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38화 (138/202)

제138화 소중한 선물

파도가 넘실대는 방파제에 고양이들이 편히 앉아 있자, 백발의 노인이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고양이는 물을 참 싫어하면서도 저렇게 물가를 좋아해.”

“어머, 그러네요. 물에 빠지면 어떡하려고.”

노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고양이 무리를 바라보자, 가방을 꼭 껴안고 고양이의 공격에 대비한 서정익 작가가 말했다.

“고양이들이 균형 감각이 얼마나 좋은데요. 절대 안 빠질걸요.”

백발의 노인이 서정익 작가를 만족스럽게 쳐다봤다.

“호호호.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수십 년 동안 고양이가 바다에 빠졌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 그러고 보니, 자네는 고양이가 그렇게 좋나? 너무 좋아서 가방을 꼭 껴안고 있잖아. 마치 어린아이처럼.”

“…….”

당황하던 서정익 작가를 대신해 최무열이 노인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 저희가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그냥 할머니라고 해도 되나요?”

“하하하. 여기서는 나를 고양이 할머니라 부르지.”

노을 일행은 고양이 할머니를 따라 마을 곳곳을 둘러봤다.

관광으로 오면 절대 볼 수 없는 고양이 마을의 숨은 명소를 많이 보게 됐는데, 몇몇 마을 주민들이 고양이들이 자신의 집 근처에 오지 않도록 날카로운 펜스를 쳐놓은 곳도 있었다.

고양이 할머니 말로는, 이곳이 고양이 마을로 유명해지긴 했지만 아직 소수의 주민은 고양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다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고양이가 울어대고 영역 싸움도 치열해 새벽에 잠이 들기 힘들다는 민원도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무엇보다 상처받은 몇몇 고양이들은 인간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고도 있었다.

아름답게만 보였던 야옹이 마을의 현실을 듣게 된 노을 일행은 한편으로 마음이 착잡해졌다. 인간과 고양이의 공존이 그저 아름답게만 보였는데 현실은 많은 문제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이고, 힘들다!”

고양이 할머니가 오래 걸어 힘들어하자, 노을 일행은 할머니를 모시고 바다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야오옹, 야옹.

야옹~!

“어머, 고양이들이 모여드는데요?”

잠시 뒤, 고양이 할머니 주위로 수많은 고양이가 모여들었고 모두 다소곳이 앉아 할머니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중 노란 줄무늬가 뚜렷한 고양이를 노을이 쓰다듬으며 물었다.

“안락사 위험에 처한 고양이를 어떻게 해서 이곳에 데려오게 됐어요?”

고양이 할머니도 자신의 무릎에 펄쩍 뛰어오른 검은 새끼 고양이를 토닥이며 대답했다.

“그건 운명이었지. 우연히 방송에서 유기된 고양이들이 주인을 찾지 못하면 안락사된다는 것을 봤어. 그날 이후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그 어리고 불쌍한 것들을 인간이 관리하기 힘들다고 죽이다니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래서 수소문해서 몇몇 안락사 위기에 처한 병들고 다친 고양이들을 입양하기 시작했네.”

노을 일행은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 정도는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이렇게 직접 동물을 입양하기란 솔직히 쉽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양이 할머니는 어두운 안색으로 말을 이었다.

“우연히 방송에 소개가 되자, 못된 외지인들이 이곳에 몰래 와서 고양이를 버리고 가는 거야. 그래서 이제는 동네가 온통 고양이로 가득 차게 됐지. 족히 백 마리는 넘을걸.”

최무열이 흥분하며 말했다.

“세상에! 그건 진짜 못 됐네요. 그럼, 여기 모여든 고양이들은 다 주인에게 버림 받은 아이들이겠네요.”

고양이 할머니가 주저하며 말했다.

“그건 아냐. 워낙 번식력이 대단해서 갑자기 불어나더라고. 하하.”

“아……. 반전이 있었네요. 하하.”

“그래, 중성화 수술을 해줘야 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지. 지금은 도와주는 동물보호단체가 있어 다행이지. 하하.”

노을 일행에게 간단하게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고양이 할머니는 그들을 끌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고양이 할머니 집은 유독 다른 집보다 더 오래돼 보였다. 마을 입구부터 보였던 다양한 색의 지붕을 가진 집들과 다르게 무채색에 가까운 회색만 칠해져 있었다.

특히 갈라지고 더러워진 담벼락 아래에 스티로폼과 나무판자로 대충 만든 고양이 집들이 줄줄이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지저분해 보였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할머니가 만들 수 있는 고양이 보금자리로서 최선의 결과였을 것이다.

할머니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 집이 지저분하다고 싫어해. 나는 고양이들만 행복하면 그만인데 또 사람 마음이 그런 게 아닌가 봐.”

말을 마친 고양이 할머니가 기분이 축 처진 채로 노을 일행에게 밥을 차려주겠다며 집안을 들어갔다.

노을과 최무열, 서정익 작가는 여전히 집 앞에 서성이며 더러운 담벼락과 할머니가 만든 지저분하고 어설픈 고양이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아마도 지저분한 모습을 싫어하는 것 같아.”

노을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최무열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마을에 사는 고양이들 모습을 보면 무척 평화롭잖아. 마을 사람들은 고양이를 식구로 받아들인 것 같아. 그러니까 그렇게 고양이들이 인간을 경계하지 않는 거겠지. 문제는 할머니가 고양이를 아끼는 방식이 몇몇 마을 사람 눈에는 무척 좋지 않게 보이는 것 같아. 지저분하니까.”

더러운 스티로폼으로 지붕을 만든 고양이 집을 허리 숙여 들여다보던 서정익 작가가 그 안에서 고양이가 불쑥 튀어나오자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잠시 숨을 고른 후 말했다.

“미적인 문제라면, 우리가 해결해 줄 수 있잖아요.”

서정익의 말에 노을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럼 우리가 할머니를 도와줄까? 이곳을 예쁘게 꾸며주면 불만이 있던 주민들이 마음을 열지 않을까?”

어설프게 덧댄 고양이 지붕을 만져보던 최무열이 대답했다.

“사실 내가 손재주가 좋아서, 고양이 집을 펜트하우스 급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긴 한데. 하하.”

“할머니한테 물어보자. 우리가 손을 봐도 되는지!”

그 사이 할머니는 정말로 단출한 식탁을 내오셨다.

커다란 사발에 가득 담긴 흰 쌀밥에 깍두기와 열무김치가 반찬의 전부였다.

하지만 출출한 노을 일행에겐 어떤 진수성찬도 부럽지 않은 꿀맛이었다. 평소 예민해서 음식을 가려먹던 서정익 작가도 배가 고팠는지 말없이 그릇에 코를 박고 마구 밥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과일을 먹던 노을이 할머니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할머니 저희가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뜻밖의 말에 고양이 할머니가 고개를 갸웃했다. 노을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집 앞에 고양이 집이 여러 개 보이는데, 좀 불안해 보여서요. 혹시 비가 오거나 그러면 고양이 집에 물이 새지 않을까요?”

노을은 할머니가 만든 집이 어설프고 미적으로 좋지 않다는 말을 돌려서 말했다.

“그렇지. 노인네가 멋도 모르고 만든 거라 그런지 비가 좀 새더라고. 그래서 고양이들이 비만 오면 저 어두컴컴한 골목 구석에 비를 피할 곳을 찾긴 하더라고.”

“그러면 저희가 고양이 집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요?”

“그래? 근데 자네들이 어떻게?”

할머니가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자 최무열이 용기를 내어 말했다.

“사실 제가 손재주가 좋아서요. 목공 작업도 좀 할 줄 알아요.”

“그래? 기술자들이었구먼. 나야 그렇게 해주면 좋지.”

허락을 맡은 노을이 흥분하며 말했다.

“그럼 벽에도 예쁘게 그림 하나 그려드려도 될까요? 우리가 그림도 그리거든요.”

“정말? 그림쟁이들이였어? 그것도 해주면 나야 좋지.”

생각보다 쉽게 할머니가 허락하자,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식사를 마쳤다.

밥상을 치우고 나가려는데 집안 어딘가에 미약한 고양이 소리가 들렸다.

이야옹. 이야옹.

할머니가 화들짝 놀라며 구석에 놓인 이불을 들추자, 힘없이 앞발로 몸을 일으키고 있는 새끼 고양이가 보였다.

“아이고, 아가! 깼어?”

할머니가 새끼 고양이를 들어 올리자, 뒷발이 힘없이 축 늘어져 버렸다.

“이 아이는 장애가 있어. 태어나고 얼마 안 돼 교통사고를 당했거든. 그래서 뒷발을 못 쓰고 있어. 몸이 이렇다 보니까 다른 고양이들이 자신들의 무리에 끼어주지를 않더군. 어쩔 수 없이 내가 집에서 기르는데 나중에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 몸이라도 움직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반신이 마비된 고양이 모습은 서정익 작가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솔직히 지금까지 야옹이 마을을 둘러보며 길고양의 쉼터 정도로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고양이에 대한 거부감에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했던 서정익 작가에게 눈앞에 있는 다리가 불편한 새끼 고양이는 야옹이 마을이 갖는 큰 상징성을 온전히 느끼게 해주었다.

‘이곳은 정말 소중한 곳이구나.’

서정익의 마음을 알아차린 듯 새끼 고양이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서정익 작가 품으로 기어왔다. 놀란 서정익 작가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고양이를 끌어안았다.

“이놈이 그쪽이 마음에 들어 하는가 봐. 하하.”

그렇게 한동안 서정익 작가는 자신의 품에서 눈을 감고 새근새근 잠을 청해보려는 고양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제 나가서 작업을 좀 해볼까?”

노을의 한 마디에 최무열도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서정익 작가는 진지한 눈빛으로 노을을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다른 작업을 해야겠어요.”

“네? 집 같이 안 만들고요?”

“네. 해야 할 일이 생겼거든요.”

서정익 작가의 돌발스러운 행동에 최무열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기서 새끼 고양이 돌보려고요? 근데 밖에 작업량이 적지 않아서 일손이 부족해요. 그럼 고양이가 잠들면 조심스럽게 놓고 나오세요. 저희가 기다려줄게요.”

“아뇨. 저는 다른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이 아기 고양이에게 휠체어를 만들어 주려고요!”

“와! 정말요?”

노을과 최무열이 눈을 크게 뜨고 소리를 질렀다.

서정익 작가가 쑥스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저도 미대 다닐 때 조각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졸업하고 손에서 놨지만 나름 손재주가 있다고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최무열이 말했다.

“그럼 저랑 같이 만들어요. 집 밖에 고양이 집을 수리하고요.”

“음…… 미안하지만 혼자 만들어 보면 안 될까요? 장애를 가진 아기 고양이에게 선물을 하고 싶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요.”

아쉬워하는 최무열과 다르게 노을은 그런 서정익 작가를 무척 자랑스럽게 쳐다봤다.

처음에 새끼 고양이 뭉치를 봤을 때 고양이가 무서워 까무라치던 그가 뭉치 그림을 정성스럽게 그렸던 것도 그렇고 지금 장애가 있는 새끼 고양이를 위해 최선을 다해 휠체어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서정익 작가는 그렇게 자신을 가둔 벽을 스스로 깨고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고양이집과 담벼락 그림을 노을과 최무열 둘만 하면 좀 힘에 부치겠지만 뭐 어떤가. 서정익 작가가 혼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데.

노을은 은근히 서정익 작가의 솜씨를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밖에 작업은 저랑 무열이랑 할게요. 서정익 작가님은 아기 고양이에게 딱 맞는 휠체어를 만들어 주세요!”

노을의 말을 들은 서정익 작가는 환하게 웃으며 감사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고양이 할머니도 기쁜 표정으로 새끼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좋지? 아가? 여기 아저씨가 네 다리를 만들어 준다잖니.”

아저씨라는 말에 서정익 작가가 씁쓸한 미소를 숨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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