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온라인 인터뷰
책상에 앉은 이상민 장관이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문한국 보좌관이 장관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소리쳤다.
“큰일 났어요, 장관님!”
“아이고, 깜짝이야!”
악몽에 시달리던 이상민 장관이 벌떡 깨고 소리를 질렀다. 그의 이마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뭐야! 또 비판 기사가 줄을 잇나?”
“CNN이요!”
“뭐? 이제 CNN에서도 나를 비판한단 말인가?”
문한국 보좌관이 죽상을 하고 있는 이상민 장관을 보며 흠칫 놀랐다. 자신이 너무 말을 잘라 먹었나 싶었다.
“아니요. CNN에서 오한결 작가 단독 인터뷰를 진행한대요. 대담자는 세계적인 예술 평론가 마이크 폴이고요! 어마어마한 이벤트가 될 거예요.”
놀란 이상민 장관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마이크 폴과 오한결 작가 조합이라고? 세상에! 분명 두 사람의 만남은 어떤 식으로든 대단한 이슈를 만들 것이다.
말이 없는 장관을 바라보며 문한국 보좌관이 답답한지 소리를 질렀다.
“감히 짐작해 보자면, 국내 언론도 오한결을 옹호할 것이고 인터넷 댓글도 오한결 작가를 응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거로 바뀔 거예요!”
‘잠시만!’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까 이상민 장관은 문득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뭐야!! 그럼 나는?”
장관의 허망한 표정을 바라보며 문한국 보좌관이 투덜댔다.
“그러게요. 상황을 좀 더 지켜봤으면 좋았을 것을. 해외 언론은 원래 오한결 작가 편이었잖아요. 그리고 국내에도 오한결 작가를 옹호하는 사람이 꽤 되었고요. 사실상 일부 극단적인 비판론자들이 인터넷을 장악해서 그런 거죠.”
‘그걸 왜 이제 말해?’라고 따지려는 순간, 보좌관이 숱하게 충고했던 기억이 떠오른 이상민 장관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장관님! 오한결 작가님을 달래줘야 합니다!”
주섬주섬 겉옷을 챙긴 이상민 장관이 말했다.
“오한결 작가 어딨어? 지금 만나야겠어!”
* * *
아뜰리에 근처 공원에서 오한결이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추운 날씨에 코와 귀가 발갛게 변했지만, 상쾌한 공기와 약간의 쓸쓸한 적막감이 오히려 마음을 차분하게 했다.
지난밤 내린 눈으로 산책로가 빙판길로 변해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오한결이 공원에 있다는 정보를 획득한 이상민 장관이 부랴부랴 공원 입구로 들어섰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공원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장관은 서둘러 오한결의 모습을 찾았다.
다행히 오한결은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홀로 걷고 있었다.
“오한…….”
반가운 마음에 오한결을 부르려던 이상민 장관이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하, 내가 양심이 있지. 이제 와서 오한결 작가한테 무슨 말을 할까?’
그간의 자신의 이기적인 행보를 생각하자 숨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
오한결 작가 덕분에 대중의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고 그간 충분히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국민의 분노를 산 그의 행보에 놀란 장관이 그와 친분을 부정하는 인터뷰를 강행했다.
하지만 오한결이 장관을 원망하거나 비난하는 얘기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입이 무거운 건가, 아니면 너무 충격을 받아서 바로 손절을 한 건지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이상민 장관은 결국 말을 걸지 못하고 몰래 오한결의 뒤를 쫓았다. 큰 나무 뒤에 숨어 보기도 하고 수풀에 매복하다가 넘어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그렇게 대략 30분 정도 흘렀을까, 오한결이 벤치에 털썩 주저앉더니 고개를 돌려 이상민 장관을 바라봤다. 뒤에서 조용히 따르던 장관이 덜컥 놀라 멍한 표정을 지었다.
“장관님도 여기 앉아요. 제가 발이 빨라서 생각보다 많이 걸었을 거예요.”
“아니……. 내가 따라온 줄 어떻게 알았죠?”
오한결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걸 어떻게 몰라요? 거친 호흡으로 겨우겨우 따라오고 있었으면서.”
놀란 것도 잠시,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에 이상민 장관이 오한결 옆에 앉고는 천연덕스럽게 말을 걸었다.
“설마, 오해한 건 아니죠? 작가님?”
“무슨 오해요?”
“음, 그러니까……. 몇몇 언론에서 제가 오한결 작가님과 거리를 둔다는 이상한 헛소리를 하던데, 전혀 사실이 아니거든요. 오늘만 봐도 제가 CNN에 출연한다는 작가님의 소식을 듣고 이렇게 달려왔잖아요. 너무 축하해주고 싶어서요.”
양심에 가책을 느낀 이상민 장관이 표정 관리에 실패하자, 오한결은 장관이 무안하지 않게 웃어 보였다.
‘거짓말도 어쩜 저렇게 어설프게 할까?’
오한결은 잘잘못을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가 보여준 행보는 사실상 자살골이었고 그 역풍을 오로지 혼자 감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오히려 오한결이 장관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위로해줘야 하나 싶었다.
오한결이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역시 장관님밖에 없네요. 고마워요.”
오한결의 반응에 기분이 좋아진 이상민 장관이 흥분하며 말했다.
“제가 뭐 도울 일 없을까요? 추후 기자들이 우리 우정을 확인하려고 몰려들 텐데요. 찐 친분을 증명하면 좋겠죠? 하하…….”
오한결이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두 번째 그림 모델이 되어 주세요!”
“네?! 모델이요!”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 장관을 향해 오한결이 말했다.
“장관님을 그리고 싶어졌어요. 장관님이 제 예술적 영감에 불을 지폈거든요.”
“!!”
이상민 장관에겐 지금 CNN이 문제가 아니었다. 전 세계로 송출되는 오한결 작품의 모델이 되다니. 이제 자신의 인지도는 국내를 넘어 세계를 향하게 될 것이다. UN에서 부르면 어쩌지?
“기꺼이 도와드리죠!”
* * *
CNN 인터뷰는 문화재단 3층 멀티미디어실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문화재단이 인터뷰 장소를 유치하기 위해 초고화질 방송 장비를 들이고 화상 인터뷰에 최적화된 위성통신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다. 이 모든 것은 신수진 이사장의 통 큰 투자였다.
오한결이 문화재단에 들어가자, 최하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작가님, 오셨어요? 사무실 분위기가 좀 어수선하죠?”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을 신경 쓰며 오한결이 대답했다.
“저 때문에 수고가 많으세요. 엄청 바빠 보이네요.”
최하늘이 대답하려는 찰나,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보던 이나영 팀장이 고개를 들고 말했다.
“어머! 작가님 오셨군요. 긴장되시죠?”
오한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이나영 팀장이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처음에 다 그런 거예요. 인터뷰도 많이 하면 늘거든요. 재단 직원들이 옆에 있으니까 마음 편히 하세요. 오늘은 홈그라운드에서 하는 거잖아요. 호호호.”
최하늘이 마이크 폴 이력과 예상 질문지를 오한결에게 건네며 말했다.
“미리 읽어보시면 오늘 도움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이미 오한결의 머릿속에 다 있는 내용이었고 마이크 폴과는 회귀 전 친분이 두터웠기에 이런 자료는 필요 없었지만, 오한결은 최하늘의 노고에 감사함을 표시했다.
자리를 뜨려는데 이나영 팀장이 손을 번쩍 들었다.
“작가님! 통역사 곧 오거든요. 미리 합을 맞춰보면 좋을 거 같아요.”
이미 영어에 자신 있던 오한결이 최하늘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자, 최하늘이 어쩔 수 없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나영 팀장이 매우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실 통역사가 제 친구예요. S대 통번역대학원 수석 졸업에 현재 S대 교수로 재직 중이거든요. 마이크 폴의 완전 찐 팬이라, 이번에 통역사로 오고 싶다고 어찌나 저를 조르던지. 호호. 걘 한 번 뭐에 꽂히면 정신을 못 차린다니까요.”
오한결이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저도 영어에 자신 있어서 굳이 통역사가 필요 없을 듯한데…….”
오한결의 커리어를 잘 알던 이나영 팀장은 그가 영어와 전혀 인연이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래서였을까, 진심으로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작가님! 생활 영어하고 전문 영어는 완전 달라요. 통역사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에요. 원활한 소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엄청 중요한 자리잖아요.”
잠시 고민하던 오한결이 조건을 걸고 말했다.
“그렇게 할게요. 대신 제가 상대방의 질문을 이해 못 하거나, 원활한 대답을 못하면 그때 통역사가 끼어들었으면 해요.”
원어민 인터뷰의 난이도를 잘 알던 이나영 팀장이 확신하며 대답했다.
“네, 좋아요!”
멀티미디어실에 들어가자 고가의 카메라와 오디오 장비들이 벽면 철제 수납장에 반듯하게 진열돼 있었다.
한쪽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는 파란색 조정 화면이 띄어져 있었고 그 앞에는 1인용 고급 소파가 놓여 있었다. 몇 시간 후면 오한결이 이 소파에 앉아 스크린화면 속 마이크 폴과 CNN 주최 온라인 대담을 할 예정이었다.
오한결이 최하늘과 자료를 검토하고 있는데, 매우 차디찬 기운이 두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오셨군요. 작가님!”
오한결이 뒤돌아보니, 붉은 정장을 입은 신수진 이사장이 반듯하게 서 있었다.
최하늘의 열정적인 설명을 살짝 엿들은 신수진 이사장이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최하늘 씨는 일을 참 잘해요. 그렇죠, 작가님?”
오한결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최하늘 씨의 전문성에 매번 감탄하고 있어요.”
오한결의 칭찬에 얼굴이 붉어진 최하늘이 어찌할 바 몰라 두리번대다가 신수진 이사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이사장은 아주 묘한 기류를 감지했다.
‘뭐지, 왜 저렇게 과하게 부끄러워하는 거지? 설마!’
최하늘의 낯선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짓던 신수진 이사장이 업무 이야기를 계속했다.
“마이크 폴을 상대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워낙 소문이 안 좋아서요.”
그 말에 오한결이 웃으며 생각에 잠겼다. 회귀 전 오한결이 알던 마이크 폴은 고집불통으로 유명했고 때론 잘난 체하는 유명 예술가를 몰락시킬 만큼 강력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오한결에겐 항상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마이크 폴이었다. 오한결은 흐뭇하게 웃으며 옛 생각에 빠져들었다.
회귀 전 오한결은 사고로 천재적 능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예술가로 데뷔할 채널이 마땅치 않았다. 그때 마이크 폴이 구세주처럼 나타나 오한결을 작가의 지위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 이후 오한결이 발표하는 모든 작품에 건전한 비평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지향하는 예술관이 비슷했고, 무엇보다 서로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무슨 생각을 하시기에 저렇게 흐뭇한 얼굴이시지?’
생각에 잠긴 오한결을 보던 신수진 이사장과 최하늘이 동시에 생각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한 최하늘이 말을 걸려는 순간, 오한결의 먼저 입을 열었다.
“마이크 폴은 분명 좋은 사람일 것 같습니다. 느낌이 좋아요.”
그 말에 놀란 최하늘과 신수진 이사장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빛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그 악랄하기로 유명한 마이크 폴이?’
‘네, 그런 것 같은데요. 그 마이크 폴이겠죠?’
오한결의 예상치 못한 말에 신수진 이사장이 당황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오한결은 두 사람이 자신을 수상하게 보고 있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다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궁금하네. 지금의 나에게도 우호적일까? 아니면 다른 작가들에게 했던 것처럼 무자비한 비난을 퍼부을까?’
인터뷰 30분 전.
멀티미디어실을 가득 채운 방송 스탭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방송 세팅을 완료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CNN 한국지사 임원들도 문화재단을 찾았다.
EBC도 큰 관심을 보였다. 국장, 김명호 피디, 김 작가도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시간 맞춰 문화재단 멀티미디어실로 들어왔다.
국장의 얼굴에서 불안과 흥분이 교차됐다.
“이 인터뷰가 성공적으로 끝나면 두 번째 방송은 더 대박 날 거야.”
마른침을 꿀꺽 삼킨 김명호 피디가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마이크 폴은 쌍욕도 서슴지 않는다던데. 오한결 작가가 아무리 유명해도 20대 청년 아닙니까, 당해낼 수 있을까요?”
김명호 피디의 말에 동의할 수 없던 김 작가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제 생각은 반대인데요. 저기 앞에 있는 오한결 작가 뒷모습을 보세요. 당당함과 자신감이 묻어나지 않나요? 저는 지금껏 한 번도 오한결 작가가 머뭇거리거나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더군다나 전 국민을 상대로 그림을 그릴 때도 긴장은 전혀 안 했다고요!”
김 작가의 말에 마음의 안식을 얻은 국장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이건 나중에 공지하려고 했는데, 입이 근질거려서 안 되겠군. 추후 그림 방송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 모두 해외로 포상휴가를 가게 될 거야!”
김 작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소리쳤다.
“꺄악!!!! 어디로요?”
“하와이!”
“꺄악!!!”
긴장한 채 스탠바이하고 있던 CNN 엔지니어가 시끄러운 잡음 소리에 이성을 잃고 화를 냈다.
“What are you doing? Please be quite!”
“……쏘리.”
곧이어 대형 스크린에 마이크 폴의 얼굴이 보였다.
“방송 시작합니다. 3, 2, 1. 큐!”
[ON AIR] 불이 번쩍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