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65화 (165/202)

제165화 광고 모델

최하늘이 앞장서 한인타운 거리를 빠르게 걸어가고 바로 뒤에서 오한결과 데이비드 오 교수가 약간 지친 듯한 표정으로 겨우 따라잡고 있다.

“여기에요! 그 유명한 김치찌개 맛집!”

불이 환하게 들어온 간판을 가리키며 최하늘이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뉴욕에 온 뒤로 음식이 느끼하다며 어제저녁부터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최하늘이 노래를 불렀다.

마침 오한결과 데이비드 오 교수도 얼큰한 김치찌개가 그리웠던지라 자연스럽게 한인타운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작은 식당인데도 불구하고 손님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다행히 구석에 테이블 한자리가 비어 있어서 웨이팅 없이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지나오면서 봤는데, 다른 가게에는 손님이 별로 없던데, 여긴 많네요.”

오한결이 깔끔한 내부의 식당을 두리번대며 말하자, 최하늘이 그 질문을 미리 대비한 듯 말을 쏟아냈다.

“최근에 오픈했는데, 너무 맛있어서 오히려 한국보다 더 유명해졌어요. 이제 김치찌개 먹으려면 뉴욕 한인타운 가야한다는 말이 들릴걸요.”

흥분한 최하늘의 모습에 데이비드 오 교수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김치찌개를 아주 잘 끊여요. 오늘 먹어보면 알겠군요. 하늘 씨 말이 사실인지.”

“그럼요. 먹어보세요. 제가 보증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오한결에게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근데, 최하늘 씨는 여기 와봤어요? 어떻게 맛을 그렇게 잘 아세요?”

“아뇨. 처음이에요. 블러그에 그렇게 써 있어서…….”

오한결과 데이비드 오는 그 말을 듣자마자 빵하고 웃음이 터졌다. 민망해진 최하늘이 급하게 주문을 했다.

“사장님! 김치찌개 3인분이요!”

잠시 뒤, 보글보글 뚝배기에서 끊고 있는 김치찌개가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시큼하고 달큰한 향이 세 사람의 코끝을 자극하자,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국자로 찌개를 푸며 데이비드 오 교수가 말했다.

“돼지고기를 많이 넣었군요. 여기 완전 제대로 하네요.”

오한결이 수저로 국물을 마시고 매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너무 맛나요. 윌리에게 소개해 주고 싶네요. 어제도 재즈클럽에서 피자 한 판을 다 먹던데요.”

흰쌀밥을 한 수저 입에 넣고 오물오물 씹던 최하늘이 대답했다.

“한 판이 뭐에요. 두 판 먹었어요. 그리고 윌리 걱정은 마세요. 이 집이 맛있다고 소개해준 것도 윌리니까.”

“아…….”

생각지 못한 답변에 오한결의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윌리의 음식 취향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그렇게 한국의 얼큰한 맛에 모두 만족하고 있을 때쯤 가게 입구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한국 음식은 맛이 다 이런가요? 이렇게 매우면 어떻게 해요. 맑은 국물로 가져와요!”

종업원이 굽신대며 대답했다.

“손님, 김치찌개는 원래 붉은색이에요.”

“이게 뭡니까? 걸쭉한 붉은 국물이 펄펄 끓고 있잖아요. 이건 마그마에요!”

“아, 한국 음식은 이렇게 끓여서 나와요. 따뜻하게 드시라고…….”

진상 손님이 종업원을 상대로 생떼를 부지자, 최하늘이 인상을 쓰며 쳐다봤다.

“어머, 완전 진상이네요. 맑은 국물이라니.”

“저런, 손님이 너무하군요.”

데이비드 오 교수도 언짢은 기분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하지만 오한결만 침묵으로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오한결은 마음이 너무 뒤숭숭했다. 진상 손님에게 당하는 종업원의 모습에서 자신의 회귀 전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진영 선배의 가게를 돕던 그때, 이틀에 한 번꼴로 찾아온 진상 손님이 있었다. 하지만 진영 선배는 그 손님에게 굽신댔고 오한결에게도 그렇게 하기를 요구했다.

자존심을 구기며 진상 손님의 비위를 맞추던 그때 결국 오한결은 폭발했고, 비를 맞으며 타임스퀘어를 우산도 없이 떠돌았던 적이 있다.

물론, 그때 황금빛 예술가를 만났고 예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지만.

오한결이 어깨를 으쓱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서 잘 된 건가? 진상 손님이 도움이 될 때가 있군.’

그 사이 진상 손님의 투정이 더 심해지자, 오한결이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진상 손님을 바라봤다.

오한결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눈치챈 최하늘이 오한결의 손목을 잡고 말했다.

“안 돼요. 절대 싸우거나 하시면 안 돼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데이비드 오 교수도 거들었다.

“맞네. 자네는 이제 유명한 예술가야. 이런 곳에서 구설수에 휘말릴 일을 저질러선 안 돼.”

하지만 진상 손님의 투덜대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자 오한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몸을 돌리려고 하는데, 주방에서 키가 상당히 큰 근육질 백인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멀리서 봐도 그의 몸에는 상당히 많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뭐야! 무슨 소란이야!”

남자가 동굴 같은 목소리로 소리치자, 종업원이 쪼르르 달려와서 일러바쳤다.

“저분이 너무 막무가내로 말하세요. 어쩌죠, 사장님?”

덩치 큰 사장이 묵직한 발걸음으로 진상 손님에게 다가갔다. 오한결은 마치 그가 옆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울리는 착각이 들었다.

사장이 진상 손님을 똑바로 쳐다보자, 손님은 모기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맛있어요. 포장 가능한가요?”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본 오한결이 다시 자리에 앉고 낄낄대며 웃었다. 또 완벽하게 감정 변화를 보이는 오한결을 최하늘과 데이비드 오 교수가 신기하게 쳐다봤다.

오한결은 살짝 씁쓸함을 느끼며 김치찌개를 마저 먹었다.

‘진영 선배도 저렇게 당당했으면 좋았으련만. 쯧쯧.’

* * *

리나는 포근한 햇살이 창밖에서 비취자 저절로 눈을 떴다.

알람이 울리려면 아직 한 시간이 남았지만 그녀는 요즘 잠을 자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아침형 인간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오한결과 퍼포먼스를 한 이후로 리나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가까운 식료품점에도 못 갈 정도로 사람들이 알아봤고 수시로 그녀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는 언론사 전화 때문에 힘들 지경이었다.

특히 유명한 가수와 작곡가들이 소속된 매니저먼트사에서 계약하고 싶다는 전화가 오고 있어서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너무 좋은데, 한편으론 너무 무섭다. 또 사기 당하면 어떡하지?’

꿈에서나 할 법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띠링 휴대폰 문자 알람 소리가 들렸다.

휴대폰 화면을 본 리나는 입을 쉽게 다물지 못했다.

“이게 얼마야? 공이 몇 개야? 끼약!”

빅스퀘어 빌딩 퍼포먼스 공연료가 방금 들어온 것이다.

리나는 평생 본 적도 없는 금액에 아찔해하며 한 편으론 꿈이 아닐까 걱정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혹시 언론사가 아닐까 고민하던 리나는 끈질기게 통화음이 울리자 결국 받았다.

“네, 리나입니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페이스픽쳐스 CEO 로건의 비서팀입니다. 지금 통화 가능할까요?]

놀란 리나가 자세를 곧추세우고 전화를 받았다.

“아! 네! 물론이죠! 혹시 공연료 때문에 전화 주셨나요? 방금 잘 받았습니다.”

[아! 오늘 입금 날이군요. 그건 홍보팀이 아니라 회계팀에서 진행하거든요. 아무튼 잘 받았다니 다행입니다. 로건께서 적은 액수에 실망할까 봐 걱정을 좀 하셨거든요.]

그 말을 들은 리나가 화들짝 놀랐다.

“네? 그럴 리가요. 전 그렇게 큰돈은 처음 받아봐요.”

[하하. 듣던 대로 상당히 겸손하시군요. 빅스퀘어 빌딩 퍼포먼스는 뉴욕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행사에요. 거기서 주인공을 하셨는데, 당연히 상당한 금액을 드리는 게 맞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희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죄송하다니요! 제가 너무 감사합니다!”

비서도 리나의 태도가 무척 마음에 들었는지 전화 목소리가 점점 부드러워졌다.

[제가 전화를 건 이유는 로건이 리나를 만나고 싶어해요. 혹시 지금 시간 될까요?]

리나는 재즈클럽에서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던 로건의 모습이 떠올라 슬쩍 미소를 지었다. 리나는 로건이 아주 매력적이고 진정성이 돋보이는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좋아요. 제가 택시타고 그리로 갈게요.”

[아뇨. 저희가 리무진을 보내겠습니다.]

“네? 아, 네…….”

전화를 끊은 리나는 재빨리 외출준비를 하면서 미끄럽게 자신의 집 앞에 정차하는 리무진의 멋진 모습을 상상했다.

30분 뒤, 집 앞에 도착한 흰색 리무진 앞에 선 리나가 긴장된 얼굴로 감히 차에 타지를 못하고 있다.

문짝을 부여잡은 기사가 부드러운 미소로 말했다.

“어서 타세요. 리나. 제가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리나는 어색한 미소로 대답했다.

“고마워요…….”

* * *

로건은 빅스퀘어 빌딩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흘러나오는 리나의 노래에 심취해 있었다.

“정말 천사의 목소리가 따로 없군!”

눈을 감은 로건은 며칠 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빅스퀘어 빌딩의 행사를 떠올렸다.

오한결의 완벽한 그림과 리나 목소리의 조합이라니!

너무나 완벽했던 그날을 상상하던 로건을 깨운 건 비서의 노크 소리였다.

“네, 들어오세요.”

비서의 안내로 리나가 모습을 드러내자, 로건이 일어나서 정중하게 그녀를 맞이했다.

“어서오세요. 리나! 환영합니다.”

리나는 로건의 맑은 표정을 보며 히죽 웃었다.

“이렇게 보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 같네요. 재즈클럽의 어두운 분위기에 제법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칭찬으로 들리는군요. 제가 재즈클럽을 좋아하거든요.”

“저도요. 제게 집 같은 곳이죠. 노래할 기회를 준 곳이기도 하고요.”

이미 친분이 있던 두 사람은 소파에 편하게 앉은 뒤 짧은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가 생각났는지, 로건이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이거 확인해 보세요. 리나.”

쪽지를 받아든 리나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오한결 작가님이 부탁했어요. 리나가 최고의 음반 제작사를 만날 수 있도록요. 제가 엔터테인먼트 사업도 하고 있어서 꽤 신뢰할 만한 제작사를 많이 알고 있거든요. 대략 10개 정도 추려 봤는데,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보세요. 어디를 고르던 믿을 수 있는 곳이니까요.”

꽤 감동한 리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너무 고마워요. 사실 이것 때문에 엄청 고민이었거든요. 또 사기 당하면 어쩌나 하고요.”

“오한결 작가님도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리나가 분명 그런 이유로 고민할 거라고.”

“세상에, 오한결 작가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 같아요. 마치 저의 모든 일을 다 꿰뚫고 있는 듯 보여요.”

로건이 리나의 말에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신비로운 분이죠. 그는 기적 같은 존재예요.”

“맞아요. 제 인생의 기적이죠.”

리나가 매우 기분 좋아하자, 때가 됐다고 생각한 로건이 이번에는 서류철을 리나에게 건네며 말했다.

“잘 읽어 보세요. 조건이 맞았으면 하네요.”

설렘과 불안감을 느끼며 리나가 천천히 서류철을 펼쳐봤다.

“이건! 어머나! 정말로요?”

리나에게서 예상했던 반응이 나오자 로건이 더 기뻐했다.

“네, 맞아요! 저희 페이스픽쳐스 광고 모델 제의입니다. 어때요? 생각이 있으신가요?”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최고 스타들만 찍는다는 그 광고를 제가 한다고요?”

로건이 리나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리나, 이미 당신은 스타예요. 그러니까 자격이 있는 겁니다.”

“끼약!!”

“하하하. 너무 좋아하진 마세요. 이건 시작에 불과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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