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61화 (161/202)

제161화 마지막 선물

타임스퀘어를 가득 채운 사람들 사이로 오한결과 최하늘이 힘겹게 나아가고 있다. 저 멀리 빅스퀘어 빌딩이 보이자 최하늘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야,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오한결 작가님 작품 보러 왔나 봐요.”

사람들 사이에서 낑겨 있던 오한결이 고개를 들고 빅스퀘어 빌딩을 쳐다봤다.

타임스퀘어 거리 끝에 우뚝 서 있는 초고층 빌딩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웅장하게 서 있었다.

대략 100미터가 넘는 스크린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직 행사 시작 전이라 불이 꺼진 스크린은 그 나름대로 압도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오한결과 최하늘은 사람들을 헤치며 더욱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점점 빅스퀘어 빌딩과 가까워지자 건물 앞에 설치된 연단이 보였다.

“작가님! 저기 보세요. 마이크가 설치된 걸 보니, 리나가 노래를 부를 무대인가 봐요.”

“아! 봤어요. 꽤 멋지게 꾸며졌군요.”

“아시죠? 저 모든 걸 문화재단에서 제공했어요.”

최하늘은 최고 수준의 마이크와 음향시설이 무대 중앙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자 한껏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나름 스크린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서 오한결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실은 회귀 전 자신의 아내 태희를 찾고 있었다.

‘오늘 꼭 왔으면 좋겠는데. 내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거든.’

하지만 최하늘은 오한결의 그런 행동을 다른 일행을 찾는 거라고 착각했다.

“데이비드 오 교수님하고 앤드류, 윌리도 이 근처에 있을 거예요.”

“아……. 그렇군요.”

힘없이 대답하는 오한결을 바라보며 최하늘이 무거운 표정을 지었다.

“작가님, 어디 아프세요?”

오한결은 차마 진태희 얘기를 할 수 없어 다른 핑계를 댔다.

“산다라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 텐데요. 그게 아쉬워서요.”

“아하. 그렇죠. 하지만 한국에서 TV로 보고 있을 거예요. 어머니랑.”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오한결의 사려 깊은 생각에 감동한 최하늘이 기분 좋게 웃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는 저 멀리 익숙한 여자의 옆모습이 보였다.

‘어머! 저분은 그때 그 피자집에서 약혼자와 왔던 분이잖아.’

최하늘이 진태희를 바라보자, 우연히 고개를 돌리던 진태희가 최하늘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서로 고개를 슬쩍 끄덕이며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대략 30분이 흐르자, 빅스퀘어 빌딩 주변에서 은은했던 조명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떠들던 사람들도 일순간에 입을 다물고 모두 빅스퀘어 빌딩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잠시 뒤, 파란 하늘과 닮은 드레스를 입은 리나가 사뿐히 연단 위로 올라와 마이크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가수 리나라고 합니다.”

리나가 자기소개를 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를 보냈다. 난생처음으로 그런 거대한 에너지를 받은 리나는 더욱 자신감을 갖고 말을 이었다.

“오늘은 영광스럽게도 오한결 작가님의 작품과 협업을 하게 됐습니다. 제가 노래를 준비하면서 작품을 미리 보게 됐는데, 오늘과 딱 어울리는 맑고 깨끗한 그리고 매우 아름다운 그림이었습니다.”

리나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빅스퀘어 빌딩의 대형 전광판에 불이 들어왔다. 서서히 푸른 빛을 띠더니 이윽고 푸른 파스텔톤의 색이 스크린을 가득 채웠다.

사람들의 함성을 뚫고 스피커에서 리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여러분을 숲속 산책길로 안내하겠습니다.”

리나가 어딘가로 사인을 보내자 은은한 피아노 소리가 고품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너무나 잔잔해서 누군가에게 속삭이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 소리는 타임스퀘어의 모든 거리를 포근히 감쌀 정도로 넓게 펴져 갔다.

드디어 거대한 화면에 오한결의 모습이 나타났다.

붓을 든 오한결은 자신의 키보다 큰 캔버스를 앞에 두고 과감하게 붓질을 시작했다. 영상은 그림을 그리는 오한결의 모습을 빠르게 보여주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슬로우 모션으로 오한결의 섬세한 터치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아주 훌륭한 편집 덕분에 오한결의 모든 행동은 하나의 아름다운 춤동작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배경이 칠해지고 있을 때, 잔잔한 피아노 반주를 뚫고 리나의 천상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낮게 깔리는 리나의 허밍이 끝나자 그녀의 가늘고 떨리는 음성이 타임스퀘어를 가득채웠다.

몇몇 사람들은 천사의 목소리를 들은 듯 눈을 감고 그 신성함을 느껴보려 했으며, 더러 몇몇은 이런 천재적 가수가 왜 지금에야 존재감을 드러냈는지 의문을 품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푸른 하늘에 떠다니는 뭉실뭉실한 구름 따라∼♬”

리나가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자, 스크린 화면 속 오한결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거침없는 붓질에 얼룩덜룩한 푸른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루며 생기 넘치는 푸른 하늘이 그려졌다.

사람들은 거대한 스크린에서 보이는 생기 넘치는 하늘 이미지를 보고 탄성을 질렀다.

“우와! 너무 아름답잖아!”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야.”

리나의 맑은 영혼의 목소리를 듣던 사람들은 스크린 속 이미지에 점점 더 몰입했다. 그들은 이미 자신들이 타임스퀘어가 아닌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가 된 듯 착각을 하기 시작했다.

영상 속 오한결은 무척 빠른 속도로 하늘을 그린 뒤 화면 아래에 초록잎이 무성한 식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한결은 꽃과 나무들의 형체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노랑, 갈색, 초록, 파랑 등 각양각색의 색들을 점으로 찍기 시작했다.

그렇게 뭉쳐진 색들은 봄날 피어나는 꽃과 초록잎이 무성한 잔디밭을 이루었다.

최하늘이 감탄하며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물었다.

“작가님, 그림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아요.”

“이번 그림은 인상주의 화풍을 담았거든요. 형태보다 순간의 느낌을 표현해봤어요.”

최하늘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오한결의 부드러운 붓질과 쿡쿡 찍어대는 기법으로 그림은 전체적으로 활발한 리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뭉실뭉실 떠다니는 구름과 푸른 하늘, 알록달록한 꽃들은 최하늘을 포함해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행복감을 주기 충분했다.

더욱이 푸른 하늘 아래 여유롭게 산책하는 즐거움을 노래하는 리나의 덕분에 영상 속 이미지는 우리가 꿈꾸던 일상의 평화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림의 배경이 모두 완성되자, 오한결은 영상을 긴장한 채 바라봤다.

‘이제 곧 시작하겠군.’

영상 속 눈을 감은 오한결은 잠시 생각한 뒤 붓을 든 손으로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일제히 그 모습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오한결의 손끝을 따라다니며 그가 보여줄 이미지를 상상하고 있었다.

오한결의 손끝에서 그려진 건 파라솔을 들고 있는 여인이었다.

두 손으로 내리쬐는 햇볕을 피하기 위해 파라솔을 들고 있는 여인은 무척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때마침 불어오는 봄바람은 그녀의 스카프와 드레스를 흩날리게 해 그녀가 무척 여유롭고 상쾌한 산책을 즐기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더욱이 여인의 옆에 어린아이가 방긋 웃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꽃들 그리고 무척 행복해 보이는 여인과 그의 아이까지.

그림을 가득 채운 이미지는 타임스퀘어에 모인 모든 사람들을 미소짓게 만들었다.

최하늘이 거대한 스크린에 보이는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말했다.

“모네의 그림이죠? 예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무척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오한결 작가님도 그렇게 느끼셨나 봐요.”

“네, 맞아요. 꼭 그리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그 이유를 최하늘에게 설명할 수 없었다.

이 그림은 회귀 전 아내였던 진태희를 위한 거였으니까.

태희는 모네의 <파라솔을 든 여인>을 무척 좋아했다.

그녀는 그림이란 모름지기 자신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복잡하고 때로는 너무 단순해 이해하기 힘든 그림이 아닌 보기만 해도 행복한 느낌을 받는 그림을 좋아했다.

태희는 모네의 <파라솔을 든 여인>을 집에 걸어 놓고 힘들고 바쁜 일상에 지칠 때면 위로를 받았다. 그녀는 항상 이런 말을 했다.

우리도 이번 주말에 산책가요. 저 그림 속 여인처럼.

영상 속 그림이 완성되고 리나의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오한결이 선사한 예술의 기쁨과 또 다른 명작의 탄생에 매우 기뻐했다.

하지만 오한결은 아직 태희를 발견하지 못해서 여간 불안한 게 아니었다. 꾸준히 고개를 돌려 태희가 이곳에 왔는지 확인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영상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웅성대며 이동하자, 더욱 태희를 찾기 힘들었다.

‘꼭 와서, 저 그림을 봤으면 했는데. 왔겠지?’

오한결의 수상한 행동을 보고 최하늘이 살짝 불안한 음성을 물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누구 찾으세요? 혹시 데이비드 교수님?”

뭐라고 대답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데이비드 오 교수가 앤드류, 윌리와 함께 나타났다.

“대단해, 정말 대단해!!”

세 사람이 오한결을 둘러싸고 감탄사를 쏟아 내고있는 와중에도 오한결은 불안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최하늘은 오한결이 진심으로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더는 데이비드 오 교수의 말을 외면할 수 없었던 오한결이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아마도 오늘의 주인공은 리나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하. 자네와 리나 모두 주인공이었지.”

앤드류가 끼어들었다.

“솔직히 모네의 그림을 이곳에서 보게 될지 몰랐어요.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요?”

여전히 멍한 표정을 짓는 앤드류를 향해 오한결이 말했다.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의 작은 선물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작은 선물이라니. 뉴욕에 아주 큰 선물을 남겼어요. 하하.”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핸드폰만 열심히 보던 윌리가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지 불쑥 끼어들었다.

“오늘은 기쁜 날이니까, 제가 아주 맛있는 음식점으로 안내할게요.”

윌리는 그렇게 말한 뒤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빨리 안 가면 자리도 없단 말이에요. 거긴 워낙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서 예약도 안 받는다고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이동하려는 오한결이 자꾸 주춤거렸다. 이제는 최하늘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오한결의 행동에 수상함을 느꼈다.

데이비드 오 교수가 물었다.

“왜 그런가? 혹시 누구를 찾고 있나?”

“그게…….”

때마침 리나가 일상복으로 갈아입고 나타났다.

“리나! 아직 이곳에 있었군요.”

“그럼요. 오한결 작가님과 함께 뒤풀이 해야죠.”

오한결이 리나를 향해 환하게 웃으며 정말로 수고했다고 말하자, 리나가 정중하게 예의를 차리며 오한결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모두 오한결 작가님 덕분이에요. 정말 최고의 경험을 했어요.”

오한결이 리나를 보고 무척 편한 표정을 짓자, 최하늘을 제외한 나머지 일행은 오한결이 리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최하늘은 여전히 찜찜했다.

시계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윌리가 신경질을 내기 시작했다.

“가야 한다고요! 이렇다가 점심 굶으면 책임질 건가요!”

윌리의 성화에 못 이겨 모두 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가는데, 우연히 오한결 옆에 서게 된 윌리가 아무렇지 않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 아까 보니까, 그때 피자가게에서 봤던 분 왔던데요. 그분 있잖아요. 올해 말에 결혼한다던. 근데 혼자 왔던데. 남자친구가 바쁜가.”

오한결은 윌리가 누구를 말하는지 단번에 알아들었다.

그건 진태희였다.

‘태희가 왔었구나. 마지막 선물을 받았구나.’

오한결이 갑자기 길을 멈추고 세상의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 편안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오한결을 쳐다봤지만, 최하늘만이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오한결은 분명 윌리가 언급한 그녀가 타임스퀘어에 왔었다는 소식에 극적인 변화를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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