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98화 (98/202)

제98화 99분 토론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99분 토론’ 진행자 백담화입니다.”

화면에 진행자 얼굴이 클로즈업되자, 백담화가 말을 이었다.

“예고해드린 바와 같이 오늘은 한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한 예술가에 대해 토론할까 합니다. 얼마 전 오한결 작가는 교육방송에 출연해 무척 난해하고 잔인한 그림을 대중 앞에 선보였습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분개했고, 예술 전문가들은 침묵으로 이번 사태를 방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99분 토론’에서는 한국 최고 미술 전문가들을 모셔서 그동안 언론에서 다루지 않았던 오한결 작가 작품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미술계의 두 거장이시죠. 한국대 김보름 교수와 국립예술교육원 데이비드 오 교수께서 나와주셨습니다.”

진행자가 두 교수를 향해 고개를 끄떡이며 말을 이었다.

“바쁘실 텐데, 이렇게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행자가 김보름 교수를 향해 몸을 돌렸다.

“한국대 김보름 교수님. 최근 칼럼을 쓰셨는데, 거기에 오한결 작가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밝히셨어요. 교수님은 오한결 작가 작품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김보름 교수가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우선 이 말씀부터 드려야겠군요. 저는 누구보다 오한결 작가를 응원하고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보여준 그간의 작품들은 꽤 작품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어쩌면 한국 예술계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잠시 뜸을 들인 김보름 교수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사회자가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김보름 교수를 바라봤다.

“하지만?”

“역시 신인은 신인이더라고요. 그래서 꽤 실망이 크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어떤 점에서요?”

“작품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반짝 인기를 얻은 신인 작가가 보이는 오만함과 자만심이 고스란히 드러났어요. 겸손하지 않은 작가는, 작가 생명이 짧더라고요. 선배 작가로서 그 점이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오호. 선을 넘었다?”

“많이 과했죠. 징그러운 그림으로 대중에게 충격을 주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기분 좋은 그림으로 대중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일도 예술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의 마음을 대변하고 계시군요. 그림을 보는 내내 불편하다고 말이죠.”

“그럼요. 예술은 불쾌한 게 아닙니다. 오한결 작가 작품을 보고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솔직하게 말하죠. 저는 그림을 보는 순간, ‘뭐야 저게. 징그러!’ 이런 반응이 나왔습니다.”

김보름 교수 대답에 만족한 진행자가 데이비드 오 교수를 바라봤다. 자, 이제 두 사람 모두 말로 치고받고 싸워 보도록!

“데이비드 오 교수님. 반론할 기회 드리죠.”

데이비드 오 교수가 김보름 교수를 넌지시 바라보며 말했다.

“부끄럽군요.”

짧게 던진 한마디에 사회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시작됐구나!

“누가요? 오한결 작가가요?”

“아니요. 김보름 교수가요.”

“!!”

진행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더 자세히 말씀해 주세요. 데이비드 오 교수님!”

“오한결 작가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의 작품은 프랜시스 베이컨 작품을 모티브로 했다고요. 그리고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예술가는 숨겨진 진실을 폭로해야 한다.’ 오한결 작품은 그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봅니다. 그것도 완벽하게요. 김보름 교수의 눈에는 그 점이 안 보이나 봐요. 한국대도 그 사실을 압니까?”

“!!”

잠시 분노로 얼굴이 붉어졌던 김보름 교수는 카메라에 포착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정신을 바짝 차렸다. 김보름 교수는 방송용 미소를 장착한 채 대답했다.

“물론, 아주 잘 알고 있죠. 프랜시스 베이컨. 영국의 표현주의 화가. 근대의 합리주의와 이성주의 허구를 폭로했던 작가! 난도질한 고깃덩어리 같은 이미지와 뭉개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추상적 그림을 선보였죠. ‘회화의 폭력’을 통해 극적인 주제의식을 선보였어요. 음……. 데이비드 교수님께 물어보죠. 그래서요? 오한결 작가가 프랜시스 베이컨을 따라 했다고 칭찬이라도 해줘야 하나요?”

사회자가 흥분하며 말했다.

“오호, 김보름 교수님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시죠.”

“나라마다 사회적 분위기라는 게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어떤가요? 아직 보수적 성향이 짙은 나라입니다. 예술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서 존재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거죠. 내가 이런 말까지 안 하려고 했는데, 제 작품 <희망의 미래로>를 참고해주세요. 최근 한국 사람들이 사랑하는 작품 5위에 올랐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사회자가 이해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러니까 김보름 교수님께서는 한국 사회에서 예술의 역할을 정의하신 거군요. 위로를 건네고 희망을 주는 작품이 예술이다?”

“맞아요. 왜 우리가 오한결 작가 작품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받아야 합니까!”

반대 의견을 듣고 싶은 사회자가 데이비드 오 교수에게 물었다.

“데이비드 오 교수님 생각은요?”

데이비드 오 교수가 허리를 숙이고 주섬주섬 바닥에서 그림 하나를 꺼내 들었다. 사회자는 설명을 바라는 눈치였고, 김보름 교수는 입을 떡 벌린 채 얼굴이 파래졌다.

몹시 그로테스크한 작품이었다.

하늘에서 붉은 비가 내려 여자의 우산에 흘러내린다. 피 같은 붉은 비의 끈적끈적한 질감이 아주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여자의 얼굴은 뼈만 앙상한 해골이고 그녀의 투명한 몸은 심장, 폐, 간 등 여러 장기를 노골적으로 비춘다.

사실적 묘사 때문에 비위가 약한 사람이라면 당장 토하고 싶을 정도로 끔찍한 작품이었다.

사회자를 향해 그림을 보이며 데이비드 오 교수가 물었다.

“사회자님이 보시기엔 이 그림은 어떤가요?”

“꽤 불쾌하군요. 솔직히 기분 나빠요. 오한결 작가 작품보다 더 심하네요.”

“김보름 교수님이 보시기엔 어떠신가요?”

“…….”

“이 작품은 <붉은 우산>입니다. 한눈에 봐도 불안감과 긴장감을 유발하죠. 아, 맞다. 김보름 교수님은 이런 작품 싫어한다고 하셨죠?”

“…….”

데이비드 오 교수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붉은 우산> 작품을 좋아합니다. 한국 작가 중에 이런 표현을 하는 작가도 있구나 싶어 무척 행복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작품을 그린 작가는 현재 세계적인 예술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붉은 우산> 작가는 오한결 작가를 옹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

빨리 역겨운 그림을 치워주었으면 하는 눈빛으로 사회자가 데이비드 오 교수를 노려보며 말했다.

“한국 작가 작품이군요. 아마도 외국에서 발표한 작품이겠죠. 김보름 교수님 말씀대로, 작가가 한국인의 정서를 고려했다면 저런 그림을 절대 한국에서 발표하지 않았겠네요.”

데이비드 오 교수가 그림을 바닥에 내려놓자, 사회자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데이비드 오 교수가 방긋 웃었다.

“말이 없으시군요. 김보름 교수님.”

사회자가 김보름 교수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러게요. 혹시 <붉은 우산> 작품에 화가 나신 건가요? 한국인의 정서와 맞지 않아서?”

“…….”

김보름 교수가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자, 담당 피디가 무선으로 소리를 쳤다.

[백담화 씨! 김보름 교수 뭐야? 왜 말이 없어? 이러다가 방송사고 나겠어. 지금 생방송이잖아. 어떻게든 입을 열게 하라고! 아, 그리고 <붉은 우산> 작가 누구인지 알아봐요. 우리가 작가랑 전화 연결해보게. 이거, 잘하면 시청률 대박 나겠는걸!]

담당 피디의 무선을 듣고 사회자가 김보름 교수에게 물었다.

“저기, 김보름 교수님 혹시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아, 아니요…….”

안도의 한숨을 내쉰 사회자가 데이비드 오 교수를 쳐다봤다.

“<붉은 우산> 작가가 누군가요?”

데이비드 오 교수가 김보름 교수를 바라봤다. 떨리는 눈동자, 파랗게 질린 얼굴색, 꼴딱꼴딱 생수를 들이켜는 모습. 그녀는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김보름 교수님 작품입니다.”

사회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아니……. 교수님! 정말입니까!!”

김보름 교수의 얼굴이 붉게 변하자, 데이비드 오 교수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붉은 우산>은 십 년 전 김보름 교수가 국민미술관에 ‘그로테스크 시리즈’를 기획 전시한 작품이었어요.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파격적인 표현방식으로 조롱하고 이를 극복하고 싶다는 게 그 전시의 목적이었죠.”

흥분한 피디가 무선으로 소리쳤다.

[백담화 씨 김보름 교수 대답 끌어내세요!]

짓궂은 표정의 사회자가 김보름 교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김보름 교수님 되고 오한결 작가는 안 되는 건가요? 혹시 내로남…….”

* * *

TV 앞에 앉은 오한결이 가족과 ‘99분 토론’을 시청하고 있었다. 김보름 교수가 버벅대며 <붉은 우산> 대해 변명하자 오한수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하하. 정말 내로남불이네.”

어머니가 사과를 깎으며 동생을 나무랐다.

“너무 그러지 마라. 김보름 교수도 얼마나 난처하겠니.”

오한결이 귤 한 조각을 잘근잘근 씹으며 대답했다.

“김보름 교수는 매번 인터뷰할 때마다 얘기가 달라요. 공모전 당선 당시, 저를 칭찬하더니, 몇 달 후엔 제 작품에 의문을 제기하더라고요.”

오한결의 말을 듣던 아버지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김보름 교수가 뭐라고 했니?”

“어디서 많이 본 작품이라나. 해외 공모전 당선작들을 조사해 보자고 하던데요. 하하.”

“저런, 마음을 곱게 써야지. 한국대 교수면 꽤 많이 배운 사람 아니냐. 대학도 변변치 않은 곳에 나온 신인이 열심히 하겠다는데. 응원을 해줘도 모자랄 판에 참나.”

동생이 손에 들고 있던 과일을 떨어뜨렸다.

“아버지, 지금 은근히 한결이 형 깐 거죠?”

고개를 갸웃한 아버지가 순수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내가 한결이를 왜 까?”

오한결이 동생 입에 사과를 구겨 넣었다.

“아버지. 한수 말 신경 쓰지 마세요. 워낙 별나잖아요.”

‘99분 토론’이 한참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오한결의 작품이 자료 화면으로 등장했다. 유심히 그림을 보던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한결이는 괜찮은 거지? 사실 주변에서 워낙 안 좋은 말이 들려서 걱정을 안 할 수가 없구나.”

동생이 꿀꺽 사과를 삼키고 오한결 대신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한국대 교수도 예전에 괴상한 그림을 발표했었잖아요. 제 생각엔 방송국에서 기대하는 그림이 있었는데 형이 자기가 멋대로 요상한 그림을 그려버린 거죠. 하필 사람들이 익숙하지 않은 그림체로. 사람들이 당황해서 한마디 하는 거지, 형 작품이 싫어서 뭐라고 하는 건 아닐 거예요.”

오한결이 혼자 중얼거렸다.

“……괴상한 그림. ……요상한 그림.”

어머니가 넌지시 말했다.

“그래도 다음부터 조심해라.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안 좋은 얘기를 떠들고 있어.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 혼났잖니. 나 원 참. 우리 아들이 어때서. 예술이 예쁜 그림을 그려야 예술인가. 내가 보기엔 좋기만 하더만……. 쪼금 거시기한 부분도 있지만.”

아버지가 말했다.

“한결아, 다음 방송 때 멋진 그림을 그려봐라. 나한테 선물한 ‘산’ 그림도 좋겠구나. 사람들에게 자연을 선물해주는 거야. 생각만 해도 근사하지 않니?”

“……네. 생각해 볼게요.”

“형, 또 방송해? 안 잘렸어?”

오한결이 손에 들린 귤을 동생 입에 집어넣고 말했다.

“내가 왜 잘려! 아까, 담당 피디한테 연락 왔는데, 시청률 60% 넘었단다. EBC 역대 시청률이래. 방송국은 지금 축제 분위기라던데.”

“어머! 너무 잘 됐구나. 하긴 주변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안 본 사람이 없어. 어떤 사람은 이십 년 만에 EBC 봤다고 하더라고. 호호.”

어머니가 오한결에게 사과 접시를 건네며 말을 이었다.

“이번엔 어른들 말씀대로 해라. 김보름 교수 말대로 꿈과 희망을 주는 예술을 해봐. 다들 좋아할 거야.”

오한결이 히죽 웃었다.

“근데 김보름 교수는 저보다 더 괴짜 같은 그림을 그렸던데요. 솔직히 놀랐어요. 한국에 저런 표현력을 가진 작가가 있다는 것에요.”

오늘 데이비드 오 교수가 공개한 김보름 교수의 <붉은 우산>은 몹시 충격적이었다.

그녀가 왜 세계적인 예술가 반열에 오르고, 어떻게 한국 최고 대학 교수로 재직할 수 있었는지 그 이유를 말해주는 것 같았다.

좀 까칠해 보이지만 같이 작업하면 재밌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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