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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해도 완벽한 예술 천재-80화 (80/202)

제80화 단풍놀이

설악산 국립공원 매표소를 통과한 오한결 가족은 형형색색의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가을 단풍은 자연이 주는 따스하고 화려한 선물과 다름없다.

삼삼오오 모인 관광객들은 웅장한 설악산을 배경으로 연신 사진찍기에 바빠 보였다.

휴대폰을 들고 사진을 찍던 어머니가 말했다.

“어쩜, 단풍이 저리 예쁠까. 불그스름한 게 참 곱네.”

아버지가 일렁이는 불꽃 같은 단풍나무 아래서 포즈를 취했다.

“나도 한 번 근사하게 찍어줘요. 프로필 사진으로 써야겠어.”

휴대폰 화면에 담긴 아버지 모습에 어머니가 히죽 웃었다.

“다리가 길게 나오게 찍어야겠네. 자자, 좀 더 뒤로!”

“이렇게?”

“음……. 좀 더.”

“이 정도?”

“안 되겠다. 워낙 다리가 짧아서, 10년 후 기술이 발전하면 가능하겠네.”

“……하여간 장비 탓하기는. 대충 찍어요!”

찰칵. 찰칵. 찰칵.

동생이 반달곰 동상 근처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을 유심히 바라봤다.

“형, 우리도 가족사진 찍자.”

오한결이 고개를 끄덕이자, 동생이 부모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서 사진 찍어요.”

관광객들이 빠져나가자마자, 동생이 재빨리 반달곰 동상 옆에 서서 가족들에게 손짓했다.

오한결이 주변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누가 사진을 찍어줬으면 좋겠는데…….’

때마침 노란 등산복을 입은 아주머니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오한결 가족을 바라보자, 오한결이 대뜸 소리쳤다.

“아주머니! 저희 사진 좀 부탁드릴게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주머니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럼요! 제가 예쁘게 찍어 드릴게요. 호호호.”

휴대폰을 건네받은 아주머니가 화면에 오한결 가족을 담으며 말했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네요. 보기 좋아요! 자, 찍습니다!”

오한결 가족이 사진용 미소를 지은 채 찰칵 소리를 기다렸지만 고요한 정적만 이어질 뿐이었다.

아주머니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야, 뭔가가 부족해…….”

아주머니가 소리쳤다.

“저기요! 자세가 너무 경직돼 있어요. 릴렉스, 오케이? 부모님은 좀 더 가까이 붙고요, 아드님 두 분은 살짝 뒤로. 그렇지. 아니! 더 뒤로. 그렇지. 어머! 아버님이 머리가 크구나. 그럼 아버님도 살짝 뒤로! 아니! 너무 갔잖아요. 그렇지. 호호호. 이제 됐다.”

찰칵!

아주머니가 호통쳤다.

“움직이지 마! 한국 사람은 뭐든 삼세번 몰라요? 자자, 대열이 흐트러졌어요. 그렇지, 좀 더 뒤로, 어머니는 스마일, 아버지도 스마일. 저기 막내는 왜 이렇게 울상이야! 어머! 사진 찍기 싫어? 하여간 요즘 애들은 답이 없다니까. 자자, 다시 포즈!”

찰칵.

“그대로 숨도 쉬지 말고, 기다렸다가, 그렇지!”

찰칵.

사진을 찍고 만족한 표정을 짓던 아주머니가 휴대폰을 건네며 말했다.

“너무 예쁜 가족이에요. 이따가 저 위에서 만나게 되면, 내가 한 번 더 찍어 줄게요. 어머, 내 정신 좀 봐. 일행을 놓쳤네. 그럼 나 먼저 갈게요!”

종종걸음으로 일행을 찾아 떠나는 아주머니 뒷모습에 오한결 가족은 배꼽 빠지게 웃었다.

어머니가 물었다.

“사진은 잘 나왔니?”

오한결이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와! 완벽해요. 전문가 수준인데요? 사진 구도와 인물의 포즈, 심지어 표정까지. 기가 막히게 찍으셨네. 이 사진 크게 현상해서 거실에 걸어놔도 되겠어요.”

“어쩐지, 디렉팅이 예사롭지 않았어.”

널찍한 공원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가는 오한결 가족.

길 양옆으로 형형색색 물감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진 듯 알록달록한 단풍 풍경이 고귀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저 먼 산봉우리를 휘감고 내려온 신선한 바람이 거침없이 스치고 지나가자, 땅에 떨어진 단풍잎들이 하늘 위로 솟아올라 흩어져 버렸다.

동생이 단풍잎 하나를 손에 들고 물었다.

“왜 가을이 되면 이렇게 나뭇잎 색이 변하는 거지?”

설악산 자태에 푹 빠진 오한결이 대충 대답했다.

“예뻐지려고 하는 거지. 가을에 나무가 화장하는 것과 같은 원리야.”

“아……. 짝짓기 비슷한 건가.”

뒤에서 대화를 듣던 아버지가 오한결에게 소리쳤다.

“오한결! 한수가 진짜로 믿으면 어쩌려고. 제대로 가르쳐줘야지.”

동생이 미간을 찌푸린 채 오한결을 노려봤다.

“뭐야! 나 놀린 거야? 사람 못쓰겠네.”

오한결이 손에 들린 단풍잎을 흔들며 말했다.

“간단히 말해서, 나뭇잎의 초록색 엽록소가 파괴되고 색이 변하는 거야. 초록색이 없어지니까, 자연스레 붉거나 노란색이 보이는 거지. 원래 나뭇잎은 여러 색을 갖고 있거든.”

오한결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방대한 지식을 방출하기 시작했다. 겨울 일조량에 따른 나뭇잎의 엽록소 변화 등 지루한 강연이 이어졌다.

드디어 오한결의 말이 끝나자, 동생이 대놓고 하품을 하며 말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척척박사가 됐지? 신기하단 말이야. 분명 비밀이…….”

민망해진 오한결이 주변을 살피다가 소리쳤다.

“저기에 옛날 케이블카가 있네요. 구경하러 갈까요?”

오한결을 선두로 가족 모두 케이블카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초록색 지붕에 노란색 몸체. 길가에 작고 아담한 케이블카가 전시돼 있었다.

부모님이 매우 흥미로운 표정으로 케이블카를 이리저리 살폈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힐끗 쳐다봤다.

“옛날 생각나지 않아요?”

“맞지? 맞구나! 우리가 신혼 때 탔던 게 이거였지?”

페인트가 벗겨지고 녹이 슨 케이블카를 보며 동생이 말했다.

“엄청 오래돼 보이네요. 사람도 몇 명 못 타겠네.”

어머니가 흐뭇하게 웃었다.

“시간이 지나면 옛것은 항상 부족해 보이지. 그 당시만 해도 최신식이었단다. 아버지와 내가 설악산에 케이블카 생겼다고 해서 고물 자동차 끌고 구경 왔잖니.”

아버지가 속으로 발끈했다.

‘고물이라니! 월급 모아서 샀던 내 소중한 차를…….’

“그럼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케이블카가 없었다는 얘기잖아요. 그땐 어떻게 저 높은 설악산에 올라갔지?”

아버지가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놈아, 진정한 등산가들은 케이블카를 타지 않는단다. 튼튼한 두 발로 터벅터벅 올라가야 진짜 산악인인 거야!”

“저…… 저는 산악인 아닌데요.”

오한결의 말에도 상관하지 않고 아버지는 결연한 말투로 외쳤다.

“……기억하거라. 너희들은 아버지를 닮아 산악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그 말에 감동한 척하는 동생이 주먹을 입에 넣고 과장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헉!”

어머니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이제 등산 얘기는 그만! 그나저나 케이블카는 어디서 타는 거지?”

오한결이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을 가리켰다.

“와우, 저긴 거 같은데요. 사람들이 많네요…….”

탑승권을 구매하기 위해 자리를 비운 동생이 돌아오자, 가족 모두 케이블카 대기줄에 나란히 섰다.

동생이 고개를 들고 불안한 음성으로 말했다.

“와, 굉장히 높이까지 올라가네.”

오한결이 고개를 들었다.

아득히 먼 산봉우리까지 연결된 케이블 선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저 멀리 작은 상자처럼 보이는 케이블카가 느릿느릿 줄에 매달려 올라가는 모습이 흥미로우면서도 무척 위태롭게 느껴졌다.

인상 좋은 노인이 뒤돌아 동생을 바라보며 말했다.

“해발 700미터까지 올라간다네. 자네 긴장했는가?”

살짝 당황한 동생이 공손한 자세를 취했다.

“아, 제가 케이블카는 처음 타봐서요. 헤헤.”

“허허허.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위로 올라가면 기가 막힌 풍경이 펼쳐진다네. 동해 바다는 말할 것도 없고 울산바위도 선명하게 볼 수 있지. 그리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권금성 정상인데, 절경이 따로 없다네.”

설악산의 아름다움을 전파한 할아버지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휙 뒤돌아 다시 일행과 어울렸다.

어머니가 동생에게 말했다.

“여기가 왜 처음이니? 꼬맹이 때 데리고 왔었는데. 네가 얼마나 칭얼대던지, 너를 업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고생이 말도 아니었지. 그때만 생각하면……. 어휴.”

어머니의 말에 집중하지 못하던 동생이 급기야 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니 짜증을 내며 말했다.

“저는 어제 일도 기억 안 나요!”

“어머, 얘가 갑자기 왜 그래? 어머나! 어디 아프니? 식은땀을 흘리잖아!”

놀란 오한결이 동생의 안색을 살폈다.

붉어진 얼굴, 불안하고 초점을 잃은 눈빛. 설마…….

“고소공포증 있어?”

동생이 자존심을 세웠다.

“아니. 신경 쓰지 마.”

아버지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힘들면 안 타도 된단다.”

동생이 시치미를 떼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전 즐거운데요. 다들 왜 그러실까. 신경 쓰지 마세요.”

앞선 대기자들이 모두 케이블카로 이동하고, 마침내 오한결 가족들이 탈 케이블카가 덜컹거리며 미끄러지듯 입구에 도착했다.

오한결 가족이 제일 먼저 탑승했다.

뒤이어 사람들이 올라서자 케이블카가 공중에서 휘청거렸다.

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떨어지는 거 아니지? 지금도 이상해. 바닥이 막 흔들려!”

오한결이 한숨을 쉬었다.

‘에휴, 고생 좀 하겠구나.’

케이블카 문이 닫히고 간단한 안내 멘트와 함께 천천히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한결과 부모님은 케이블카 창밖으로 펼쳐진 살악산 비경에 눈을 떼지 못했다.

뾰족한 산봉우리들이 부서지는 파도처럼 거칠게 뻗어 있었다.

험한 산세는 대략 1억 년 전에 한반도를 뒤흔들었던 거대한 조산 운동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인간의 짧은 생으로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할 자연의 위대한 역사가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끙-! 끙-!

앓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얼굴이 시퍼렇게 변한 동생이 난간을 붙잡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괜찮아?”

“난, 괜찮아. 아무렇지 않다고. 마저 구경해. 나 신경 쓰지 말고.”

케이블카가 올라가다가 중간에 살짝 덜컹거리자, 동생이 결국 소리를 질렀다.

“끼약! 떨어진다!”

사람들이 동생을 보며 키득거렸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동생의 얼굴과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좀만 참자. 한수야.”

마침내 케이블카가 산 정상에 도착하자, 동생이 제일 먼저 내린 뒤 소리쳤다.

“살았다!”

오한결과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동생을 살폈지만, 한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기 있는 얼굴로 히죽거렸다.

“와! 엄청 멋지다. 설악산이 울긋불긋 단풍 옷을 입었네.”

동생이 아래를 가리켰다.

“저기가 아까 걸었던 길이잖아요. 되게 조그마하게 보인다. 높긴 높네…….”

오한결도 주변을 둘러봤다.

케이블카에서 바라본 산 중턱 절경도 멋졌지만, 산 정상 풍경은 입을 다물 수 없을 만큼 환상적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깊은 산세며, 푸른 안개에 갇힌 산봉우리들이 다시금 자연의 위대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좁은 길을 따라 약 10분 정도 올라가니, 권금성 정상에 닿았다.

오한결 가족은 말없이 설악산 풍경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오한결이 어머니 곁으로 슬쩍 다가가 외투를 벗어주며 말했다.

“답답한 마음이 풀리셨나요?”

어머니가 고개를 돌려 오한결을 바라봤다.

“고맙다. 덕분에 기분이 많이 좋아졌어.”

어머니가 깊은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한결이도 스트레스 좀 풀렸니? 요즘 일이 많았잖아.”

오한결이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다 좋아요. 요즘 하루하루가 선물 같거든요.”

불현듯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여기서 또 만나네요.”

반달곰 동상 옆에서 사진을 찍어 주던 노란색 등산복 아주머니였다.

“잘됐네, 여기서 사진을 더 찍어줘야겠다. 자, 이리로 오세요. 기가 막히게 찍어 줄 테니까. 자자, 어이, 막내! 똑바로 서야지. 여전히 말을 안 듣네. 그렇지! 좀 더 뒤로. 아니, 더 뒤로 가라고!!”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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