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캣츠
고양이 할머니 집 밖으로 나온 노을과 최무열은 허리에 손을 얹고 앞으로 해야할 일들을 하나둘씩 곱씹어 봤다.
“그러니까 담벼락 밑에 줄지어 있는 고양이 집부터 새로 지어야 한다는 거지?”
“그리고 페인트로 벽화를 멋지게 그려보자.”
최무열이 신난 표정으로 말하자, 덩달아 노을도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벽화 알바 출신이잖아. 재밌겠다.”
플라스틱과 나무 판자로 만든 집 안에서 잠을 자던 고양이들을 먼저 밖으로 내보내자, 한가로운 낮잠을 깨웠다면 고양이들이 짜증스러운 울음을 내기 시작했다.
“미안해! 더 멋진 집을 만들어 주려는 거야. 조금만 참아!”
이야옹!
할머니가 만든 허름한 고양이 집을 모두 해체하고 나니, 폐자재가 산더미처럼 쌓인 것처럼 보였다. 문제는 이제부터였다. 부수고 쓸모 있는 재료를 활용할 생각이었지만 사실상 너무 오래되어 곰팡이가 슬고 부식돼 재료를 다시 활용하긴 힘들어 보였다.
수십 마리의 고양이들이 노을과 최무열을 둘러싸고 그들이 하는 행동을 지켜보고 있자, 노을이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러다가 고양이들 오늘 노숙하겠네. 하하.”
“그러게, 우리가 사고 친 거 아닌지 몰라.”
때마침 그 근처를 지나가던 동네 아저씨들이 부서진 고양이 집들을 보며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이를 어째!”
“할매가 애지중지하던 걸 청년들이 죄다 부셔놨네.”
동네 아저씨들의 말에 노을이 반박했다.
“아니에요! 고양이 할머니가 집을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하셨어요.”
“뭐?”
아저씨들이 몹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각자 떠들어 댔다.
“여태껏 그렇게 새로 짓자고 해도 꿈쩍 안 하던 할매가 웬일이래?”
“네? 그전에도 고양이 집을 새로 짓자고 하셨어요?”
“그래, 근데 그렇게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리더라니까.”
아저씨들 말에 따르면 최근 이 마을이 고양이 마을로 유명해지면서 이름을 ‘야옹이 마을’로 바꾸고 주민들이 관광객을 맞을 준비로 외관을 정비했는데, 유일하게 고양이 할머니만이 고집을 부리며 낡고 오래된 고양이집들을 그대로 남겨 놓았다고 한다.
노을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까 할머니 집에서 밥 먹을 때 우리가 새로 꾸며준다고 하니까 바로 허락하셨는데요.”
모자를 쓴 아저씨가 깜짝 놀랐다.
“할머니 집에서 밥을 먹었다고? 이야, 우리 청년들이 할머니 마음을 얻었구나. 그거 쉽지 않은데. 워낙 동네주민들하고 소통을 안 하시는 분이야.”
“왜요? 밥도 주시고 따뜻하신 분이신데.”
“예전에 동네 주민들이 고양이를 반대했거든. 그때 불화가 있었는데, 이제 몇몇 빼고는 모두 고양이를 좋아해. 그러니까 ‘야옹이 마을’이라고 이름도 바꾼 거 아니겠어?”
“아……. 그 몇 분은 왜 싫어하시는데요?”
“할머니가 꾸민 고양이 집들이 동네 미관을 해친다고 그러는 거지. 그래서 우리가 도우려고 했는데, 할머니 고집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
“그럼, 오늘 예쁜 집 지으면 모두 해결되겠네요?”
“물론이지!”
말이 끝나자마자 동네 아저씨들이 노을과 최무열이 쌓아 놓은 스티로폼과 나무 판자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뒤, 트럭 한 대가 정차하더니 매끈하고 고급스러운 고양이집 재료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할머니 집 앞을 보수 공사한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일손을 돕고 싶어하는 모든 주민이 우르르 할머니 집 앞에 모여들었다.
노을과 최무열이 집 디자인을 해주면 목수 아저씨들이 정확히 재단해서 재료를 잘랐고 손재주가 좋은 동네 사람들이 그것을 조립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아이들도 붓을 하나씩 들고 고양이 집에 아기자기한 고양이 캐릭터를 그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마을 주민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작업에 몰입하자, 엄청난 속도로 고양이 집이 만들어졌다.
노을과 최무열은 애초에 고급스러운 펜트하우스급 집을 계획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손을 타면서 정감 있고 따뜻한 외관의 집이 만들어졌다.
“나는 이게 더 좋네.”
노을이 흐뭇하게 웃으며 회색 벽에 페인트를 칠하기 시작했다. 벽화에 흥미를 느낀 몇몇 어르신들도 환하게 웃으며 노을과 최무열이 그린 밑그림에 정성스럽게 페인트를 칠하기 시작했다.
잠시 뒤, 너무나 귀여운 고양이 캐릭터가 할머니 집 담벼락에 가득 그려지게 됐다.
“드디어 완성했네.”
어둡고 칙칙했던 할머니지 외관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다. 아담하고 귀여운 조립식 건축물처럼 고양이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집들이 일렬로 놓여 있었고 그 뒤 담벼락에는 나비를 쫓아 뛰어가는 아기 고양이의 캐릭터들이 귀엽게 그려져 있었다.
고양이 마을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고양이도 북적대는 소리에 호기심을 느꼈는지 모두 할머니 집 앞에 모여 고개를 갸우뚱하며 새로운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페인트 칠을 가장 열심히 했던 아주머니가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어머! 완전히 예뻐졌네. 청년들 너무 고마워요. 우리가 못한 걸 해냈어.”
그때 대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던 할머니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과 고양이들이 집 앞에 모여있자 적잖이 당황했다.
“다들 한가한가? 뭐가 좋다고 이렇게 모여들 있어?”
노을이 고양이 집과 벽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할머니 이것 좀 보세요. 너무 예쁘죠?”
할머니가 새로 만든 집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머나, 세상에. 이렇게 바꿔줄지 몰랐네. 너무 고마워.”
마을 주민들도 웅성거리며 할머니의 달라진 모습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문이 다시 한번 열리더니 서정익 작가가 뒷다리에 휠체어를 매단 새끼 고양이를 조심스럽게 안고 나왔다.
새끼 고양이를 바닥에 내려놓자, 잠시 머뭇거린 고양이가 조심스럽게 앞발을 움직이자 휠체어 바퀴가 움직이면서 고양이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보던 모든 사람이 감동적인 표정을 지으며 진심으로 박수를 쳤다.
노을이 서정익 작가를 쳐다보며 말했다.
“성공하셨네요. 작가님! 멋져요!”
얼굴을 심하게 붉힌 서정익 작가가 대답했다.
“너무 다행이에요. 제가 망치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할머니가 서정익 작가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이 청년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휠체어를 만들었는지 아마 다들 모를 거야. 그 모습에 내가 다 감동했다니까. 아, 그리고 이 청년이 우리 아기 고양이한테 이름도 지어줬어.”
서정익 작가가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열심히 뛰어놀라고, ‘깡총이’라고 지었어요.”
너무 깜찍한 이름에 모두 피식 웃으며 서정익 작가를 바라봤다. 그러자 서정익 작가가 더욱 얼굴을 붉히며 땅만 바라봤다.
어느덧 저녁이 오자 마을 주민들이 한바탕 잔치를 열어줬고 거기서 노을 일행은 배가 터지도록 맛있는 고기를 얻어먹었다.
그리고 하룻밤 묵고 가라는 할머니의 요청에 따라 그날은 할머니 집의 빈방에 머물기로 했다. 노을은 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고 최무열과 서정익은 작은 방에 배정됐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하루를 보낸 최무열은 순식간에 곯아떨어졌지만 서정익 작가는 새끼 고양이가 휠체어를 끌던 그 순간이 자꾸 생각나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바람을 쐴 겸, 조용히 집 밖을 나온 서정익 작가는 조용히 동네 산책을 시작했다.
수분을 잔뜩 머금은 바닷바람이 불어오자, 조금은 긴장감이 풀어지는 느낌이었었다.
서정익은 그간 자신의 변화를 눈치채고 피식 웃었다.
‘항상 무섭기만 했던 고양이가 이제는 좀 귀여워 보이기까지 하네.’
실없이 웃음을 흘리며 걷던 중, 갑자기 그의 앞에 검은 형제가 묵중한 발걸음으로 다가왔다.
“!!”
서정익 작가를 노려보던 것은 매서운 눈빛을 보유한 깡패 고양이였다.
서정익 작가는 무서운 마음에 뒷걸음을 쳤지만 깡패 고양이는 매서운 눈빛으로 그를 빙빙 돌며 마치 사냥감을 노리듯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살려달라고 소리를 지를까?’
덜덜덜 떠는 서정익 작가는 도움을 요청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결국, 포위망에 걸려들었구나!’
야옹!
하지만 검은 고양이는 서정익 작가의 발 근처로 다가와 잠시 머뭇거리더니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발라당 눕고 배를 보이며 한껏 애교를 부렸다.
“어라?”
긴장한 마음에 침을 꼴깍 삼킨 서정익 작가가 고민하더니 슬쩍 손을 뻗어 고양이를 쓰다듬자, 검은 고양이가 매우 행복한 표정으로 서정익 작가의 다리에 매달렸다.
“뭐야! 너 지금 내가 좋은 거니?”
이야옹!
* * *
뉴욕 브로드웨이를 찾은 신태진 회장이 한껏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양 비서에게 말했다.
“그러니까, <캣츠> 공연이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거지?”
“네, 회장님. 그래서 어렵게 표를 구했습니다.”
애초에 페이스픽쳐스 CEO 로건과 오한결을 연결해주기 위해 뉴욕에 방문한 신태진 회장은 생기 넘치고 화려한 뉴욕의 에너지에 흠뻑 취하고 말았다.
일정대로라면 이미 오늘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어야 했지만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나 보지 않고 돌아가기에 너무 아쉬워했다. 그래서 공연 정보를 알아보던 중 그 유명한 <캣츠>가 마지막이라는 소식을 듣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 공연을 보기로 마음 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매진된 표를 구하긴 하늘에 별따기 같았는데, 로건의 도움으로 VIP 두 장을 구할 수 있게 됐다.
극장 VIP석에 앉은 신태진 회장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뭐, 공연 때문에 도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로건 덕분에 이렇게 <캣츠>를 볼 수 있으니까 너무 좋구먼.”
양승호 비서는 여자친구인 이풀잎에게 문자로 <캣츠>를 보기 위해 극장에 앉아 있다는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이풀잎은 감탄 이모티콘을 엄청나게 보내며 꼭 자기도 보고 싶다고 텍스트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양승호 비서는 몇 달 뒤 <캣츠>가 내한 공연하면 그때 꼭 보자는 약속을 하고 겨우 문자 대화를 마칠 수 있었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오자, 양 비서의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레미제라블, 오페라의 유령, 미스사이공과 함께 뮤지컬 빅4로 불리는 캣츠를 뉴욕에서 직접 보다니!
화려한 무대 배경으로 더 화려한 외모로 치장한 고양이들이 무대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의 유연하고 현란하고 춤동작은 정말 거대한 고양이가 아닐까 하는 착각을 일으켰다.
고양이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그들의 몸동작은 끊임없이 고양이의 습성과 행동양식을 연구한 결과일 것이다. 배우들의 노련하고 완벽한 연기에 신태진 회장과 양 비서가 침을 꼴깍 삼키며 엄청나게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이끌며 노련하게 사회를 보내는 멍거 스트랩 고양이.
반항아 기질이 다분해 더욱 매력적인 럼 텀 터거 고양이.
무엇보다 모두가 사랑하는 그리자 벨라 고양이가 드디어 등장했다.
한때 아름다웠던 그녀는 부족을 떠나 바깥세상에 머물다가 이제는 늙고 외로운 고양이가 되어 부족과 함께 하고 싶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다른 고양이들은 그녀를 배척하고 마는데.
그리자 벨라는 자신의 안타까운 처지를 가슴 절절한 노래로 표현했고 그게 뮤지컬 <캣츠>의 상징인 된 노래 ‘메모리’였다.
그리자 벨라가 무대 중앙으로 자리를 옮겨 아주 슬프고 간절한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슬픔 감정이 물씬 묻어나는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에서 지난 날의 추억이 묻어나고 한때 사랑했던 그 시절을 간절하게 울부짖으며 행복을 희망하는 그녀의 진심 어린 마음이 전달되고 있다.
이렇게 수준 높은 뮤지컬을 처음 본 양 비서는 무대에 눈을 떼지를 못했다.
그리자 벨라의 노랫말이 가슴을 울렸고 그녀의 간절한 목소리가 심장을 두근거렸다.
지금 당장 벌떡 일어나 미친듯이 환호성을 보내도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절절한 배우의 목소리에 양 비서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리고 두 손을 꼭 모아 혼자 중얼거렸다.
‘반드시 풀잎 씨랑 꼭 다시 와서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