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원초적 감정
이상민 장관이 문한국 보좌관의 안내를 받으며 방송국에 들어왔다. 그는 스튜디오 입구에서 서성이는 담당 피디를 발견하고는 씨익 웃으며 말을 건넸다.
“수고가 많습니다. 피디님.”
분주하게 생방송 준비를 하던 김명호 피디가 이상민 장관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혼자 중얼거렸다.
‘장관이 여기에 왜 온 거지……?’
수정된 큐시트를 들고 담당 피디를 찾은 김 작가도 이상민 장관을 보자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오한결 작가님께 들었어요. 오늘 모델이시라고…….”
김명호 피디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모델이라니?”
“저도 방금 알았어요. 오한결 작가님이 갑자기 통보했거든요. 이번에는 모델을 섭외했다고 하시면서, 깜짝 놀랄만한 인물이라고 언질을 주셨어요. 그게 장관님일지 상상을 못 했네요.”
김명호 피디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또 뭔가를 시도하는구나. 이번엔 무난하게 갈 줄 알았는데!! 아주 심장이 쫄깃해 죽겠네. 정말!’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자 문한국 보좌관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우리 장관님 인물이 워낙 훤칠하셔서, 오한결 작가가 욕심을 낸 것 같습니다. 하하하.”
일개 방송국 피디가 무슨 힘이 있는가. 현직 장관이 나타났다면 당연히 비위를 맞추는 수밖에. 비즈니스용 미소를 장착한 김명호 피디가 보좌관 말에 응수했다.
“장관님 실물이 훨씬 멋지시네요. 최근 언론에 나온 사진도 뭐 훌륭했지만…….”
온갖 악플이 달렸던 최근 기사가 생각난 이상민 장관이 얼른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오한결 작가는 아직인가요?”
“그게 장관님이 너무 일찍 오셔서…….”
이상민 장관이 당황하자, 스케줄 관리를 맡은 문한국 보좌관이 허둥지둥 변명했다.
“방송은 리허설이 있어서 일찍 오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분위기를 눈치챈 김명호 피디가 문한국 보좌관을 도와줬다.
“아……. 하하, 그렇죠.”
김 작가에게 문자로 전후 사정을 들은 국장이 바람처럼 달려와 이상민 장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이구! 장관님. 이렇게 직접 방송국을 찾아주시고 영광입니다.”
국장의 명함을 받은 이상민 장관이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수고가 많습니다. 국장님.”
“이쪽으로 오시지요. 제가 스튜디오로 직접 안내하겠습니다. 선배님.”
“선배님? 혹시 S대 출신인가요?”
“아이구! 요즘 그런 거 말하면 안 되는데, 선배님을 보니까 나도 모르게. 하하.”
갑자기 내적 친밀감이 생긴 두 사람이 흥겹게 스튜디오로 향했다.
* * *
오한결이 최하늘과 함께 방송국 스튜디오로 들어서자, 한쪽 구석에 정장을 입고 반듯하게 앉아 있는 이상민 장관이 보였다.
그의 복장은 고풍스러운 유럽식 스튜디오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오한결이 웃으면서 말을 꺼냈다.
“좀 편하게 입고 오시죠.”
반듯하게 다린 정장과 반짝이는 고가의 시계를 은근히 내비치며 이상민 장관이 말했다.
“전 국민, 아니 전 세계인들이 보는 방송인데 그럴 순 없죠.”
문한국 보좌관이 장관 어깨에 묻은 먼지인지, 비듬인지 정체모를 흰 가루를 털어내며 말했다.
“오늘 새벽에 장관님이 청담동 샵에 가서 방송 메이크업 받고 오셨어요. 오한결 작가님께서 잘 그려 주리라 믿겠습니다.”
최하늘은 장관과 보좌관의 기이한 행동에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선거 포스터를 제작하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저 두 사람은 뭐하는 걸까?
카메라 감독의 지시로 오한결이 이젤 앞에 앉자, 김 작가가 대본을 건네며 말했다.
“작가님, 오늘도 마음대로 멘트하실 거죠?”
대본을 넘겨보며 오한결이 대답했다.
“아마도 그러지 않을까요? 하하.”
김 작가가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도 어제 밤을 새워서 썼어요. 읽어보시고, 이따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한 방송 스태프가 우렁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생방송 30분 전입니다!”
모두 분주하게 방송 준비를 하고 있는 와중에 데이비드 오 교수와 신수진 이사장이 나란히 스튜디오로 들어왔다.
데이비드 오 교수가 여러 대의 카메라에 둘러싸인 오한결을 바라보며 말했다.
“방송으로 보는 것도 멋지지만, 이렇게 직접 보면 또 느낌이 다를 겁니다.”
신수진 이사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오한결 작가의 작업 과정을 직접 본다는 건 영광이기도 하고요.”
두 사람이 오한결을 향한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돌린 데이비드 오 교수가 스튜디오 구석에 쭈그려 앉은 이상민 장관을 발견하고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저 사람이 여기 왜 있는 거지!”
데이비드 오 교수가 흥분하자, 신수진 이사장이 그의 시선을 따라 스튜디오를 살폈다.
‘어, 정말이네!’
문체부 장관이 무척 긴장한 얼굴로 오한결 작가 옆에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저게 무슨 시츄에이션이죠?”
데이비드 오 교수가 부들부들 어깨를 떨며 이를 갈았다.
“내가 오한결 작가를 이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결국 장관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이런 짓을 벌였군요.”
하지만 신수진 이사장은 그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누가 봐도 장관은 지금 오한결의 관심을 바라는 강아지 같은 모습 아닌가? 그에게 꼬리가 있었다면 마구 흔들어댔을 것이다.
신수진 이사장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제가 볼 땐 오한결 작가가 재미난 생각을 한 것 같은데요?”
“그게 무슨?”
신수진 이사장이 데이비드 오 교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한결 작가가 평범한 그림을 그리겠어요?”
“……아니겠죠.”
신수진 이사장이 고개를 돌려 무척 긴장한 이상민 장관을 바라봤다.
“오늘 그림도 범상치 않을 겁니다. 오한결 작가의 예술은 가끔 아름다움과 거리를 두니까요.”
스태프의 우렁찬 목소리가 스튜디오에 쩌렁쩌렁 울렸다.
“생방송 15분 전입니다!”
국장이 오한결과 이상민 장관을 번갈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한결 작가가 대물을 물어왔어. 문체부 장관이라니. 시청률이 치솟는 소리가 벌써부터 들리지 않나?”
생방송 시간이 가까워지자 김명호 피디가 온몸을 덜덜 떨며 긴장한 티를 팍팍 냈다.
“제발! 지난번 같은 일은 겪고 싶지 않아요. 태어나서 욕이란 욕은 그때 다 먹어봤다니까요.”
“이런, 방송국 피디가 그렇게 유약해서 쓰겠나?”
김명호 피디가 국장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흘렸다. 국장이야말로, 지난번 악화된 여론에 쌍욕을 해대며 자신을 들들 볶았던 사람 아닌가! 그걸 벌써 잊었다고?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어느덧 방송 준비가 모두 마무리 됐다.
“모두 스탠바이!”
드디어 두 번째 생방송이 시작됐다.
[ON AIR] 불이 들어오고 모니터 화면에 오한결의 얼굴이 잡혔다.
오한결이 카메라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오한결입니다. 지난번 첫 번째 작품을 선보인 후 한국 사회에 크고 작은 파문이 일었는데요. 아마도 저의 작품이 일부 언론의 예술 철학과 달랐나 봅니다. 사실,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게 바로 그 점이었습니다. 우리는 이제 예술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김 작가가 오한결의 유려한 대사를 들으며 피식 웃었다.
‘역시, 대본대로 안 하는군.’
하지만 뭐, 상관없었다. 오한결의 대사는 자신의 대본보다 훨씬 훌륭해 보였으니까. 김 작가가 은근슬쩍 손에 든 대본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오늘은 좀 더 색다른 도전을 해보려고 합니다. 대상을 바라보고 그 속마음을 예측해 그림을 그려볼 겁니다. 그래서 특별한 게스트를 모셨는데요. 최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던 이상민 장관님이 나와 주셨습니다.”
카메라가 이상민 장관 얼굴을 클로즈업하자, 그가 수많은 연습으로 만든 정치적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바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오한결이 순간 이상민 장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이상민 장관이 오한결의 강렬한 눈빛을 대면하자, 미친 듯이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저것이 바로 오한결 작가의 비밀이었군! 세상 순진한 표정을 짓다가도 우주의 만물을 꿰뚫어 보듯 강렬하게 대상을 해부해 버리지 않는가.’
그 기쁨도 잠시, 장관은 오한결이 자신의 모든 감정을 샅샅이 훑고 있다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본인도 허락되지 않은 사적인 영역이 침범당한 느낌이랄까?
당황한 장관의 모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치밀한 관찰을 끝낸 오한결이 캔버스에 그림을 거침없이 그리기 시작했다.
오한결은 어린아이의 낙서처럼 인물을 무척 단순하게 그려나갔다.
모델의 길쭉한 손은 자신의 둥근 얼굴을 감쌌고 유약해 보이는 몸은 출렁이는 촛불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잠시 뒤, 모델의 표정이 그려지는 순간 모두가 경악해 입을 떡 벌렸다.
크게 뜬 두 눈에 어른거리는 두려움과 공포.
힘껏 벌린 입이 토해내는 죽음의 기운.
방송 스태프들이 그림을 보며 웅성거리자, 불안해진 이상민 장관이 보좌관을 바라보며 설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보좌관은 이미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오한결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상민 장관은 당장 박차고 일어나 그림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방송 아닌가? 자칫하다가 더 큰 곤란에 처할 수 있었다.
‘프로처럼 행동하자! 일단 지켜봐야 한다.’
오한결은 주변 분위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림에 집중했다.
공포에 질려 자신의 얼굴을 감싸 쥔 인물 주위로 푸른 기운이 어른거리도록 색을 칠했다. 그리고 그림 상단에 붉은 물감을 칠해 그 그림에서 느껴지는 불안의 강도를 한층 더 했다.
이처럼 그림 속 극적인 색의 대조는 대상이 느끼는 감정을 극대화해 준다.
오한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델에게 느껴지는 감정을 솔직하게 그렸습니다. 이상민 장관님의 마음 안에는 무척 어두운 기운이 가득 찼더라고요. 그의 무의식의 감정은 공포와 절박감, 그리고 죽음에 대한 불길한 감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 본연의 두려움이자, 인류가 공유하고 있는 원초적 감정의 뿌리일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지만, 오한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장관님의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 뭉크의 <절규>가 생각나더라고요. 그것은 장관님의 마음과 가장 닮은 예술 작품일 겁니다.”
겁에 질린 장관의 얼굴을 슬쩍 보고 오한결이 설명을 이어갔다.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 그는 평생 죽음을 생각하고 의식했던 인물입니다. 다섯 살 때 어머니를 폐결핵으로 잃고, 열네 살 때 누이마저 같은 병으로 하늘나라로 보내면서 뭉크 자신도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에 시달리게 됩니다.”
오한결이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뭉크야 말로 죽음을 예술로 승화한 대표적 예술가입니다.”
오한결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봤다. 카메라 감독은 그림 대신 오한결 얼굴을 화면 가득 클로즈업 했다.
“뭉크가 <절규>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친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햇살이 쏟아졌는데, 그때 하늘이 핏빛으로 붉어졌고 나는 우울함을 느꼈다. 친구들은 계속 걸었지만 나는 공포에 떨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강렬하고 무한한 절규가 대자연을 가로질러 가는 것 같았다.’”
그림을 정교하게 마무리한 오한결이 붓을 내려놓고 말했다.
“공포에 질린 모델의 입에서 절규가 들리는 것 같지 않나요? 저는 모델의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저기 불타는 붉은 구름은 절망적 심리상태를 의미하고요. 강렬한 색채와 형태의 왜곡, 율동하는 선은 모델의 불안한 심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뭉크처럼 깊은 좌절에 빠진 이상민 장관을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해봤습니다.”
그렇게 생방송이 끝나고, 진공상태 같은 정적이 스튜디오를 가득 채웠다.
파랗게 질린 이상민 장관은 오한결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짝…… 짝짝!
바로 그때, 한쪽 구석에 서 있던 스태프 한 명이 오한결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러자 숨죽여 눈치를 살피던 스태프들이 여기저기서 우레와 같은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오한결은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숙이자, 이번엔 일제히 모든 스태프가 열렬한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
“역시 오한결 작가님!”
“너무 멋집니다!”
주변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자, 이상민 장관이 은근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오한결 곁으로 다가가 그림과 마주했다.
“!!”
장관은 그림 앞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래! 이 그림은 분명 내 마음을 그렸지만 그 감정이 어찌 나만의 것일까?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근본적 두려움과 공포를 예술적으로 잘 표현한 작품이었다.
장관은 그림의 예술적 가치를 단번에 알아봤다.
그렇다면 장관 자신은 명작의 주인공이 된 게 아닌가?
이건, 분명 엄청난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