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08화 (108/202)

제108화 감정의 전이

방송을 마친 이상민 장관은 집에 가지 않고 장관실로 향했다.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연신 한숨을 쉬며 자신의 앞날에 대해 고민해 봤지만, 역시나 답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자신을 짓누르는 불안감을 떨쳐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망부석처럼 앉아서 긴긴밤을 지새웠다.

어느새 푸른 새벽이 밝아오고 곧이어 완연한 아침을 맞이했다.

출근한 문한국 보좌관이 장관실 문을 슬쩍 열어보고 놀라 소리쳤다.

“장관님! 설마, 집에 안 들어가셨어요?”

까칠한 피부에 짙은 다크써클이 완연한 이상민 장관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장관님!!”

문한국 보좌관이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내질렀다.

“인터넷 안 보셨어요? 지금 난리도 아니에요!”

“안 볼래. 더는 악플에 마음 다치고 싶지 않아. 내성이 안 생기더라고.”

“그게 아니에요!”

문한국 보좌관도 긴장된 마음에 잠을 설쳤다. 이른 새벽, 저절로 눈이 떠진 그는 습관적으로 인터넷 기사를 확인했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다. 이번 그림도 분명 논쟁이 될 게 뻔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에 눈을 비비고 계속 확인했다. 여론은 오한결 작가 그림에 상당히 우호적이지 않은가? 첫 번째 그림과 이렇게 반응이 다를 수 있나? 더군다나 두 번째 그림 모델인 장관에 대한 엄청난 관심이 쏟아지고 있었다.

문한국 보좌관이 휴대폰으로 기사 검색 후 장관 앞에 보란 듯이 내밀었다.

「<오한결 작가, 한국 예술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뭉크의 절규. 오한결의 손에서 다시 태어나다.>」

「<오한결 예술의 숨은 조력자는 문체부 장관!>」

「<세계적인 예술가 데이비드 오의 선배인 문체부 장관. 그를 주목하다.>」

「<자신의 아픔을 예술을 위해 헌신한 이상민 문체부 장관.>」

「문체부 장관이 아픔이 많았나 보네. 악플 다는 놈들 반성해.」

「나도 울었음. 오한결 작가도 대단하지만 이번엔 장관이 더 멋졌음.」

「난 장관 되게 찌질해 보이던데.」

「오한결 작가 대박! 문체부 장관도 멋졌음.」

「그림 졸라 비쌀 듯. 장관이 갖는 건가?」

보좌관이 절규하는 장관 패러디 이미지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것 보세요, 지금 인터넷에 떠돌고 있어요. 하하. 이것만 봐도 오한결 작가보다 장관님 인기가 더 많다는 걸 알 수 있다고요. 어딜 가나 장관님 얘기밖에 없어요!”

이상민 장관은 밤새 자신을 짓누르던 압박감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오한결의 작품은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 게 분명했다. 사실 장관은 그 논란의 불꽃이 자신에게 튀어 다시금 세상의 비난을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이다.

근데 이건 전혀 다른 이야기 아닌가? 논란의 중심에 서긴 했지만 이런 긍정적 논란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그간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던가?

이건 오한결 작가가 장관에게 준 선물이 분명했다!

창백했던 이상민 장관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갈라졌던 목소리에 힘이 붙고 동태 눈빛이었던 그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이상민 장관이 단호하게 말했다.

“문 보좌관. 내가 욕심이 생겼어!”

“네? 또요?”

시큰둥한 보좌관의 반응에 이상민 장관이 노려보며 말했다.

“나처럼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딨다고!”

“아, 네…….”

“오한결 작가 작품을 내가 가져야겠네. 무슨 수를 써서라도!”

“!!”

문한국 보좌관은 다가올 미래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 * *

오한결 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아 지글지글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오한결이 삼겹살을 뒤집으며 말했다.

“삼겹살 말고, 비싼 거 먹어도 된다니까.”

어머니가 상추를 고르며 대답했다.

“한수가 삼겹살만 찾잖니. 저것 봐라, 환장하고 먹는다. 한수야! 입 찢어져, 쌈이 너무 크잖니!”

입안 가득 쌈을 넣고 오물오물 씹는 동생을 귀엽게 바라보던 아버지가 말했다.

“여보, 그만 잔소리해. 돌도 씹어 먹을 나이잖아. 먹고 싶으면 먹어야지.”

동생이 물을 한잔 마시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맛있어, 하하. 사실 소고기 먹을까 고민했는데, 지난 캠핑 때 너무 많이 먹어서 오늘은 돼지로 골랐음. 모두 오해하는데, 난 돈 때문에 삼겹살 먹는 거 아님. 내 취향은 돈에 좌우되지 않아요. 하하하.”

그런데도 아버지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사업만 망하지 않았어도, 진작 아들들에게 고기를 실컷 먹였을 텐데. 특히 한결이에게 미안하구나. 못난 아버지가 예술을 하는데 도움도 못 주고.”

갑자기 분위기가 축 가라앉아, 동생이 오한결의 눈치를 살살 살폈다. 오한결이 한숨을 푹푹 쉬며 말했다.

“아버지, 왜 미안해해요? 제 예술의 원천은 가족이에요. 전혀 미안해할 필요 없어요.”

오한결의 말에 동생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맞아. 정답!”

그 사이 고기가 노릇노릇 익자 동생이 쌈을 싸서 입안 가득 밀어 넣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동생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

“아버지하고 형 것도 남겨 둬야지. 네가 다 먹으면 어떻게!”

구석에 수북이 쌓인 생삼겹살을 가리키며 동생이 투덜댔다.

“아직 충분하잖아요! 아, 사람들은 알까? 내가 집에서 이렇게 핍박받고 있다는 사실을.”

“뭐래, 이놈이!”

삐진 동생이 말없이 고기를 먹었다. 남들이 한 점 먹을 때 두세 점씩 입에 넣고 거침없이 씹어 댔다. 무언의 시위를 하듯이.

잠시 뒤 아버지가 맥주 한 캔을 비우고 말했다.

“이번 방송을 보면서 너무 슬프더구나. 그림이 너무 우울하기도 했고.”

오한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럴 거예요. 뭉크의 그림이니까요. 그는 평생 죽음의 공포를 견디며 삶을 살았어요. 존재의 허무함을 회화로 표현했던 위대한 예술가였죠.”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한결이가 그런 공포를 느꼈다는 게 마음에 걸리는구나. 오로지 작품을 위해 상상을 한 거니? 연기자들이 연기하듯?”

어머니의 질문에 오한결이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게 가능할까? 오한결은 <절규>를 그릴 때 자신의 진짜 감정을 투여했었다. 그 마음이 가짜일 리가 없었다.

“아뇨.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했어요.”

숨 막히는 정적이 찾아왔다. 그들은 오한결이 표현한 그 감정이 뛰어난 연기에 지나지 않길 바랐었다. 그게 가족의 마음이니까.

긴장한 동생이 물었다.

“방송에서 그랬잖아. 문체부 장관의 감정을 그린 거라고. 그럼 모델의 감정이지 작가의 감정이 아니잖아.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니, 그건 너무 무서운데…….”

아버지와 어머니도 동생의 말에 동의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른 오한결이 그 감정의 주인은 장관이라고 대답해 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오한결도 그들의 주장이 어느 정도 맞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가가 자신도 모르는 감정을 모델에게서 발견할 수는 없지 않은가. 오한결의 무의식 속 내재한 두려움이 모델을 통해 발견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림 속에서 표현된 죽음에 대한 공포도 거기에서 기인한 것일 거다. 오로지 장관의 것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원초적 감정인 것이다.

‘그림을 본 사람 모두 공감할 수 있는 그런 감정 말이다.’

천재적 능력이 생긴 오한결은 어떤 작은 감정이라도 섣불리 흘려보내지 않았다. 다행인 점은, 그런 감정에 매몰되지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는 능력 또한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숱한 감정의 물결이 오한결의 가슴에 새겨지고 그가 원한다면 언제든 꺼내 볼 수 있었다.

“누구나 있는 원초적 감정을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본 것뿐이에요.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버지와 눈빛을 교환한 어머니가 고기 한 점을 오한결 밥 위에 올리고 말했다.

“그게 말이다. 힘들면 상담도 받고 그래라. 내가 알아보니까 요즘 그게 흉도 아니라더라. 그러니까…….”

“네? 심리상담이요?”

답답한지 아버지가 솔직하게 말했다.

“어느 부모가 아들의 그런 우울한 그림을 보고 가만있겠어? 다 이해한다. 그동안 힘든 일이 많았을 거다. 그림을 보는 순간 나는 이렇게 해석했어. 우리 아들이 도움을 청하고 있구나!”

생각지도 못한 가족의 걱정에 오한결이 무척 당황했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가족의 시선에선 그런 그림을 그린 아들의 심리를 걱정할 수밖에 없겠구나.

한편으론 부모님의 걱정이 틀린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 정확히 말하자면 이상민 장관의 마음을 읽는 순간, 오한결은 진심으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꼈다. 그 감정은 분명 오한결 본인의 감정이기도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제 안에 숨겨진 그 공포를 작품에 모두 쏟아 냈어요. 이제 한동안 그 감정은 캔버스 위에 머물고 있을 거예요. 아마도, 제 진짜 능력은 그런 감정의 전이일지도 모르겠네요.”

난해한 오한결의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 동생이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음, 우울증 맞네. 치료 좀 받아. 형!”

“뭐야!! 이제껏 설명했잖아.”

“그래, 그러니까. 한 번 받아 봐.”

갑자기 훅 느껴지는 동생의 진심에 오한결은 당혹스러우면서도 무척 기쁜 마음이 들었다. 오랜만에 느껴본 동생의 진심이 싫지는 않았다.

“그래! 생각해볼게!”

원하는 대답을 들은 가족은 그제야 한결 밝아진 표정을 지었다.

* * *

“우하하. 제군들 이것 좀 보게나!”

국장이 시청률이 표시된 종이를 김명호 피디와 김 작가에게 나눠주며 말했다.

“우와! 60%가 넘었네요. 이게 말이 돼요?”

“여론도 엄청 좋아. 첫 번째 작품 때 기억나? 방송국 앞에서 시위까지 했잖아. 이젠 누구나 오한결 작가를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김 작가가 시청률이 인쇄된 용지를 소중하게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 하와이 포상 휴가가 눈앞에 아른거리네요. 가만있어 보자, 거긴 날씨가 더우니까 여름옷으로 준비해야겠구나. 호호호.”

김명호 피디와 김 작가가 하와이 여행지를 폭풍 검색하고 있는데, 국장이 무거운 말투로 말했다.

“다른 소식도 있어. 위에서 정규 편성 얘기가 나오고 있거든.”

놀란 김명호 피디가 두 눈을 크게 뜨고 단호하게 말했다.

“안 돼요! 절대로!”

흥분한 김 작가도 말을 보탰다.

“겨우 두 번 방송했을 뿐인데 수명이 십 년은 줄어든 것 같아요. 오한결 작가가 언제 사고 칠지 몰라 심장이 조여 오는데, 그걸 계속 하라고요? 저는 그 긴장감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아요. 이건 산재 수준의 스트레스에요!”

“맞아요. 국장님. 마지막 한 작품만 하고 완전히 손 떼겠습니다.”

국장은 두 사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역대 시청률에 기뻐하던 이사들의 얼굴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위에서 까라면 까야지. 우리가 별수 있나? 그리고 김명호 피디, 자네가 오한결 작가를 데리고 왔잖아. 그럼 끝까지 책임져야지!”

월급쟁이의 비애라면 이런 걸까? 김명호 피디는 상관의 지시에 어쩔 수 없이 성질을 죽이고 대답했다.

“아, 그게……. 노력해보겠습니다.”

때마침 김 작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를 마친 김 작가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정말 어이없네.”

국장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 김 작가?”

“문체부 장관실 보좌관이 전화했대요, 황당한 얘기를 하네요.”

“그림도 잘 나왔고, 여론도 좋은데, 뭐가 불만인 거지?”

“아, 그런 게 아니고요. 그림을 갖고 싶대요. 장관이 모델이니까 소유권이 있는 거 아니냐고 하면서요.”

김명호 피디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오한결 작가 작품인데 그걸 우리한테 달라고 하면 어떡해? 그리고 모델이 무슨 소유권을 주장하지? 본인이 돈을 주고 의뢰한 건가?”

“그래서 오한결 작가한테 얘기해 보라고 했죠. 보나 마나 거절당할 거예요. 생각할수록 열 받네. 거저먹으려는 심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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