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54화 (154/202)

제154화 어두운 내면

크리스티 사무실 회의실에 홀로 앉아 있는 CNN 크리스 지부장은 자신의 계획대로 척척 이뤄지고 있는 지금 이 상황에 몹시 흥분하고 있었다.

CNN 내부적으로 문화재단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형성했고 이번에 오한결 작가가 뉴욕에서 대형 프로젝트를 맡은 만큼 뉴욕을 대표하는 작가로 세상에 소개하자는 자신의 뜻이 전달됐다.

물론 몇몇은 강하게 거부했지만 대체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오한결 작가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을 수용했다.

이 모든 계획을 함께할 파트너가 필요했는데, 크리스티가 오한결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정보를 접하는 순간 그들이야말로 최적의 파트너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어제저녁 이메일로 크리스티가 크리스 지부장을 사무실로 초대한 것이다.

크리스 지부장이 커피를 홀짝 마시며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회의실 문을 열고 두 명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피아가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크리스 본부장님. 이렇게 뵙게 되는군요. 저는 소피아입니다.”

악수를 마치고 명함을 받은 크리스 본부장은 소피아가 이곳 책임자라는 사실에 다시금 얼굴을 살폈다.

딱 봐도 전문가의 얼굴이었다. 오랜 시간 자신의 분야를 위해 헌신한 그런 인간의 존엄성을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크리스 본부장이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그녀 옆에 서 있는 젊은 여성을 바라봤다. 그녀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에밀리입니다.”

에밀리의 손을 잡은 크리스 본부장은 그녀의 강인함을 느낄 수 있었다. 단단하게 전해지는 그녀의 악력에서 자신감과 함께 예측할 수 없는 어떤 능력도 살짝 느껴지기도 했다. 참 미스터리한 인물이군!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자 세 사람은 서로 번갈아 가며 쳐다봤다.

잠시 말은 없었지만, 서로의 탐색전은 무척 세련되고 깔끔하게 진행됐다. 크리스티 직원의 모습이 마음에 든 크리스 지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크리스티가 오한결 작가에게 관심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최근에 한국에도 방문했다고요.”

“역시 언론사는 다르군요. 내부 극비 정보인데도 척척 알고 계신 걸 보면. 네, 맞습니다. 우리는 오한결 작가에게 관심이 많아요. 크리스티는 그런 훌륭한 작가를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소피아의 대답이 마음에든 크리스 지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우리는 공통점이 많군요. 우리는 모두 오한결 작가를 원합니다.”

“오호호. 그래서 CNN이 오한결 작가의 퍼포먼스를 독점 방송하기로 한 거 아닙니까? 그 점은 무척 부럽습니다. 저희도 곧 계획대로 오한결 작가의 작품을 경매에 부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하! 그 교육방송에서 그린 그림 말인가요?”

“네, 맞습니다.”

“설마 겨우 그림 세 점 가지고 만족하시는 건 아니시죠?”

크리스 본부장의 도발적인 말에 소피아와 소피아가 인상을 팍 구겼다.

‘겨우 그림 세 점이라고?’

소피아는 바로 인상을 펴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정심을 유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리스티가 매년 수십 개의 명작을 경매에 올리지만 그 과정을 보면 하나도 쉬운 게 없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원래 작품이란 그런 거예요. 명작은 그만큼 노력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하하하. 재밌네요.”

뜬금없이 크리스 본부장이 웃어버리자, 소피아 지부장이 화를 냈다.

“본부장님! 지금 뭐하는 겁니까. 우리를 무시하는 거예요?”

크리스 본부장이 손을 휘저으며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림 세 점 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제안이 생각나서 그랬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매력적인 제안이라는 말에 두 사람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크리스 본부장을 쳐다보았다. 그는 이때다 싶어 서둘러 본론을 꺼냈다.

“오한결 작가가 미국 작가가 된다면 어떠시겠습니까? 뉴욕을 대표하는 작가로 모든 작품을 여기 뉴욕에서 제작하고 경매도 크리스티와 모두 독점으로 하는 겁니다.”

너무 충격적인 말에 소피아가 버벅댔다.

“그……게 무슨 말이죠? 미국 작가라니요.”

“미국은 다민족 국가입니다. 현재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예술가가 뉴욕을 찾고 이곳에서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결국 뉴욕에서 성공적인 데뷔를 하고 작가로서 꿈을 이뤘을 때, 우리는 뭐라고 하나요? 그들을 ‘뉴욕 작가’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뉴욕 작가라……. 어쩌면 경매에서도 더 비싸게 팔 수 있겠어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크리스 본부장이 말했다.

“경매도 중요하지만 이건 국익과도 연관된 문제입니다. 미국을 위해서요.”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요?”

“못할 게 뭐가 있습니까? 오한결 작가에게 뉴욕시가 충분한 재정적 지원을 약속하고 수많은 갤러리와 미술관이 그와 계약을 맺으면 되지요. 그리고 유명 대학교 미대 교수직도 제안하면 오한결이 뉴욕에 머물지 않을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몰입하고 있던 소피아가 크리스 본부장이 멈칫하자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

“하지만?”

“걸리는 게 있어요. 그건 명일 문화재단입니다.”

“네? 거기가 왜요?”

“사사건건 간섭을 하고 있습니다. 껌딱지처럼 붙어서 오한결 작가 주위를 맴돌고 있어요. 제가 볼 땐 뒤에서 오한결 작가를 조종하는 것 같습니다.”

“우하하하하.”

지금까지 조용히 말만 듣던 에밀리가 크리스 본부장의 말에 미친 듯이 웃어댔다.

크리스 본부장이 언짢은 기분을 감추지 않았다.

“뭡니까? 너무 무례한 거 아니오?”

“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아서 참을 수 없었습니다. 오한결 작가를 움직이는 실세는 따로 있습니다.”

“!!”

잠시 소피아와 눈빛을 주고 받은 에밀리가 말했다.

“그건 한국의 문체부 장관인 이상민입니다. 그가 오한결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고 있습니다. 크리스 본부장님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그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에밀리가 눈빛을 번쩍이며 크리스 본부장을 노려봤다.

크리스 본부장은 그녀의 압도적인 아우라에 혼자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문화재단은 그럼 뭡니까?”

에밀 리가 소피아 지부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지금 전화로 이상민 장관에게 문화재단에 대해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소피아 지부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휴대폰으로 이상민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상민 장관은 바로 전화를 받았고 자신이 아는 모든 내용을 에밀리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1시간 넘게 통화가 이어지고, 소피아 지부장과 크리스 본부장은 그 지루한 시간을 오로지 오한결만 생각하면서 버텨냈다.

전화를 끊은 에밀리가 말했다.

“이제야 정확한 그림이 그려지는군요.”

“아, 어서 말씀 좀 해주세요. 궁금합니다.”

크리스 본부장이 간절하게 부탁하자, 에밀리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상민 문체부 장관은 문체부 수장으로 예술 단체인 문화재단을 꽉 잡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말만 하면 언제든 문화재단을 흔들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한국에서 구설수를 만들고 싶지 않아 그들의 오만방자한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고 합니다.”

“아하! 역시 별종들이었군.”

“때가 되면 오한결을 문화재단에서 구해낼 계획도 가지고 계시다고 합니다.”

“이런!! 훌륭한 계획이군요. 그럼 당장 뭔가를 해줄 수 없나요?”

“그게 이분의 말씀하는 스타일이 좀 애매합니다. 항상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하신다고 하네요.”

크리스 본부장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문체부 장관이라는 사람, 신뢰할 수 있습니까?”

“당연하죠. 제가 직접 한국에서 만났습니다. 그의 집에 갔는데 오한결 작가가 애지중지하는 작품이 벽에 걸려 있었어요! 그거 하나만으로 신뢰를 하기에 충분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전히 찜찜한 생각을 지우지 못한 크리스 본부장이 잠시 고민한 뒤 몇 가지 제안을 했다.

“그건 그렇고, 당장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저는 오한결 작가가 뉴욕에서 활동할 가능성을 언론을 통해 뿌릴 테니까, 크리스티는 회원들을 상대로 문화재단과 거리를 두라고 말씀을 해주세요. 이렇게 서서히 오한결을 미국 작가로 만들어 가는 겁니다.”

이후 크리스 지부장이 왜 문화재단이 망해야 하는지 장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른 후 크리스 지부장이 먼저 약속이 있다며 회의실을 나갔다.

그의 정신없는 토크에 정신이 혼미해진 소피아 지부장과 에밀리는 잠시 말없이 기력을 회복하려고 애썼다.

소피아 지부장이 겨우 입을 열었다.

“크리스 본부장 말대로 될까? 그렇게 되면 우리에게 무슨 이득이 있는 거지?”

“글쎄요. 저는 솔직히 회의적입니다. 문화재단 따위에 우리가 신경쓸 필요가 있나요? 우리는 이상민 장관과 긴밀한 협력 관계를 가지기만 하면 됩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소피아 지부장이 궁금한 게 생겼는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오한결 작가가 미국 작가가 되는 게 이득인 게 맞아?”

“음……. 제 생각을 물으신다면,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한국 작가들이 요즘 세계 무대에서 정말 많은 활약을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국적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작품이 중요한 거겠죠. 저는 이번에 한국에 갔다 온 뒤로 한국을 무척 사랑하게 됐습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고층 건물이며 맛있는 음식. 기가 막히더라고요.”

“에밀리는 관광하고 온 건가?”

“……아뇨. 체험하고 왔습니다.”

“……그게 그거 아냐?”

“다릅니다.”

* * *

새벽 1시가 지났는데도 재즈클럽에는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였다.

저녁 12시에 알바를 마친 산다라는 구석 자리에서 리나와 함께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산다라는 리나의 맑은 눈동자를 보면서 말했다.

“이번 빅스퀘어 이벤트가 끝나면 리나는 분명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가수가 될 거야. 나는 확신해.”

리나는 오한결이 자신에게 준 기회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산다라의 말대로 그녀는 분명 빅스퀘어 행사 이후로 지금과 완전히 다른 가수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너무나 기쁜 마음도 잠시 리나는 산다라를 보면서 쉽게 기뻐할 수 없었다. 리나는 산다라를 둘러싼 어둠의 기운을 지금도 온전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산다라도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산다라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인데. 내 인생의 절반은 세계 여행이었어. 수많은 낯선 땅을 밟았고 거기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했지. 누군가가 나를 정의한다면 그건 ‘자유’ 아닐까 싶어.”

“그러네요. 역시 산다라는 대단해요.”

“호호호. 리나도 어서 외국을 더 다녀봐. 인기 스타가 되면 자유로운 여행도 잘 못하게 될 테니까.”

“그런가요? 추천 좀 해주세요.”

산다라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국가, 음식, 마을, 자연 풍경 등을 몇 시간 동안 설명했다. 리나는 그녀의 말에 끝까지 집중하며 그녀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느끼는 짜릿한 흥분을 더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리나는 행복에 겨운 산다라의 표정과 다르게 그녀의 눈은 너무나 슬픔에 젖어 있다는 사실을 대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리나는 산다라의 어두운 내면에 자리 잡은 고통이 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발랄하고 당당함만 보여줄 뿐 그 어둠의 실체를 절대 남에게 보여주지 않고 있다.

‘산다라, 당신의 웃음 뒤에 가려진 어둠을 언젠가 보여줄 수 있나요?’

리나는 간신히 눈물이 나는 것을 참으며 산다라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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