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99화 (99/202)

제99화 기자 회견

문체부 주최 ‘문화융성’ 세미나 강연을 마친 이상민 장관이 휴게실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있다. 그가 내뿜는 우울한 기운 때문에 휴게실 분위기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한국 보좌관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나타났다.

열을 식히기 위해 급하게 커피를 들이켠 이상민 장관이 말했다.

“정말로…… 오한결 작가를 비판하는 인터뷰를 해야 할까?”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장관님.”

오한결 작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질수록 이상민 장관의 입장은 점점 더 곤란해지고 있었다. 여론은 이상민 장관이 오한결과 함께 했던 봉사활동과 화랑거리 작품 발표회 참가 등 그간 장관의 행실에 대한 악의적인 추측성 보도를 이어가고 있었다.

‘99분 토론’에서 오한결을 옹호하던 데이비드를 떠올린 이상민 장관이 물었다.

“토론 이후에도 비난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나?”

장관과 다르게, 데이비드 오 교수의 소신 있는 의견은 대중의 비난에서 자유로웠다. 언론과 대중은 그가 세계적인 예술가이자 저명한 대학교수로서 언제든 자신의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반면, 기회주의자 이미지가 강했던 이상민 장관을 향한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문한국 보좌관은 추측했다. 아마도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오한결 작가의 도발이 아니라, 장관을 비난하고픈 대중의 욕망이 표출된 게 아닌가 싶었다. 최근 워낙 밉상 짓을 하지 않았던가.

“여론이 잠잠해지지 않네요. 악플이 몇만 개 이상 달리고 있어요. 이런 식이면 곧 수십만 개의 악플이…….”

이상민 장관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래,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물어뜯어야 하는 법! 이 사태를 해결하려면 거칠게 물어야 한다!

“기자회견을 잡아 주게.”

세미나가 끝나자 직원들이 단상에 커다란 테이블을 놓고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했다. 급하게 연락받은 기자들은 객석에 앉은 채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이상민 장관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굳은 표정의 이상민 장관이 등장하자, 수많은 플래시가 일제히 터졌다.

찰칵. 찰칵. 찰칵.

눈이 부셨지만, 이상민 장관은 당당한 얼굴로 단상 위로 올라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특종을 노리고 찾아온 기자들의 흉흉한 얼굴이 꼴사납게 보였다. 평소 그렇게 잘해줬는데, 이 하이에나 같은 놈들!

하지만 한편으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 상황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대중들은 이번 사태를 기억도 못 할 테니까. 결국 이상민, 이름 석 자만 그들의 머릿속에 남을 것이다.

생각만으로 기분 좋아진 이상민 장관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저는 오한결 작가를 위해 지금까지 침묵했지만, 대중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수염이 덥수룩한 기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는 장관과 형 동생 하는 사이로, 장관에게 되도록 우호적인 기사를 썼던 기자였다. 장관이 미소지으며 그에게 질문하라고 말했다.

“평소 오한결 작가와 친분을 자랑하셨는데, 왜 이제 와서 그와 거리를 두는 건가요?”

‘뭐라고!!’

배신감을 느낀 이상민 장관이 털보 기자를 노려보며 대답했다.

“오한결 작가와 친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저는 예술가를 평가할 땐 그런 사사로운 감정에 치우치지 않습니다.”

뿔테 안경을 쓴 여기자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럼, 지금! 오한결 작가의 작품을 평가해주시죠.”

이상민 장관은 올 것이 왔구나 싶어 곁눈으로 문한국 보좌관을 슬쩍 바라봤다. 보좌관은 결단을 내리라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오한결 작가의 작품을…….”

미친 듯이 날뛰는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이상민 장관이 말을 이었다.

“오한결 작가의 작품은 국민을 모독하고 분열시켰습니다……. 작품으로 인해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 문체부 장관으로서 대신 사과드립니다.”

이상민 장관이 허리를 깊게 숙이자, 문한국 보좌관이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뒤이어 놀란 기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세미나실을 가득 채웠다.

어떤 기자는 벌써 헤드라인을 뽑고 기사 내용을 타이핑하고 있었다.

「<이상민 장관, 오한결 작가 작품 혐오스러워.>」

「‘문화융성’ 세미나를 참가한 이상민 장관은 갑작스럽게 자신의 소신을 밝혀 기자들을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그는 평소 오한결 작가와 친분이 있다고 알려졌으나, 사실은 그의 작품에 혐오감을 품고 있었다고…….」

이상민 장관이 준비해 온 말을 이어서 했다.

“그 누구도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선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술가의 재량을 인정하고 훌륭한 작품을 남긴 그들에게 존경을 표시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말에 노트북을 보던 기자들이 고개를 들고 이상민 장관을 쳐다봤다.

“예술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은 그 사회의 재량에 달려있습니다. ‘99분 토론’에서 한국대 김보름 교수가 밝혔듯이 사회적 분위기와 국민적 눈높이라는 요소는 작품을 평가하는데 무척 중요한 척도입니다.”

“그럼 우리나라 국민이 해외에서 극찬을 받는 오한결 작가의 작품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너무 국민을 모욕하는 언사 아닌가요?”

“아……. 그게 아니라 뭔가 오해가 있으신가 본데……. 오한결 작가가 수준 높은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 불쾌감을 일으켰다는 뜻이지요. 마치…… 국립미술관에 초등학생 수준의 그림을 걸어놓은 것과 같은 당혹스러움이랄까요.”

“지금 초등학생을 무시하는 건가요?”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요즘 초등학생이 얼마나 대단한데요. 뭐랄까, 무척 사교육을 잘 받아서 수준도 높고……. 우리 아들도 어려서부터 과외를 많이 시켜서 그런가? 저보다 영어를 더 잘하더군요. 뭐랄까, 현대 사회의 신동은 돈으로 만들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아,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죠. 하하.”

문한국 보좌관이 이제는 망했다는 표정으로 기자들을 바라봤다. 기자들은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기사를 작성하고 있었다.

털보 기자가 또다시 손을 들고 말했다.

“장관님! 그렇다면 문화계 수장으로서 오한결 작가에게 따끔한 충고 한 말씀 해주시죠.”

“!!”

흔들리는 눈빛의 이상민 장관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오한결 작가! 아직 신인 작가라 경험이 없어서 그런 것 같은데,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요. 해외 유명 작품을 따라 했다고 해서 수준 높은 작품이라고 단정할 수 없어요. 앞으로 국민 정서를 고려해서 품위 있고 차분한 작품을 만들기 바랍니다…….”

그렇게 급조한 기자회견이 끝나자, 기자들은 자리를 뜨지 않고 앞다퉈 기사를 올리기 시작했다.

기자회견 후 파김치가 된 이상민 장관이 집에 오자마자 수면제를 먹고 잠을 청했다.

아침에 깨어나 보니, 문한국 보좌관의 부재중 전화가 100통이나 찍혀 있었다.

두렵고 찜찜한 마음으로 휴대폰을 켜고 기사를 검색했다.

「<문체부 장관의 엄중 경고. 오한결 작가 인생 최대 위기!>」

「<심층취재: 장관이 신인 예술가를 몰락시키려는 이유>」

「<단독: 문체부 장관이 오한결 작가를 사찰했다는 의혹>」

「<이상민 장관과 오한결 작가의 검은 거래 의혹>」

기사 하단에 댓글이 수천 개 이상 달려 있었다.

「배신자 이상민 장관. 역시 관상은 사이언스.」

「친한 척 오지더니, 결국 배신 때리네.」

「난 오한결 작가 작품 멋지던데. 왜 언론은 부정적이지. 정말 국민 뜻을 반영한 거 맞아?」

「와, 대박. 본인 살려고 손절 하는 것 봐.」

「하여간 생긴 대로 놀아요. 배신자 xx.」

「내가 볼 땐 기자들이 장관 안티인 듯. 엿 먹으라고 이런 기사 쓴 듯.」

「니들이 배신을 알아? 우리 장관님 그런 사람 아니거든!」

「바로 윗글, 최소한 문체부 직원인 듯. 백퍼.」

기사와 댓글을 확인한 이상민 장관이 멍하니 침대에 걸터앉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예상과 달리, 인터넷 여론은 전혀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배신자’ 이미지만 굳혀지고 말았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 * *

사람들로 어수선한 카페에 오한결과 모던아트 박수호 기자가 마주보고 앉았다. 힐끗힐끗 사람들이 오한결을 알아봤지만 선뜻 다가와 말을 걸지는 않았다.

박수호 기자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한결 작가님은 항상 이슈를 몰고 다니는군요.”

오한결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예술가에게 최고의 칭찬이군요. 하하.”

오한결이 여유를 보이자 인터뷰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박수호 기자가 가감 없이 질문을 했다.

“며칠 전, 이상민 장관의 솔직한 인터뷰가 화제가 됐어요. 오한결 작가님 생각은 어떤지 여쭤봐도 될까요?”

순간, 관련 기사에 달린 수만 개의 댓글이 생각난 오한결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상민 장관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문체부 장관의 자리가 그만큼 무겁다는 뜻이겠죠? 대중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잖아요.”

박수호 기자가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래서 장관을 이해한다는 말씀이죠? 분명 오한결 작가를 비판했는데도 불구하고요.”

“그렇죠, 굳이 못할 이유가 있나요?”

해맑게 웃는 오한결을 바라보며 박수호 기자는 생각했다.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네. 이상민 장관의 기자회견은 분명 오한결 작가와 거리를 두려는 어설픈 꼼수에 불과한 건데. 그걸 모를 리 없는 당사자는 전혀 기분 나쁜 내색을 하지 않고 있잖아.

혹시 해외 언론이 자신에게 우호적이라서? 정말 그걸 믿고 이러는 걸까?

“해외 전문가들은 오한결 작가님 작품에 극찬을 하던데요. 기분이 어떠십니까?”

“글쎄요. 고맙긴 하지만 특별하지도 않습니다. 국내 언론의 비판과 해외 언론의 극찬 모두 제게 소중하니까요.”

화제성이 될 만한 대답을 기대했던 박수호 기자가 답답한 마음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다시 질문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왜 전 국민이 보는 방송에서 그런 그림을 그린 겁니까? 분명 많은 사람이 불쾌할 걸 알고 있었을 텐데요. 솔직히 말씀해주세요. 도대체 어떤 계획이 있었던 겁니까?”

오한결이 자세를 고쳐 앉고 대답했다.

“물론 보기 좋고 예쁜 그림을 그리면 모두 기분은 좋겠죠. 하지만 생방송으로 국내외 시청자들에게 제 그림을 보여줄 기회는 그렇게 흔치 않아요. 하게 된다면 인터넷 방송일 텐데 최근 파급력이 세졌다고 하나, 아직 공중파 방송보다 못한 게 사실이죠. 저는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불쾌감이라도 상관없었어요.”

오한결의 무척 솔직한 대답에 박수호 기자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불쾌감으로 충격을 주고 싶다고? 순간, ‘오한결 당신이 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너무 건방진 태도 아닌가. 그는 분명 신인 작가이지 않은가!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신인 작가이기 때문에 그런 발상과 모험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멍하니 생각에 빠져든 박수호 기자를 보면서 오한결이 말을 이었다.

“기자의 역할은 ‘질문하는 것’이고 소설가의 역할은 ‘상상하는 것’이라면,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의 역할은 뭘까요?”

“‘그리는 것’ 아닌가요?”

“저는 ‘질문하고, 상상해서,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대상은 언제나 ‘숨겨진 진실’이겠죠. ‘팩트 폭행’이라는 말이 있잖습니까 외면하고 있는 진실을 누군가가 노골적으로 파헤쳤을 때 우리는 불쾌감을 느끼는 거죠. 저는 한국 사회에 드러나지 않는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그것을 이미지로 상상해서 그렸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림이 불쾌할 수밖에 없다? ‘팩트 폭행’을 했기 때문에?”

박수호 기자는 오한결의 설명에 무척 충격을 받았다. 어렴풋이 그의 그림이 갖는 상징성과 사회적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보긴 했지만 이렇게 명쾌하게 정리하지 못했었다.

오한결을 둘러싼 찜찜한 안개가 걷힌 기분이었다. 이제야 오한결 작가의 진정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렇게 늦게 알아채다니. 명색이 기자인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렇다면 두 번째 방송에선 무엇을 그릴 건가요? 그때도 불쾌한 충격을 주실 건가요?”

“첫 번째 그림이 사회적 병폐를 얘기했다면 이번엔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모델이 등장합니다.”

오한결의 차기작에 흥미를 느낀 기자가 몸을 바싹 앞으로 당겼다.

“오호. 모델이 정해졌나요? 누군가요? 절대 발설하지 않겠습니다.”

오한결도 기자를 향해 몸을 숙이고 조용히 속삭였다.

“그 모델은 이상민 장관이 될 거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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