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100화 (100/202)

제100화 자업자득

오한결과 최하늘이 EBC 회의실로 들어서자, 김명호 피디가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오한결 작가님! 시청률 관련 소식 들으셨죠? 역대 최고를 찍었습니다. 우리 팀은 축제 분위기예요. 하하.”

그 옆에 앉은 김 작가가 우려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는 살짝 조심스럽긴 해요. 아직도 여론은 부정적이잖아요. 오한결 작가님 작품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오한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한다는 동작을 취했지만, 속으로는 시간이 필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예술이 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 즉 불쾌함을 이용해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이다.

오한결이 김명호 피디 앞에 앉고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피디님이 좋아해 주시니까 힘이 나네요.”

최하늘이 자리에 앉고는 김 작가를 향해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해외 언론에서 호평을 받았잖아요. 곧 한국 언론도 그 진가를 알아봐 줄 거예요. 그러니까 김 작가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김 작가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최하늘도 환하게 웃었다.

김명호 피디가 히죽거리며 오한결 작가를 쳐다봤다.

“그래서 말인데요. N플릭스가 계약을 제안해 왔습니다. 이번 건이 성사되면, 다음 달부터 OTT를 통해 오한결 작가님 작품을 전 세계로 방송할 수 있을 겁니다. EBC에서 두 번째 작품을 방송할 수 없더라도 얼마든지 길이 열렸다는 말씀입니다. 하하.”

김 피디의 말에 오한결이 당황하며 물었다.

“총 3개의 작품이 방송될 거라고 약속하셨잖아요.”

“……제 말은 채널이 바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차라리 N플릭스에서 독점으로 방송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수익적인 부분도 사실 더 이득이고요.”

김 피디 얘기를 듣던 최하늘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처음 약속하고 너무 다르잖아요. 이건 아닌 거 같아요, 피디님.”

오한결은 당황스러운 나머지 말을 쉽게 잇지 못했다. 순수한 마음으로 교육방송에 출연해 그림을 그린 건데. 일종의 재능기부라고 생각했다. 근데 피디는 외주 제작과 동시에 수익 구조까지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N플릭스라고?

오한결에겐 그건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피디 님. 저는 교육방송 아니면 그림 그릴 생각이 없습니다.”

전혀 뜻밖의 말을 들은 김명호 피디가 몹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 전 세계 OTT 시장을 장악한 N플릭스에서 독점 방송을 해주겠다는데……. 설마 N플릭스를 모르나?

“작가님? 이건 기회라고요. 시간을 주시면 N플릭스에 대해 설명해 드릴게요.”

최하늘도 어느 정도 김 피디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그건 오한결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 철학과 전혀 맞지 않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전에 오한결은 그림 방송을 통해 예술 지망생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가? 오한결은 처음부터 수익을 염두 하지 않았다.

최하늘이 고심 끝에 절충안을 제안했다.

“EBC 방송 후 N플릭스 서비스하는 건 어떤가요?”

잠시 말이 없던 김 피디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건 안 돼요.”

울상이 된 김 피디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할게요. 작가님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몇몇 이사분들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어요. 우리도 꽤 노력을 해봤지만,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죠.”

김 피디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오한결이 생각했다. 이제 적극적인 움직임이 필요하겠구나. 상황이 더 악화하는 걸 막아야 한다.

“그 여론 돌리면 되죠. 걱정하지 마세요.”

조용히 얘기를 듣던 김 작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네? 데이비드 오 교수님도 노력했지만, 한국 언론은 꼼짝도 안 하고 있어요. 이건…… 비밀인데요. 아, 말해도 되나……. 보수적인 예술계가 오한결 작가님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언론에 피력하는 것 같아요. 제 친구가 기자라서 소문을 좀 들었거든요.”

오한결은 이 모든 것을 예상한 듯 여유롭게 웃어 보였다. 기존 질서를 깨는 것만큼 심한 저항을 받는 것도 없다. 오한결은 그 견고하고 단단한 벽에 구멍을 하나 냈다고 생각했다. 이제 그것을 허물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제가 CNN에 출연하죠. 해외 언론의 힘을 빌려보는 겁니다.”

“CNN!!”

최하늘, 김명호 피디, 김 작가가 동시에 외쳤다.

흥분한 김명호 피디가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

“CNN에서 직접 작가님을 조명한다면 우리나라 언론도 앞다퉈 보도할 겁니다. 그럼 단번에 지금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어요. 분명 그럴 거예요!”

김 작가는 김 피디의 말에 의구심이 들었다.

“CNN 방송 하나만으로 바뀔까요? 이미 해외 언론에서 관심을 두고 있지만 바뀐 건 없잖아요. 제가 볼 땐 더 센 게 필요해요.”

오한결이 김 작가의 말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래서 하나 더 있습니다.”

모두 숨죽이며 오한결의 입만 바라봤다.

“마이크 폴과 인터뷰를 하려고 합니다.”

최하늘이 깜짝 놀랐다.

“세계적인 미술평론가, 마이크 폴이요?”

오한결은 마이크 폴을 생각하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회귀 전 마이크 폴은 우연히 공원에서 그림을 그리던 오한결을 발견했다. 그리고는 그의 천재적인 실력에 감탄하며 그의 데뷔를 도왔고, 세계적인 작가가 되기까지 물심양면으로 후원했었다.

이번엔 오한결이 먼저 마이크 폴을 찾고 싶었다.

마이크 폴의 위상을 잘 모르던 김명호 피디와 김 작가는 어리둥절했다. 최하늘은 그가 전 세계 예술계를 움직이는 거장이며 그가 작품 앞에서 내쉬는 숨소리 하나만으로도 그 작품의 가치가 달라질 정도라고 설명했다.

기쁨도 잠시, 김명호 피디가 현실적인 고민에 빠졌다.

“다 좋습니다. 근데, 우리는 CNN과 마이크 폴을 섭외할 능력이 안 됩니다.”

오한결이 최하늘을 바라봤다.

“이번 기회에 문화재단이 실력을 보여주세요.”

최하늘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최하늘이 방송국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자, 이나영 팀장이 미간에 깊은 주름을 잡았다.

“오한결 작가님이 그렇게 말했다는 거지?”

“네, 문화재단이 나서주길 원하고 계세요.”

이나영 팀장이 국내외 언론사 리스트 파일을 꼼꼼히 살피고 말했다.

“이런…… 5년 전에 CNN과 연락한 후로 한 번도 연락이 없었어. 그 사이 담당자도 바뀌었을 테고. 이러면 우리도 거의 맨땅에 헤딩하는 꼴이겠는걸. 더군다나 마이크 폴은 더 힘들겠지. 연락처조차도 없잖아.”

미디어 계통에 발이 넓은 이나영 팀장이 낙담하자, 최하늘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어떡하죠. 제가 수소문해서 담당자 메일을 알아볼까요?”

이나영 팀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식으로 접근하면 최소 한 달은 걸릴 거야. 메일을 보낸다고 해도 답장을 준다는 보장이 없거든. 무엇보다 방송이 바로 코앞인데, 그 방법은 안 돼.”

최하늘이 몹시 답답해하며 말했다.

“방법을 찾아보겠지만, 최악의 경우 포기해야 할 수도 있겠군요…….”

이나영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후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소리! 우리에게 비밀 무기가 있잖아. 그거면 돼!”

“그게 뭔데요?”

“신수진 이사장님!”

“!!”

* * *

커피잔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을 바라보며 신수진 이사장이 고민에 빠져있다.

이나영 팀장 보고에 따르면 오한결이 CNN에 출연하여 마이크 폴과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다. CNN과 마이크 폴이라……. 접근하기 까다롭고 섭외하기도 힘든 두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해결해야 한다니. 평소 슬며시 눌러놨던 도전 정신이 다시금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미치도록 해내고 싶다.’

하지만 수많은 고급 인맥이 있는 신수진 이사장도 마이크 폴에 대한 정보는 없었다. 워낙 은둔형 평론가이자 괴짜로 소문난 사람이니까.

휴대폰을 들고 주소록을 검색했다.

‘찾았다. 매튜, 나의 오랜 친구.’

통화 버튼을 누르자 짧은 신호음이 이어지고 굵직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진!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매튜! 너무 늦은 시간에 전화한 건 아닌지 모르겠어. 통화 괜찮아?”

[내 일이 그렇잖아. 나는 24시간 언제든 대기 상태라고. 하하.]

“하긴 CNN 편집국장이라면 그런 삶에 익숙해져 있겠지.”

[맞아. 언제 어디서 충격적인 뉴스가 튀어나올지 알 수가 없으니까.]

재빨리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신수진 이사장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부탁이 있어.”

[오! 뭐든지 말만해! 지난번 내가 신세 진 게 있잖아. 하하.]

“나이스! 매튜! 오한결 작가 알지?”

[오! 내가 오한결 작가를 모를 리가 없잖아. 왜 무슨 이슈가 있나?]

“오한결 작가가 CNN에 출연하고 싶어 해.”

[오마이갓! CNN은 언제든 환영한다고 전해줘!]

매튜가 좋아하자, 신수진 이사장이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한결 작가가 마이크 폴과 대담을 나누고 싶대.”

갑작스럽게 정적이 흐르더니 수화기 너머 매튜의 미세한 숨소리만 들리기 시작했다.

[마이크 폴이라……. 그 망할 노인네가 과연 응해줄까?]

“!!”

[내가 알기론 가족과도 연락을 끊고 은둔한다고 들었어.]

매튜의 자신 없는 말투에 불안해진 신수진 이사장이 물었다.

“그럼, 연락할 방법이 없는 건가?”

[그래도 최측근은 알고 있겠지? 내가 수소문해볼까?]

“그래 줄래? 정말 중요한 일이거든. 부탁할게.”

[알았어. 수진 부탁이라면 무조건 해야지.]

“너무 고마워. 그럼 연락 기다릴게.”

전화를 끊은 신수진 이사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신태진 회장이 결재서류에 사인하는데, 양승호 비서가 노크하고 회장실로 들어왔다.

신태진 회장이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이상민 장관은 어떻게 됐나? 오한결 작가를 깎아내리더니 오히려 역풍을 당하지 않았나? 하하.”

“당분간 외부 활동은 힘들 듯합니다. 친한 기자들을 동원해 언론 분위기를 바꾸려고 한 것 같은데, 아직도 관련 기사 댓글에 이상민 장관의 악플이 가득합니다.”

들고 있던 만년필을 내려놓고 신태진 회장이 물었다.

“그래, 뭐라고 악플을 달던가?”

“배신자라는 댓글이 제일 많습니다.”

“우하하. 찰떡같은 말이구나.”

“…….”

눈치를 살피던 양승호 비서가 용기 내 말했다.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이상민 장관이 회장님을 걸고 넘어가려고…….”

“뭐!! 그놈이 실성했나! 무슨 수작을 부리는 게야!”

“오한결 작가와 친분이 있는 건, 회장님도 마찬가지라고 소문내고 있다고 합니다.”

“칫! 여론의 관심을 나로 돌려 보겠다?”

“궁지에 몰린 쥐 신세다 보니까, 뭐든 물어 보려고 하지 않을까요?”

신태진 회장이 주먹으로 책상을 쿵 치고 소리를 질렀다.

“오한결 작가에게 붙어먹겠다고 그 요란을 떨더니,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구먼. 자업자득일세!”

양승호 비서가 신태진 회장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네, 그런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오한결 작가를 향한 언론은 아직도 매서운가?”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문화재단이 직접 나선 것 같습니다.”

인상을 찌푸리던 신태진 회장이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 역시, 수진이는 해결사 같은 면이 있다니까. 그래, 문화재단이 나서줘야지. 이번 기회에 오한결 작가에게도 확실히 알려줘야 해. 문화재단이 언제나 뒤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야. 지금 대중의 비난에 고통스러운 오한결 작가를 누가 구해주겠나. 그건 우리 문화재단 뿐일세.”

며칠 전 우연히 문화재단에서 오한결을 본 양승호 비서는 회장의 말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그때 본 오한결은 누구보다 해맑았고,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 세상에는 흥미롭고 재밌는 일만 가득하다는 믿음이 굳건한 사람 같아 보였다.

양승호 비서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말했다.

“CNN에 오한결 작가가 출연한다고 합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신태진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야! 공신력 있는 해외 언론이면 국내 언론 방향을 돌릴 수 있겠어!”

“마이크 폴이라는 평론가와 대담형식으로 출연하기로 했답니다. 근데…….”

몰입해서 이야기를 듣던 신태진 회장이 한쪽 눈썹을 삐쭉 올렸다.

“근데?”

“마이크 폴이 연락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꼭 그 사람이어야 하는 건가?”

“아마도 그런 듯합니다. 혹시 회장님은 마이크 폴과 인연이 없으십니까?”

잠시 고민하던 회장이 말했다.

“난 마이크 폴이 누군지 모른다네.”

“아…….”

양승호 비서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앞으로 30분 동안 마이크 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 회장이 모르는 걸 자세히 알려주는 게 비서의 중요한 책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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