 과거 대한민국을 주름잡던 미술 거리였어요. 수많은 상점 사장님들과 화가를 배출했죠. 시간이 지나 쇠퇴기를 거치면서 그들은 모두 각자 자신의 고향으로 내려가거나 더 나은 상권을 찾아 떠났어요.”

“아! 맞아. 한 번 삼각지 화랑거리 식구면 영원한 가족이지. 그분들이 위기에 처한 삼각지 화랑거리 소식을 듣는다면 절대로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서정욱 사장이 흥분하며 말하자, 홍철수 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로 작가들, 삼각지 화랑거리 상점 사장들에게 모두 이 소식을 알립시다. 북유럽 대기업 유코아가 화랑거리를 집어삼킬 거라고. 우리 모두 존폐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말입니다.”

방금 전까지 우울했던 아트화랑 분위기가 새로운 기대에 점점 밝아져 갔다. 모두 홍철수에게 무한한 신뢰를 보내며 그의 활약상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홍철수 사장도 그들의 눈빛의 진의를 눈치채고 다시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수긍의 표시였다.

* * *

노을, 최무열, 서정익 작가가 옥탑방 작업실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어떡하지?”

노을이 한숨 쉬듯 말을 뱉자, 최무열도 한마디 했다.

“아, 머리 아파.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자고. 누나가 야옹이 마을 작품 하고 싶으면 해산 군청하고 타협을 보면 되잖아.”

“타협? 나보고 관광용 조형물을 만들란 얘기야?”

노을은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애초에 해산 군청의 작품 의뢰는 엄청난 행운이라고 느꼈는데, 그들의 요청은 한낱 기념품 조형에 지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지원하겠다고 했으나 중간에 말을 바꾼 것도 그렇고 자신이 신인 작가이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나 싶어 더 화가 났다.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 최무열이 한마디 했다.

“우리는 신인 작가잖아. 그러니까 우리에게 무슨 선택권이 있겠어. 미안하지만 이게 가슴 아픈 현실이야. 누나.”

노을은 최무열의 말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그동안 노을은 폐타이어, 버려진 고물을 이용해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예술은 너무 힘들어.’

오한결의 도움을 받아 청년 미술 전시회에 참가해 보긴 했지만 그건 일회성 이벤트였을 뿐이었다.

혼자만의 힘으로 작가로서 대중성을 획득하고 싶었다.

그런 생각에 꽉 차 있었을 때 해산 군청에서 작품 의뢰가 들어왔던 것이다.

‘이제 나도 정부 지원금을 받고 상징적인 작품을 만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가 보다.’

노을은 자신이 해산 군청의 제안을 수용해 관광지용 조형물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해 봤다.

무명이지만 오랫동안 쌓아 올린 거리 예술가의 커리어가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

‘순수 예술을 하는 작가로서 정체성이 흔들릴 수 있단 말이다.’

하지만 최무열은 그저 해맑은 얼굴로 ‘현실’이라는 말로 노을을 설득하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무열아.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노을의 진지한 태도에 최무열도 장난기 없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내가 까불어서 미안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노을의 감정 변화를 모두 눈치챈 서정익 작가가 한마디 했다.

“노을 씨 생각이 맞아요. 작가로서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하잖아요. 그 점에서 노을 씨는 분명 훌륭한 작가인 게 확실해요.”

갑작스러운 서정익 작가의 고백 같은 말에 노을이 얼굴이 붉어졌다.

“뭐, 작가님이 인정해주시니까. 기분은 좋네요……. 호호.”

“우리 협상을 해봅시다.”

서정익 작가가 빛나는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일단 해산 군청은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을 뿐이에요. 그러면 이제는 우리 쪽에서 우리 요구사항을 제안하면 되겠죠.”

“하지만 우리는 신인 작가잖아요. 무슨 힘이 있겠어요. 아, 서정익 작가님 빼고요.”

최무열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아! 서정익 작가님이 한 번 나서보세요. 아마도 작가님 인지도가 있어서 먹힐 수도 있어요.”

서정익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이번 프로젝트는 노을 씨가 주인공이에요. 제가 나설 수 없어요.”

“아……. 하긴 노을 누나가 잡은 기회니까.”

서정익 작가는 눈을 감고 야옹이 마을을 떠올려 봤다.

푸른 바다가 눈앞에서 일렁이는 작고 소박한 섬마을.

고양이들이 한가로이 길을 걷고 몇몇은 담벼락에서 잠을 자고 있다.

하지만.

노을과 최무열 같이 마냥 고양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지 못했던 서정익 작가의 눈에 다른 것들이 보였다.

수많은 고양이가 섞여 살다보면 분명 문제가 생기는 법이니까.

영역 싸움에서 밀린 고양이들의 처참한 삶. 물어 뜯겨 털이 뜯어지고 몇몇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고름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무렇게 방치된 새끼 고양이들은 가냘프게 울며 먹이를 찾고 있었다.

그들 중 적지 않는 수가 아마도 생존하지 못하리라.

서정익은 야옹이 마을에 자신이 본 끔찍스러운 장면과 그것의 심각성을 노을과 최무열에게 설명했다.

서정익 작가의 설명을 듣던 노을과 최무열은 자신들도 얼핏 후미진 골목에서 위생상태가 엉망인 고양이를 봤던 기억을 떠올리며 반성했다.

“그래, 그런 어두운 면도 있었어.”

서정익 작가가 말했다.

“노을 씨가 동물보호를 주제로 작품을 구상해서 야옹이 마을을 변화시켰으면 좋겠어요.”

이미 단호한 표정을 짓던 노을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너무나 하고 싶어요. 서정익 작가님 말을 듣자마자, 그 일이야말로 꼭 제게 부여된 운명 같은 임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옆에서 노을의 불타는 눈빛에 살짝 불안감을 느낀 최무열이 말했다.

“근데 야옹이 마을을 관광지로 만들려는 해산 군청이 그렇게 어두운 면을 부각할까? 동물 보호에 관심조차 없을 텐데. 야옹이 마을 홍보에 우리를 이용하려는 거라고.”

“하지만…….”

노을은 최무열의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말에 어느 정도 동의를 했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접근했다가 오히려 해산 군청이 작품 의뢰를 취소하고 사라져 버릴 수도 있으리라.

“아!”

노을이 좋은 생각이 났는지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글로벌애니멀에 부탁해보자! 그들이라면 분명 좋은 아이디어가 있을 거야!”

노을이 히죽 웃으며 최무열과 서정익을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노을 휴대폰이 울렸다.

“어머! 글로벌애니멀이잖아. 이런 기가 막힌 우연이 있나. 호호.”

전화를 받은 노을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재정 팀장님.”

[네. 노을 작가님. 혹시 저희가 도움을 드릴 게 있나 싶어 전화드렸어요.]

“너무 잘됐네요. 사실 제가 먼저 전화드리려고 했거든요.”

[어머! 그런가요? 어서 말씀해주세요. 어서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노을은 서정익의 말을 곱씹으며 차분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아름답게 보이는 고양이 마을의 숨겨진 뒷모습.

무분별하게 번식한 고양이들이 영역 다툼을 하게 됐고, 거기서 소외된 고양이들의 처참한 삶을 설명했다.

그리고 해산 군청에서 의뢰한 작품을 동물보호 주제로 해보고 싶다는 말도 전했다.

모든 얘기를 들은 글로벌애니벌 이재정 팀장이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우선 저희에게 시간을 좀 주세요.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어떻게 노을 작가님을 도울지 방법을 강구해 보겠습니다.]

“아, 너무 감사합니다. 이렇게 든든할 수가.”

[저희가 할 일인데요. 호호.]

노을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도움이 필요하면 제가 전화 드려도 될까요?”

[아뇨. 저희가 도움이 필요할 거 같으면 먼저 연락드릴게요. 저희는 노을 작가님과 항상 함께할 겁니다.]

전화를 끊은 노을은 충격적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놀란 최무열이 물었다.

“누나 왜 그래?”

“내게 문제가 생기면 먼저 전화 주겠대. 근데 너무 소름 돋아. 지난번 뭉치 선물도 그렇고…….”

“뭉치 선물?”

“내가 고양이 키운다는 얘기도 안 했는데, 고양이 장난감을 주더라고.”

“헉!”

노을이 천장을 바라보며 두리번거렸다.

“설마 몰래 카메라? 사찰당하는 건가?”

최무열이 코웃음을 치며 노을의 모습을 지켜봤지만, 서정익 작가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뭉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첩자는 뭉치일 수 있어요.”

최무열이 박장대소했다.

“우하하.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세요.”

근데 노을은 뭉치를 보면서 살짝 의심의 눈치를 지울 수 없었다.

뭉치는 마치 세 사람의 대화를 귀담아 듣겠다는 듯이 반듯하게 앉아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에이…….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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