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81화 (81/202)

제81화 국립예술교육원

“이렇게 단둘이 있는 것도 처음이지요.”

향긋한 유채꽃 향이 나는 차를 건네며 데이비드 오 교수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제주도에서 작업하는 제자가 직접 재배한 차라네. 향이 좋지 않나?”

오한결이 두 손으로 찻잔을 감싸고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상큼하고 톡 쏘는 향이 기분을 한결 유쾌하게 만들었다.

“좋네요. 교수님 연구실에 자주 놀러 와야겠어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데이비드 오 교수가 다리를 꼬고 말했다.

“오한결 작가가 국립예술교육원 출신이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지.”

‘출신이라…….’

회귀 전, 평범했던 오한결에게 ‘꿈’의 학교였던 국립예술교육원.

입시생 때는 좋은 학교에 진학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지 않은가. 누구에게나 미래는 불안한 것이었고, 그만큼 좋은 학력은 희망을 상징하는 증표로써 무척 중요한 역할을 했으니까.

학력, 학벌 위주의 한국 사회.

천재가 성공하려면, 먼저 입시에 성공해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이미 성공적인 데뷔를 한 오한결에게 따라붙는 질문이 바로 그 증거이다.

어디 출신이세요?

출신이 미약하고 불분명한 작가는 성공하더라도 정체성이 모호할 수밖에 없는 걸까?

오한결이 시선을 돌려 책이 수북이 쌓인 데이비드 오 교수 책상을 바라봤다.

“이곳 출신이 그렇게 특별한가요? 저는 이제 관심이 없네요.”

데이비드 오 교수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오해했나 보군. 난 단지 자네와 친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으로 말했던 걸세. 난 자네에게 아주 관심이 많거든.”

여전히 무표정한 오한결을 바라보며 데이비드 오 교수가 말을 이었다.

“자네와 함께 공동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어.”

오한결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공동 작품이라고?’

회귀 전, 오한결이 늦은 나이에 데뷔했을 땐 이미 데비이드 오 교수는 작고한 상태였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그는 미디어아트 장르를 개척했고 그 독창성을 인정받아 현대 예술에 한 획을 그은 위대한 예술가로 영원히 기록됐다.

특이한 점은, 그는 항상 혼자였다는 것이다.

자신의 예술적 영감을 타인과 공유하지 못했던 그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작업량이 극히 적었던 작가이기도 했다.

“교수님은 항상 혼자 작업하시잖아요?”

“맞네. 하지만 마음이 변했어. 자네 때문이지. 좀 더 있다가는 내가 보조작가로 자네를 모셔야 할지 모르겠네. 그래서 마음이 조급해.”

오한결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지금 준비 중인 개인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데이비드 오 교수가 꼰 다리를 풀고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당장 하자는 게 아닐세. 아직 여유가 있으니 앞으로 더 자주 만나 서로를 알아가 보자고. 자네는 분명 뛰어난 작가지만 그만큼 미스터리한 부분도 많다는 생각이 들어. 그게 오한결 작가의 매력이지만, 같이 작업하기엔 단점이 될 수도 있겠지.”

오한결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전 상관없지만, 교수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야.”

데이비드 오 교수가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렇게 말할 줄 알았네. 역시 자네는 내가 아는 작가들하고 성향이 많이 달라. 매우 높은 자신감과 모든 일에 확신하고 임하는 자세. 평소 불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예술로 승화시키는 우리와 결이 다르다고 할까.”

“교수님도 불안하신가요?”

“그럼. 난 항상 불안하네.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할까 두렵고, 작가로서 그것을 표현하지 못할까 두렵네. 자네는 그런 모습이 없단 말이야. 잘 숨기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잠시 고민하던 오한결이 대답했다.

“저는 그런 고민 없는데요.”

‘물론 과거에는 많이 했지만.’

“하하하. 역시! 그러니까 우리는 서로를 알아야 한다는 걸세. 같이 작업하게 되면 자네는 나의 두려움을 그대로 바라봐야 하니까. 그게 자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장담할 수 없네. 물론 잘 감당할 거라는 믿음은 있어.”

오한결은 데이비드 오 교수의 깊은 눈을 바라봤다.

그가 쌓아온 세계적인 명성 뒤에 숨겨진 심리적 불안감. 그것이야말로 데이비드 오 교수의 성공 비법이었던 걸까? 그가 세상에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겪어야 했던 심리적 고통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기억을 되돌려, 데이비드 오 교수의 마지막 기록을 떠올렸다.

천재 예술가의 정신 질환. 그의 노년의 삶은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했다고 한다.

혹, 무의식에 감춰 놓은 삶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직시하는 도전을 했던 걸까? 그렇다면 언젠가 그 어둠에 사로잡혀 자신을 잃게 될 수도 있을 텐데.

“교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싶어졌어요.”

“좋아요! 우리 멋진 작업을 해 봅시다.”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잡담을 이어갔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바람을 쐬기 위해 연구실 밖으로 나와 복도를 걸었다.

얼룩덜룩 물감이 묻은 작업복을 입은 학생들이 빠르게 두 사람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한결이 그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보기 좋군요. 저도 한때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데이비드 오 교수가 걸음을 멈춰 섰다.

“이왕 온 김에 예술원 구경하고 갈래요? 학생들도 좋아할 거예요.”

“그럴까요?”

국립예술교육원 예술원 건물은 무척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중앙 통로를 기준으로 5층 높이의 모든 층이 한눈에 보였다. 건물 전체가 하나의 작업실처럼 보였으며 층과 층 사이에 장벽이 없어 얼마든지 서로를 바라보며 소통할 수 있는 공간 구조였다.

“건물이 재밌군요. 내부가 개방형이네요.”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죠.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 누가 무슨 작업을 하는지 알 수 있답니다. 필요하면 공동 작업도 같이하고 혼자 하더라도 누군가가 같이 밤을 새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니까 심적 위로를 받을 수 있죠.”

오한결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학생들이 꽤 많군요. 이곳은 소수 인원만 입학하지 않나요?”

“꽤 예리한 질문이군요. 대부분 우리 학교 학생들이 아닙니다. 국립예술교육원은 전국 모든 예술대와 교류하고 있으며, 분기마다 많은 예술 전공생들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단, 정규 수업은 안 되고 작업실만 이용 가능하답니다.”

“꽤 좋은 프로그램이군요. 선발 기준은요?”

“팀원들이 모두 동의해야 가능합니다. 학생들끼리 팀을 구성하고 자체적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있어요. 학교는 이런 자율적인 예술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죠.”

“좋군요. 일방적인 교수의 지도 편달이 아닌, 학생의 자율적 예술 활동이라.”

잠시 말문이 막힌 데이비드 오 교수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비록 작품 방향성만 제시하지만, 그래도 제 역할이 작다고 볼 수 없죠. 학생들에겐 누군가의 ‘한 마디’가 절실할 때가 있거든요.”

오한결이 고개를 끄덕이자, 데이비드 오 교수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층별로 환하게 불을 켜 놓은 모습을 보면서 오한결이 말했다.

“대단한 열정이군요.”

“제가 아는 한 여기 있는 모든 학생은 예술에 진심이니까요.”

‘예술에 진심.’

이상민 장관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예술에 진심이었던 데이비드 오 교수는 뉴욕에서 갖은 고생 끝에 예술가로 성공했지만, 경제적 현실을 무시하지 못한 이상민 장관은 배신자 소리를 들어가며 예술 행정가로 변신에 성공했다.

오한결이 데이비드 오 교수를 빤히 쳐다봤다.

“왜 안 물어보시죠?”

“……뭘 말인가요?”

“제가 이상민 장관과 만났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텐데요.”

데이비드 오 교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잘 처신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오한결 작가는 이익을 좇아 움직일 사람이 아니니까요.”

오한결 작가가 피식 웃었다.

“교수님 말씀이 맞네요. 우리는 서로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군요.”

“그게 무슨…….”

“저는 이상민 문체부 장관의 제안에 무척 관심이 있거든요.”

데이비드 오 교수가 언성을 높였다.

“장관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오한결 작가를 이용할 겁니다. 어떤 감언이설로 속였는지 모르겠으나, 그가 뭘 원하는지 그 진실을 알면…….”

오한결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 하시던데요. 제 유명세를 이용해서.”

당황한 데이비드 오 교수가 말을 더듬었다.

“그,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장관을 돕겠다는 겁니까?”

“궁금하군요. 무엇이 그렇게 두렵습니까? 교수님.”

데이비드 오 교수가 오한결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깊은 고민에 빠졌다. 잠시 뒤 데이비드 오 교수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걱정됩니다. 장관이 또 배신할까 봐.”

“그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배신하라면 하라죠.”

데이비드 오 교수 미간에 주름이 더 짙어졌다.

“……장관을 도우려는 이유가 뭔가요?”

오한결이 방긋 웃었다.

“추후 제 계획에 필요하거든요. 그의 권력과 사회적 영향력이요.”

오한결 말에 동의할 수 없다는 듯 데이비드 오 교수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오한결 작가는 이미 사회적 영향력을 얻지 않았습니까? 장관의 도움 따위 필요 없는 위치에 있어요.”

잠시 고민하던 오한결이 단호하게 말했다.

“아뇨. 서울의 한 행정 구역에 미술관을 짓고 그곳을 세계적 예술 공간으로 만드는 일에는 작가의 명성만으론 부족하죠. 장관의 힘이 필요합니다.”

데이비드 오 교수는 더는 묻지 않고 오한결을 지그시 바라봤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천재 예술가의 기이한 행보.

오한결의 선택은 항상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냈다.

자신의 걱정이 진심으로 오한결을 위한 거였을까? 장관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오한결과 장관이 서로 거리를 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걸까?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과연 오한결이 능구렁이 같은 이상민 장관 꼬임에 넘어가 자신처럼 배신을 당할까? 그럴 가능성은…….

곰곰이 생각해 보던 데이비드 오 교수는 오한결의 얼굴에서 그 답을 찾았다.

‘절대 그럴 가능성은 없다.’

저 단단하고 자신감 넘치는 천재 예술가의 앞길을 누가 감히 막을 수 있을까?

오히려 이상민 장관이 탈탈 털리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군요.”

오한결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 것 같네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고는 예술대 복도를 걸어갔다.

이젤이 놓인 작업실 발견한 오한결이 내부를 힐끔거리며 물었다.

“페인팅 수업이네요. 익숙한 유화 냄새가 나는군요.”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오한결이 고개를 끄덕이자, 데이비드 오 교수가 오픈된 작업실로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이젤 앞에 앉아 그림에 집중하던 학생들이 낯선 발소리에 고개를 삐쭉 내밀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학생들이 일제히 인사하자, 데이비드 오 교수가 오한결을 가리켰다.

“자, 인사하세요. 오한결 작가입니다.”

“꺄악!”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한결 작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소리를 질렀다.

데이비드 오 교수가 흐뭇한 미소로 말했다.

“인기가 매우 많으시군요. 질투 나는데요. 하하.”

오한결이 학생들의 그림을 구경하기 위해 작업실을 돌아다녔다.

어릴 적부터 영재 소리를 듣는 학생들의 작품이라. 하지만 오한결 눈에는 여전히 미숙하고 어설퍼 보이는 그림들뿐이었다.

순간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는 말이 떠올라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회귀 전 자신의 실력을 생각해 보면 이들은 월등히 뛰어난 실력인 건 확실하니까.

“다른 학교 학생들도 있다고 하셨는데, 이곳도 그런가요?”

“아니요. 전공 필수 과목이라 국립예술교육원 학생들만 있습니다.”

은근히 기대하는 눈빛으로 오한결을 바라보는 데이비드 오.

“어떤가요, 작품이 마음에 드시나요?”

“……뭐. 이미 완성된 학생에겐 학교는 필요 없겠죠. 모두 배우는 학생이니 부족한 건 당연합니다.”

“물론 그렇죠…….”

작업실을 한 바퀴 둘러본 오한결이 작업실 중앙에 서서 말했다.

“모두 흥미롭고 재밌는 작업을 하고 계신 것 같군요.”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었다.

“누가 제일 잘했나요? 1등 뽑아주세요!”

꺄르르 웃음소리와 함께 웅성대는 소리로 작업실이 어수선해졌다.

데이비드 오 교수와 학생들은 잔뜩 기대에 찬 표정으로 오한결을 바라봤다. 과연 오한결 작가에게 인정받은 학생은 누굴까?

오한결은 수많은 시선을 받으면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가감 없이 말할까요?”

“네!! 솔직한 피드백 원해요!”

“여러분 모두 가장 기본적인 걸 놓치고 있어서, 그 누구에게도 1등을 주기 힘들겠군요.”

“!!”

다시금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작업실 분위기가 무겁게 내려앉았다.

오한결이 근처 이젤에 놓인 붓을 들어 올렸다.

“여러분께 오늘 붓 관리 팁을 알려드릴게요. 제 노하우니까 꽤 유용할 겁니다. 둘러보니 아직 도구 관리법도 잘 모르는 것 같아서요. 기초가 제일 중요합니다.”

시무룩하던 학생들의 표정이 확 밝아지면서 다시 까르르 웃음이 들렸다.

한 학생이 크게 말했다.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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