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28화 (128/202)

제128화 세계경제포럼

신태진 회장과 양승호 비서가 스위스 다보스에 도착했다.

매년 다보스에서 세계경제포럼이 열리는데, 신태진 회장은 10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기업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생각에 이곳에 와서 기업인들과 최신 과학기술 동향과 언론인들을 만나 세계적인 흐름을 항상 배워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포럼이 열리는 날에는 수많은 다국적 기업인들로 행사장이 북적였다.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그들은 편안한 복장으로 마치 동창회에 온 것같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서로 인사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신 회장님.”

“이야, 신 회장님은 늘 인기가 좋으시군요.”

사람들의 넉살 좋은 인사에 신태진 회장도 기분 좋게 웃었다.

“매년 이때야 만날 수 있으니 다들 너무 반갑구려. 그동안 잘 지내셨소?”

신태진 회장은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기업인으로 통했다.

최근 한국의 아이돌 그룹이 세계 음악 시장을 석권하고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플랫폼 기업들이 세계 경제를 흔들고 있었다. 그 기적 같은 일들의 비결을 알고 싶어 하는 각국의 기업인들은 ‘문화’와 ‘신생 기업’에 적극 투자하는 신태진 회장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

그들의 목적을 이해한 신태진 회장은 기업인들과 한 명 한 명 악수를 나누며 그들이 갖는 한국에 대한 호기심에 최선을 다해 응답해줬다.

여러 기업인에게 둘러싸였던 신태진 회장이 이제야 여유를 찾게 되자, 잠시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이동해 휴식을 취했다.

양승호 비서가 따스한 물 한잔을 건네며 말했다.

“회장님,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을 다 상대할 수는 없어요.”

물을 마신 회장이 잠시 숨을 돌리고 대답했다.

“한국에 관심이 많아서 나를 찾은 사람들인데, 어찌 외면할 수가 있나. 내가 본의 아니게 한국 기업과 문화를 대표하는 사람이 됐거늘.”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은근히 엿듣고 있던 사람을 발견한 양승호 비서가 소리쳤다.

“저기! 누구시죠? 여긴 관계자만 들어올 수 있는데요!”

날카로운 양승호 비서의 외침에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청년이 난처한 표정으로 신태진 회장 앞으로 다가왔다.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신태진 회장님을 찾고 있었거든요. 일부러 얘기를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닙니다.”

신태진 회장이 무척 자유로운 청년의 모습을 바라보며 분명 누군가의 심부름으로 자신을 찾으러 왔다고 생각했다.

“누가 나를 찾나요?”

그 순간, 양승호 비서는 그 청년의 얼굴을 알아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 유명한 ‘페이스 픽쳐스’ CEO 아닌가? 최근 오 년 만에 플랫폼 사업의 세계 정상을 찍은 그 미국 명문대 학생 출신의 청년 사업가.

‘막상 보니까 너무 신입직원 같은데? 생각보다 엄청 어리네.’

양승호 비서가 귓속말로 회장에게 말했다.

“페이스 픽처스 CEO, 로건입니다.”

이제야 로건을 알아본 신태진 회장이 무거운 몸을 일으킨 뒤 악수를 청했다.

“이런, 내가 무례를 범했군요. 꼭 만나뵙고 싶었습니다. 로건.”

“아닙니다. 제가 불쑥 찾아본 게 문제죠.”

오해를 푼 두 사람은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과 최근 한국의 플랫폼 시장의 성장과 미래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하지만 로건이 신태진 회장을 찾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신태진 회장이 오한결 작가를 후원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로건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한결에 대한 호기심을 멈출 수 없었다. 어떻게 길거리에서 짧은 시간에 그린 그림이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그 이유는 뭘까? 고민하고 또 고민해도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가 소위 말하는 천재 작가라서 그런 걸까?

‘근데 뉴욕에도 천재 소리를 듣는 작가들은 널리고 널렸다.’

오한결과 가까워지고 싶지만 먼저 연락하지 않는 오한결에게 쪼르르 달려가 만나 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도 없으니까.

조금은 우회적인 방법으로 오한결에게 접근하기로 로건은 결심했다.

한국이 낳은 공룡기업이자 세계가 인정한 다국적 기업인 명일그룹 회장을 직접 대면하기로 했던 것이다.

한참을 얘기를 나누던 신태진 회장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이렇게 국제 정세와 금융 문제에 관심이 많으신 분인데, 그동안 포럼에서 한 번도 못 봤을까요?”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제가 좀 바빠서 다른 직원을 보냈거든요. 포럼에 참석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솔직히 말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 로건이 목에 힘을 주고 말을 이었다.

“사실 오한결 작가 때문에 왔습니다. 평소 신태진 회장님과 가깝다고 들었거든요.”

불현듯 오한결의 이름이 로건의 입에서 불쑥 튀어나오자, 신태진 회장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이야.’

오한결의 영향력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욱 빠르게 퍼지고 있다는 걸 확인한 신태진 회장은 오한결의 비범한 능력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결국 오한결 작가 때문이었군요. 그럼 솔직하게 말씀하시죠.”

로건은 신태진 회장에게 사과를 한 후 뉴욕에서 오한결과 있었던 일에 대해 소상히 설명했다. 그리고는 눈을 껌뻑이며 회장의 현명한 대답을 기다렸다.

잠시 고민하던 회장이 입을 열었다.

“오한결 작가와 첫 만남이 기억납니다. 저도 전화를 여러 번 했지만 아무리 해도 받지 않더군요.”

역시 뭔가가 있다고 직감한 로건이 대답했다.

“아하! 오한결 작가가 성격적으로 전화를 쑥스러워하나 보죠?”

“아뇨, 모르는 번호는 안 받습니다.”

“…….”

“그래서 직접 찾아갔죠.”

신태진 회장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화도 잘 안 받는 오한결 작가에게 먼저 전화를 하라고 하면 하겠습니까? 직접 찾아가세요. 그리고 진심으로 부탁하세요. 로건이 뭘 원하는지.”

아직까지 자존심이 남은 로건이 반문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솔직히 이 상황을 저 자신도 이해하기 힘듭니다.”

“오한결 작가니까요. 그거 하나면 이유는 충분하지 않나요?”

“!!”

* * *

명일문화재단 이사장실.

이나영 팀장이 흥분하며 이사장에게 업무 보고를 하고 있다.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사전에 픽스한 일정을 이렇게 하나도 지키지 않으면 대외적으로 문화재단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라도 문화재단의 생각을 오한결 작가에게 전달하면 어떨까요?”

조용히 보고를 듣던 신수진 이사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왜 문제라는 거죠? 오한결 작가가 여유롭고 유동적인 스케줄을 요청했고 저는 그걸 허락한 거로 아는데요.”

“그건 맞지만, 그래도 하나도 안 지킨 건 너무 한 게 아닐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뉴욕에 강철 지부장이 있잖아요. 참! 강철 지부장과 이나영 팀장은 입사 동기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이사장님.”

“그럼 그에게 맡겨주세요. 우리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만 하면 됩니다.”

“만약이요?”

흥분과 기대감 가득한 표정을 짓던 신수진 이사장이 대답했다.

“분명, 이번에도 오한결 작가가 프랑스에서처럼 커다란 사고를 칠 거 같거든요.”

“아……. 그때도 파리 보자르 교수들을 오리엔탈리즘 논쟁으로 혼쭐냈었죠.”

“팀장님, 기대되지 않습니까? 호호호.”

억지로 미소짓던 이나영 팀장에게 신수진 이사장이 말을 이어서 했다.

“팀장님이 무슨 걱정하는지 다 압니다. 하지만 정해진 틀에서 움직이면 새로운 기회는 없는 법이에요. 오한결 작가에게 어떤 틀을 강요하지 맙시다.”

이나영 팀장이 보고를 마치자마자 신수진 이사장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강철 지부장의 전화네요.”

이나영 팀장이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를 비키자, 신수진 이사장이 전화를 받았다.

“강철 지부장님, 잘 지내시죠?”

[이사장님, 늦게 전화드려서 죄송합니다. 오한결 작가와 함께 있으니 흥미로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정신이 없었네요.]

“호호호. 부럽네요. 지부장님. 들어보니 마이크 폴과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고요.”

[깐깐하기로 소문난 그가 오한결에게 만큼은 친절하더군요. 워낙 실력이 출중해서 어딜 가든 오한결 작가는 환영받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기분 좋게 일하고 있습니다.]

“잘 됐군요. 내부적으로 몇 가지 우려했던 점이 있었지만 강철 지부장님이 이렇게 좋아하는 거로 봐서는 문제가 전혀 없어 보이는군요. 호호.”

[저기 그게…… 사실 보고 드려야 할 게 있습니다, 이사장님.]

뜬금없이 강철 지부장이 목소리를 깔자, 뭔가를 직감한 신수진 이사장이 허리를 곧추세우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문제가 생긴 건가요? 어서 말씀해보세요.”

[제가 알기론 문화재단이 소더비와 물밑 접촉을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나요?]

“그렇게 비밀스러운 건 아니고요. 소더비가 적극적으로 오한결 작가 그림을 원하고 있어서 몇 가지 협상을 벌이고 있죠.”

[아……. 그럼 소더비와 일을 할 가능성이 크겠네요.]

“그렇죠. 지금까지 상황으로 봐선.”

[사실 크리스티가 뉴욕 지부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이사장님도 아시다시피 크리스티가 뉴욕 지부를 갖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옆 동네라, 어제 저희를 찾아왔습니다.]

“오호라, 무슨 제안을 하던가요?”

[오한결 작가와 직접 만나서 얘기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제가 미팅 자리를 마련해도 될까요?]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오한결 작가의 작품을 두고 경쟁을 벌인다?

꿈에서나 가능한 일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에 신수진 이사장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비록 소더비가 먼저 연락을 줬지만, 우리로선 최상의 조건을 제시하는 곳과 거래를 해야겠죠. 크리스티에 전해주세요.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고. 그리고 오한결 작가와 만남을 주선해주세요. 직접 작가를 보면 그들도 더욱 욕심이 날 겁니다.”

[네, 이사장님. 저도 무척 기대되네요.]

* * *

재즈클럽에서 맥주를 마신 오한결이 살짝 알딸딸한 기분으로 호텔로 돌아왔다. 옷도 벗지 않은 채 침대에 발라당 누운 그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미리 연락을 했어야 했는데, 친구들이 많이 서운했겠는걸.’

오한결은 길게 하품을 하며 단체 대화방에 접속해 문자를 보냈다.

「오한결: 다들 잘 지내지? 나도 뉴욕 생활 재밌게 하고 있어.」

「노을: 와! 오한결 작가님이다. 살아 계셨군요.」

「오한결: 그게 무슨?」

「최무열: 3일 만에 연락을 주다니. 그동안 우리가 단체방에 얼마나 많은 안부 문자를 보냈는데. 저는 잠시 삐져있겠습니다.」

「서정익: 오한결 작가님. 뉴욕 출장은 행복하신지요. 저희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한결: 미안, 내가 좀 바빴어. 담부턴 신경 쓸게…….」

「노을: 호호호. 농담이에요. 작가님 뉴욕은 어때요? 어디 어디 가봤어요? 영화에서 엄청 멋지게 나오던데. 똑같아요?」

「최무열: 아, 누나! 인내력이 바닥이네. 하하. 한결이 형! 뉴욕 얘기 좀 해줘요.」

「서정익: 저는 세 번 정도 뉴욕에 가봤습니다.」

「오한결: 서정익 작가는 강철 지부장님 알겠네?」

「서정익: 네.」

「오한결: 뉴욕은 멋진 곳이긴 해. 굉장히 복잡하지만 자유로움이 느껴져. 우리 같은 예술가들에게 천국이지. 언제 어디서 무슨 재미난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곳이잖아? 꿈을 위해 모인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분위기도 무시할 수 없지.」

「최무열: 어디 어디 가봤어요?」

「오한결: 아직 많이 못 가봤어. 자유의 여신상 보고 타임스퀘어도 좀 구경하고. 아, 여기에 분위기 좋은 재즈클럽이 있는데, 나중에 다 같이 와봤으면 좋겠어. 뉴욕대 앞에 있는 거라 분위기도 상당히 좋아.」

「노을: 아, 당장 떠날까. 뉴욕으로.」

「최무열: 그럴까? 고고?」

「서정익: 돈은 있습니까?」

「노을: …….」

「최무열: …….」

「오한결: ……내가 보태줄까?」

「노을: 아뇨, 제 힘으로 가보고 싶어요. 그래야 진짜 멋진 여행이 될 거 같거든요.」

「최무열: 그건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서정익: 전 올해 안으로 한 번 갔다 오려고요.」

「노을: …….」

「최무열: …….」

「서정익: 왜요?」

「노을: 부러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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