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69화 (169/202)

제169화 진정한 믿음

윌리를 둘러싼 갱들이 슬슬 몸을 움직이며 위협을 가하는 순간, 그들의 귀에 시끄러운 경찰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두목 갱이 놀라 소리쳤다.

“뭐야! 누가 신고했어? 너야?”

두목 갱이 윌리에게 손가락질을 하자 윌리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신고 안 했는데요. 그럴 시간도 없었다고요!”

삐뽀. 삐뽀!

여러 대의 경찰차에서 나오는 사이렌 소리에 슬럼가 전체가 화들짝 깨어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놀란 갱들은 서로 눈치만 보다가 경찰차가 시야에 들어오자 서둘러 도망치기 시작했다.

윌리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모두 도망쳤는데 왜소한 갱만이 남아서 윌리의 가방을 쳐다보며 말했다.

“야! 뚱보. 가방이라도 내놔!”

윌리는 순간 움찔했지만 그를 둘러싼 모든 갱들이 도망친 것을 확인한 후로 왜소한 갱의 말은 전혀 위협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뭐라고? 너는 안 도망치냐?”

윌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왜소한 갱이 윌리의 가방을 움켜쥐고 달아나려고 발을 동동 굴렀다. 하지만 윌리가 그의 손목을 잡고 들어올리자 아주 가볍게 그의 몸이 공중으로 부웅 떴다.

“으악, 내려 줘!”

때마침 경찰차가 주변에 정차하더니 경찰들이 우르르 차에서 내려고 소리쳤다.

“뉴욕 경찰이다! 허튼짓하지 말고 손들어!”

놀란 윌리가 왜소한 갱의 손목을 놓자 그가 바닥에 엉덩방아를 쿵 찌었다. 그리고는 두려운 얼굴을 하고는 냅다 건물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경찰이 거구의 윌리를 둘러싸고 소리쳤다.

“어떠한 폭력도 용납할 수 없다. 어서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은 윌리가 억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 이거 무기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피해자라고요!”

오해를 받은 윌리가 억울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소리쳤지만 경찰은 그의 말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덩치와 험악한 인상으로 보아 분명 뉴원 애비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갱들의 인상착의와 흡사했기 때문이다.

“어? 윌리 아니에요?”

어디선가 윌리의 구원해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한껏 기대를 품은 윌리가 뒤를 돌아보자, 그곳에는 로건이 꽤 지위가 높아 보이는 경찰 간부와 나란히 서 있었다.

윌리는 로건과 친분은 없으나 최근 재즈클럽에서 종종 얼굴을 마주쳤기에 서로를 잘 알고 있었다.

로건의 도움으로 오해가 풀린 윌리는 자신이 이곳에서 어떤 일을 당했는지, 두목 갱들이 자기에게 어떻게 협박을 했는지 대략 두 배쯤 과장해서 말을 전했다.

“이런 큰일 날 뻔했군요.”

토마스 청장이 이렇게 말하자, 윌리는 마치 자신의 마음을 알아봐 준 사람은 이 세상에 토마스 청장 한 명뿐인 듯 매우 감사한 표정을 지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긴 로건이 말했다.

“그러니까, 타이론을 보러 왔다는 거죠. 저도 오한결 작가님한테 타이론 얘기를 들었어요. 뉴욕 타임즈 평론 관련 소식도 들었고요.”

“그래서 제가 왔죠. 그 아이는 지금 혼자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거예요.”

윌리가 보여주는 따뜻한 마음에 로건이 만족스러운 듯 방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어서 가봐요. 저는 토마스 청장님하고 뉴원 애비뉴를 돌아볼 거거든요.”

토마스 청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실 관심을 두지 않았던 곳인데, 오한결 작가님이 예술 마을로 만든다고 하시니 왜 이렇게 정이 가는지 모르겠어요. 화려한 뉴욕과 다른 앤티크한 멋이 있군요.”

로건은 윌리에게 오한결의 계획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타이론의 고향인 이곳을 타이론의 예술 세계를 펼칠 수 있는 예술 마을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

그 첫 시작은 오한결이 자신의 작품을 기부하는 형식으로 진행될 것이다.

수많은 관광객이 오면 슬럼가는 자연스럽게 정상적인 도시의 모습으로 바뀌게 될 거라고 전했다.

“정말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윌리가 기쁘면서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물론이죠. 오한결 작가님을 믿습니다. 아참! 빨리 타이론에게 가보세요. 그가 풀이 죽어서 작품 활동을 안 하면 이곳 계획 자체는 무효가 되는 거니까요.”

토마스 청장의 배려로 경찰을 대동한 윌리가 타이론의 집으로 향했다.

골목을 돌자마자, 회색 벽돌로 조잡하게 지은 집 하나가 보였는데, 주소를 확인해보니 타이론의 집이 확실했다.

윌리가 긴장된 마음으로 타이론의 집 대문을 두드렸다.

“……누구세요?”

타이론의 목소리가 들리자 윌리가 대답했다.

“나야 타이론. 문 좀 열어주겠니?”

잠시 문 앞에서 머뭇거리던 소리가 들리더니 끼이익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타이론의 모습은 윌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심각해 보였다.

며칠을 먹지도 씻지도 않아서 그런지 너무 초췌해 아마도 길에서 봤으면 못 알아볼 정도였다.

타이론에 집에 들어간 윌리는 한 번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주 좁은 집에 살림살이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어 봤지만 들어 있는 건 물통 하나였고 음식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 혼자 사니?”

“원래 할머니랑 살았는데, 지금 다른 지역에 가셨어요. 일 때문에요.”

더 가슴이 아픈 건 거실 한구석에 윌리가 쭈그려 앉은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윌리는 상처받은 타이론이 홀로 어둠 속에서 자신이 받은 상처를 끌어안고 있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그리고 결국 테이블 위에 뉴욕 타임즈를 발견했다.

‘아, 내 확신이 맞았어. 뉴욕 타임즈 비평이 원인이었구나.’

윌리의 방문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누추한 자신의 집에 창피함을 느낀 타이론이 말했다.

“여긴 왜 오셨어요?”

“너도 충분히 짐작했을 거라 생각하는데.”

잠시 주춤한 타이론이 말했다.

“저는 이제 그림 안 그려요.”

“왜? 뉴욕 타임즈 때문에?”

타이론이 소리쳤다.

“당연한 거 아니에요? 뉴욕 타임즈 평론가는 엄청 유명한 사람이잖아요. 그런 사람이 내게 재능이 없다고 하는데, 내가 뭐하러 그림을 그려요. 다 헛수고에요. 이제 그림 따위 그리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눈물이 고인 채 소리치는 타이론을 바라보던 윌리가 차분하게 대응했다.

“네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잘 알아. 하지만 예술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세상의 다양한 의견을 들어야하는 운명이지. 모두 네게 호감을 가질 순 없어.”

“그래도…… 동네 형들이 놀리는 건 그들이 모른다고 생각해서 무시할 수 있었어요. 뉴욕 타임즈는 그런 대상이 아니잖아요.”

“음……. 왜 뉴욕 타임즈는 무시하면 안 돼? 난 그들이 형편없는 주장을 했다고 생각해. 예술에 대해 그 평론가가 뭘 아니? 그는 작가도 아니잖아.”

“……그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니까.”

“우하하하하.”

타이론의 말에 윌리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윌리는 흔히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이 예술을 논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고 생각했다. 예술가가 자유로운 영혼으로 그 흔적을 남긴 작품을 수많은 이론을 대입해 설명하는 평론가들.

때론 그들의 말에 손을 들어주지만, 대체적으로 예술가들은 그들의 주장에 콧방귀를 뀌는 일이 다반사다.

윌리는 타이론에게 강력한 어조로 말했다.

“예술은 이론이 아니다. 네가 그림을 그릴 때 구도와 색감을 생각하니? 이론적으로 어떤 식으로 배치하고 색을 구성해야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나, 그런 걸 생각하니?”

“아뇨. 저는 제가 느끼는 대로 그려요.”

“그래. 그게 예술가의 작품이야. 그건 그 자체로 빛나는 거란다.”

“…….”

너무 어려운 말로 설명한 것 같아, 윌리가 타이론의 눈높이에서 다시 한번 설명했다.

“오한결 작가는 너의 천재적 재능을 믿고 있어. 너는 뉴욕 타임즈 평론가가 오한결 작가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하니?”

“아니요. 그건 아니죠!”

“근데 왜 오한결 작가보다 평론가의 말에 흔들리지?”

“그건…….”

“오한결 작가는 예술가의 시선에서 너의 재능을 본 거야. 그리고 미래에 네가 보여줄 작품도 고려한 거지. 그러니까 자신감을 가지면 돼. 뉴욕에서 오한결의 지지를 받고 작품 활동하는 작가가 있을 것 같니?”

“!!”

타이론의 우울함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끼자, 윌리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서 그림을 그려. 오한결 작가가 너를 위해 아주 엄청난 계획을 세우고 있더라고. 그건 나중에 알려줄게. 하하.”

잠시 머뭇거리던 타이론이 말했다.

“그럼 오한결 작가님만큼 윌리도 나를 믿나요? 제 예술적 재능을요?”

“물론이지.”

윌리가 타이론의 집 대문을 활짝 열고 말했다.

“뭐해, 어서 나와! 밥 먹으러 가야지!”

“네!”

* * *

그날 밤, 뉴욕의 밤 행사가 호텔 연회장에서 개최됐다.

술에 취했는지, 얼굴이 붉어진 토마스 청장이 이곳저곳을 살피며 오한결 작가를 찾고 있다.

한참을 헤매던 끝에 뉴욕시장과 담소를 마치고 자리를 이동 중인 오한결을 발견했다.

“오한결 작가님!”

누군가가 다급하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오한결이 뒤돌아섰다.

“아! 토마스 청장님이군요.”

기분이 좋은지 토마스 청장이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오한결 작가님. 작가님은 제 꿈을 이뤄주셨어요.”

뜬금없는 소리에 오한결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오늘 로건하고 뉴원 애비뉴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은 꽤 오랫동안 방치돼서 슬럼화가 진행된 곳이죠. 아무리 경찰을 투입해도 그곳은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오한결 작가님이 예술의 도시로 만든다는 계획을 듣고 너무 놀라 숨이 턱 막히더군요.”

오한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그것 때문이군요. 토마스 청장님은 경찰이시니까, 도시의 치안이 해결되는 데에 관심이 많겠죠. 이제 치안 문제가 싹 해결됐으면 합니다.”

토마스 청장이 잠시 주춤거리더니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사실은 제가 관심을 둔 건 예술 마을이었어요. 저는 진심으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비록 경찰이 되었지만,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반드시 미대에 진학해서 예술가가 됐을 거라고요!”

본인도 너무 흥분했는지 잠시 숨을 가라앉히고 토마스 청장이 말을 이었다.

“평생 구경꾼에 불과했던 내게 예술 마을을 만드는데 관여하게 해주시다니. 너무 영광입니다. 제 손으로 멋진 예술 마을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 도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뉴원 애비뉴의 치안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이었지만, 어쨌든 토마스 청장이 오해를 해서라도 기분이 좋다면 오한결도 크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아……. 너무 잘 됐네요. 뉴원 애비뉴가 뉴욕을 대표하는 예술 도시가 되면 청장님의 활약상을 모두가 알게 되겠네요. 꼭 성공시켜주세요.”

오한결의 말에 기쁨을 토마스 청장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제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이제 슬슬 자리를 피하려던 오한결이 마지막 말을 남겼다.

“아까 뉴욕 시장님하고 얘기해 봤는데요. 뉴원 애비뉴 프로젝트 관련 예산을 편성해 주시기로 하셨어요. 아마도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시장님께서 청장님을 따로 부를 것 같네요.”

“!!”

오한결의 말에 토마스 청장이 놀란 얼굴을 했다. 그리고 곧 그는 미래의 성공적인 자신의 삶을 그리기라도 하듯이 멍해졌다. 그런 토마스 청장을 뒤로하고 오한결은 분주한 만찬장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아, 정신이 하나도 없네. 재즈클럽이나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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