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44화 (144/202)

제144화 완벽한 기회

뉴욕의 바쁜 거리가 한눈에 보이는 카페에 최하늘이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노트북 화면에는 윌리에 관한 검색 정보가 보였다.

최하늘이 알아본 윌리는 이랬다.

윌리는 영재 교육을 받은 예술가로 뉴욕대에 입학을 했지만 대학 졸업 후 발표한 작품마다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앤드류의 권유로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고 있으며 현재 조교를 하면서 대학 강의까지 하고 있었다.

추후 영재 교육 분야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자료도 있었다.

‘이렇게 보니까, 오한결 작가님의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네.’

멍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보던 최하늘은 그저 휴대폰만 만지작거렸다.

‘윌리에게 뭐라고 설명하지? 전화 자체가 짜증나는데…….’

시간을 끌던 최하늘은 더는 지체할 수 없어 두 눈을 질끈 감고 윌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기대했던 대로 윌리는 퉁명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윌리입니다.]

최하늘은 긴장된 마음에 재빨리 커피 한 모금을 마셨지만 뜨거운 커피라 오히려 헛기침을 하고 말았다.

“켈록, 켈록.”

[…….]

“아! 윌리! 반가워요. 호호. 식사는 하셨어요?”

[……네. 안타깝군요. 식사는 다음에 하죠. 하늘 씨.]

‘뭐야! 내가 진짜 밥 먹고 싶어서 전화한 줄 아나!’

“아, 그게 아니라. 안부 인사에요. 호호. 한국에선 이렇게 한답니다.”

[아……. 근데 무슨 일로 전화를 하셨어요? 잠시 뒤에 저는 강의 들어가 봐야 하는데요.]

“그게 부탁이 있어서요. 그게…….”

[안 돼요! 또 스케줄 바꾸려고요? 그렇게 정해진 일정을 바꾸면 어떡해요? 지난번에 약속했잖아요. 안 그러기로.]

“아……. 무슨 오해가 있나 본데. 그게 아니라 부탁할 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최하늘은 최선을 다해 타이론에 대해 설명했다. 무엇보다 본인이 아닌 오한결이 상당히 신경쓰고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잠시 고민을 하던 윌리가 대답했다.

[꽤 흥미로운 제안이군요. 하늘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그 아이 작품이 그렇게 훌륭한가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직접 보면 되잖아!’

최하늘은 투덜대며 대답했다.

“그럼요. 낙서가 아주 기가 막힙니다. 뭐랄까, 철학이 담긴 낙서랄까.”

[그건 무슨 뜻이죠?]

‘아오, 그냥 넘어가!’

짜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최하늘이 심호흡을 크게 하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철학이란 말이죠…….”

[어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 얘기는 들은 거로 할게요. 아무튼, 나중에 그 아이를 데리고 제 사무실로 오세요!]

그렇게 윌리는 갑작스럽게 전화를 툭 끊어 버리자, 최하늘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소리를 질렀다.

“윌리!!!”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모두 쳐다보자, 고개를 연신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쏘리!”

* * *

노을이 옥탑 작업실에서 뭉치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빠져 있다.

‘야옹이 마을’ 경험은 무척 좋았지만, 그것만으로 작품을 구상하기엔 아직도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단 뭐라도 작업을 하긴 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 걸까?

‘오한결 작가만 곁에 있었어도 한 번에 해결해줄 텐데!’

지금 뉴욕에 있는 오한결 작가에게 전화를 하자니 너무 염치없어 보이기도 했다. 모름지기 작가라면 자신의 작품은 스스로 기획하고 만들어야 하니까.

깊은 고민을 깨운 건 한 통의 전화였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해산 군청인데요. 혹시 노을 작가님 맞으신 가요?]

‘해산 군청?’

노을이 궁금한 표정을 짓자, 그녀 옆에 쭈그려 앉아 있던 뭉치도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네, 제가 노을인데요. 무슨 일이시죠?”

[안녕하세요, 해산 군청 사무관 이태종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고양이 마을 관련해서 전화 드렸는데요. 노을 작가님이 고양이 마을에 해주신 일에 대해 우선 감사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지금 SNS에 난리가 났어요. 우리 군수님도 너무 좋아하세요.]

“어머, 잘됐네요. 저희도 고양이 마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 것 같아서 너무 기뻐요.”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저희가 부탁 하나 해도 될까요?]

“네? 뭔데요?”

“해산 군청에서 문화예술 관련 예산이 이번에 대폭 늘었거든요. 그래서 야옹이 마을에 미술품을 하나 설치할까 해서 그것을 해줄 작가님을 찾고 있습니다. 혹시 노을 작가님께서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당연히 모든 비용은 해산 군청에서 드릴 거고요.”

“!!”

‘정부 예산으로 작품을 만들어 보라고?!’

이태종 사무관의 말에 노을이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흥분했다. 노을의 작품은 항상 저렴한 재료를 직접 구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작품을 제작하는 수준이었다.

그녀는 주변에 작가들이 기업이나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 대형 프로젝트를 하는 것을 볼 때마다 은근히 자존감이 하락하고 예술가로서 재능을 의심해야 했었다.

그러던 노을에게 꿈 같은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전업 작가로서 완벽한 기회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할게요! 꼭 하고 싶습니다. 사무관님”

선뜻 노을이 수락하자 이태종 사무관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너무 감사합니다. 작가님! 혹시나 거절할까 봐 얼마나 조마조마했는데요. 하하.]

“여쭤볼 게 있는데요. 혹시 다른 작가들하고 협업해도 될까요? 사실 ‘야옹이 마을’에서 한 작업들은 모두 제 친구들하고 같이한 거라서요. 그들에게도 기회가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이미 다 알고 있습니다. 물론 가능합니다. 팀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모두 노을 작가님께서 결정하면 됩니다. 제가 이 좋은 소식을 군수님께 보고 드리고 추후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통화를 마친 노을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서자, 잠을 자던 뭉치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노을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야옹!!!

* * *

노을은 기쁜 소식을 공유하고자 아트화랑으로 달려갔다.

“저 왔어요! 호호.”

“오, 주인공 왔네!!”

노을이 단체 채팅방으로 미리 소식을 전하자, 최무열과 서정익 작가가 그녀보다 먼저 아트화랑에 달려와 기다리고 있었다.

홍미숙이 만든 수제 피자 한 조각을 들고 노을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꿈 같아. 정부 지원금으로 작품 활동을 하다니 말이야.”

홍철수가 테이블에 수제 맥주를 놓으며 대답했다.

“너무 잘 됐구나. 어제만 해도 빨리 작품 활동하고 싶어했잖아. 고양이 마을에서 좋은 일도 하니까 이런 기회도 오는 게 아닐까 싶다.”

홍미숙이 흐뭇한 표정을 말했다.

“오빠 말이 맞아요. 아이들이 착하니까 기회가 오는 거예요.”

노을이 전해준 소식에 누구보다 기쁜 표정을 짓던 최무열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우리가 무슨 작품을 만들어야 하는 걸까?”

“페인팅을 해보면 어때요? 제가 그쪽으로 자신 있긴 하거든요.”

서정익의 말에 노을과 최무열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평소 서정익 작가의 작품은 노골적인 누드 그림이 많았고 종종 괴기할 정도로 형태를 왜곡하기도 했다. 단 한 번도 흔히 말하는 예쁜 그림을 그린 걸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으, 서정익 작가의 독특한 작품 스타일을 생각해 보면…….’

아기자기한 고양이 마을에 충격적인 작품이 그려지는 모습을 상상한 두 사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서정익 작가의 뛰어난 작품성은 당연히 인정하지만, 군청 예산으로 만든 작품은 자고로 대중성이 앞서야 하지 않을까?

서정익 작가는 자신의 제안에 미적지근한 사람들을 보면서 바로 꼬리를 내렸다.

“뭐, 다른 것도 생각해 보죠…….”

노을이 턱을 괴고 혼자 중얼거렸다.

“이때 오한결 작가님만 있었어도 쉬웠을 텐데. 안 그래?”

“맞아. 딱 정답을 제시해줬을 것 같아.”

최무열도 아쉬운 표정을 짓자, 서정익 작가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요. 오한결 작가님은 한 번도 정답을 제시한 적이 없어요. 그분은 우리가 탁월한 생각을 하게 도와줬을 뿐이에요. 그리고 제가 보기엔 두 분은 오한결 작가님 도움 없이도 충분히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작가들입니다.”

“고마워요, 서정익 작가님.”

노을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최무열이 말했다.

“맞아. 오한결 작가님은 그랬어. 근데 우리가 잊고 있는 게 하나 있는데, 서정익 작가님도 엄청 유명한 사람이잖아. 하하. 서정익 작가님이 이번에 중심을 잡아서 해줘요.”

갑자기 쑥스러운 표정을 짓던 서정익 작가가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 그렇다면 페인팅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노을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대답했다.

“다 좋아요. 페인트, 조각, 비디오 아트 모두 오케이. 그러니까 우리 페인팅만 고집하지 맙시다.”

“……네.”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홍철수가 세 사람을 번갈아 쳐다본 뒤 말했다.

“내가 조언을 하나 해도 될까?”

“물론이죠.”

“이번 프로젝트 리더는 노을이 했으면 좋겠어. 사실 군청에서 전화를 받은 것도 노을이잖아. 내가 옆에서 지켜보니까 세 사람이 모였을 때 가장 화합이 잘 될 때가 바로 노을이 리더 역할을 했을 때 같아. 물론 개개인이 모두 개성이 넘치고 뛰어나지만 그것을 하나로 엮는 건 또 다른 얘기니까.”

서정익 작가가 격하게 공감하며 말했다.

“맞아요. 저도 그걸 많이 느끼긴 했어요. 사실 저는 저만의 개성이 있어서 팀 활동을 잘 안 했거든요. 노을 씨 만나고 화랑거리 조각도 만들어 보고 너무 좋았어요. 그래서 다시 팀을 이루면 노을 씨가 리더가 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누나, 난 언제나 누나가 리더라고 생각했어. 내 맘 알지?”

최무열이 은근히 서정익 작가의 말에 묻어가자, 노을이 피식 웃었다.

“다들 고마워요. 그럼 제가 열심히 해볼게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덩달아 신이 난 홍미숙이 최근 개발한 레시피라며 파스타를 부엌에서 만들어서 가지고 나왔다. 맛있는 냄새에 홀려 서둘러 파스타를 먹던 노을이 엄지를 추켜세웠다.

“우와, 너무 맛있어요!”

“대박. 레스토랑 차려도 될 듯!”

극찬이 이어지고 모두 배가 이미 불렀음에도 홍미숙이 만든 파스타를 몽땅 해치웠다.

식사를 배부르게 마친 사람들은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모처럼의 여유를 즐기기 시작했다.

아트화랑에 흐르는 잔잔한 클래식과 창밖 어둠이 내린 화랑거리 골목의 운치 있는 가로등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홍미숙이 따스한 차를 호호 불며 말했다.

“그나저나 오한결 작가는 뉴욕에서 잘 지내는 거지?”

홍미숙의 질문에 뭔가가 생각난 서정익 작가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대답했다.

“아! 얼마 전에 CNN을 보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요.”

“뭐? CNN을 봐요? 대박, 영어를 그렇게 잘 했다고?”

최무열이 불쑥 끼어들어 엉뚱한 질문을 해대자, 노을이 손바닥으로 그의 등을 내리쳤다.

“아! 아파!”

“왜 서정익 작가님 말을 끊고 그래. 그리고 서정익 작가님 영어 잘해. 최소한 너보다!”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히죽대던 서정익 작가 말을 이었다.

“CNN 인터뷰였는데요. 얼마 후에 뉴욕 타임스퀘어에서 대형 퍼포먼스를 할 건가 봐요. 찾아보니까 빅스퀘어 빌딩에 100미터가 넘는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는데 거기에 오한결 작가님의 작품이 나올 건가 봐요.”

“우와! 그럼 오한결 작가님이 영상을 제작하는 건가?”

“자세한 건 모르지만, 이건 하나 확실해요. 엄청난 이벤트라는 사실이요.”

홍미숙이 한껏 기대하며 말했다.

“어머! 꼭 보고 싶다. 근데 EBC에서 하는 것도 아니고 방송에 나오진 않겠지?”

“방송에 나와요. CNN에서 생방송 한다고 들었거든요.”

“어머! 잘 됐다. 몇 시에 할까? 그날은 파티 음식으로 준비할까나.”

홍미숙이 기쁨의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말하자, 서정익 작가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시차 때문에 한국은 새벽에 볼 수 있을 텐데요.”

“새벽…….”

홍미숙이 멍을 때리자, 최무열이 위로했다.

“누나. 사람들은 새벽에 야식으로 치킨 먹잖아요. 전 뭐든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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