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34화 (134/202)

제134화 휘트니 미술관

날씨가 화창한 뉴욕의 아침.

호텔 VIP라운지에서 오한결이 편히 앉아 창밖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다. 최하늘은 테이블에 수많은 서류를 놓고 바쁘게 뭔가를 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오 교수님은 개인일정이 있으시다고요? 아침 일찍 나가신 걸 보니까 좀 멀리 가셨나 보네요?”

무심코 오한결이 하늘을 바라보며 질문했지만, 업무에 몰입해 오한결의 얘기를 듣지 못했던 최하늘은 대답 대신 연신 서류만 넘기고 있었다.

오한결이 고개를 돌려 최하늘을 안쓰럽게 쳐다보며 말했다.

“하늘 씨,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업무가 많아 보이네요.”

그제야 오한결이 자신을 바라보며 말을 걸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최하늘이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아니에요. 제가 해야 할 업무거든요. 거의 다 됐으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호호.”

그렇게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이어지고, 최하늘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업무를 마무리 지었다.

이제야 여유를 찾은 최하늘도 뉴욕의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와! 오늘 날씨 진짜 좋네요. 이따가 휘트니 미술관 갈 때 기분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거기에 테라스도 있는데, 오늘같이 날씨 좋은 날에는 허드슨강 풍경이 일품이겠어요.”

최하늘은 어젯밤 오늘 공식일정에 대해 짧게 브리핑해줬다. 뉴욕의 대표 미술관인 휘트니 미술관 관람 일정이 잡혔다는 것이다. 뉴욕 시장의 특별 초청인데, 데이비드 오 교수를 향한 그의 존경의 뜻으로 해석된다고 최하늘이 밝혔다.

-휘트니 미술관에 데이비드 오 교수님의 작품이 특별 전시돼 있거든요.

하지만 정작 데이비드 오 교수는 사전 약속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오한결은 데이비드 오 교수가 평소 볼 수 없었던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굳이 자신의 작품을 볼 필요가 없지만 봐야 한다면 이번엔 자신은 제외시켜야 할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대체 무슨 작품이기에 그런 거지?’

급한 업무를 모두 마친 최하늘이 푹신한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여유롭게 말했다.

“오전에는 시간이 비니까 이렇게 잠시 휴식을 취해도 좋을 것 같아요. 호호.”

그녀의 바람에 반기를 들 듯이 업무로 추정되는 전화벨이 때마침 울렸다.

한껏 여유로운 표정을 짓던 최하늘이 순간 긴장하며 전화를 받았다.

“네, 문화재단 최하늘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뉴욕 크리스티 지부장 소피아입니다. 오한결 작가님이 뉴욕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작가님을 찾아뵀으면 하는데, 혹시 지금 가능할까요?]

크리스티라는 말에 최하늘이 몹시 흥분하며 눈을 껌뻑였다. 지난밤 몹시 흥분하며 오한결에게 소더비가 급히 한국에 와서 문화재단과 회의를 했다는 말을 전하지 않았는가. 이번에는 크리스티라고?

전화기에서 얼굴을 떼고 오한결에게 크리스티가 지금 찾아뵙길 원한다고 전했다. 오한결도 흔쾌히 그들의 방문을 환영하다고 대답하자 다시금 최하늘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소피아 지부장에게 호텔 VIP라운지로 오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은 최하늘이 말했다.

“문화재단 작가님 중 소더비와 크리스티 모두의 관심을 받은 분은 작가님이 처음이에요. 이게 꿈인가요?”

오한결은 기쁜 표정을 짓지만, 사실상 세 번째 작품을 이상민 장관에게 넘긴 지금,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그 그림을 원할 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냥 선물로 줬다고 하면 모두 기절하겠지?’

대략 한 시간 후 오한결과 최하늘이 앉은 자리를 향해 두 명의 여성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좀 전에 연락드린 크리스티 지부장 소피아입니다.”

소피아는 최하늘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오한결을 알아보고 그를 향해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능숙하게 소피아의 손을 잡은 오한결이 대답했다.

“이렇게 절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크리스티라면 언제나 환영이죠.”

회귀 전 오한결이 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하자, 세계적인 부호들과 미술품 애호가들은 오한결의 작품을 손에 넣으려고 엄청난 공을 들였다. 그때도 지금처럼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오한결에게 다가와 거래를 제안했으며 모두 깔끔한 업무처리로 만족했던 기억이 있었다.

특히 크리스티는 경매사가 재량과 권위를 가지는 전통적 거래 방식을 고집했다. 그때 만났던 최고의 경매자는 오한결의 작품의 판매가를 두세 배 이상 더 부풀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상당한 재력을 보유한 오한결에겐 작품 거래 가격이 문제가 아니었다. 미술에 대한 애정과 작품의 가치를 볼 수 있는 사람에게 작품이 팔리길 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더비와 크리스티 모두 그 점에선 오한결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엔 오한결이 그림을 판다면 그 점을 눈여겨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소피아의 소개가 끝나자 로봇처럼 뻣뻣한 자세로 눈에 총명함이 번쩍이는 여성이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소개를 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에밀리입니다.”

오천 대 일을 뚫고 입사한 천재 소녀를 바라보는 소피아의 눈에는 자랑스러움이 드러났다. 그녀는 에밀리를 쳐다만 보는 것만으로 너무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과연 에밀리는 어떻게 오늘 오한결을 구워삶을까. 호호.’

이미 에밀리는 오한결에 대한 분석을 끝내고 5백 페이지가 넘는 보고서를 크리스티에 제출했다. 그녀의 결론은 간단했다. 오한결 뒤에 배후가 있다. 그는 바로 문체부 이상민 장관!

소피아 지부장이 솔직하게 말했다.

“아쉽게도 소더비가 오한결 작가님께 연락을 먼저 취하고 심지어 며칠 전에 한국에 방문해 문화재단과 만남을 가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크리스티는 오한결 작가님이 공모전에 당선되는 순간부터 쭈욱 지켜봐 왔습니다. 단지 타이밍이 소더비보다 늦었을 뿐, 그들보다 훨씬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오한결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누가 먼저 연락했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요. 중요한 건 둘 중 어디가 제 작품의 가치를 높여 주는 지겠죠?”

소피아와 천재 신인 에밀리는 순간 짧은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들의 전략은 오한결에게 은근한 압력을 가하는 것이었다. 결국 크리스티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그 은밀한 압력 말이다.

크리스티는 오한결을 잘 알고 있고 그 배후까지도 알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겨야 한다.

에밀리가 오한결을 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는 오한결 작가님과 더불어 한국의 문체부 이상민 장관에게도 상당히 관심이 많습니다. 아마도 작가님도 그분을 매우 존경하고 있는 듯 싶은데요. 세 번째 그림도 넘겨주시고 말입니다.”

오한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세 번째 그림을 넘긴 걸 어찌 아셨나요?”

당황하는 오한결의 표정을 보며 에밀 리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호호. 장관님의 뜻을 중시하시는 분이시잖아요. 오한결 작가님은.”

“?”

에밀리는 자신의 예측대로 이상민 장관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킨 오한결이 무척 당황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딱 걸렸어! 얼굴에 너무 티가 나는데!’

소피아는 첫 만남부터 에밀리가 오한결을 길들이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몰아세우면 부작용일 일어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에밀리, 오늘은 간단하게 인사하는 자리예요. 작가님을 혼란스럽게 하지 마세요.”

에밀리가 슬쩍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오한결 작가님께서 크리스티와 친구가 될 이유는 아주 많습니다. 이상민 장관님과 우리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거든요.”

크리스티는 오한결이 꼼짝 못 하는 이상민 장관과 친분이 있으니, 앞으로 크리스티의 말을 잘 들었으면 한다는 은근한 협박을 던졌다.

그렇게 오한결에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마구 던진 두 사람은 오후에 일정이 있다면서 짙은 향수냄새만 남긴 채 VIP라운지에서 사라졌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최하늘이 물었다.

“저는 크리스티 직원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모르는 뭔가가 있나요?”

오한결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도 모르겠는데요. 근데 왜 자꾸 이상민 장관님을 거론하는 거죠?”

“그게 가장 의문이에요. 좀 생뚱맞지 않나요?”

“혹시 데이비드 오 교수님과 헷갈린 게 아닐까요?”

오한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착각했을 수도 있겠네요. 두 사람이 은근 닮았잖아요. 하하.”

* * *

오한결과 최하늘이 맨해튼 서남부에 위치한 휘트니 미술관 앞에 도착하자, 미술관장 알베르토가 오한결을 알아보고 다가왔다.

“와우, 이게 누구신가요. 오한결 작가님 아닙니까? 환영합니다.”

오늘 휘트니 미술관 방문은 오한결이 뉴욕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알베르토 미술관장이 직접 명일문화 재단에 전화해 초청을 해서 만남이 이뤄진 것이었다.

평소에도 한국 예술가에게 호기심을 보이던 알베르토는 오한결의 작품에 무척 매료되어 그를 보려고 한국을 방문할 계획까지 세웠다고 했다.

인사를 나눈 알베르토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데이비드는 안 왔나요?”

최하늘이 준비한 듯 바로 대답했다.

“오늘 개인일정이 있으셔서요. 안 그래도 데이비드 오 교수님께서 오늘 저녁에 알베르토 관장님을 찾아뵙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따가 따로 전화를 드릴 것 같습니다.”

구겨졌던 인상이 활짝 펴지며 알베르토가 말했다.

“와우! 매우 반가운 소식이군요. 휘트니 미술관의 대표 작가를 10년 만에 보게 되는 군요. 매우 기대됩니다.”

오한결이 처음 듣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했다.

“데이비드 오 교수님이 휘트니 미술관을 대표한다고요?”

8층에 이르는 높은 건물을 자랑하는 휘트니 미술관. 미국의 근현대 회화와 건축, 디자인 조각, 사진 등 수많은 작품을 전시한 뉴욕을 대표하는 미술관이다.

다른 미술관과 다르게 이곳은 주로 근현대 미국 미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데이비드 오 교수가 미국에서 작가 활동을 한 건 알고 있었지만, 동양 작가를 대표로 내세웠다는 얘기를 들어보지를 못했다.

오한결의 혼란스러움을 눈치챈 알베르토가 넌지시 말했다.

“이곳 8층에 특별 프로젝트 전시가 있습니다. 그곳에 데이비드 오 교수의 작품이 있어요. 그가 10년 전에 만든 작품입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그 작품은 휘트니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 됐어요. 지금 데이비드 오 교수가 세계적인 작가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하고요.”

알베르토의 설명을 들은 오한결은 이번 일정으로 데이비드 오 교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예술가는 예술로 자신을 말하는 법이니까.

‘데이비드 오 교수를 상징하는 예술은 과연 어떤 걸까?’

무려 10년 전 작품이라면 그가 한창 치열한 삶과 예술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시기이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출했던 때이지 않았을까?

미술관 내부는 상당히 넓고 세련돼 보였다. 최근 지은 건물답게 모든 게 모던함을 내뿜고 있었다.

알베르토가 직접 수많은 회화와 조각품을 소개하며 오한결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탈리어가 섞인 그의 영어를 이해하기 힘든 최하늘은 종종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그림을 바라봤다. 하지만 알베르토의 설명 없이도 그림을 이해하는데 그렇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건물에 테라스가 있어서 나가봤더니 미술관 앞에 유유히 흐르는 허드슨강과 저 멀리 뉴저지의 풍경이 그림 같이 펼쳐져 있었다. 모두 잠시 커피를 마시며 쉬고 있는데, 입이 근질근질한 알베르토는 일행을 닦달해 작품 관람을 이어갔다.

8층에 이르는 건물 높이 때문에 일행은 엘리베이터를 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엘리베이터 내부조차 푸른 조명으로 아주 멋지게 디자인해 놨다.

드디어 8층 특별 전시장 앞에 이르자, 흥분한 알베르토가 모국어인 이탈리어를 섞어가며 말을 이었다.

“이 전시실에 들어서면 중앙에 데이비드 오의 작품이 보일 겁니다. 모두 놀랄 준비를 하고 저를 따라오세요!”

한껏 기대를 품은 오한결과 최하늘은 천천히 알베르토를 따라 전시실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들은 거대한 스크린에 작품이 상영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게 데이비드 오 교수의 작품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이게 데이비드 오 교수 작품이라고요?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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