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화 수천 개의 악플
“미풍양속을 해친 오한결 작가는 당장 예술계를 떠나라!”
“방송국은 책임지고 오한결 작가를 영구 퇴출해라!”
“EBC는 예술 따위 신경 끄고, 국영수에 집중하라!”
“수능 앞두고 미술 방송이 웬 말이냐!”
피켓을 든 수십 명의 사람이 방송국 정문 앞에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오한결이 생방송으로 파격적 작품을 시연하자마자, 인터넷 커뮤니티와 각종 언론은 오한결에게 대한 끊임없는 가십과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고 있었다.
일부 미술 평론가는 오한결을 옹호하긴 했지만, 그들 역시 대중의 시선이 두려워 몸을 사리고 있을 뿐이었다.
몸집이 큰 여성이 피켓을 들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잔혹한 그림을 예술이라 포장해 우리 아이들에게 정신적 고문을 가한 방송국은 당장 국민 앞에서 머리를 조아려라!”
기자들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리며 관심을 보이자 여자가 더 크게 외쳤다.
“항상 예쁘고 아름다운 것만 봐야 할 우리 아이들이 겪었을 정신적 충격을 보상하라! 무엇보다, 오한결 작가의 작품을 본 뒤 아이들의 학습 부진이 우려된다!”
냉철한 눈빛을 가진 기자가 마이크를 내밀며 물었다.
“오한결 작가의 작품 때문에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기고 학습 부진으로 이어진다는 건가요?”
“맞습니다!”
“음……. 좀 무리가 있는 주장 아닌가요?”
시위자가 기자를 째려보며 대답했다.
“왜 무린가요? 증거가 있는데!”
“증거요?”
“우리 아들이 어제부터 공부를 안 하고 있어요!”
전날 한숨도 못 잔 김명호 피디와 국장은 방송국 창밖으로 보이는 시위자들을 향해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그래서 오한결 작가는 뭐래?”
국장이 짜증을 내며 묻자, 김명호 피디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음 방송 때 보자고 하던데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뭐! 나라를 이렇게 발칵 뒤집어 놓고 그게 할 말이야! 솔직히 말해봐! 김 피디 너는 미리 알고 있었던 거 아냐?”
“무슨 소립니까! 저도 황당해 죽겠어요. 아, 엄청 기대했는데…….”
불같이 화를 내던 국장이 잠시 숨을 고른 뒤 침착하게 물었다.
“그래서 미술 평론가들은 뭐래? 우리도 여론을 파악해야 할 거 아냐.”
“그게……. 사실 반전이 있습니다.”
“반전?”
“비공식적인 건데요. 전문가들의 평가는 대중하고 완전히 달랐습니다. 정보통에 의하면 오한결 작가의 그림은 현대 예술의 정점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하네요. 어떤 원로 전문가는 현대 미술사에 길이 남을 수준급 작품이라 말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모두 언론에 침묵하고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오한결 작가는 꽤 수준 높은 예술을 보여준 거로군.”
“맞아요. 그렇다고 봐야죠.”
국장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숨을 쉬었다.
“아……. 예술 너무 어렵잖아!”
김명호 피디는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목청껏 외치는 시위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밥 아저씨처럼, 보기 좋고 예쁜 자연 풍경을 그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참 쉽죠?’라는 유행어도 양념처럼 곁들이면 더욱 좋고.
방송국과 대중이 바라는 예술은 그런 건데, 오한결 작가는 그 쉬운 걸 이해하지 못했단 말이지. 심오한 작품은 본인 개인전에서 할 것이지 이게 무슨 민폐야! 아……. 시말서 써야 하나?
“국장님!”
김 작가가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국장에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이게 뭐야?”
“시청률이요!”
부르르 떨리는 손으로 시청률을 확인하는 국장. 최악의 순간을 마주하고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미치도록 뛰기 시작했다.
입을 떡 벌린 채 아무 말도 못 하는 국장 대신 김 작가가 소리쳤다.
“대박입니다! 60%가 넘었어요. 인터넷 접속자 수를 고려하면 전 국민이 시청했다고 볼 수 있어요! 교육방송 창사 이래 역대 수치입니다!”
창밖에서 여전히 시위 소리가 들려오고 있지만, 국장과 김명호 피디, 김 작가의 얼굴에는 은근한 웃음꽃이 활짝 피우고 있었다.
* * *
문화재단도 비상사태다.
아침부터 끊임없이 울리는 항의 전화에 지친 직원들이 이제는 넋 놓고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방금 고래고래 소리치는 전화를 받은 최하늘이 말했다.
“팀장님. 오한결 작가를 제명하라는데요.”
“뭐? 제명은 무슨. 문화재단이 예술가를 어떻게 제명해?”
“문화재단 공모전 출신이라고……. 문화재단이 책임지라는데요?”
“난 솔직히 모르겠어. 뭐가 문제이고 뭘 책임져야 하는지. 오한결 작가의 작품을 보고 감동한 건 나뿐인 건가?”
최하늘이 대답하려는 순간, 신수진 이사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맞아요. 팀장님! 정확한 말씀이십니다. 오한결 작가의 작품은 문제 될 게 없어요. 다만 대중의 시선에서 무척 잔인해 보일 수 있다는 점이 우려스러운 거죠. 하지만 그 점이 바로 오한결 작가가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 같아요. 안 그런가요? 팀장님?”
갑작스럽게 신수진 이사장이 등장하자 놀란 이나영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네. 맞아요. 문화재단 소속 작가 중에도 그로테스크한 작품을 하는 작가들이 많아요. 그 누구도 그들의 작품이 문제라고 말하지 않죠. 현재 오한결 작가가 받는 비난에 공감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이나영 팀장의 대답에 만족한 신수진 이사장이 최하늘을 바라봤다.
최하늘은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했다.
“어쨌든 전 국민을 상대로 익숙하지 않은 장르 예술을 하신 거잖아요. 오한결 작가님도 그 점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고 생각되고요. 제 생각에는 대중이 작품에 담긴 의미와 상징성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이런 논란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문화재단이 뒤에서 힘을 실어주면 좋겠어요.”
“맞아요. 오한결 작가가 충동적으로 벌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뭘 하면 좋을까요?”
신수진 이사장의 말에, 이나영 팀장이 쭈뼛거리며 말했다.
“그게……. 문화재단이 대외적으로 나서기에는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미 재단과 협업 중인 몇몇 기업이 방송 이후 저희와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아마도 비난 여론이 자신들에게 향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습니다.”
피식 웃으며 한쪽 눈썹을 치켜뜬 신수진 이사장이 말했다.
“그 회사 명단 작성해서 오늘 중으로 보고하세요. 문화재단은 앞으로 그런 기업과 어떠한 예술 협력 사업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명일그룹과 등을 지게 될 거라고 분명히 전하세요.”
“!!”
이나영 팀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헉, 너무 센데.’
* * *
오한결이 출연한 방송을 여러 번 돌려보던 이상민 장관이 급격한 피로감을 보였다. 다시 한번 재생 버튼을 누르려고 하는데, 문한국 보좌관이 급히 장관실로 들어왔다.
“장관님!”
“깜짝이야! 자넨 노크도 모르나?”
“……여론이 너무 안 좋아요. 이러다가 저희한테도 불똥 튀는 거 아닌가요?”
“그래? ……자세히 말해보게.”
문한국 보좌관이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가슴을 주먹으로 두세 번 내리쳤다.
“과격한 시위자들이 방송국 앞으로 몰려들고 있고, 이를 취재하던 기자들은 실시간으로 상황의 심각성을 인터넷 기사로 올리고 있어요. 무엇보다, 최근에 장관님과 오한결 작가가 함께한 봉사활동 기사에도 엄청난 악플이 달리고 있습니다. 상황이 너무 심각해요.”
악플이라는 말에 놀란 이상민 장관이 관련 기사를 재빨리 검색해봤다.
백 개 남짓한 댓글이 달렸던 기사에 지금은 수천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려있었다.
「문체부 장관은 뭐하냐! 오한결 작가를 제명하라.」
「오한결 작가와 장관이 절친이라며. 솔직히 끼리끼리 어울리겠지.」
「변태 XX」
「토 나와. 이제는 무서워서 예술 감상도 못 하겠네. 개나 소나 예술가라고.」
「이상민 장관이 오한결 작가를 뒤에서 조종하는 듯. 아님 말고.」
「장관 보좌관도 되게 맹해 보이던데. 멍청한 X. 생긴 대로 놀 듯.」
「이상민 장관 되게 못생겼다. ㅋㅋㅋ」
두통으로 인상을 찌푸린 이상민 장관이 문한국 보좌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문 보좌관 악플도 있네. 맹해 보인다는데.”
“!!”
절망에 빠진 표정으로 문한국 보좌관이 말했다.
“성실하고 착하게 살아왔는데. 악플이라니! 아이디가 뭐에요. 고소할 겁니다.”
“에휴. 난 수천 개 달렸어.”
“…….”
머리가 복잡한 이상민 장관은 다시 한번 재생 버튼을 눌러 오한결 작가의 작품을 관찰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림을 그려나가는 오한결. 긴장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그의 모습에서 장관은 작가의 대담성과 작품을 향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예술학 박사인 이상민 장관 눈에는 작품이 몹시 훌륭해 보였다.
다만, 대중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로지 예술가의 주관적 시선에서 작품을 표현했다.
파격적인 표현법으로 작품의 메시지를 전달한 점이 문제를 일으켰다.
이런 예술에 익숙지 않은 대중에겐 몹시 큰 충격으로 다가갔으리라.
하지만 충격이 클수록 작가의 작품은 더 큰 효과를 얻게 된다. 오한결은 바로 이 점을 노렸을 것이다.
이상민 장관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쨌든 대중들은 화가 났다.
자신이 오한결 작가에게 접근한 이유는 대중과 친화적인 정치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였지 않은가?
대중들이 오한결 작가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이상민 장관은 정치인 입장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대중들이 판단하기에 오한결 작가가 잘못한 거라면, 그건 오한결 작가의 잘못이 맞다.
오한결은 최소한 대중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해야 했다. 갑작스레 그런 충격적인 작품을 발표하는 것보다, 서서히 대중들의 신뢰를 얻고 차분하게 자신의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그림에 대해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그래! 이번 사태는 오한결 작가의 잘못이 틀림없다.
그런 오한결 작가를 향해 쓴소리해야 하지 않을까?
어떻게든 대중들을 달래야 한다.
탁!
거칠게 노트북을 덮은 이상민 장관이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없어!”
* * *
아트화랑에 앉아 있는 오한결의 표정은 몹시 평온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어려있었다.
모두 오한결의 눈치만 살핀 채 조용히 커피를 홀짝대고 있을 뿐이었다.
오한결이 슬쩍 웃으며 말했다.
“물어보세요. 궁금한 게 많은 거 같은데.”
홍미숙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상처받은 거 아니지?”
“저는 즐겁게 방송 촬영했는데요. 그림도 만족스럽고요.”
노을이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고 말했다.
“오한결 작가님, 인터넷 봤어요? 완전 난리가 났어요. 물론 안 좋은 쪽으로…….”
오한결이 대수롭지 않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 예상했던 일이야. 이제 사람들이 다음 작품을 더 기대하겠네. 하하.”
서정익 작가가 몹시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속상하네요. 오한결 작가님 작품이 이런 평가를 받다니……. 왜 사람들이 알아봐 주지 않는 걸까요.”
묵묵히 얘기를 듣던 홍철수 사장이 말했다.
“섣부른 판단은 금물일세. 짐작하건대, 오한결 학생 작품에 감동한 사람들이 많을 거야. 표현법이 생소해도 작품에 담긴 뜻은 명확하니까.”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최무열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여론이 너무 안 좋아요. 이렇게 손 놓고 있다가는 오해만 더 커질 것 같은데요. 이쯤에서 작가님이 해명을 좀 해보심이…….”
오한결이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작품은 제 손을 떠났어요. 이제 해석은 독자의 몫이에요. 제 작품이 사회에 던진 메시지는 확실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조용히 독자들의 의견을 감상하고 싶네요.”
최무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대박! 오한결 작가님 작품을 주제로 특집 99분 토론을 한대요. 패널로 한국대 김보름 교수와 국립예술교육원 데이비드 오 교수가 나와요! 예고를 보니까, 두 사람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고…….”
오한결이 환하게 웃었다.
“재밌겠네. 무조건 봐야지.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